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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신앙인의 의무를 잘 감당합시다.(행17:10-15절)
2025, 7/27 설교문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행17:10-15절 말씀으로“하나님의 뜻을 알고 신앙인의 의무를 잘 감당합시다.”이런 제목으로 말씀 전할 때 주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이곳에 함께하길 원합니다.
지난번에 부산 세계로교회와 파주 운정교회를 압수수색하더니 이번에는 여의도순복음교회와 극동방송을 압수수색해 교회에 대한 핍박을 본격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는데, 좌경화된 성당은 성역으로 인정해주고, 교회는 마구잡이로 압수수색을 하는데, 원래 교회나 성당은 범죄자가 숨어도 교회의 거룩성을 존중해 침범하지 않는 게 불문율이었지만 교회만은 지들 맘대로 압수수색을 합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대통령 지지도가 70-80%대가 나오면 대통령 연임제로 헌법을 바꾸자고 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리되면 이 나라 자유와 민주, 인권은 종말을 고할 겁니다. 그래도 국민이 중국이나 북한식 독재를 원한다면 해야지요.
한 주간 평안하셨는지요? 우리 인사 나누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반갑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3가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성도의 기본의무인 복음전파에 충실해야 합니다.(10절)
둘째로, 교회는 목회자와 성도가 함께 세워가는 곳입니다.(10절)
셋째로, 하나님의 뜻을 벗어난 열심은 오히려 문제를 만듭니다.(13절)
그러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달고 우리의 의무인 복음을 잘 전해 교회를 온전히 세워가는 것에 대해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음성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성도의 가장 기본인 복음전파에 충실해야 합니다.(10절)
본문 10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아멘.
바울일행이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갇히는 등 여러 고난을 당하다 데살로니가로 가서 복음을 전할 때 그곳에서도 많은 헬라인과 귀부인들이 회심하고 복음을 받아들이자 유대인들이 시기하여 소동을 일으킵니다. 여기서도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어 밤에 교우들이 급하게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빼돌립니다.
사도바울은 베뢰아로 들어와서도 쉬지 않고 유대인의 회당 등에서 복음을 전하는데, 사도바울은 1차전도 때도 유대인들에게 돌에 맞아 가사상태에 빠질 만큼 호되게 당했고, 또 데살로니가에서도 유대인들에게 당하여 이곳 베뢰아로 피신해왔습니다. 이 정도 되면 유대인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겨 쳐다만 봐도 경기를 일으킬 것 같은데도 이곳에서 또 유대인의 회당을 찾아가 복음을 전하는 것을 볼 때 사도바울은 진정 동족 유대인들을 사랑했으며, 자기 동족들이 지옥가면 안 된다는 생각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렇게 사도바울은 유대인들에게 핍박을 받고 도망쳐온 상태에서도 숨지 않고 유대인회당에서 또 복음을 전했는데, 복음을 전하다 또 유대인의 시기와 질투로 어떤 위험에 처할지 모르는 상황임에도 그들은 하나님 앞에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마땅히 감당해야할 복음전파의 사명을 충실하게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구원받아 하나님나라 백성이 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복음전파의 사명을 감당해야한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혹 여러분들 중에 교회는 다니지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따로 있고, 나는 전도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는데, 그러나 항상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는 예수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받은 순간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복음전파의 사명을 자동으로 받았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20)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을 볼 때 가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교회로 데려다가 세례를 베풀고, 그들을 양육하여 진정한 신앙인으로 살도록 하라는 것인데, 핵심은 우리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또 주님이 승천하시기 직전에도 다시 한 번 이 내용을 강조하셨는데,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이 말씀도 같은 뜻입니다.(행1:8)
이처럼 주님은 당신을 믿고 따르는 모든 백성에게 복음전파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하여 누구든지 예수를 믿고 거듭난 백성이라면 그 누구도 전도의 의무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하여 우리는 각자 받은 은사대로 주님께 돌아가는 그날까지 복음을 전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에게 전도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것입니다.
