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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1)
요한복음 19:21-27
21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라 쓰지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 하니
22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쓸 것을 썼다 하니라
23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24 군인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인들은 이런 일을 하고
25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26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로마 총독 빌라도는 조금도 양보없이 끝까지 고집하는 유대인들의 도전에 밀려서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도록 그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 때는 금요일 이른 아침 6시, 곧 유월절 준비일 제육시였습니다.
[
12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13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가서 돌을 깐 뜰(히브리 말로 가바다)에 있는 재판석에 앉아 있더라
14 이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때는 제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15 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16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
](요 19:12-16)
이제 유대인들과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을 넘겨 받은 직후부터 무려 3시간에 걸쳐 그를 채찍질하고 조롱하다가 골고다로 끌고가서 우리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것입니다. 이때 그들은 골고다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으로 하여금 그의 십자가를 지게 할 것입니다. 이는 십자가 사형 선고를 받은 죄수는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처형장소로 가는 것이 로마의 관행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때 예수께서 십자가를 짊어지심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행위였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향하는 모습은 세상 죄를 기꺼이 짊어지신 하나님의 어린양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세상 죄에 다름 아닌 우리의 모든 죄악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무튼 우리 주 예수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 즉 골고다 언덕으로 가셨습니다. 그곳으로 가려면 예루살렘 성문을 지나 성벽 밖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 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가시니"
이는 예수께서 가장 저주받은 흉측한 죄수로 여김을 받고 유대 공동체에서 쫓겨난 것을 의미합니다. 놀랍게도 이 장면은 레위기 16장의 두 염소 역할을 합친 모습이었습니다. 즉, 구약의 대속죄일에 있던 행사는 예루살렘 성에서 벗어난 흉측한 광야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희생 제사로 드려지는 모습을 예표한 것입니다.
[
7 또 그 두 염소를 가지고 회막 문 여호와 앞에 두고
8 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 뽑되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 할지며
9 아론은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를 속죄제로 드리고
10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 채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광야로 보낼지니라
](레 16:7-10)
옛언약의 이 예표는 골고다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으로 성취됩니다.
"그러므로 자기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예수께서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보혈을 흘리셨느니라.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참조, 히 13:12-13).
그분은 우리의 죄를 짊어지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율법의 저주를 받은 죄인으로 취급 받으셨습니다. 마귀의 광란에 빠진 눈 먼 유대인들은 총독 빌라도의 판결을 받아내어 예수님을 성문 밖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그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속죄 사건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경륜을 도울 뿐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골고다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죽는 사건은 인류를 위한 가장 중요한 대속적 죽음의 구속사로서 그 사건 때문에 주의 백성의 죄 문제가 해결되고,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하늘과 땅이 통일되는 새창조의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한편,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주님의 양 옆으로 두 죄인이 각각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그들이 거기서(골고다에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새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 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요 19:18).
이는 이사야서 53장 12절의 예언 성취입니다.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예수께서는 무죄하심에도 불구하고 극악한 죄인들과 다름없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는데 이는 택한 주의 백성을 위한 영원한 사랑에서 나온 대속적 죽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양 옆에 있던 두 범죄자는 하나님의 앞에서 율법의 저주를 받은 인류를 대표하는데 그 중 하나가 십자가에 달려 있는 짧은 시간에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구원 받은 것은 참으로 아무런 의가 없어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구원을 받아 낙원, 곧 천국에 들어간 것을 보여줍니다.
이로서 예수께서는 강도이며 역적인 바라바가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을 막으시고 오히려 그를 살려 놓으셨고, 또한 주님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있는 동안에도 그의 곁의 한 죄수를 구원하고 죽으셨습니다. 이 두 사건은 십자가 죽음이 대속적인 죽음인 것을 알려주는 분명한 메시지이며, 실제로 주의 십자가 죽음으로 십자가 옆의 한 죄수가 영원한 구원을 얻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의 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자기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은 우리도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교훈하십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 9:23).
이때 우리가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이기심과 교만과 자기 영광을 추구하는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희생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신 예수님처럼 그 십자가 사랑으로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짊어져야 할 나의 십자가입니다.
나아가 우리는 우리 주님처럼 주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즉, 우리는 우리의 순전한 복음과 순결한 삶을 보존하고자 세상에서 박해를 받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 다시는 정욕을 따르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도록 하라"(벧전 4:1-2).
이처럼 우리 신자들은 우리 대신 치욕을 감당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기억하며 매일의 삶 속에서 나의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부인하며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해야 합니다. 그러할 때 우리는 우리 안의 죄성을 넉넉히 이기게 될 것입니다.
