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7일 (음력 10월24일)은 단종이 사사된지 꼭 555년이 된 날이다
조선왕릉 중에서 부부가 멀리 떨어저 있는 릉은
영월의 장릉과 남양주에 있는 그의 부인 정순왕후 사릉이다
두 릉과의 거리는 약 200 키로 이며 500리 이다
옛날 같으면 며칠 몇날을 가야하는 아주 아득히 멀고도 먼 거리에 각각 있다.
이들은 역사의 제물로 인해서 이별 아닌 이별로 죽어서도 500년을 떨어져 지내왔다
단종은 귀양지에서 죽임을 당하고 정순왕후는 죽은후 갈 곳이 없자
시누이(경애공주)의 시가 해주정씨 가족묘 선산에 묻힌 게 지금의 사릉이다
그들은 죽은지 250년이 지난 영조때 시호가 복권이 되었다
단종부부를 그 당시 합장 했어야 하는데 그들은 하지 못 했다
그리고 다시 또 250년이 지난 2012년 초겨울
사릉을 천묘하자는 이야기가 일부 학자들 입에서 다시 나오는 모양이다
역사 학자와 문화재청 그리고
지역 자치단체가 서로 이견이 많아서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사가들은 지금의 그것도 역사니까 그대로 릉을 나둬야 한다며 반대하고
문화재청은 세계 문화로 등재 되었으니까 절차와 예산 때문에 망서리고
남양주는 지역 유물이 다른 곳으로 옮기면 불리하니까 반대를 하고 있다
영월은 사릉을 그곳으로 옮겨 왔으면 한다.
당시 세조는 참으로 영악했던 모양이다.
어찌 천혜의 유배지를 찾을 수 있었는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청령포는 동·북·서쪽이 깊은 강물로 막혀 있고 남쪽은 천길 절벽이다.
그리고 가운데에는 구의봉이 요새처럼 버티고 있고 숲이 울창하여
사람들이 접근하기 조차 어려운 마치 창살 없는 감옥과 같은 곳이다.
단종을 유배 시키고도 안심이 안 되어 유배생활 겨우 서너달 만에
서인으로 신분을 강등시켜 죽여 버렸다.
세조는 그 것으로도 부족하여 단종의 시신을 청령포 강물에 버리고
누구든지 시신을 거두는 자는 3족을 멸할 것이라 엄명했다.
지금으로 부터 550여 년 전, 1457년 10월 24일(음력)
영월 땅에는 빨리도 겨울이 찾아 왔다.
겨울 찬바람 씽씽 불던 날 조선의 제6대 왕 단종(端宗)은
17세 어린 나이로 세조에게 죽임을 당하면서 피 눈물나는 시 한수를 남긴다.
이른바 단종의 어시 자규시(子規詩)이다.
단종애사
두고 온 임 그리워서
청령포 관음송에 걸터앉아
눈을 감아 보니
흐르는 눈물은 주체 할 수 없어
망향탑에 돌하나 얹는다
영도교 난간에서
임을 두고 천리 먼 길
떠나 올 때
무거운 발 걸음
멀어지는 한양 길을
돌아 보고 또 돌아 보고
엔젠가는 돌아 갈 줄
알았는데
다시 꼭 만날 줄 알았는데
잠깐의 이별이
오백년의 한이 될 줄을
어디에다 목 놓을까?
사릉에 두견은 슬피 우는데
장릉에 홀로 누워서 내 무엇하리오
견우와 직녀도
일년에 한번은 만나는데
우리가 만날날은 그 언제련가....
산로
첫댓글 오랜만에 읽는순간 어린 임금이 가여워서 눈물이 납니다.권력에 눈먼
작은아버지 세조에게 끝내 죽임을 당하는 비운의 단종이 너무너무~~
가슴아푼 슬푼 역사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