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법천사 이야기

[김태양]

3대 사찰 원주 법천사
“금년(1609년) 휴가를 얻어 있었는데 마침 지관(智觀) 스님이 찾아와 ‘기축년(1589년) 법천사에서 1년 거주하였다’고 하므로 지관을 이끌고 일찍 길을 나섰다. ~난리(임진왜란)에 불타서 터와 무너진 주춧돌이 토끼와 사슴이 다니는 길에 여기저기 남아있었다.” 조선시대 혁명가 허균의 ‘유원주법천사기(遊原州法泉寺記)’ 내용이다. 이 기록으로 법천사는 1589년까지 존속하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됐으며 허균이 들른 1609년부터 이미 폐사된 채 남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계속되는 시련, 시련들=법천사는 20세기에 들어와서도 처량한 신세를 면치 못한다. 일제 때(1911년)에는 역대 고승의 사리를 봉안한 부도 가운데 가장 화려한 지광국사현묘탑(智光國師玄妙塔·국보 101호)이 일본으로 반출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이 국보는 1912~15년사이 우여곡절 끝에 다시 국내에 들어와 당시 경복궁내 미술관 옆 정원 중심부(현재 자선당 자리)에 세워놓았다. 하지만 탑의 기구한 팔자는 계속됐다. 6·25전쟁의 와중에 그만 유탄을 맞아 1만2천조각으로 산산조각났다. 정영호 단국대 석좌교수의 말.
“경내에 있던 다른 문화재는 말짱했는데 이상하게도 현묘탑만 박살났어요. 그만 재수없이 유탄을 맞은 거지요. 박살난 탑은 그대로 방치돼 있었어요. 당시에는 문화재위원회라는 기구도 없었으니 공식적으로 나설 사람이 없었죠. 문교부가 경무대쪽에 복원 이야기를 꺼냈으나 씨도 안 먹혔죠. 그런데 월남의 고딘디엠 대통령이 방한한 1958년이었어요. 두 정상이 경회루 산책에 나섰다가 그만 탑신부 위쪽이 산산조각난 채 흉물스럽게 방치된 현묘탑을 본 거예요.”
“어찌된 것이오.” 이대통령의 노기섞인 이 한마디로 현묘탑 복원이 이뤄진 것이다. 복원은 당시 국립박물관 학예사인 임천의 감독 아래 당대 유일한 기술자였던 양철수가 맡았다. 산산조각난 데다 폭격 맞은 지 오래됐던 탓에 부서진 부재들의 상태는 엉망이었다. 복원팀은 부서진 돌의 개수를 일일이 세어 1만2천조각임을 확인했고, 강화도·익산 등지에서 모자란 돌을 날라와 돌을 일일이 빻아 겨우 복원에 성공했다.
이렇게 법천사와 현묘탑은 기구한 역사를 지낸 것이다. 법천사의 내력을 살펴보자. 원래 725년에 창건됐다고 하지만 사실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도 법천사는 지광국사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 국사는 원주지방 제1의 토착성인 원주 원(元)씨. 고려 성종 3년(984년)에 태어났다. 유년기에 유학을 배우다 법천사 관웅 스님에게 불경을 배워 개경의 해안사 큰 스님인 준광에게 머리를 깎고 출가했다. 그후 대사(大師)·중대사(重大師)·수좌(首座)를 거쳐 승통(僧統)에 이르렀다. 나아가 승려로서의 최고 영예인 왕사(王師)와 국사(國師)까지 지냈다. 고려 문종 24년(1070년) 87세로 법천사에서 타계했다. 법호는 해린(海麟)이며 죽고 나서 받은 시호(諡號)가 지광(智光)이다.
◇고려 중기 최고의 ‘파워맨’=해린은 고려건국 이후 앞 시대의 모순을 청산하고 사회·문화적 안정을 이룩하던 11세기를 살았던 법상종(法相宗)의 고승이다. 법상종은 고려 초기 호족 세력을 억제하고 문벌귀족에 의한 중앙집권체제를 이룩하려는 정치상황의 변화와 함께 현종대부터 대두하기 시작한다. 결국 화엄종과 함께 고려 중기 불교의 양대 산맥을 형성한다.
해린은 이러한 법상종의 세력강화에 큰 역할을 했다. 정치·사회·문화 전반에 안정을 이룩한 문종년간에는 승려로서 최고 영예인 왕사와 국사에 봉해지는 등 고려 중기 불교계의 중심인물이었다. 해린이 개경의 현화사에 있다가 늙어서 고향의 법천사로 돌아가고자 왕에게 청하자 문종이 직접 현화사에 나와서 전송했다.
