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니코데모와의 대화 -
☆ 2014년 가해 5월5일 (백) 부활 제3주간 월요일
[청주] 천상의 것에 마음을 두라. -
청주 교구 감곡 매괴 성모 성당 반 영억 라파엘 신부
† 제1독서 : 사도 6, 8 - 15
† 복음 : 6, 22 - 29
★ 은총과 능력이 충만한 스테파노가 표징들을 일으키며 복음을 선포하자
적대자들은 사람들을 선동하여 그를 최고 의회로 끌고 간다. 이를 두려워하지
않는 스테파노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도 같았다(제1독서).
★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빵의 기적을 일으키신 뒤 군중은 예수님을
애써 찾아온다. 예수님께서는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배불리 먹었기에
당신을 찾아온 그들을 나무라시며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찾도록 힘쓰라고
이르신다(복음).
◈ 오늘의 묵상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오늘은 어린이날, 어린
시절에 부르던 '어린이날 노래'를 떠올릴 것입니다. 1920년대, 암울한 일제
강점기에 어린이들을 아끼는 마음으로 소파 방정환 선생을 비롯한 색동회가
제정한 이 어린이날은 어린이들에게서 희망을 보고 그 희망의 싹을 키워
주려는 간절한 마음의 결실이었습니다. '조선소년운동협회'가 1923년 제1회
어린이날을 맞아 발표한 선전문의 '어린이날의 약속'이라는 대목에는 참으로
인상적인 표현이 있습니다. "어린이는 어른보다 더 새로운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어린이를 누구보다 더 사랑하셨습니다. 당신께 어린이를
다가오게 하시고, 어른들에게 어린이를 보고 배우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어린이와 같을 때 '새로운 사람'이 되어 하느님 나라를 알아보고 그 안에서 살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마태 19,13-15 참조). 독일의 신학자 하인리히 슈페만은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이라는 자신의 책에서 어린이의 어떤 모습이
우리가 하느님 나라로 들어서는 길을 보여 주는지 여러 편의 아름다운 묵상을
남겼습니다. 특히 다음의 짧은 구절이 가슴 깊이 와 닿습니다. "어린이는
우러러본다. 어린이의 가장 어린이다운 특징은 바로 그 눈길의 방향이다."
어린이날은 어린이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밝은 미래를 위한 노력을 다지는
날이겠지만, 우리 스스로가 어린이처럼 '새로운 사람'이 되려는 다짐의
날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을 우러러보며 활짝 열려 있는 삶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의 사람으로 사는 길일 것입니다.
- 매일 미사 -
◈ [청주] 천상의 것에 마음을 두라|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4년 가해 5월5일 부활 제3주간 월요일 (요한6,22-29)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 요한 6,22-29
천상의 것에 마음을 두라.
사람은 음식을 먹지 않으면 살지 못합니다. 단식을 한다고 해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위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영양을 보충 시켜야 합니다. 음식을 통해
영양을 섭취하지 않으면 육체를 지탱할 수가 없습니다. 40일 동안 단식을 하는
이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정신이 맑아지고 물 한 컵, 주스 한 잔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정 가간이 지나면 힘이 없어서
그야말로 맑아졌던 정신도 혼미하게 됩니다. 결국 사람은 무엇을 먹어야
삽니다. 작정하고 단식을 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겠지만 일상의 일을 하면서
장기간 단식을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사람은 밥을 먹어야 산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밥을 먹어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또 배고파집니다. 따라서 영원히 배고프지 않는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그것은 주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마태4,4). 밥을 먹는 것 보다 하느님의 말씀이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말씀
안에 모든 것이 있기 때문에 항상 말씀이 먼저 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듣고
말씀대로 행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말씀을 실천하는 가운데
하느님을 만나고 구원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도 말씀대로 행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지상의 양식도 중요하지만 천상의 양식이 더 소중한데 그 천상양식은 말씀과
더불어 말씀이 사람이 되어 오신 예수님 이십니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보내신
아들을 믿어야 합니다(요한6,29).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미 말한 대로, 너희는 나를 보고도
나를 믿지 않는다”(요한6,35). 결국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주님께
대한 믿음, 곧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동의를 통해서 완성됩니다. 하느님의 선물을 자유의지를
가지고 인간이 거부할 수 있으니 신앙은 하느님의 일인 동시에 인간의
일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싶어 합니다. 남들이 성경에 관해 많이 알고
통성기도를 잘 하는 것을 보면 부러워합니다. 특히 전교에 동분서주하는
개신교 신자들을 보면서 열성을 부러워하고 말 잘하는 그들을 보며 주눅이
듭니다. 그러면서도 성경이나 신심서적을 읽을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텔레비전 앞에 있는 시간은 많으나 기도하는 시간은 적습니다. 노력하지
않으면서 거저 얻으려는 마음이 너무 큽니다. 성경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믿는다면 왜 그 말씀을 듣기를 주저하고 실천하기를 두려워합니까? 아마도
그것은 현실적인 득이 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현세의 축복이 풍성하게
주어지면 기도하라 하지 않아도 매달릴 것입니다. 그러나 현세의 축복도
좋지만 천상의 축복이 더 귀합니다. 영광의 특권을 누리기 위해 고난의
특권을 감당할 수 있는 은혜가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옛말에 “구슬이 서 말 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좋고
훌륭한 일이라도 끝을 맺어 놓아야 비로소 가치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풍부하지만 인간의 협력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협력을 통해서 선한 열매를 맺어 주십니다. 허나 썩어
없어질 세상 것에는 눈이 번쩍 뜨이면서도 천상의 것인 영원한 생명에는 굼뜬
우리의 모습입니다.
