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위
▲ 17세기 그림에 있는 주사위 놀이. /위키피디아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온라인 게임업계의 '확률 조작 논란'을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부 게임에는 복권처럼 당첨되는 상품이 있어요. 게임 회사는 이 상품들의 당첨 확률을 공개하는데, 실제로 공개된 확률대로 상품이 당첨되지 않아 게임 회사가 확률을 조작했다는 의혹을 받는 거죠. 이런 게임에서 상품의 당첨을 확인할 때 주로 주사위가 굴러가는 화면이 나오는데요. 주사위가 확률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물건이기 때문입니다.
기원전 3200~1800년 사이로 추정되는 이란 남동부 샤르라는 지역에 있는 수헤테 유적에서 주사위가 발견됐습니다. 수천 년 전에도 주사위가 있었던 거예요. 기원전 10세기쯤 이집트 지역에서도 주사위를 사용했어요. 이 주사위는 양 등 동물의 뼈로 만들어졌는데요. 동물 뼈 중에서 짤막해서 거의 정육면체 모양을 가진 부분을 활용했다고 합니다. 숫자나 눈금이 새겨져 있지는 않았어요. 뼈의 모양이 약간씩 다르기 때문에 이 모양을 눈금으로 활용한 것으로 추정하죠. 고대 로마 공화정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권력을 잡기 위해 루비콘강을 건너 자신의 부대를 로마로 진군시킬 때 했던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말에 나오는 주사위도 동물 뼈로 만든 주사위랍니다.
기원전 400년 로마 제국에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주사위 중에는 직육면체로 생긴 주사위도 있어요. 직육면체 주사위는 굴렸을 때 각 면이 나오는 확률이 모두 같지 않아요. 직육면체 주사위가 만들어진 이유는 당시 사람들이 주사위를 신의 뜻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주사위를 굴려서 나오는 수는 신의 뜻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확률이 달라도 문제가 없는 거죠.
주사위의 면이 모두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르네상스 시기인 15세기 중반입니다. 천문학과 수학이 발전하면서 확률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고, 주사위의 숫자는 신의 뜻이 아니라 확률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이 시기부터 정육면체 모양을 가지고 서로 마주 보는 눈금의 합이 7이 되는, 현대적 형태의 주사위가 등장했어요. 이후 정사면체, 정팔면체, 정십이면체 주사위 등의 주사위도 탄생했죠.
우리나라에도 오래전부터 주사위가 있었어요. 가장 유명한 것은 경주 안압지에서 발굴된 주령구(酒令具)입니다. 주령구는 '술과 관련된 명령을 내리는 구슬'이라는 뜻인데요. 이 주사위에는 숫자 대신 술과 관련한 벌칙이 적혀 있었어요. 당시 신라 귀족들은 술자리에서 이 주사위를 굴려 나오는 벌칙을 하면서 놀았다고 해요. 조선시대에도 윤목(輪木)이라고 부르는 5각 기둥 모양 주사위를 가지고 서당에 다니는 아이들이 오락을 즐겼다고 합니다.
김현철 서울 영동고 역사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