문종은 해린이 법천사에서 타계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매우 슬퍼했고 사람을 보내 장례비용을 대고 장례를 감독하게 했다. 왕은 친히 지광(智光)이라는 시호(諡號)를 내렸다. 해린의 입적 후인 1160년에도 왕(의종)이 직접 행차한 기록으로 보아 그 법통이 이어졌다. 이렇듯 법천사는 고려 중기 문종시대 최대의 ‘파워맨’이었던 지광의 사찰로 위세를 떨친 곳이다.
임진왜란 등으로 폐허가 된 채 방치된 이 절터는 실로 500년만에 고고학적인 조사로 그 웅장한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3차례의 발굴조사 성과를 보면 입이 딱 벌어질 정도이다. 우선 그 규모.
현재까지 조사된 구역만해도 1만8천여평인데, 전체 사역의 범위는 5만여평에 달한다는 게 발굴단의 말이다. 이는 신라 황룡사·백제 미륵사지 등에 이어 3번째로 크다. 지금까지의 조사결과를 보면 최초의 사찰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존재했다. 현재의 탑비전지 쪽에서 한정적으로 7세기대 신라의 막새 등이 나왔다는 건 이미 이 시대에 크지는 않지만 절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고고학적으로 입증시키는 것이다.
◇사통팔달의 요처, 원주=법천사는 지광국사가 활약한 11세기 무렵 대규모 불사가 이뤄지면서 사세가 크게 확장된 것으로 보인다. 고려 중기 유물들이 전 유구에 걸쳐 고르게 출토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인 임진왜란 전까지도 법등이 끊이지 않고 오다가 임진왜란으로 폐사가 된 후 다시 재건되지 않았음도 확인되었다. 조선시대 초기 자기류만이 출토되는 게 이를 증명한다. 특히 지금 서울 중앙박물관 뜰에 있는 지광국사현묘탑이 있었던 원래의 자리를 발굴조사를 통해 분명하게 밝혀낸 것도 큰 수확.
지현병 강원문화재연구소 연구실장의 해석.
“법천사의 사세는 왕(의종)이 다녀가고 왕사(지광국사)가 거주할 정도로 엄청났어요. 왕실차원에서 경영했던 것이죠.”
왜 원주에 이같은 큰 절이 세워졌을까. 그의 해석은 삼국시대까지 올라간다. 원주는 통일신라 때부터 5소경 중 하나인 북원경(北原京)이라 해서 중요시했던 지역. 다른 5소경은 중원경(충주), 금관경(김해), 서원경(청주), 남원경(남원) 등을 일컫는다. 새롭게 편입된 피정복 지역민을 회유·통제하고 수도(경주)가 동남쪽으로 치우친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만든 행정제도이다.
그런데 통일신라는 한강유역권, 즉 남한강 유역인 이 원주를 중심으로 법천사와 함께 거돈사, 흥법사를 지었다. 이 한강유역은 경주인 동남쪽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원주는 후삼국시대 호족인 양길의 거점. 한때나마 양길이 천하를 도모했던 곳이다.
결국 이곳은 한강을 통해 고려의 수도인 송도까지 단박에 닿을 수 있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어쨌든 이 법천사 발굴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지현병씨는 “발굴은 2015년이 돼야 끝나며 그때 가면 절의 완전한 성격이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조유전/고고학자〉
ㅡ펌

[처리]

잘보고 갑니다
즐겁고 행복한 한주 되세요.

[김태양]

감사합니다

[밀짚모자]

원주사는 사람보다 더 잘 아시네요.

[김태양]

감사합니다 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