자, 예수님은 골고다 언덕에서 다른 두 죄수와 함께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런데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입니다. 그 패에는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히브리어, 로마어, 헬라어의 세 언어로 쓰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골고다는 예루살렘 성에서 매우 가깝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이곳에 와서 구경을 하며 그 패를 읽었습니다. 이에 유대인들이 매우 기분이 나쁜 상태로 빌라도를 찾아와서 따졌습니다.
"유대인의 왕이라고 쓰지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십시오"(21절).
하지만 빌라도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들에게 대답합니다.
"내가 쓸 것을 썼다"(22절).
사랑하는 여러분!
요한복음 19장 19절-22절에 담긴 내용은 하나님의 섭리가 얼마나 완전한지를 보여주는 신비한 내용입니다. 악인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악을 저지르고 있지만 그들은 고작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우리 주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던 유월절 준비일의 닷새 전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 날은 소위 종려주일이었습니다. 그때 이미 예루살렘 성에는 사방으로부터 수많은 군중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우리 주님을 환영하며 유대인의 왕이라고 외치며 종려 가지를 흔들고 겉옷을 땅에 펴며 주를 맞이하였습니다.
"(유월절) 명절에 (이미 예루살렘 성에 들어)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요 12:12-13).
이때 예수님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이는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을 성취하는 모습입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슥 9:9).
그분은 참으로 영원한 왕이십니다. 그러나 이 세상 나라가 아닌 하나님 나라의 왕이십니다. 따라서 우리 주님은 천사들을 시켜 로마군의 주둔지를 습격하거나 공격하지 않으셨습니다.
목요일 저녁인 유월절 저녁 만찬 때에는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우리 주님께서 노예처럼 옷을 벗고 제자들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그들의 발을 씻겨주셨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난 후에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자기를 체포하러 온 산헤드린의 병사들에게 자진해서 붙들리셨습니다. 이처럼 우리 주님은 분명히 이 세상 왕들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왕이셨습니다.
예수님을 체포한 산헤드린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심문한 후에 그를 빌라도에게 고발합니다. 그때는 이른 새벽이었습니다.
"무리가 다 일어나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고발하여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하니 빌라도가 예수께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눅 23:1-3).
유대인들은 나사렛 예수님이 그들이 바라는 정치 및 경제 메시야이기를 바랐습니다. 그것이 종려주일의 큰 군중이 기대한 바였습니다. 그리고 유대 지도자들은 나사렛 예수가 자기를 정치적 왕이라고 주장했다며 고발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진실을 말씀하십니다. 자신이 왕이기는 한데 이 세상에 속한 정치적 왕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시더라"(요 18:36-37).
빌라도는 예수님이 로마 제국에 반역하는 위험한 존재가 아닌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의 강력한 협박에 밀려서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줍니다.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또한 모세 언약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메시야 왕으로 오셨건만 그분을 대항하여 반역하고 도리어 세상 나라의 왕인 로마 황제를 자기들의 왕이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이 선언은 그들의 진심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참된 왕인 예수님을 반역하기 위해 로마 법정인 빌라도 앞에서 공식적으로 외친 선언이었습니다.
