지난 10월 23일 대법원은 올 8월에 이찬수 교수에 대한 재임용 거부가 부당하다는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에 불복하여 강남대가 제기한 상고심에서 강남대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대법원 결정에 따라서 다시금 복직판결을 받은 이찬수 교수를 서대문의 한 카페에서 만나 인터뷰하였다. 그는 마침 다음 주 월요일(11월 3일)부터 인권실천시민연대에서 ‘인간, 그 심층 - 칼 라너의 신과 인간’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계획하고 있는 중이어서 다종교 상황에서 인간과 신의 관계에 대해 다시금 생각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한상봉: 우선 축하드립니다. 칠년간 재직하던 강남대에서 해직되셨다가 이번에 대법원 판결을 통해 복직하실 수 있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리 좀 해주시지요.
-이찬수: 제가 2003년 10월경에 종교적 관용의 표시로 불상 앞에 절을 한 적이 있었는데요, 그것이 창학이념, 그러니까 기독교정신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2년 반이 지난 2006년 1월 학교가 저를 해직(엄밀하게는 재임용탈락)시켰습니다. 벌써 3년 전 쯤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재임용 거부의 사유가 될 수 없다며 교육부에서 저에 대한 재임용거부를 취소시키자, 불행하게도 학교가 그에 불복해 교육부를 피고로 소송을 제기했지요. 학교측의 계속된 소송에 대해 1심(서울행정법원), 2심(서울고등법원)에 이어, 이번 대법원에서도 학교측 결정이 부당하다고 재차 확정 판결하였으니, 다행입니다. 원래 종교적 포용성의 정신으로 세워진 학교였는데, 최근 몇 년 사이 급격히 보수화하면서 생겨서는 안 되는 일이 생기고 말았네요. 최근 개신교의 권력화 내지 배타성으로 종교편향 문제가 생기고, 또 여전히 진행중입니다만, 그래도 이번 법적 판결이 한국 개신교의 배타성이 사라지는 작은 계기라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사이 마음고생도 좀 했습니다만, 그래도 그 복판에 제가 있다는 게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생각도 들구요.
-그동안 마음 고생도 많으셨을텐데요, 개인적으로는 이 과정에서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으셨나요?
-첫 일년 정도는 마음이 아프다는 게 이런 거로구나 실감했습니다. 트라우마라고 하지요. 물론 학교 일로도 힘들었지만, 사실 교회 일로도 마음고생을 좀 했습니다. 밖으로는 알려지지 않았고, 여기서 자세히 말씀드릴 수도 없습니다만, 학교 관계자가 이 일을 제가 목회하던 교회로까지 끌어들이는 바람에 제가 좀 더 힘들었고, 제가 힘들어지니까 저희 교회 신자들도 상처를 받게 되고, 그 바람에 저와 제 안사람도 다시 상처를 받는 악순환을 겪기도 했습니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모두 다 좋은 경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만... 살면서 얻기만 할 수 있겠습니까. 잃는 것도 있어야겠지요. 갑자기 월급이 끊어지면서 살던 집을 잃기도 했습니다만... 그래도 다시 주시지 않겠어요? 제 작은 아픔이 그저 개인의 일로 끝나지 않고 우리 사회의 문제가 될 수 있도록 함께 아파해주신 여러분들께는 죄송할 정도로 고맙구요. 그로 인해 제 인생관이 넓어진 것은 덤 중에 덤이지요. 짧은 인생에서 앞으로 가져야 할 자세, 해야 할 일이 더 분명해져서 좋습니다.
-요즘 근황은 어떠신지요?
-지난 8월말까지 1년간 일본 불교계 학교의 도움으로 동경에서 객원교수, 객원연구원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일본 사회에 대해 배운 바가 많았습니다. 지금은 일본 종교문화에 관한 작은 책을 비롯해 그동안 못 냈던 단행본을 좀 내려고 준비 중입니다. 그리고 감리교신학대학과 이화여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구요. 제가 기독교 정신을 어겼다는 이유로 해직되었을 때, 제게 일부러 기독교 강의를 맡겨주신 이화여대, 감신대, 그리고 성공회대 등에 대해서는 내내 감사해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 사회에 종교간 대화와 소통의 문화가 진작되도록 하기 위해 ‘종교문화연구원’이라는 연구소도 활성화시키려 도모하고 있습니다. ‘인권실천시민연대’와 인연을 맺으면서 종교를 인권의 문제 차원에서도 생각할 줄 아는 안목도 갖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인권연대에서 칼 라너 강의를 열었는데, 칼 라너에 대한 개인적 인연이 있나요? 칼 라너는 어떤 분이죠?
-대학원 시절 칼 라너의 신학을 주제로 석사 및 박사학위 논문을 작성했습니다. 학위 취득 후에는 <인간은 신의 암호>(분도출판사)라는 제목으로 단행본 출판되기도 했구요. 칼 라너는 20세기의 인물입니다만, 그의 신학은 이천년 서양신학의 핵심을 가장 잘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중층적 신학 속에는 종교간 대화의 필연성도 적절히 담고 있습니다. 교회로 하여금 세상과 다른 종교를 향해 문을 열도록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이 라너의 신학이기도 하지요. 무엇보다 라너의 신학은 지난 2천년 이상 지속되어 온 서양 인간론의 핵심을 잘 보여줍니다. 인권운동을 하는 인권실천시민연대에서 서양 인간론의 기초를 살펴보는 칼 라너 신학 강좌를 여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 중요성에 비해 라너의 사상과 언어가 좀 난해해서인지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에는 충분히 소개되질 못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라너 신학의 정수를 함께 느낄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오랜만에 예습과 복습을 좀 해야겠습니다.
-최근 정부의 종교편향 문제로 시끄러웠는데, 칼라너를 공부하면서 다종교 문제를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조언 부탁드립니다.
- 라너의 신학적 정신은 제2차바티칸공의회 대화 정신의 기초가 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요, 그의 ‘익명의 그리스도인론’이 그것을 잘 나타내줍니다. 저는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대화 내지 비교에 관심을 늘 두고 있는데요, 라너가 일본의 현대불교철학자인 니시타니 케이지와 대화한 내용은 그리스도인이 다른 종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그 기본자세를 잘 보여줍니다. 니시타니가 라너에게 물었지요. “당신은 신실한 타종교인을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는데, 그렇다면 마찬가지 논리로 우리가 당신을 ‘익명의 선불교도’라고 부른다면 어떻겠느냐”고요. 그러자 라너가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저를 예우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참된 선불교인이 되는 것과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동일하다고 봅니다. 물론 객관적으로 그리스도인은 불자가 아니고 불자도 그리스도인이 아니지만요.” 그랬더니 니시타니가 그랬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점에서 전적으로 하나입니다.”
이번 인권연대에서 하는 라너 강좌는 다른 종교를 대하는 신학적 태도를 정립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인 일정은 ‘지금여기’ 카페 ‘독자참여(행사,교육,홍보)’란에도 올라와 있구요, 인권실천시민연대(02-3672-9443 / 02-3672-0437) 홈페이지(http://hrights.or.kr)에서 온라인 신청을 할 수도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많이 참석해주시고 널리 홍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가톨릭뉴스지금여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