성 베르나르도는 “하느님의 위안은 다른 위로를 찾는 사람에게는 있을 수
없습니다. 진실한 것이 헛된 것과, 영신적인 것이 육신적인 것과, 최고의 것과
최저의 것과 혼동되기도 하지만 천상의 것과 지상의 것을 똑같이 맛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천상의 것을
추구하십시오. 지상에 살면서도 지상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지 말고 천상에
있는 것들에 우선 마음을 두십시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의 양식인 말씀을 자주
접하고 미사 안에서 말씀이 사람이 되어 우리에게 오신 영성체로써 신앙의
건강을 잘 지키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 청주 교구 감곡 매괴 성모 성당 반 영억 라파엘 신부 -
◈ [인천]
공지사항 한 가지 알려드립니다. 제가 오랫동안 페이스북과 카카오스토리라는
SNS 활동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이곳에 글을 올리면서 ‘주님이 아닌
제 자신을 알리는 것이 아닌가?’ 라는 반성을 자주 하게 되었습니다. 선교의
또 다른 방법이라고 생각했지만, 저만 더 알려지는 것 같았지요. 더군다나
SNS 활동을 통해 익명의 사람들에게 오해를 가져오기도 하더군요. 그래서
어제 과감하게 두 군데 모두 탈퇴했지요. 갑작스런 탈퇴에 당황하셨을 분도
계실 것 같지만, 아무쪼록 이해해주시길 바라면서 오늘의 묵상 글 시작합니다.
어느 호수에서 물고기 잡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이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물고기가 있는지 없는지의
증거를 찾는 것이 제일 중요할까요? 사실 물고기를 잡기 위해 제일 먼저 할
일은 그런 정보의 수집도 중요하지만, 낚싯줄을 얼른 드리우는 것입니다.
만약 낚싯줄을 드리우지 않는다면, 많은 정보를 수집했다고 해도 단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낚시를 너무나도 좋아하는 신부님과 휴가를 같이 갔다가 함께
바닷가를 거닐었습니다. 그런데 이 신부님께서는 낚싯대를 사서 낚시를
하겠다는 것이었지요. 저는 동네 분에게 저 앞의 바다에서 낚시가 잘 되는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잡히지 않는다는 퉁명한 대답을 하시더군요. 이런 말을
들은 저는 그 신부님께 낚싯대 사봐야 허탕만 칠 테니 포기하라고 했지요.
그러나 낚싯대만 드리워도 기분이 좋다면서 제 의견을 무시하고 낚싯대를
사서 바닷가에 드리웠습니다.
결과는 동네 분의 조언(?)과 달리 많은 물고기를 낚았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정보였던 것이지요. 그리고 정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낚싯대를 드리우는
행동 자체가 중요함을 깨닫게 됩니다. 불확실한 결과가 충분히 예견될지라도
과감하게 낚싯줄을 던질 때,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올라갈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 안에서도 중요한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그런데 종종 이
우선순위를 잘못 생각할 때가 종종 생기지요. 특히 세상의 일과 물질적인
것들을 우선시할 때, 가장 중요한 것들인 주님의 일들을 놓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열심히 쫓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을 쫓고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알고서 쫓는 것일까요?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보다는 육체의 양식에만 쏠려 있습니다.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신 그 모습만을 보고서 쫓았던 것이지요. 하지만 예수님께서 원하셨던
것은 육체의 덧없는 양식이 아니라 영원한 양식을 추구하게 하려는
뜻이었습니다.
