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문 벼슬 관官 자 풀이입니다 내 새는 볏이란 게 없습니다 당신 새도 없을 것입니다 내 새는 '사이'에 처해 있을 뿐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는 까닭에 감투를 쓸 이유가 없습니다 당신 새도 사랑으로 뭉쳐 감투가 번거로울지 모릅니다 새에게는 애당초 볏이 없습니다 꿩이나 닭을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옛날, 한 선지식이 말씀하셨지요 "뭐라! 중이 벼슬을 한다고? 그거 닭벼슬만도 못한 거야" 벼슬 관官을 파자破字하면 집안宀에 쌓아 모음垖입니다 집안 어느 곳에 쌓아 모을까요 으레 남의 집 남의 곳간이 아니라 제집 제 곳간宀에 착착 쌓아 모읍니다
벼슬官이란 결코 감투가 아닙니다 '사이'를 조화롭게 만들어가는 하나의 질서 시스템입니다 벼슬에는 높낮이가 없고 크고 작음이 없으며 길고 짧음이 없고 많고 적음이 없고 굵고 가늚이 없고 둥글고 모남이 없고 더럽고 깨끗함이 없고 교만도 없거니와 굽신도 없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컬러가 있습니다 세상을 멋지게 가꾸고 다스릴 갖가지 빛깔이 있습니다 빨강 주홍 노랑이 있고 초록과 파랑이 있고 영롱한 쪽빛과 보랏빛이 있습니다 이 영롱하고 아름다운 빛으로 사이間를 꾸며가는 게 '새'입니다
빛깔은 실로 불가사의합니다 대화를 만들어 내고 사랑을 만들어 내고 희망을 만들어 내고 행복을 만들어 내고 웃음을 만들어 내고 진공眞空을 만들어 내고 묘유妙有를 만들어 냅니다
볏은 머리 한복판 중도中道입니다 세상에 그 어떤 종의 닭일지라도 하나의 볏이 있을 뿐입니다 그 볏이 어디에 있나요 옆구리나 꽁무니에도 날갯죽지 아래도 간직해 두지 않습니다 부리와 콧구멍보다 위에 양쪽의 귀보다 더 높은 곳에 아니, 두뇌보다 좀 더 높은 곳에 딱 하나 한가운데 정수리에 있습니다
벼슬官은 한쪽으로 치우침을 결코 용서하지 않습니다 중도中道가 있을 따름이고 어디서나 中庸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쌓아 모은 무더기垖는 결코 황금 무더기가 아니고 뇌물 무더기는 더더욱 아닙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필요한 넉넉한 지혜의 무더기며 사랑과 연민의 무더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