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조속히 자막이나 더빙판이 올라와 회합에서 사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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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 공식 사이트 ‘SOKA PICKS’에
애니메이션 ‘니치렌 대성인의 어생애’ 제1화 추가
2022년 10월 8일
창가학회 공식 사이트(www.sokagakkai.jp)의 ‘SOKA PICKS’에 애니메이션 「니치렌대성인(日蓮大聖人)의 어생애(御生涯)」 제1화가 추가됐다.
대성인의 숭고한 어생애를 알기 쉽게 전하는 것으로 총 3화로 구성. ‘교학부임용시험(불법입문)’의 학습에도 활용할 수 있다.
제1화에서는 어성탄(御聖誕)에서 시작해 출가(出家)·유학(遊學) 후의 입종선언(立宗宣言), 호조 도키요리(北條時賴)에게 「입정안국론(立正安國論)」의 제출과 그에 이어지는(따른) 법난(法難)과 유죄(流罪, 유배) 그리고 막부(幕府) 요인(要人)이나 승려들에게 서장(書狀, 십일통어서(十一通御書)〉을 보내신 장면이 그려진다.
2, 3화는 추후 수시로 추가된다.
※ 아래 각각의 링크에서 시청 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sokagakkai.jp/picks/2196303.html
https://www.youtube.com/watch?v=fwN0KvCTZn4&t=13s
https://www.youtube.com/watch?v=fwN0KvCTZn4
[용어해설(用語解說)]
입종선언(立宗宣言)
1253년(建長5年) 4월 28일의 ‘정오(正午)’ 때, 니치렌 대성인(日蓮大聖人)께서 32세의 때에 세이쵸사(淸澄寺)에서 말법(末法)의 사람들이 믿어야 할 성불(成佛)의 근본법(根本法)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선언하신 것.(어서 894쪽, 1189쪽)
입종(立宗)은 종지〈宗旨, 간요(肝要)의 교의(敎義)〉를 세우는 것을 말한다. 이때 염불종(念佛宗) 등 제종(諸宗)의 교의를 엄하게 비판하신 대성인께 대하여 염불(念佛)의 강신자(强信者)였던 지두(地頭) 도조가게노부(東條景信)가 위해(危害)를 가(加)하려 하였으나 대성인께서는 간신히 난(難)을 면했다. 그 후, 대성인께서는 어입멸(御入滅)하시기까지 30년 가까이에 걸쳐 남묘호렌게쿄를 인난홍통(忍難弘通)하셨다.
▷ 세이쵸사(淸澄寺) / 도조가게노부(東條景信)
호조 도키요리(北條時賴)
1227년~1263년. 가마쿠라 막부(鎌倉幕府) 제5대 집권(執權).
1246년(寬元4年), 20세에 집권에 오르자마자, 모반(謀反)의 혐의가 있다고 하여 호조씨(北條氏) 서자(庶子)의 핏줄인 나고에(名越=에마〈名越〉) 미츠도키(光時)를 이즈(伊豆)로 유배시키고(宮騒動, 미야소동), 이듬해에는 막부 초창 이래부터의 대립 세력인 미우라씨(三浦氏)를 멸망시켜(宝治の合戦, 호지전투), 호조득종가(北條得宗家, 적통)에 의한 집권정치를 강화했다.
1253년(建長5年)에 선종(禪宗)의 미치타카(道隆)을 개산(開山)으로 맞이해 겐쵸사(建長寺)를 창건했다.
1256년(康元元年)에 도키요리(時賴)는 중병을 앓아 집권직을 나가토키(長時)에게 맡기고 출가(出家)하여 도수(道崇)라 칭하며, 사이묘사입도(崔明寺入道), 사이묘사(崔明寺)라 불렸다. 그러나 이후에도 실질적으로 막부에 가장 큰 영향력을 유지했다.