물론 전도에 특화되어 누구보다도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며, 또 많은 결실을 맺는 분들이 있는데, 좋은 일이지요. 또 누구는 교회에 들어온 형제들을 잘 섬기고, 그들이 교회에 잘 정착하여 신앙을 키워가도록 돕고 협력하는 쪽으로 진화한 분도 있습니다. 이렇게 받은 달란트대로 일한다면 더 크고 많은 성과를 거둘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전도는 누구나 해야만 하는 사명입니다. 마치 라면을 좋아하고, 국수를 잘 먹고, 떡을 많이 먹어도 밥이 기본이고 주식이라서 밥을 먹어야 사는 것처럼 전도도 그런 일상이 되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1.1.1전도가 딱입니다. 딤후4:1-2절에 "하나님 앞과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러분!!! 오늘 여러분이 교회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소임을 다하고 있는데, 여러분은 교회를 어떻게 다니게 되었을까요? 혼자 스스로 나온 사람도 있을 수는 있지만, 대부분은 누군가의 전도를 받고 나왔을 겁니다.
이제 이 복음은 다시 나를 통해서 누군가에게 전해져야하고, 그렇게 해서 후대들도 이 교회를 주님 오시는 날까지 계속 이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서 교회가 계속 이어지도록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바로 그 누군가가 되십시오. 이것이 바로 우리 후대들에게 영생의 복을 남겨주는 아름다운 상속자가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상급도 받고 축복도 받고 은사도 성령도 충만한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사도바울은 오직 영혼만을 바라보며 그렇게도 당했던 유대인의 회당으로 다시 들어갑니다. 영혼들이 지옥 가는 것만은 막아보겠다는 일념으로 복음을 전했던 사도바울이 오늘 여러분의 마음속에 살아나서 바울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 드립니다.
둘째로, 교회는 목회자와 성도가 함께 세워가는 곳입니다.(10절)
본문 10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아멘.
바울과 실라가 데살로니가에서 많은 사람들을 기독교로 개종을 시키자 유대인들이 시기하여 난동을 일으키는 바람에 급하게 밤에 베뢰아로 피신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말씀의 행간을 보면 베뢰아로 피신할 때 이 일을 사도바울이 주도한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주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베뢰아에 도착한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적지 않은 남자들과 귀부인들이 회심하자 데살로니가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이 무려 74㎞의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와 또 소동을 일으킵니다. 이에 이곳 형제들이 바울을 배에 태워 아덴으로 피신시켰는데,(14절) 이 과정에서도 성도들이 피신을 주도합니다. 다시 말해 도피할 때 교회 형제들이 도맡아 진행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사실 사도바울은 어떤 일을 할 때 주도적으로 하는 스타일이지 누구의 계획에 따라 수동적으로 따라다니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여기서는 전혀 그런 주도적인 모습이 보이지 않고 순한 양처럼 움직이는데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사도바울이 유럽의 지리에는 밝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소아시아의 길리기아 다소 사람으로 아시아에서는 어떨지 모르지만 유럽에서는 길을 모를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바울은 드로아에서 마게도냐인의 환상을 보기까지는 유럽에 갈 생각조차 못했는데 어떻게 길을 알겠습니까?
하여 바울이 위기에 처하자 지리를 잘 알던 데살로니가나 베뢰아의 성도들이 나서서 바울을 적극적으로 도와 위기를 모면하고 복음을 전하도록 도왔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바울이 부탁하지 않아도 미리알고 적극적으로, 또 주도적으로 사도바울을 도왔습니다. 이런 도움 때문에 바울은 별 어려움 없이 사역지를 옮겨 다니며 복음을 전할 수 있었는데, 가는 곳마다 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위대한 업적을 남기게 됩니다. 이렇게 사도바울이 기독교역사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오늘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의 형제들처럼 이름도 빛도 없이 솔선수범하여 바울을 돕는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아야할 것은 교회는 목회자 혼자 세우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갖자 위치에서 최선을 다함으로 세워가는 것입니다. 이름도 없고 빛도 없이 묵묵히 주를 위해 헌신하고 충성하는 형제들에 의해 세워지는 것입니다.
가데스바네야에서 모세가 10명의 부정적인 정탐꾼의 보고로 곤경에 처해 있을 때 여호수아와 갈랩이 돌에 맞아 죽을 각오로 옷을 찢으며 적극적으로 모세의 편이 되어 여론을 바꾸게 됩니다.
