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意圖)”는 ‘무엇을 이루려고 꾀함’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흔히 쓰는 말 중에 ‘의도는 좋지만 방법이 틀렸다’ 혹은 ‘의도는 좋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등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이루기 위해 일을 만들지만 그 일이 방법이나 결과가 다 좋지 않을 때가 많다는 얘기입니다.
“인격(人格)”은 ‘국어사전에서 '사람으로서의 품격'으로 정의하고 있는데, 동양권에서는 이를 매우 중요시하여, '인격이 없다'라는 말은 심각한 모독으로 받아들입니다. 즉 인격을 갖추기 전의 인간은 짐승이나 다름없다는 인식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같다고 얘기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인격은 법률적인 의미로는 '독자적 가치가 인정되는 자격'. 이게 없으면 법률적으로 인간이 아니며, 사물로 취급되게 됩니다. 인권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전에는 여자, 어린이, 노예에게는 법률적으로 인격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취급되었지만, 그러나 현대의 대부분 국가에서는 모든 인간에게 인격이 존재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인간의 인격이 언제부터 존재하는지는 아직까지도 많은 논란을 낳고 있는데 , 별 의미 없어 보이는 이 논란은 낙태의 합법여부와 긴밀한 연결고리를 갖고 있습니다. 뱃속에 있는 태아에게 인격이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현대에 와서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사물이나 사고에 인격을 부여할 때가 많습니다. 요즘 묘격이니, 견격이니 하는 얘기가 나오는데 이건 좀 웃긴다고 생각합니다. 고양이나 개가 사람이 될 수가 없으니 고양이격, 개격이인데 왜 이게 인격과 같은 얘기로 쓰이는지 황당합니다.
민주주의, 사회주의도 격이 있다는 말들을 합니다. 이런 게 바로 의도적으로 사고에 인격을 부여하는 행태입니다. ‘착한 가격’도 인격이 부여된 말입니다.
<‘착한 가격’은 물건 값이 쌀 때 소비자가 쓰는 말이다.
필자는 경제원론 첫 시간에 학생들에게 ‘착한 가격’이란 말을 쓰지 말아 달라고 당부한다. 가격은 균형보다 높거나 낮을 수 있다. 그러나 착하거나 나쁜 가격은 없다.
코로나 시대에 어렵게 식당 영업하는 분이 식자재, 인건비, 연료비가 다 올라 가격을 할 수 없이 올리면 착하지 않다는 말인가? 열정 페이 원하는 기업주에게 월급 제대로 달라면 ‘나쁜 임금’인가?
마이클 샌델 교수는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의 도입부에서 허리케인이 불어닥치는 미국 플로리다에서 생수 가격을 수십 배 올려 팔아먹는 장사치들의 부도덕성을 질타한다. 다른 사람들은 고생하는데 바가지 씌우면서 돈 번다는 것이다.
그러나 생수를 비싸게 팔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 다른 생수 사업자보다 먼저 비바람을 뚫고 생수를 공급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 생수 공급이 급증한다. 생수 가격은 빠르게 안정된다. 반대로 이런 바가지 상혼을 막겠다고 가격을 규제하면 재난지역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무거운 생수를 공급하는 사람들이 사라진다. 생수의 암시장 가격은 더 크게 뛴다.
‘의도’를 ‘정의’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마녀사냥처럼 매우 위험한 일이다. ‘의도’는 대부분 인격을 부여한 결과 나타나는 문제다. 기업과 시장에 대해서도 인격을 부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물론 기업도 기업을 이끄는 기업주가 있고 시장도 사람이 활동하는 곳이지만 기업과 시장은 이윤 극대화 그리고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이끈다.
미국 민주당과 백악관은 온라인 시장에서 아마존, 구글, 애플, 페이스북과 같은 빅테크 기업들의 자사 우대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입법안을 추진했다. 빅테크가 자신들의 서비스 및 제품을 경쟁 사업자보다 유리하게 노출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이 입법안은 작년 12월 상원을 통과하지 못했다. 빅테크가 소비자 편익을 높일 수 있다는 반론 때문이었다. 반독점법 논의는 독점기업을 자주 악마화한다. 그러나 독점적 기업을 무너뜨리는 것은 정부가 아닌 다른 기업이다. 경쟁자 아닌 경쟁 자체를 보호해야 하는 것이 경쟁 당국의 일이다.
