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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壬寅年 *정착과 부흥의 해* 3月 ☞소통과 합력의 달☜
고후 4:1-6절) 복음의 영광
하나님께서 천지(天地)를 창조하실 때, 우리는 거기 없었지만, 다른 창조의 순간은 자주 지켜보고 있습니다. 즉 도저히 변할 것 같지 않고, 신앙에 관심이 없던 사람이 어느 날부터 말씀을 듣기 시작하더니, 그의 마음이 조금씩, 조금씩 열리면서 반응하기 시작합니다. 즉 오랫동안 어둠에 잠겨 있던 그의 마음속에 처음으로 빛이 비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곧 *잠들어 있던 영혼의 눈을 뜨기 시작하는 것이요, 새로운 천지창조의 순간*입니다.
여기에 소망이 있고, 여기서부터 생명이 움트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창1-2절)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그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창1:3절)빛이 있으라.”고 하시니, 깊은 어둠에 빠져 있던 모든 것이 환한 빛 가운데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의 마음속에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즉 빛이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우리의 마음은 오랫동안 어둠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는 이 한마디로 오랫동안 닫혀 있던, 우리의 마음속에 생명의 말씀의 빛을 비칠 때, 우리의 영혼은 긴 잠에서 깨어나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사도 바울에게 도전한 것은 *왜! 당신은 오직 복음이냐? *는 것이었습니다. 즉 당신은 왜 복음 외는 아무것도 모르느냐? 는 것입니다. 그 말에 대한 바울의 대답은
*복음 외에 다른 것은 사람을 재미있게 해 줄 수는 있지만, 죽은 영혼을 살리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즉 다른 것으로는 영혼의 깊은 잠을 깨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복음 선포만이 이 세상에서 한 번도 깨어난 적이 없는(에스겔의 마른 뼈들처럼)자에게 그 어둠 속에 빛을 넣어 새 생명을 창조시킬 수 없습니다.
Ⅰ.하나님의 긍휼
우리는 이 세상을 살 때, 필요한 지식(知識)과 정보(情報)가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지식과 정보의 수준이 높으면 높을수록 우리는 사회에서 인정받고, 그만한 지위나 대우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모아 정리해 놓았을 뿐, 그것으로는 하나님을 만나거나, 하나님과 의사소통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모두 *선천적으로 하나님에 대하여 죽어*있습니다. 즉 인간의 영혼 속에는 아직도 빛이 비친 적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4:1절)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사람들이 병원에 가는 이유는 몸에 이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기 영혼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몰라도 먹고 사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기 때문에 알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무서운 병중에 *암*이라는 병입니다. 이 병은 우리 몸의 거의 모든 부위에서 발생할 수 있는데, 심하게는 거의 자각(自覺)증세를 느끼지 못합니다. 일단 몸의 이상을 느껴, 병원에서 암이라는 진단이 내려지면, 이미 치료시기가 늦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의사들은 *건강한 사람도 정기적으로 건강 진단을 받아보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4:1절)낙심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처음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복음을 제대로 받아들일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라*그것이 정상이라는 것입니다.
맨 처음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왔을 때의 사정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전혀 들어본 적이 없고, 유교적 전통에 젖어있던 우리 조상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와 아버지 하나님은 너무나 생소한 존재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기독교를 *야소교*라고 불렀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옥황상제를 믿었고, 조상신을 섬기던 우리 민족에게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개념은 생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하러 온 선교사들도 낙심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런 상황에서도 복음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보면 도저히 서양(西洋) 신(神)을 믿을 것 같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엔 불가능한 사건들이 복음을 전할 때, 일어났습니다. 이는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복음으로 죽은 영혼을 살리고, 새 영혼을 창조하시는 사역입니다.
사도 바울이 처음 빌립보에 복음을 전할 때, 자주 장사 루디아라는 사람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행16:14절)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루디아라 하는 여자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 여자의 마음을 여셨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의 복음을 들었을 때, 인류 타락 후,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그녀(루디아)의 영혼에 생명의 빛이 비친 것입니다.
복음은 이 세상을 슬기롭게 사는 세상적인 지혜를 주지 않습니다. 또 단순하게 힘들고 지쳤을 때, 격려해 주는 말씀도 아닙니다. 복음은 죽은 우리의 영혼에게 빛을 비추어 하나님을 알게 합니다.