결국 자기 백성으로부터 반역을 당하신 우리의 왕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런데 빌라도는 유대인들을 증오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팻말로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고 기록한 것입니다. 그것도 로마인의 언어인 라틴어, 그리고 그 당시 문명의 대표였던 헬라어, 그리고 유대인들이 사용하던 아람어, 즉 히브리어로 쓰게 하였습니다. 이는 유월절을 맞아 예루살렘 성을 찾아온 모든 사람들이 다 알아볼 수 있도록 기록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은 안중에 없더라도 그의 양심을 거슬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압박을 가한 유대인들에 대해 한없는 조롱과 비웃음과 망신을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 한심한 유대인들아! 너희들의 왕은 바로 이 비참하고 무력한 나사렛 예수가 적격이다.'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권력을 사용해서 유대인들에게 최고의 앙갚음을 하였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기득권을 지키려는 시기심에서 예수님을 죽이고자 했고, 유대인들 대다수는 나사렛 예수가 결국 그들이 바라던 이상적인 경제 정치 메시야가 아닌 것을 보게 되면서 그를 저버렸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목숨을 건지고자 도망쳤고, 빌라도는 우리 주님을 마치 파리 목숨 정도의 무가치한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여러분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이것이 성령의 감동으로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도 요한이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입니다. 여러분은 왜 예수님을 믿습니까?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에게서 무엇을 원하십니까? 세상에 속한 영광과 자랑을 원하는 것은 아닙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을 거절한 유대인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기록된 성경은 예수님에 대해 말합니다. 하나님은 성경에 영원한 진리를 기록하여 놓으셨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 죄를 하나님 앞에서 용서 받을 수 있도록 율법의 저주를 친히 받으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다고 알려줍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신 그분을 죽음에서 일으키셔서 영원한 생명과 성령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이 땅에 오실 때에도 왕이셨고 십자가에 죽으실 때도 우리의 왕이셨으며 부활 승천하신 이후로 더더욱 우리의 영원한 왕이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위해 십자가에 달려죽이신 왕이요, 다시 사셔서 여러분을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거하며 누리도록 하시는 영원한 왕이십니다. 이에 우리는 그분을 나의 왕으로 모시고 왕으로 경배하고 왕의 계명을 철저하게 따라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예수님의 계명에 순종하지 않거나, 예수께서 우리를 죄와 그 저주에서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면, 우리는 불신자 빌라도 및 주를 영접하지 않은 유대인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분을 통해 내 욕망이 성취되지 않을 때 유대인들처럼, 혹은 로마 군인들처럼 예수님을 조롱하며 십자가에 죽이고자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여러분의 영광과 이기심과 야망과 야망을 채워주는 그러한 메시야로 알고 계십니까? 혹은 여러분의 정치 성향을 편들어주는 분으로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천국 백성이 아니며 하나님의 자녀도 아닙니다. 이는 그분은 여러분을 죄와 지옥에서 구원하셔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과 하나님의 자녀다운 거룩한 왕으로 만드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영원한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나사렛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십니다. 하지만 이때 '유대인'은 옛 언약 속에서 남은 자들을 의미하고 새 언약 시대에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을 말합니다.
[
6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7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8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롬 9:6-8)
[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
28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29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갈 4:4-6, 28-29)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롬 2:28-29).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갈 6:15-16).
이것이 하나님께서 악인 빌라도의 손을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 팻말에 기록하신 진리 선언입니다. 나사렛 예수 그분은 참으로 "유대인의 왕"으로서 참 유대인이요 참 이스라엘인 여러분의 왕이십니다. 그러나 그 왕은 빌라도에게, 그리고 배도한 거짓 교회인 유대교에게는 결코 달갑지 않은 왕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이 세상에 속하였고 그들의 아비는 마귀이기 때문입니다.
오, 우리 주 예수님은 참 유대인의 왕이십니다. 그분은 다윗의 왕위를 영원히 잇는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왕이십니다.
[
30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31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눅 1:30-33)
이처럼 예수님은 태어날 때부터 왕이시며 무엇보다 다윗의 왕위를 잇는 영원한 왕으로 오신 것입니다. 이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통해 다윗에게 영원한 약속을 하셨습니다.
[
11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12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13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14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
16 네집과네나라가내앞에서영원히보전되고네왕위가영원히견고하리라
](삼하 7:11-16)
또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도 분명하게 메시야께서 평강의 왕으로 오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사 9:6-7)
이제 마침내 그분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빌라도는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며 그 머리 위에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러자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이 와서 "유대인의 왕이라 쓰지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요구에도 빌라도는 끄떡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조금도 흔들리지 않은 이유는 유대인들을 향한 완고함과 교만과 증오 때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완전한 섭리 가운데 로마 총독의 손으로 하나님의 아들 나사렛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선포하게 만드십니다. 심지어 빌라도로 하여금 히브리어, 로마어, 헬라어로 온 세상에 알리도록 하시니 하나님의 섭리는 언제나 어둠과 미움과 악을 넘어서는 완전한 빛과 사랑과 선을 이루십니다. 할렐루야!
오, 진리에 속한 우리는 나사렛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 즉 율법의 저주를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받으심 때문에 그 사랑에 굴복하여 더욱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인정해야 합니다. 그분은 백성에게 섬김을 받으러 오신 왕이 아니라 오히려 섬기는 왕으로 오셔서 백성들을 위해 희생양이 되신 메시야 왕이십니다.
이러한 왕을 하늘의 하나님은 지극히 영화롭게 하셔서 만주의 주와 만왕의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따라서 부활하신 이후의 우리 주 예수님은 만국을 다스리는 완전한 대왕이십니다. 이제 예수님을 대항하는 세상 나라는 완전히 멸망할 것입니다.