오래전 규제개혁위원장을 지낸 최병선 서울대 명예교수는 최근 저서 ‘규제 vs. 시장’에서 시장을 부익부 빈익빈, 약육강식, 착취, 협잡, 무질서, 혼잡, 혼란, 냉혹, 비열, 비윤리, 부도덕, 비인간, 부조리 등과 같은 부정적 이미지로 의인화하고, 정부는 자애롭고 유능한 존재라고 기대하면 우리는 영원히 큰 정부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힘들다고 주장한다.
그는 인격적 존재가 아닌 사회나 시장에 대해 정의를 요구하는 것은 이를 의인화하는 것으로서 ‘카테고리 착오’라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설명을 강조한다.
천연가스 가격이 올라 난방비가 급등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서민들이 난방비로 고생하는데 정유사들이 큰돈을 벌었다며 이에 대해 횡재세를 걷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횡재세 세입으로 거둬들인 돈을 난방비로 고생하는 서민에게 풀자는 것이다.
사실 정유사는 천연가스를 수입하는 공기업인 가스공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같은 에너지 산업으로 분류된 정유사가 이 어려운 때에 높은 수익을 본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경제 논리와 무관하게 기업과 시장을 의인화해서 감정을 이입하는 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 국제 유가가 오른 작년 우리 정유사들은 617억 달러의 석유제품을 수출해 무역적자 폭을 그나마 많이 줄였다.
손실이 났을 때 보상해 주지도 않으면서 이윤이 났다고 그 과실을 뺏으려는 것은 시장원리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시장에 인격을 부여하면 안 된다.>국민일보. 조성봉(숭실대 교수·경제학과)
출처 : 국민일보. [경제시평] 시장에 인격을 부여하지 말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설 연휴 직후부터 연일 ‘횡재세’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발언의 수위도 연일 올라가는 중이라고 합니다.
연휴 다음 날인 25일에만 해도 “횡재세까진 아니더라도, 현행 제도를 활용해 (에너지 기업이) 일부라도 부담해 국민 고통을 상쇄했으면 좋겠다. 차제에 횡재세도 확실하게 도입하는 것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겠다”고 조심스레 ‘간’을 보던 그는 곧장 다음 날 민주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들을 불러 모아 긴급 난방비 대책회의까지 열었습니다.
그러고는 “에너지 기업이 과도한 불로소득을 취한 것에 대해 횡재세 부담을 검토하자”고 했는데, 기업들의 추가 이윤에 대해 별도 세금을 물리고 그걸로 7조2000억 원 규모의 ‘에너지 고물가 지원금’을 풀자는 것입니다.
검찰 2차 출석을 하루 앞둔 27일에는 에너지 기업들을 향해 “천문학적 영업이익을 거두고 최근 감세 혜택까지 누리고 있는 초거대 기업들”이라고 잔뜩 날을 세우며 “횡재세든 연대기여금이든 해법을 국회와 기업이 함께 모색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불과 사흘 만에 정유사들을 난방비 폭등의 주범인 양 몰아세우며 해법까지 찾아내라고 한 것입니다.
횡재세는 민간 기업의 이익을 강제로 공유하게 한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도 많은데, 업황이 바뀔 때마다 법을 바꿔서 적용할 수도 없는 만큼 부작용에 대한 검증과 사회적 공감대 마련이 필수일 겁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횡재세가 오히려 기업 투자를 위축시킨다는 우려도 적지 않습니다.
이런 걸 미리 조율하고 해결하는 과정이 정치일 것인데, 그런 ‘정치의 시간’은 다 건너뛴 채 난데없이 갑자기 ‘난방열사’를 자청하고 나선 이 대표의 설익은 횡재세 타령이 결국 또 ‘방탄용 포퓰리즘’은 아닌지 의심을 받는 것은 그가 지금까지 처세해 온 그의 교묘한 언행 때문일 것입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