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문룡
누르하치의 등장으로 명과 조선에 위협이 되는 시기에 등장한 명나라 장수입니다.
후금(뒷날 청나라)군한테 줘 털리고 조선한테 자기가 후금을 막아주겠다고 지원좀 해달라고 합니다.
조선에서는 명과의 관계도 있는데다, 명나라에서 높은 지휘관이니 평안북도에 가도라는 곳에 보내 주둔 허용. 후금을 견제하게 합니다.
근데, 가도에 주둔한 모문룡은 공적올린답시고 툭하면 조선인 마을 습격해서 조선인들 살해,수급해서 이걸 여진족들을 잡았다고 명나라 본국에 보고하고 보냅니다.
조선정부에서도 기겁하며 큰 골칫덩어리로 여겼으며, 모문룡에대한 평가는 나락이었습니다.
가도에 명나라 병사들 훈련시킨다고 해마다 평안도 일대 싸돌아다니며 쌀,식량 등 뜯어다고, 온갖 패악질을 부리며 자꾸 그러면 후금군 안막는다고 협박까지 해버립니다.
뭔가 물자가 적게 들어오거나 그러면 가도 섬에서 배타고 나가 조선인 마을을 습격하면서 물자도 약탈해가는일들 빈번했습니다.
참다못한 조선정부는 명나라한테 항의성 편지를 써도 명나라측에선 한번 제대로 키워보면 후금의 누르하치를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과 동시에 가도라는 지역이 조선땅이니 후금이 군사를 돌려도 조선쪽으로 돌리게끔하면 이득이라 생각해서 그냥 내버려뒀습니다.
조선에서는 그래도 모문룡이 명나라 고위 장수로 군사 지휘관이니 가도에서 병사들 잘 키우겠지 생각하고 묵인. 그리고 한번 찾아가봤더니 병사들 질이 너무나 허접했습니다.
여기에 당시 조선은 사르후 전투, 이괄의 난 이후 서북(평안도 지역) 병력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모문룡이라는 카드를 써야했기에 조선입장에서는 골칫덩어리였습니다.
날이 갈수록 모문룡의 명나라 군대는 점점 육지로 진출해서 깽판치니 더 빡칠 노릇...
그래서 조선은 모문룡을 견제하려고 이완 장군을 보냅니다.
이완 장군은 친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숙부 충무공 이순신장군 밑에서 같이 살면서 그를 보고 자란 장군.
그 역시 부하들을 아끼고 신망을 얻어서 평도 좋은 장군입니다.
모문룡이 깽판치러 오면 이완이 직접나가 전투까지하면서 모문룡의 군대를 진압하고 체포하기도 했습니다.
외교 관계가 있어도 중국인이라도 용서하지 않고 형을 가해 죽이기까지 해버리니 조선인들은 두팔벌려 환호했던 수준.
모문룡이 '이거 해줘' 하면 들어는주되, 수량은 최소로 갖다주는 융통성도 가지고 있어서 모문룡 입장에선 만만찮은 장군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문룡은 이완을 제거하려고 온갖 계략을 획책했으나, 조선에서는 이완장군이 일을 잘하고 있다 생각하며 좋아했습니다.
후에 정묘호란때 모문룡은 후금 군대를 막지도 않고, 그대로 보내주고, 이완 장군이 지키던 의주성은 뚫리고 말았습니다.
명나라에 원숭환이라는 명장(영원성전투에서 누르하치를 막고 누르하치를 홧병인지 포탄인지 여튼 죽어버리게한 장군)이 있었는데, 모문룡의 이런 망나니,민폐짓들을 보며 이대로 방치해두었다간 조선과 명나라 관계가 더 나빠진다 생각해서 모문룡을 산둥성으로 불러들여, 즉시 체포해 죽여버립니다.
원숭환은 명나라와 조선의 동맹으로 여진족(후금)을 견제해야만 안정된다 믿었던 장군이었습니다.
이 일로 원숭환은 조선에서 '영웅'이 되었지만, 명나라 본국에선 연회때 모문룡을 불러내 죽인일로 아니꼽게 본 놈들이 누명을 씌워서 북경에서 처형됩니다.
조선조정은 원숭환의 죽음에 기가 찼지만 명나라에대한 의리는 끝까지 철통이었습니다.
원숭환의 죽음 이후로 가도는 불안해졌고, 원숭환의 아들 원문필은 후금에 투항, 후금군에 들어가니 그를 따르던 부하들조차 투항을 고민하는 분위기가 되버립니다.
이후는 병자호란으로 진행되지요.
한마디로, 모문룡은 조선에서 어마어마한 민폐짓들 벌였습니다.
이 인간이 병사들 제대로 관리하고, 좀 더 유능했으면 가도에서 후금 견제에 제기능하면서 정묘호란때 그렇게 빨리 털리지는 않았을거라는 시각이 있습니다.
첫댓글 갑질의 교과서네요
사실 원숭환이라는 명장을 불러다가 처형한 순간 안그래도 끝나가던 명나라의 운은 스스로 GG를 쳐버린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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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의 원균이 모문룡이죠.
ㅡㅡ
에효..민폐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