그럼 사도 바울은 어떤 자세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는지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4:2절)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여기서 *숨은 부끄러움의 일과 속임*이란 과거 바울이 유대교 랍비로 있을 때, 가졌던 태도를 말합니다. 그는 과거에 유대교 지도자로 있을 때, 가장 큰 특징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열정*이었습니다.
그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열심을 내었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말로써 다른 사람을 이겼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궤휼(詭譎)(속임수나 말장난)입니다. 즉 누군가가 확신을 갖고 강변(强辯)하면, 다른 사람들은 대개 받아들입니다.
유대교에 대해 그는 *숨은 부끄러움의 일*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진리(眞理)를 모르면서도 많이 아는 것처럼,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말을 많이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마15:14)고 하셨습니다. 유대교는 하나님을 모를뿐더러, 그 안에는 빛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아주 잘 아는 것처럼 남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인들은 여기에 흠뻑 빠져서 바울이 유대교를 전하지 않는다고 비난을 했습니다. 이것은 *눈을 뜬 바울에게 다시 장님이 되라*는 것과 같습니다.
궤휼(詭譎)이란 자신도 모르는 진리(眞理)를 전하거나, 자신도 믿지 않은 진리(眞理)를 가르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지식(知識)으로만 진리를 배웠지, 실제로는 그 사람의 마음속에는 진리가 비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열심히 있었습니다.
자신도 모르면서 종교적인 일을 자꾸만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교회를 확장하고, 요란한 행사를 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라고 착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열심으로는 사람의 영혼은 살아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말씀으로 창조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말씀하셨을 때, 빛이 있었던 것처럼, 순수한 하나님의 생명의말씀이 증거 되면, 그 말씀을 들은 사람들 중에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고, 새로운 생명을 얻는 사람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2절)...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계시(啓示)의 말씀에 다른 것을 섞지 않고, 진리(眞理)를 들어내기만 하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기대하는 것은 곧 이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인기(人氣)가 있느냐? 얼마나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주느냐? 하는데 관심이 있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기대나 호기심을 채워 줌으로 인기를 끌고, 인정을 받고 싶어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숨은 부끄러움*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진리(眞理)안에서 자란 후, 과거를 돌이켜보면, 얼마나 자신이 아무것도 모르면서 열심을 내었고, 다른 사람들을 가르쳤는지를 돌아 볼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때 하는 말이 *숨은 부끄러움*입니다.
진리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여기저기서 들은 것을 열심히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또 사람들은 그런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깨닫고 보니, 너무나 모르고 열심을 내었더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제대로 알게 되면, 절대로 다른 것을 섞지 않습니다. 다른 것으로는 사람들을 재미있게 할 수는 있지만, 영혼을 살아나게 하지는 못합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들의 인기(人氣)를 이용할 생각이 전혀 없었으며, 성령께서 말씀으로 영혼을 깨우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말합니다. 이 복음의 능력은 진리를 깨달은 각자의 양심이 증거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듭난 자는 무엇이 옳은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던 스타(star)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은 그를 재미없는 설교자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영혼이 살아난 사람들은 사도 바울 안에 있는 진리의 가치를 알았고 결국 그의 복음이 오늘까지 살아서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Ⅱ.가리울 수 있는 복음
사도 바울은 여기서 놀라운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이 반드시 모든 사람들의 영혼을 깨우고, 살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복음이 그에게 비쳐도 끝까지 영혼이 살아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 사도 바울은 3절)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아무리 순수한 복음을 전해도 듣는 사람의 마음을 가리고 있는 것이 있다면, 끝까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망(亡)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망하는 자들*이라고 했는데, 어떤 사람에게는 복음이 열리지 않을 거라는 뜻입니다.
놀라운 것이 곧 이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다 보면 마치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말씀을 잘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은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끝까지 엉뚱한 소리를 하다가 결국 거부하고 맙니다. 그렇다면 왜 어떤 사람은 복음을 받아들이고, 어떤 사람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을까? 그 이유는 알지 못합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여져 마음이 열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마음을 네 가지 밭으로 표현하셨습니다. 어떤 마음은 길가 밭, 돌 짝밭, 가시덤불 밭, 좋은 옥토 밭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중에서 *길가 같은 마음은 너무나 단단해서 말씀이 아예 들어가지* 않습니다. 즉 말씀이 떨어지자 새가 와서 먹어 버렸습니다.
