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로 본 조선의 왕릉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길남
‘풍수지리가 맞는 것인가?’ 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에 달렸다. 누가 어떻게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옛날부터 믿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면 황당무계한 것은 아니라고 느껴진다. 조선을 건국한 뒤에 무학대사가 수도 한양의 자리를 잡은 것도 풍수에 의해서였다. 조상들도 풍수지리를 믿는 사람이 많아 명당을 찾아 묘를 쓰고 좋은 집 자리를 잡으려고 많은 노력을 기우렸다.
우리 조상의 산소가 몇 군데 흩어져 있어서 한 곳으로 모시려고 했다. 마땅한 장소가 없어 묘 자리를 잡으려고 여기저기 찾아 다녔다. 그러나 묘 자리를 보는 능력이 없어 지관을 대동해야 했다. 경비만 들이고 땅은 사지도 못하고 말았다. 퇴직한 뒤라 직접 풍수지리를 배우려고 우석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2년간 강의를 들었다. 동료들과 전국의 명당을 여러 차례 답사하고 익혔다. 잘은 모르지만 어느 정도 볼 수 있었다. 비록 얼간이지만 친구의 조상 묘를 보아주고 산일도 도와준 경험이 있다.
조선의 임금 가운데 풍수에 밝은 왕은 세종과 세조, 정조였다 한다.(우석대학교 김두규 교수) 그 가운데 세조는 왕자로 있을 때부터 풍수공부를 하여 묘 자리를 잡을 줄 알았다. 태조 이성계의 묘는 잘 써서 정종은 17남 8녀, 태종은 12남 17녀, 세종은 18남 4녀를 두어 자손이 번성했다. 그런데 세종이 승하한 뒤 문종은 1남 2녀, 단종은 후사가 없고 자기는 4남1녀를 두었으나 의경세자가 요절하여 자손수가 현격하게 감소하고 단명한 것이 특징이었다. 이러다가는 왕실 핏줄이 고갈되리라는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
지금과 달리 묘지가 후손의 길흉화복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믿음이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세종의 능을 옮겨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천릉론(遷陵論)이 나오기는 했으나 실행에 옮기지 못했는데 세조가 승하하자 예종이 그 일을 맡았다. 세종의 능도 물론 처음 그 자리를 잡았을 때는 당대의 최고 지관들이 소점을 했을 테지만 후손이 다산(多産)하고 장수를 하지 못하니 흉지(凶地)로 본 것이다.
예종은 지관 안효례를 특별히 대우하여 세종의 천장 자리를 찾았다. 대개의 지관들이 왕릉자리를 고를 때는 무덤이 없는 생자리를 찾기 보다는 이미 묘가 쓰여 있는 자리를 활용했다. 생자리는 검증이 되지 않아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과거 급제자가 많이 나오고 자손이 번성하며 장수하는 집안의 선산을 뒤져보아 좋은 자리를 찾는 것이다. 안효례도 그런 방법을 썼다. 여주 성산 이계전의 무덤자리를 찾았다. 이계전은 세조 때 대제학과 영의정을 지낸 명문가 후손이었다. 왕릉 자리로 선정되면 이들의 무덤은 다른 곳으로 옮기고 왕릉을 쓴다. 명문가에서는 이를 피하려고 지관들이 오면 금품을 주어 피하려 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세종의 능을 여주로 옮겨 영릉을 조성한 뒤 성종은 16남 12녀를 낳고 그 후손이 임금을 계속 이었다. 세종의 능을 천장한 효험인지 모르지만 그 뒤부터 왕손이 번성했다. 훗날 풍수술사 사이에서 영릉천장 덕으로 조선의 왕조가 100년은 더 길어졌다는 소문이 돌게 되었다 한다.
정조도 풍수에 능통했다. 정조는 세손시절에 목숨이 위태로워 항상 옷을 입고 잠을 잤다. 세손빈을 들였으나 합방을 하지도 못했다. 등극한 뒤 서른이 넘어서야 늦게 얻은 문효제자가 홍역으로 사망했다. 세자를 낳은 의빈 성씨가 임신하여 기뻐했는데 갑자기 사망했다. 또 같은 해에 조카 상계군이 갑자기 죽었다. 사도세자의 후손들이 죽어나가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이 때 고모부 박명원이 사도세자의 무덤을 옮기자는 상소를 올렸다. 사도세자의 무덤이 흉지라는 이유에서다. 사도세자를 장조로 추존하고 융릉으로 옮겼다. 그 뒤 다음 해에 왕자가 탄생하였다. 그가 순조로 34년간 재위했다.
명당이 있느냐 없느냐를 명쾌하게 밝힐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사후에 부모님을 좋은 곳에 모시려는 효사상은 영원히 이어져야 하리라. 조선의 유교사상은 충과 효가 근본정신이다.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 하여 한말의 단발령에 목을 자를 지라도 상투를 자르지 못하겠다 했다. 효사상이 투철한 후세들이라 명당개념은 쉬 사라지지 않으리라 믿는다.
날씨가 따뜻해졌으니 나도 조상의 묘소를 참배하러 가야겠다. 명당은 아니어도 남 보기에 좋은 자리처럼 관리라도 잘 해야 할 것 같다.
(2017. 2.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