우리도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만 힘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에
우선순위를 두면서 제일로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는 모습, 즉
주님의 뜻에 맞게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간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얻으려는 양식은 무엇일까요? 또한 나의 우선순위는 어디에
있을까요?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급하게 대답하는 것을 자제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몰입할 때,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으며 그만큼 삶은 더 성숙해진다(피에르 쌍소).
비겁자가 되지 말자(인터넷에서 퍼온 글)
지금부터 100년 전 벌어진 1905년 월드시리즈 크리스티 매튜슨이라는 투수는
총 3경기에 등판해서 3경기 모두를 완봉승(27이닝 무실점)으로 따냈다.
미국의 야구인들은 그를 일컬어 ‘신의 야구’라 칭하는데 그가 존경을 받고 있는
것은 그의 야구 실력이 이처럼 뛰어나서도 이지만 그가 남긴 기록 때문만이
아니다.
1918년 당시 38세의 매튜슨은 세계 제1차 대전에 참전을 선언하고 프랑스
동부전선에 투입된다. 그의 신분과 나이 때문에 이미 병역을 면제 받은
상황이었고 계속해서 야구선수로 활동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가야 하는 길을 특별한 이유를 만들거나 자신의 상황을 합리화하며 의무를
회피하는 비겁자가 되지 않겠다.’라며 자원입대한 것.
그러나 매튜슨은 독일군의 독가스 공격에 노출되며 폐가 크게 손상되었고
평생 깊은 기침을 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야구를 그만두게 되었으며 여생을
병상에서 고통 받다가 45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그는 숨을 거두기 전 ‘나는 결코 야구든, 인생이든 비겁하지 않았다.’ 라며 숨을
거두었다.
자신의 인생을 살펴보게 됩니다. 혹시 비겁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비겁자가 아닌 진정한 영웅의 모습으로 살 수 있는 우리 신앙인이 되었으면
합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보여주신 모범을 따라서…….
- 인천 교구 성소 국장 조명연 마태오 신부 -
◈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기적과 표징의 차이는 행위와 존재의 차이다
2014년 가해 5월5일 부활 제3주간 월요일
<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
복음 : 요한 6,22-29
< 기적과 표징의 차이는 행위와 존재의 차이다 >
“선생님 제가 물위를 걸어 갠지스 강을 건널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 수행자가 인도의 정신적 지도자인 ‘라마크리슈나’를 찾아가 의기양양하게
자신의 높아진 도력을 자찬했습니다.
눈을 지그시 감고 듣고 있던 라마크리슈나가 물었습니다.
“그래, 몇 년이나 수련을 했는가?”
제자가 대답했습니다.
“18년 만에 이루어냈습니다.”
스승은 다시 물었습니다.
“이보게, 갠지스 강을 건너는 데 뱃삯이 얼마인가?”
제자가 대답했습니다.
“18루피라고 들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라마크리슈나가 수행자에게 말했습니다.
“자네는 18년 동안이나 수행해서 겨우 18루피를 벌었네.”
이 제자의 문제가 무엇이었을까요? 자신의 능력이 어떤 일을 행하거나 행하지
못하는 것에서 드러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우리가 물 위를
걷는다고 해서 어떠한 칭찬도 해 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원하셨던 것은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氣)를 수련하는 이들은 진짜
공중부양을 한다고 합니다. 절벽에서 1미터 가량 떠서 설법을 하기도 합니다.
어떤 한국스님은 하버드 대학에서 30센티 공중부양을 보여주고 그것을 보는
모든 학생들과 교수들을 매혹시킨 적도 있다고 합니다. 만약 어떤 특이한
현상을 이루어내는 것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예수님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더 큰 기적을 보이면 그 사람을 따라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종교는 기적의
종교가 아니라 표징의 종교입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하고 찾아온 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행위나 이적에 집중하는 이들은 육체적인 이들이고, 예수님은 영적인 것을
베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이란 우리가 주님의 기도에서 매일 우리에게 달라고 하는 ‘양식’, 곧
‘그리스도 자신’인 것입니다.
사실 모든 기적은 표징입니다. 그리스도도 기적이지만 영적인 눈으로 보면
표징입니다. 기적은 ‘사람의 아들’이고 표징은 그분이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기적만 보고 어떤 이들은 표징까지도
읽어낼 수 있는 것이 차이입니다. 사람의 아들은 기적을 행할 수 있을지라도,
하느님의 아들이 하시는 일은 표징인 것입니다. 기적을 보는 이들은 육체와
그 감정만을 추구하며 사는 이들입니다. 그러나 그런 믿음의 정도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예수님께서 당신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다고 말씀하시자, 모두 그분을 버리고 떠나가고 맙니다.