그러면 *길가 같은 마음*이란 어떤 마음일까? 어떤 강한 사상(思想)이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말씀이 들어갈 수 없습니다. 즉 *자기 사상(思想)이 틀렸다는 것이 확실해지기 까지는 결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사실 바울의 마음도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 길가와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길가 같은 바울의 마음을 뒤엎어 버리고, 말씀을 받아들이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보면,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면, 말씀을 발아들이고, 변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에게 심한 상처가 있거나, 분노(忿怒)가 있는 사람도 다른 사람의 말을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을 보면, 쉽게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 같지만, 결국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불쌍한 사람이 이런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우울증 환자들은 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 중에도 훌륭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단지 생각에 꽉 차서 다른 사람의 말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을 뿐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스스로에 대하여 만족하기 때문에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은 진리(眞理)를 즐기려고 할 뿐, 이를 받아들여서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하지 않습니다. 결국 *진리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변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진리(眞理)는 우리를 바꾸어 놓습니다. 한 번 바뀌기 시작하면, 계속 변하게 됩니다. 그냥 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전부인 줄 아는 사람은 변화를 거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에 있어서도 차등(差等)을 두셨습니다. 하나님은 진리에 있어서 *그분 앞에서 자신이 부족한 줄 알고, 기꺼이 똥고집을 버리고, 변하려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축복(祝福)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붙잡기 위해 말씀으로 변하는 것을 거부한 사람들에게는 진리가 감추어지게*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공평하신 분이십니다. 즉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이 세상과 영원한 나라를 함께 주시지* 않으십니다. 즉 *이 세상에서 부요(富饒)한 사람을 하나님 앞에서는 가난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 가진 사람은 갖지 못한 사람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간절해지지가 않습니다. 결국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매달리게 되고, 더 큰 은혜(恩惠)를 받게* 됩니다.
그러면 복음이 가리어졌으면, 그 사람에게는 다시 기회가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습니다. 복음이 한번 가리어졌다 해서 그 사람에게 기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도 전에는 복음이 가리어졌던 사람들입니다.
주님이 처음으로 마음문을 두드리실 때, 우리 마음은 잘 열지를 않지만, 몇 번에 걸쳐 두드리시고, 고난을 함께 해주시면서 차츰 그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의 마음을 한번 두드린 후, 열리지 않는다고 *망할 자*라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그가 죽을 때까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계속 마음문을 두드려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매달려서 죽기 바로 직전에 믿은 강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십자가에 달린 상태에서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마지막 순간까지 구원의 길이 열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4절)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라고 했습니다. 율법처럼 희미한 영광이 아니라, 얼굴의 광채(光彩)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가장 환한 영광은 복음에 나타나시며, 우리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얼굴빛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태양 빛이 아무리 환해도 소경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세상의 신(神)이 수건을 덮어서,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세상의 신(神)이란 마귀(魔鬼)를 말합니다.
마귀(魔鬼)는 여러 가지 거짓의 수건을 덮어서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例)가 유대교입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교를 마귀(魔鬼)가 수건을 덮은 거짓 진리로 정의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쓰고 있는 그 수건을 벗겨 진리(眞理)를 올바로 보게 할 수 있느냐? 는데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의 사명을 이것으로 보았습니다. 사람들 마음속에 너무나 많은 *쓰레기가 들어차서 진리를 볼 수 없는 사람들에게 높은 산(山)을 낮아지게 하고, 골짜기는 돋우어, 진리(眞理)로 직행할 수 있게 한 선구자의 역할*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고속도로는 직선(直線)이어야 하는데, 높은 산(山)이 있으면, 터널을 뚫고, 골짜기가 있으면, 높은 다리를 만들어서 차들이 달리도록 해야 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진리(眞理)가 올바로 비치도록 하기 위해서는 *설득(說得)*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믿을 사람들은 불신자에게 *믿고 싶으면 믿고, 믿기 싫으면 그만두라*는 식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진리를 막는 그 수건을 치우고, 하나님의 진리를 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성령이 넘치는 각 셀(cell)공동체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진리의 걸림돌이 될 때가 있습니다. 교회는 주님을 만나고, 성령의 감동을 체험하게 하는 곳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겸손입니다.
만약 그리스도인들이 자존심을 내세워 세상 사람들에게 거만한 종교로 생각하게 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먼저 수건을 치우고, 정직하게 자신의 부족을 인정하고, 겸손할 때, 그들의 마음은 열리게 될 것입니다.
