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남선이 창간한 '소년'(1908년 11월)은 문학사와 잡지사에 한 획을 긋는 기념비적 간행물이다. 잡지인들은 이를 기념해 11월 1일을 '잡지의 날'로 정했다. 첫 호에 실린 '해(海)에게서 소년에게'는 신체시(新體詩)의 효시로 인정받는다.
거기에 또 하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한반도를 호랑이에 비유한 지도를 최남선이 처음 고안하여 이를 '소년' 창간호에 실었다는 사실이다.
▲ 한반도를 호랑이에 비유한 지도(왼쪽) '청춘'의 표지 그림의 꽃을 든 청년이 호랑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모습(오른쪽)
최남선은 호랑이를 우리 민족의 상징으로 형상화했다. 국민의 사기가 땅에 떨어지고 패배주의에 젖어 있던 때에 이를 고안해냈다. 그는 "진취적·팽창적 소년 한반도의 무한한 발전과 아울러 생왕(生旺)한 원기의 무량한 것을 남저지 업시 넣어 그렸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일본의 지리학자 고토(小藤)가 한반도를 두 다리로 일어선 토끼 모양으로 그려놓고 중국 대륙을 향하여 뛰어가려는 형상으로 설명한 것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다. 한민족이 먹이사슬의 하층에 있는 토끼가 아니라 제일 꼭대기에 위치한 백수의 왕 호랑이라는 것이다.
최남선은 '호랑이 한반도' 지도에 대해 "맹호가 발을 들고 허위적거리면서 동아 대륙을 향하야 나르난 듯 뛰난 듯 생기 있게 할퀴며 달려드는 모양"이라고 설명했다.
최남선의 그림을 본 독자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황성신문은 "20세기 신천지에 우리 대한 지도의 전체가 돌연히 신 광채를 발현하니 장하고 웅(雄)하다, 동양반도에 대한(大韓) 지도여, 천지간 동물 중에 가장 사납고 날쌔며 강하고 용맹한 호랑이의 형체로다, 국민의 지기(志氣)를 배양하고 국가의 지위를 존중케 하는 자료가 될지로다"라고 격찬했다.
신문은 또 "우리 대한의 지세가 맹호의 모습과 같은즉 어찌 천연적 웅국(雄國)이 아닌가. 전국 소년계는 이 지도를 생각하야 우리 소년대한으로 하여금 호랑이 눈으로 천하를 보고 위풍을 진동케 할지어다. 을지문덕 같은 영웅이 하필 구시대에만 나올 것인가 전국의 소년 제군이여"라고 소년의 분발을 촉구했다(1908.12.11.).
이에 최남선도 "크게 강호(江湖)의 찬미를 얻어 어떻게 좋은지 모르겠다"고 흐뭇함을 토로했다. 그 후 자신이 발행하는 잡지 표지에 호랑이 그림을 즐겨 넣었다.
최남선은 문인·학자·사상가·사업가·정치가의 면모를 두루 갖춘 천재였다(홍일식 저 '육당 연구', 유진오의 서문, 1959). 이에 더하여 시사주간지 '동명'(1922) 등 잡지와 '시대일보'(1924)를 창간한 언론인이기도 했다.
어린이 신문 '붉은저고리'(1913)는 소년이 양팔로 호랑이 두 마리와 악수하듯이 붙들고 있는 모습을 제호로 도안했다. '아이들보이'(1913)는 흰 말을 탄 무사 그림 아래에 호랑이 얼굴을 넣었고, 1914년 창간한 '청춘'의 표지 그림은 꽃을 든 청년이 호랑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모습이다.
최남선은 한민족이 산중의 왕, 신령스러운 동물인 호랑이가 되기를 열원(熱願)했다. 호랑이 지도는 민족의 웅비를 염원하는 국민의 가슴에 아로새겨져, 원작자가 누구인지 잊어버린 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세련된 도안이 뒤를 이으며 널리 보급되었다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언론정보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