그렇게 쉽게 포기되어지는 믿음은 믿음이라고도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표징이 된 이들은 모세가 광야에서 그들에게 먹였던 만나가 곧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그 많은 사람들을 먹이신 것과 같고 또 그렇게 그런
기적은 성체성사로 우리에게 매일의 양식이 되어 영원히 이어질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표징을 읽어낸 사람의 삶은 온통 변화되어 실제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됩니다. 아니 무엇이 되어야하는지 알게 됩니다.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표징을 기적으로만 보려고 하는 이들의 특성을
이야기하십니다. 기적을 본 이들은 무언가 ‘해서’ 그 기적에 응답하려 합니다.
예를 들면 봉사활동을 한다든가, 죄의 행위를 끊어버리는 등의 일을 해서
자신의 정당함을 드러내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묻는 질문은 항상
이렇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래서 이런 이들이 물 위를 걷는 것을 이루어내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합니다. 그것이 진정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이렇게
자신이 하는 행위로써 자신을 드러내는 이들을 바리사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사이가 아니라 세리를 인정하십니다.
무엇을 해야만 하느냐고 묻는 이들에게 예수님의 대답은 항상 이렇습니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아마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바오로 사도처럼 고생한 분은 찾기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성모님이 바오로보다 더 큰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
이유는 성모님께서 아주 많은 일을 하시지 않으셨지만,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라’고 하지 않으시고, ‘돼라’고
하십니다. 하느님을 일 자체가 어떠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닌, 믿음이 강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행위는 존재가 변화되어 저절로
변화되는 것이어야지 억지로 마음에 드는 일을 하려고 한다면 안 됩니다.
행복한 만큼만 행하십시오. 이것이 자신을 지키는 길이고 자신을 아는
길입니다.
사랑은 행위가 아니라 존재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랑하시기 위해 존재하는
분이 아니시라, 사랑이시기 때문에 존재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사랑’은 하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이 되었기에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태양은 우리에게 따뜻함을 주기 위해 노력하지 않습니다. 그냥 자신이 따뜻한
존재가 되는 것을 좋아하는데, 주위의 우리들이 그 덕을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태양은 우리를 살리고 있다고 자랑하지 않습니다. 아름다음과 향기를
주는 꽃들도 마찬가지고, 공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일을 자신도 모르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심판 때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이들에게 좋은 일을 행했던 이들이 자신들이 한 행위들을
기억해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행위로 당신께 봉사하며 예수님의 발치에서만 있으려는
자신의 동생을 판단하는 언니 마르타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이다.”
그렇습니다. 그분의 발치에 붙어있는 것. 그것만 바라십니다. 그것이 나를
변화시킵니다. 내가 어떻게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열매는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붙어있기만
한다면 ‘저절로’ 맺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봉사를 한다는 명목으로 매일
말씀이나 성경을 읽을 시간도 내고 있지 못하다면 우리에게 어떤 열매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신랑이 원하는 것은 일 잘 하는 가정부가 아닌 순결한
신부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산 성당 홈페이지: http://cafe.daum.net/ca-osan
- 수원 교구 복음화국 부국장 기획 담당 전삼용 요셉신부 -
◈ [수도회]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 신부 -
◈ [서울]
- 서울 대 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기타] 2014년 5월 5일 부활 제3주간 월요일 한 줄 복음묵상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For the means of eternal life we must be conscious of the meaning of
the things we are trying to grab and hold onto.
2014년 가해 5월 5일 부활 제3주간 월요일 한 줄 복음묵상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요한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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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움켜쥐려 하는 것들, 놓지 않으려는 것들이, 영원한 삶에 있어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의식할 줄 알아야 합니다.
私たちが握り締めようとするもの、手放さないようにするものが、
永遠の命にあって何の意味を持っているのかを意識すべきです。
- 사이타마 교구 오타(太田)본당 주임
김 대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 -
https://www.facebook.com/WithfatherPinetree
-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
◈ [수도회] 나보다는 너를, 우리보다는 너희를[단상]
2014년 가해 5월5일 부활 제3주간 월요일(2014년 5월 5일) :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 요한 6,22-29
나보다는 너를, 우리보다는 너희를
세상에는 돈과 권력이 우선됩니다. 만일 돈과 권력이 이기적인 얼굴을 하고
있다면 분명 썩어 없어질 양식입니다. 먹어도 먹어도 만족하지 못하고 배부른
것은 찰나일 뿐이지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것에 목숨을 겁니다.