[
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8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9 네가철장으로그들을깨뜨림이여질그릇같이부수리라
10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
11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12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시 2:6, 8-12)
하지만 주님을 왕으로 모신 우리를 향해서는 영원한 사랑과 돌봄과 희생을 자원하시는 왕이십니다. 바로 우리 주 영광의 그리스도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이십니다.
바로 이러한 왕이 우리의 영원한 왕이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백성을 위하여 목숨까지 내놓으실 정도로 그들을 사랑하시는 왕이십니다! 이 왕은 우리의 죄를 위해 보혈을 흘리셨기에, 그분의 통치 안에서 우리의 몸과 영혼은 깨끗하고 거룩합니다. 이 왕은 우리를 사랑과 은혜로 다스리기에 우리 마음에는 평강과 기쁨이 넘칩니다.
오, 사랑하는 여러분!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던 유대인의 왕 예수님은 지금도 이 말씀을 듣는 모든 분들을 초청하십니다. 그것은 이 위대하고 영원한 왕을 여러분 개인의 왕으로 모시고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기를 바라시는 초청입니다. 오늘 당장 진심으로, 지금도 영원히 살아계신 만유의 주이신 우리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왕으로 모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온 세상 언어로 복음이 전파되고 있습니다. 나사렛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왕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여 살아나신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는 자들마다 죄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어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삼고자 하심입니다. 하지만 죽는 그 순간까지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기를 거절하는 불신자들에게는 우리 주님은 완전히 공의로우신 왕이시기에 심판하실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끝까지 이 세상에서 영광의 왕이신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비웃고 조롱하는 자들은 결국 그리스도의 심판을 받고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
7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8 …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9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10 (하지만) 그 날에 그가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시리라
](살후 1:7-10)
자, 이렇게 예수님을 골고다의 십자가로 끌고간 로마 군인들은 우리 주님을 벌거벗긴 채 못 박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의 옷을 나누어 갖습니다. 하지만 속옷은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서 찢지 않고 제비를 뽑아서 갖기로 하였습니다. 이 행위는 시편 22편 17-18절의 예언 성취입니다.
"그들이 나를 주목하여 보고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메시야가 당하실 일을 1천년 전에 다윗에게 알려주시고 메시야를 보내신 후에 정확하게 로마 군인을 통해 그 예언이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이는 구약의 예언이 문자적으로 성취되었음을 강조하면서 나사렛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인 사실을 확고히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로마 병사들의 행동 하나하나까지 완전하게 주의 섭리에 따라 움직이게 하심으로 주께서 친히 다윗을 통해 하신 예언을 이루시니 우리는 우리 입을 다물지 못하고 놀랄 뿐입니다. 참으로 우리 주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시는 메시야이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벌거벗김을 당한 채 못 박히셨다는 사실에서 깊은 영적 의미를 얻게 됩니다.
죄가 들어오기 전에 아담과 하와는 벌거벗은 채 하나님 앞에서 살았으며, 하나님께서는 정기적으로 그들을 찾아오셔서 함께 대화를 나누시며 그들과 교제하셨습니다. 그때 아담과 하와는 전혀 부끄러움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은 모습을 드러내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이유는, 하나님께 숨길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토브', 즉 선한 상태로 지음 받았기에 완전하게 의로우며 거룩했습니다. 그들이 행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께 기쁨을 안겨드렸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창조하시며 맡기신 사명을 완벽하게 이루고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그들에게는 죄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서로에게도 부끄러워할 것이 없었으며,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가운데 있는 그대로 자유롭게 설 수 있었습니다.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창 2:25).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마귀의 미혹에 넘어가서 그의 편에서 서서 하나님을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 일로 그들은 행위 언약을 무너뜨렸고 이에 언약에 따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그러자 곧바로 그들에게 나타난 현상은 벌거벗음에 대한 부끄러움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당장 무화과 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느끼는 두려움과 수치심을 전혀 가릴 수 없었습니다.
[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창 3:6-8)
뱀의 미혹에 빠져 행위 언약을 범한 아담과 하와는 부패한 몸과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그들은 본능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도망치려고 했습니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거룩한 시선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없었습니다. 부패한 자신을 숨기려는 절박한 시도 끝에 만들어 입은 무화과 잎의 치마마저도 그들의 심령 안에 새겨진 수치심과 두려움을 가리는 데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동산 나무 사이에 숨어 있는 그들을 찾아내셨습니다. 그리고 당장 그들의 몸과 마음의 부패함을 가려줄 수 있는 가죽옷을 지어 입혀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 3:21).