또 진리를 증거 했을 때, 거부당하더라도 그들을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설익은 열매를 미리 따려고 하지 말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아직 때가 이른데, 무리하면, 오히려 상처를 입고, 마음 문을 닫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끝까지 마귀(魔鬼)의 수건을 덮어쓰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결국 지옥(地獄) 불 땡감으로 갈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책임이 아닙니다. 억지로 구원하려고 할 때, 무리가 생기는 것뿐입니다.
다만 우리는 다른 사람의 양심에 진리만 전하면 됩니다. 그들 중에서 진리에 반응을 보이는 자가 있으면 됩니다. 신약 시대는 *씨 뿌리는 것과 추수*가 동시에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추수(秋收)는 교회 안으로 거두어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복음을 전했는데도 반응이 없을 때, 씨를 뿌리고 나서 좀 더 기다려야 하지만, 주님을 영접하고자 하는 반응이 있으면, 즉시 교회로 데려와야 합니다.
Ⅲ.오직 그리스도만 구원 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증거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4:5-6절)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니”
당시 사람들은 자기(PR)선전을 많이 했던 것 같은데, 한 사람의 지도자를 중심으로 모이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주님만 증거 하면, 카리스마(charisma)가 생기지 않아 불가능하자, 사람을 중심으로 모이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기를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치료하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을 *신랑과 신부를 중매하는 신랑의 친구*라고 소개했습니다. 신랑의 친구는 신랑이 아닙니다. 그는 신랑과 신부를 만나도록 주선한 후, 그 자리를 떠나야 합니다. 간혹 눈치 없는 신랑 친구는 신혼여행까지 따라가서 두 사람만의 시간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새로운 생명을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교회는 사람들의 필요를 직접 채워줄 순 없습니다. 즉 *돈이 필요하다고 해서 돈을 주거나, 병들었다고 해서 고쳐주지는* 못합니다. 물론 결혼상담소도 아닙니다.
오직 자신의 다양한 필요를 통해 근본적인 영혼의 필요를 보게 함으로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게 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마치 예수님이나 되는 것처럼, 직접 교인들의 필요를 모두 다 채워주려는 의욕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복음을 가로막고 있는 사람입니다.
교회는 인간적인 사랑이나, 만족감을 위해 나오는 사람들을 실망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직접적인 만족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직 섬길 뿐입니다. 즉 *신랑 친구로서 그리스도를 직접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교회가 할 일은 타락 이후로 굳게 잠들어 있던 영혼의 동굴 속으로 말씀이 들어가 그 잠을 깨워야 합니다.
그러면 캄캄하던 마음에 주님의 말씀으로 서서히 빛 가운데로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그때 모든 더럽고 추한 것들이 쓰레기통에 던져집니다.
어떤 사람은 담배와 술병을 버리고, 어떤 사람은 화투를, 어떤 사람은 잘못된 친구나 이성 교제를 버릴 것입니다. 하나씩 하나씩 혼란스럽던 자기의 삶을 스스로 정리하기 시작합니다. 모든 정리가 끝난 후에는 새로운 목표를 찾게 되고, 아직도 어둡고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으면, 더 환한 진리를 원합니다.
그 다음은 악(惡)한 마귀(魔鬼)가 다시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지 못하도록 마음의 문을 굳게 지킵니다. 그는 매일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이 세상 어느 것도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세상적으로 부족한 것이 있으면, 부족한 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새로운 욕심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킬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면, 아무것도 가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의 마음은 이미 천국(天國)입니다. 실낙원이 아니라, 복락원입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오직 복음뿐입니다.
롬14:17절)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찬송가 262장 *날 구원하신 예수님*
☞소통과 합력의 달☜ ▣ 매일 새벽 마다 합심하여 기도할 제목
요14:13절)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약속하신
주님! Ⅰ.열방에서 많은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소서.
Ⅱ. 동탄에 성경연구원 금년 내 설립할 동역자를 보내주소서.
Ⅲ. 신실하고 충성된 후임자와 일꾼들을 보내 주옵소서. 아-멘
후원계좌 NH콕뱅크 302-8772-0191-01(헌금 내용)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合力)하여 선(善)을 이루느니라(롬8:28)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정 의 영 목사 ☎ 010-8772-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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