또 광야에서 아말렉과의 싸울 때 아론과 훌이 산에 올라가 돌을 쌓아가며 기도하는 모세의 두 팔을 붙잡아 주었기에 이스라엘이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교회 일, 주의 일에 대하여 오늘 이름 없는 성도들처럼 적극적으로 나서서 목회자를 도와 교회를 바르게 세워 가시는지요? 아니면 교회 일은 목회자의 몫이라고 뒷짐 지고 구경만하고 있지는 않으신지요?
여러분!!!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때문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목회자를 도와 교회를 세워가야 합니다.
이런 일에 적극적이었던 사람이 바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였는데 롬16:3-4절을 보면 사도바울을 위하여 목숨까지도 내놓았다고 말씀합니다. 이외도 많은 성도들이 그랬습니다. 롬16:1-2절에 "내가 겐그레아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너희는 주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도 목회자를 도와 교회를 세우고 복을 받는 여러분 되시기 축원합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뜻을 벗어난 열심은 오히려 문제를 만듭니다.(13절)
본문 13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하게 하거늘." 아멘.
사도바울이 베뢰아에서 복음을 전할 때 데살로니가에 있던 유대인들이 그곳까지 와서 훼방을 놓았는데, 정말 유대인들이 영적인 눈과 귀가 막혀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것이 가슴 아플 따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을 통해서 받는 교훈이 있는데 하나님의 뜻을 벗어난 잘못된 열심은 심각한 문제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유대인들은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곳곳마다 훼방하는 일에 진심이었는데, 바울이 1차 전도여행 때도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루스트라까지 무려 200㎞에 육박하는 그 먼 거리를 달려와 사도바울을 돌로 쳐 콤마상태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사도바울도 회심하기 전 유대교에 얼마나 열심이었습니까? 스데반과 주님이 죽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고, 멀리 왕복 540㎞나 떨어져 있던 다메섹까지 예수 믿는 형제들을 잡으러 다니던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유대인들은 왜 가는 곳마다 복음을 방해했을까요? 물론 유대교에 입문한 이방인들이 기독교로 개종하는 일이 많아지자 시기와 질투 때문에 그랬을 수 있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자기들의 규례와 유전에 정말 열심이었기 때문입니다. 한 예로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율법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 어떤 일이든 하지 않았는데, 사람이 죽어가도 안식일을 끝날 때까지 살아있겠다 싶으면 손대지 않았습니다. 오늘날도 정통 유대교인들은 안식일에 난방을 하고, 전등을 켜며, 엘리베이터를 타도 층수를 누르지 않을 정도로 안식일을 지킵니다. 그래서 돈을 주고 사람을 사서 전등도 켜고, 난방도 하고 엘리베이터도 누른다는데, 그러니 예수님께 욕을 먹지요.
그런데 사도바울은 이런 규례들을 무시하고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 온 율법을 다 이룬 것이라고 전하니(롬13:8-10) 그런 바울의 전도가 마음에 안 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방해하고 죽이려고 한 것인데, 이것이 바로 종교적인 열심입니다.
또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키고, 선행을 하고, 구제를 많이 하면 의로움으로 구원받는다고 생각하는데, 사도바울은 율법의 행위로는 구원받을 수 없고, 오직 그리스도예수의 대속의 은혜로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얻는다고 선포하니 이 또한 눈에 가시였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출23:1절에 "너는 거짓된 풍설을 퍼뜨리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위증하는 증인이 되지 말"라는 말씀과 이런 자를 죽이라는 신19:18-19절 말씀에 따라 복음을 거짓된 풍설로 보아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롬10:2-3)
사도바울 본인도 그렇게 했으니 누구보다도 더 잘 알 겁니다. 지금은 입장이 바뀌어 본인이 당하는 처지가 되었으니 옛날생각 많이 나지 않을까요? 그래서 더 열심히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어쨌든 하나님 뜻을 모르면서 하나님을 위한답시고 열심을 내면 오히려 심각한 문제만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열심을 내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차가 없던 시절에 왕복 400㎞, 520㎞를 걸어다니며 복음을 방해할 정도니 열심을 내려면 이 정도는 돼야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그릇된 일이나 악한 일에 열심을 내거나,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 내 생각과 감정에 치우쳐 열심을 내면 오히려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뜻과 다른 그릇된 열심은 과거 유대인만 그런 게 아니라 오늘 우리도 많이 하고 있는 잘못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무관하거나 반대된 일에 열심을 낼 수 있기 때문에 항상 말씀으로 내 자신을 점검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심으로 복을 받고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