그리고 그 가죽 옷은 신기하게 하나님 앞에서의 그들의 두려움과 수치심을 가려주었습니다. 그 이후로 그들은 비록 부패한 상태라도 가죽 옷을 입은 상태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행위 언약을 깨뜨린 그들은 멸망 당하지 않고 구원의 길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 길은 장차 여인의 씨로 오실 메시야를 믿는 것으로서, 그 메시야는 그들의 죄 때문에 피를 흘리시고 죽으실 것이요, 의의 가죽옷을 그들에게 주어 영생을 얻게 할 것입니다. 이로써 그들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가죽 옷은 그들의 부패를 가려주고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설 수 있도록 하실 그리스도의 의의 옷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입혀주신 하나님의 행위는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를 발생시킬 은혜 언약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그 가죽 옷을 부패한 아담과 하와에게 주기 위해 하나님께서 죽이신 동물은 장차 이 땅에 오실 하나님의 어린양을 가리켰습니다. 그 어린양은 여자의 씨로 태어나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고 뱀은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입니다(창 3:15). 그때가 되면 아담과 하와에게는 다시 낙원이 회복될 것입니다.
이처럼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께서 동물의 피를 흘리시고 입혀주신 가죽옷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고 그들을 위해 얻어내신 의의 옷을 예표한 것이었습니다.
오, 하지만 우리 주 하나님은 완전하게 공의하신 분이시기에 십자가에 벌거벗김을 당한 채 피를 흘리고 죽으신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죽음에서 일으키시고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주셨습니다.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히 2:9).
그리고 예수께서 벌거벗김을 당하신 채 보혈을 흘려 주신 대상들 역시 영광의 그리스도와 함께 의의 흰옷을 입고 있습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들입니다.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사 61:10).
이 사실은 사도 요한에게 보여주신 최종 계시에서도 나타납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더라"(계 7:9-10).
우리는 현재 여러가지 죄악을 범하는 옛사람과 그리스도로부터 옷입은 새 사람 사이에 살아가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보혈과 의의 옷 덕분에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며 순결합니다. 그러므로 의의 옷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우리의 남은 삶은 나의 죄 때문에 벌거벗김의 수치를 당하신 나의 메시야이시며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믿음으로 연합하여 계속 온전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25절에서 27절을 보면,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채 보여주신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고 고우신 자상하심입니다.
[
25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26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요 19:25-27)
이 내용에서 우리는 우리 주께서 주의 어머니 마리아를 얼마나 다정하게 돌보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 끔찍한 십자가에서 육체적으로, 또한 정신적으로 당하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그분을 낳아 주신 어머니를 잊지 않으십니다. 우리 주님은 마리아가 혈육의 친 어머니로서 자기 아들의 비참한 죽음을 얼마나 슬퍼할 수밖에 없는지 잘 알고 계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탄생 때에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성령으로 충만했던 시므온이 마리아에게 직접 예언으로 알려준 아픔이었습니다.
"마리아여, 칼이 당신의 마음을 찌르듯 할 것입니다"(눅 2:35).
그러므로 우리 주님은 자신을 낳아주신 친 어머니 마리아를 주님 자신이 가장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에게 맡기십니다. 그 때부터 그 제자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모셨습니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현재 영광 가운데 계신 예수께서 주를 믿는 자기 백성들을 얼마나 배려하실지를 조금도 의심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우리 주님의 다정함과 비할 데 없는 동정심, 그리고 비할 데 없는 관심은 영광을 얻으신 우리 주께서 우리를 향해 더욱더 보여주실 것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 주께서 친히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막 3:33, 35)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어머니 마리아를 향하였던 그 마음은 지금도 우리를 향해 여전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주를 믿고 의지하는 신자를 결코 잊지 않으시며, 영육간에 그들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실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마 10:30-31).
그러므로 사도들과 선지자들은 신자들에게 외쳤습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히 13:5-6).
"네 짐을 주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사 55:22).
오늘도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우리를 향한 한없는 사랑과 자상하심을 확인하였으니, 이러한 우리 주님을 더욱 감사하며 사랑하며 순종함으로 항상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누리는 복된 주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pyright@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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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악인이 일어나면 사람이 숨고 그가 멸망하면 의인이 많아지느니라(잠 28:28).
💖가장 건강한 사람은 늘 웃는 사람이며,
가장 인간성이 좋은 사람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오늘도 가장 건강한 사람이 될수 있는 울님들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
좋은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