이것을 손에 넣으려고 누가 죽든지 누가 다치든지 거짓과 폭력을 불사합니다.
세월호 사건에서 사람의 목숨이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을 우리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유가족들은 이것에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고 주님은 우리에게 촉구하십니다.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은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입니다.
예수님은 벗을 위하여 당신 몸과 피, 곧 생명을 몽땅 내어놓으신 분이십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우리도 예수님처럼 우리 삶을 내어놓아야 하지요.
나보다는 너를, 우리보다는 너희를 더 생각하는 우리가 되도록 합시다.
돈과 힘은 이타적인 삶을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삶을 살 때 생명이 꽃피게 될 것입니다.
-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인영군 끌레멘스 신부님의 복음 단상 신부 -
◈ [서울] 무엇을 얻으려고 힘써야 하는가
2014년 가해 5월5일 부활 제3주간 월요일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 요한 6,22-29
무엇을 얻으려고 힘써야 하는가
사람이라면 무엇을 얻으려고 힘써야 하는가를 알아야 되지 않을까요?
재물, 미모, 권력, 좋은 직장, 사랑을 얻어도 죽음 앞에는 다 허무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걸 얻으려고 그렇게 힘쓰니 막간 어른들이지요.
죽음 앞에서 당당한 건 진리 정의로 무장한 자신의 영혼일 뿐입니다.
진리와 정의만 아는 영혼들 앞에서 거짓 탐욕으로 살찌운 어른들 뭡니까.
살면서 힘써 얻을 것도 몰라서 철없는 게 아니라 아예 악귀와 합세한 거지요.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요한 6,27)”
- 서울 대 교구 이기정 사도 요한 신부 -
◈ [수도회] 영원한 보화와 짝퉁
2014년 가해 5월5일 부활 제3주간 월요일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 요한 6,22-29
영원한 보화와 짝퉁
오늘 내게 있어 썩어 없어질 양식은 무엇이며,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은 무엇인가? 생각해봅니다.
베트남의 성자 구엔 반 투안 추기경께서는 아무런 죄도 없이 견뎌내야 했던
랜 독방생활 중에, 철저한 고독, 치열한 자기 극복의 과정, 열렬한 기도 끝에
그 둘을 구별할 줄 아는 식별력을 얻었습니다.
그는 한치 눈앞의 것에만 몰두하지 정작 가장 중요한 본질에 소홀히하고 있는
우리를 향해 외칩니다.
"영원이라는 상표를 지니고 있지 않은 것은 어떠한 것이든 가짜입니다."
썩어 없어질 양식들이 지닌 공통된 특징이 한 가지 있습니다.
외양이 그럴듯 해보이지만 유한하다는 것입니다.
영원할 것 같지만 실상 잠시 지나가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영원성, 지속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추구하는 성찰 없는 성공이 썩어 없어질 양식입니다.
겸손이 사라진 권위가 썩어 없어질 양식입니다.
양심과 지성이 결여된 명예가 썩어 없어질 양식입니다.
정직과 나눔이 없는 부가 썩어없어질 양식입니다.
참된 부와 그릇된 부, 진품과 명품, 영원한 보화와 짝퉁을 구분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해야겠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기적과 치유활동을 자신들의 눈으로 목격한
사람들은 대체로 두 가지 부류로 구분되었습니다.
첫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예수님에게서 참 메시아성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 하느님으로 인정하고 신앙의 대상으로 믿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두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그러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을 신앙으로 승화시키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예수님을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충족시킬 도구로 전락시켰습니다.
예수님을 자신들의 꿈을 성취시켜줄 정치적 메시아로 이용하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집요하게 예수님을 따라다니긴 했지만 결코 존경과 신앙의
대상으로서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가끔씩 예수님께서 자취를 감출 때가 있었는데, 그럴때 마다 목숨걸고
집요하게 그분을 찾아다녔습니다. 어렵사리 예수님을 발견한 그들이 질문을
던집니다.
"저희들을 몰래 따돌리고 언제 이쪽으로 오셨습니까?"
그들의 속셈과 내면을 정확하게 꿰뚫고 계셨던 예수님이셨기에, 의미없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십니다.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십니다.
"허황된 꿈들은 빨리 깰수록 좋단다.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로고 애쓰지
말고 영원한 생명을 주는 양식을 얻기 위해 노력하라."
"눈에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란다. 이 세상 것만 기를 쓰고 추구하지 말아라.
감추어진 세계, 보다 가치있고 차원 높은 세계는 어찌 보지 못하느냐?
- 살레시오회 한국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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