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백가란 무엇인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란 진나라 통일 이전 550년의 기간을 지칭한다. 이 시기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최악의
난세에 해당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도 이 기간에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온갖 종류의 치국평천하 방략이 등장했는데, 우리는 이를
제자백가(諸子百家)의 백가쟁명(百家爭鳴)이라고 부른다. 이들 가운데 후대까지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유가, 법가, 도가, 묵가를 묶어
‘선진(진나라 이전)4가’로 평가한다.
앞에서 말한 선진4가 중 엄밀히 말할 때 묵가는 유가에서 파생된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묵가를 맹자와 함께
‘유가(儒家)의 좌파’, 순자를 공자와 함께 ‘유가의 우파’로 분류해 놓고 있는 점이 참 그럴듯하면서도 흥미를 끈다. 이렇게 할 경우 선진4가의
비워진 한 자리에 상가(商家)를 넣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독창적인 주장이다.
상가는 오늘날 중국 학계에서 크게 각광을 받고 있는데, 제자백가 중에서 유일하게 상업의 중요성을 강조한 학파이다.
일종의 정치경제학파라고나 할까? 상가의 학자는 관중과 사마천으로 대표된다. 나도 사마천의 『사기열전』을 읽으면서 마지막에 나오는 ‘화식열전’을
보고 의외로 사마천이 물질적 가치의 중요성을 크게 인식했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이 책은 관자와 화식열전, 공자와 순자, 묵자와 맹자, 노자와 장자, 상앙과 한비자, 손자와 오자, 귀곡자와 소진
등의 순서로 기술되어 있다. 요컨대 이 책에서 다루어지는 제자백가의 목록은 상가, 유가, 도가, 법가, 병가, 세가 등이 된다.
제자백가의 백가쟁명은 치국평천하의 목적인 치도(治道)와 그 방법론인 치술(治術)을 둘러싼 논쟁이다. 이런 분석
틀을 적용할 경우 춘추전국시대는 크게 보아 왕도와 패도가 대립한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왕도(王道)는 주나라가 찬역을 혁명으로 미화시킬 때 만들어 낸 천명론에서 나온 것이다. 왕도는 백성에게 덕을
베풀어 민심을 얻는 ‘덕치’를 통해서만 천하를 하나로 만들 수 있다는 논리인데, 덕치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것은 맹자였다.
동시에 맹자는 ‘폭군방벌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폭군이란 군주가 아니라 한 사내에 불과할 따름이니 그를 죽이는
것은 ‘시해(弑害)’가 아니라 ‘방벌(放伐)’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맹자를 당시의 군왕들은 모두 난감하게 생각했다.
반면 패도의 ‘패(覇)’ 자에는 비에 젖은 갑옷과 안장 그리고 야간행군의 뜻이 담겨 있다. 결국 패자란 무력에
의해 으뜸이 되는 자로서, ‘강자’보다 몇 수 위 강자이다. 패도를 뒷받침하는 논리는 법가와 병가이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난 것은 법가의 대표 한비(韓非)는 원래 ‘한자’로 호칭되어야 하는데 당나라 한유(韓愈)를
우대하여 ‘한자(韓子)’로 높이기 위해 대신 한비자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진정한 한자는 기실 한비여야 한다고 말한다. 한비자는 강력한
법치를 기반으로 한 패도를 통해서만 난세를 평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진시황은 그의 이런 주장을 받아들여 천하통일에 성공했다.
대체로 왕도는 치세에 맞는 논리이고 패도는 난세에 필요한 논리가 아닐까 한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은 왕도건 패도건 방법론이 다를 뿐이지 목표는 같다는 점이다. 왕도건 패도건 목표는 사람과 백성을 위하는 ‘애인애민(愛人愛民)’에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최상의 시대는 성세(聖世)로서 노장자의 논리, 다음으로는 성세(盛世)로서 유묵가의 논리, 3위는 평세(平世)로서
상가의 논리, 4위는 위세(危世)로서 법가의 논리, 최악은 난세(亂世)로서 병가의 논리가 적용된다는 이 책의 시대 구분은 참으로 섬세하고도
명징해 보인다.
그렇다면 지금의 박근혜 정권은 어느 시대에 해당할까? 위세 아니면 난세이리라. 그러나 박근혜 정권의 정작 큰
문제는 위세에 필요한 법가도, 난세에 필요한 병가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데에
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