니치렌 대성인(日蓮大聖人)께서는 1260년(文應元年)에 「입정안국론(立正安國論)」(어서 17쪽)을 저술하시어, 호조득종가를 섬기는 무사(得宗被官)인 한 야도야입도(宿屋入道)를 통해 도키요리에게 본서(本書)를 상정(上呈)하고, 제1회 국주간효(國主諫曉)를 시행하셨다. 「고사이묘사입도견참어서(故最明寺入道見參御書)」(어서전집 미수록)에는 “(선종〈禪宗〉은) 천마(天魔)의 소위(所爲)인고로 고(故) 사이묘사입도전을 뵈었을 때 이를 말씀드렸다. 또한 「입정안국론」에서 거론했듯이”라고 씌어 있어, 대성인께서 도키요리와 지접 회견하여 선종(禪宗)을 파절(破折)하신 것이 알려져 있다.(다만 그 시기에 대해서는 불명)
또한 1261년(弘長元年) 5월에는 집권·나가토키(長時)가 강성한 염불자(念佛者)였던 아버지·시게토키(重時)의 마음에 공모해 대성인을 이즈(伊豆)의 이토(伊東)에 유배(流配)했다. 그러나 시게토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변사(變死)해, 1263년(弘長3年)에 대성인께서는 사면(赦免)되셨다. 후년에 이 사면에 대해, 유배가 참언(讒言)에 의한 무고한 죄였음을 도키요리가 알았기 때문에 사면된 것이었다고 대성인은 말씀하셨다.(어서 1190쪽)
▷ 「입정안국론(立正安國論)」 / 에마씨(江間氏) / 미치타카(道隆)
입정안국론(立正安國論)
1260년(文應元年) 7월 16일, 니치렌 대성인(日蓮大聖人)께서 39세 때, 가마쿠라막부(鎌倉幕府)의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인 호조 도키요리(北條時賴)에게 제출하신 국주간효(國主諫曉)의 서(書).(어서 17쪽) 5대부(五大部) 중 하나.
간효(諫曉)란 간(諫, 간하다)과 효(曉, 깨닫다), 즉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여 올바른 길로 인도(引導)한다는 의미.
본초(本抄)를 어집필(御執筆)하실 당시, 일본은 기근(饑饉)·역병(疫病)·재해(災害)로 인해 많은 민중(民衆)이 고뇌(苦惱)에 빠져 있었다. 본초에서는 여러 가지 경전(經典)을 인용(引用)하시면서 이러한 재난(災難)의 근본원인은 방법(謗法)이라고 밝히시고, 그 원흉(元凶)은 정토교(淨土敎)의 가르침 이외의 것을 사폐각포(捨閉閣抛)하라고 주장하는 호넨(法然)의 전수염불(専修念佛)이라고 지적하시며 이를 전적으로 파절(破折)하셨다. 그리고 방법(謗法)의 가르침에 귀의(歸依)하는 것을 중단하고 정법(正法)에 귀의하지 않으면 삼재칠난(三災七難) 중에 남은 ‘자계반역난(自界叛逆難)’과 ‘타국침핍난(他國侵逼難)’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하시며 경고하셨다.
그러나 막부는 이 간언(諫言)을 받아들이지 않고 방법(謗法)의 제종(諸宗) 승려들을 중용(重用)했다. 그 결과 두 개의 난은 각각 1272년(文永9年)의 2월 소동(二月騷動, 호조 도키스케의 난), 1274년(文永11年)과 1281년(弘安4年)의 몽고내습(蒙古來襲)으로서 현실로 나타났다.
본초의 구성(構成)은 재난(災難)을 한탄(恨歎)하고 그 근본 원인을 묻는 객(客=호조 토키요리를 상정)에게 주인(=니치렌 대성인)이 ‘입정안국(立正安國=정을 세워 나라를 안온케 한다)’을 설명하는 10문(問) 9답(答)의 문답형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또한 ‘광본(廣本)’이라 불리는 미노부(身延) 입산 후, 재치(再治)된 서(書)에는 진언(眞言) 등의 제종(諸宗)을 파절(破折)하는 문(文)이 첨가(添加)되었다.
▷ 호조 도키요리(北條時賴) / 쇼카(正嘉)의 대지진 / 삼재칠난(三災七難) / 자계반역난(自界叛逆難) / 타국침핍난(他國侵逼難) / 2월 소동 / 몽고내습 / 호넨(法然) / 선택집(選擇集) / 사폐각포(捨閉閣抛) / 방법(謗法)
첫댓글 감사합니다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항상 매일매일 의노고에 진심으로 깊이 깊이 감사드립니다 노고많으셨습니다 🍀
너무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