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따라 골목따라]양산 '서창'장
옛것에 새것이 어우러지다
천성산 늙은 참나무 숲을 거닐다가,느지막이 내려온 일요일 오후.
귀가하기에는 아직 해가 남아 갈 길을 못 정하고 있는데,동행이 '오늘 서창장'이라며 둘러보잔다.
'서창장이 4,9장이니까,옳거니 바로 오늘일세. 가는 날이 장날이로구먼.'
냉큼 따라나선다.
마침 휴일에 장이 서는 바람에 서창장은 사람들로 넘쳐난다.
서창,덕계 사람은 다 나왔나 싶다.
노포동에서 한 20여분 거리의 서창장은,장의 풍경이 부산과는 사뭇 다르다.
온갖 종류의 농기구를 취급하는 농기전부터,여러 가지 곡식을 파는 싸전,각종 나물과 소채의 나물전
,붕어,잉어,가물치 그리고 황소개구리까지 파는 민물생선전까지,곳곳에 농촌장의 냄새가 풀풀 풍긴다.
그렇다고 깡촌의 5일장을 연상해서는 안 된다.
현재의 서창은 도시화 지역이므로...
"칼이 잘 들데. 여서 사기로 참 잘했다마."
"와 아잉교? 여서 사먼 칼 공짜리 갈아주제,손젭이 빠지먼 낑가주제,정말 편타아잉교?"
"누가 머라나?"
칼 한 자루를 두고 주인 여자와 손님 할머니가 큰소리로 사투리 입장단을 맞추는 품이 마냥 구수하고 정겹다.
딴에는 촌장이라 농기전이 제법 크고 A/S도 확실해 즉석에서 숫돌로 칼을 갈아주는 서비스는 기본이다.
한곳에는 싸전이 열렸는데 쌀,보리,조,수수는 물론 검은콩,대두,쥐눈이콩 등 갖가지 콩이 자루마다 가득가득이다. 파,상추,신선초 등 종자할 각종 씨앗도 아울러 팔고 있다.
이곳도 입씨름으로 시끄럽기는 매한가지다.
"하이고 말라꼬 두 대(되)나 사능교? 담 자아(장) 와가 사먼 될낀데."
"씨끄럽따마 모레 큰 아 안오나?"
"요시 군대는 잘 무우서,후가(휴가) 와도 밥 안묵소마!"
이제 도시에서는 보기 드문 됫박으로, 쌀을 한 되,두 되 사고파는 모습이 여간 반갑고 신기한 것이 아니다.
한 됫박씩 쌀을 사서 밥을 지어 먹으면,밥맛도 옛날 밥맛이 날 것 같다.
갑자기 시장기가 돈다.
먹을거리전으로 들어선다.
얼큰하고 진한 국물 맛이 일품인 민물매운탕집,돼지수육 뭉텅뭉텅 썰어 넣어주는 돼지국밥집,수제비와 칼국수를 투박한 손으로 뚝뚝 뜯어서 끓여주는 손수제비집 등이 하산한 중생(?)의 허기를 자극한다.
이뿐만 아니라 시원한 콩국과 단술,메밀묵과 도토리묵,파전과 정구지 지짐 등도 무시할 수 없는 먹을거리다.
이것저것 주전부리하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입가심으로 콩국전에서 콩국 한 그릇 시켜 마신다.
"아저씨,이 콩국 국산콩으로 만든 것 맞아요?"
짓궂다.
요새 비싼 국산콩으로 누가 콩국을 만들어 팔아? 그 아저씨 씩 웃기만 한다.
그런데 맷돌이 참으로 기발하다.
전동기로 맷돌을 돌리는 것은 이제 예사로운 일이지만,
맷돌 구멍 위로 물 꼭지를 달아 물을 공급하게 만든 맷돌은 처음이다.
그야말로 전자동이다.
그러고 보니 주위에 많은 전통의 것들이 현대식 옷으로 갈아입었다.
장이 떠나갈 듯 "뻥이요"를 외쳐대는 뻥튀기 아저씨의 힘든 물레질도 기계가 대신한 지 오래고,
냉동 생선을 칼 대신 전기실톱으로 장만해 주는 것도 어쩐지 낯익지만은 않다.
그러나 아무려면 어떤가?
전통의 문양에 현대식 채색이라도 아름다우면 그뿐.
그래서 서창장은 우리의 옛것에 새것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장터이다.
최원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