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인공(곽도원)의 직업은 왜 하필 경찰인가?
마을에 다양한 직업을 가진 주민들이 있지만 왜 하필 주인공의 직업이 '경찰'인가?
경찰은 피의자, 피해자의 진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 사람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자신의 판단을 기준으로 합리적인 '의심'을 해야만 하는 존재이죠.
'의심'이라는 현혹을 벗어나기 가장 힘든 직업 중 하나가 바로 '경찰'인 것입니다.
나홍진 감독이 곡성이라는 영화를 만든 이유는 '불행은 왜 특정 사람에게 일어나는가?'라는 의문에서부터라고 합니다.
불행을 겪는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왜 하필 나인가?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천재지변으로 사고를 당한다거나 죄를 짓지 않은 이가 불행을 겪는 것에는 이유가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나홍진 감독은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런 불행을 '악마의 장난'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죠.
불행이 찾아오는 것에는 이유가 없고 질서가 없습니다. 즉, 불행은 '카오스(Chaos : 혼돈, 무질서)'적으로 찾아옵니다.
카오스적으로 찾아오는 불행에 사람들은 이유를 찾고 법칙을 찾습니다. 그것이 바로 '질서(Cosmos, 특히 질서 있는 시스템으로서의 우주)'이죠.
그리고 카오스 속에서 질서를 유지하려고 하는 직업이 바로 '경찰'입니다.
cf(참고). 우주를 이야기할 때 보통 영어로 3개의 단어가 있어요.
삼라만상(森羅萬象)이 존재하는 것으로서의 우주를 이야기할 때는 universe(그래서 모든 단과대가 있는 종합대학은 유니버스이고, 개별 단과대는 college라고 부릅니다), 공간으로서의 우주는 space, 질서로서의 우주를 cosmos라고 합니다.
곡성의 마지막 부분에 곽도원이 '아빠가 경찰이잖아. 아빠가 해결할 수 있어'라는 대사를 하면서
딸과 행복하게 보내던 예전 모습이 환상씬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는 그게 거짓말인 것을 알죠.
카오스적으로 찾아온 불행에 질서를 부여하는 경찰이라는 직업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2. 우리는 영화의 어디에서부터 현혹된 것인가?
제가 생각하기에 관객들이 나홍진 감독의 미끼를 덥석 '삼키게' 된 기가 막힌 장면은 경찰서에서 곽도원과 동료 경찰이 야근을 하는데 정전이 되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 전까지 우리는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들을 영화 속에서 보게 됩니다.
일본인이 마치 반지의 제왕 '골룸'처럼 동물들을 뜯어먹는 장면을 '소문'으로 전해듣죠. 바로 이게 중요합니다.
일본인이 동물을 뜯어먹는 것을 목격했다는 것을 건강원 주인에게 '소문'으로 들은 것을 머릿속으로 떠올렸을 뿐
우리가 직접 그 장면을 본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영상으로 본 장면은 정육점 주인의 묘사를 곽도원이 머릿속으로 떠올린 것이죠.
일본인에 대한 소문, 독버섯에 대한 소문에 대해 우리는 의심을 품습니다. 이것은 마치 나홍진 감독이 던진 미끼에
관객들이 '입질'을 하게 된 것과 마찬가지죠.
우리가 미끼를 삼키게 된 장면은 바로 경찰서에서 정전이 되는 장면입니다.
곽도원과 곽도원의 동료는 마을의 사고에 관해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겁쟁이라고 놀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정전이 되고, 곽도원이 경찰서 정문을 바라보면서 소스라치게 놀라는 시늉을 합니다.
이 장면은 마치 곽도원이 동료 경찰에게 무언가 나타났다는 거짓말을 하면서 겁쟁이라고 놀리려는 것처럼 묘사됩니다.
그래서 관객들이 이 장면에서 빵 터지죠.
그런데 다음 장면이 반전입니다. 곽도원은 정전 상태에서 동료에게 거짓말을 하면서 놀라게 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
진짜 빗속에 '깨할딱 벗은' 여자가 돌아다니고 있었거든요.
이 장면에서 웃은 사람들은 모두 나홍진 감독의 미끼를 덥썩 삼킨 것입니다.
우리는 의심을 하기 시작하고, '웃음'을 터트리며 거짓말이라 비웃지만
마을 사람들이 모두 믿지 않았던, 그리고 관객들 조차도 황당하다고 생각한 일본인의 '소문'은
처음부터 한 번도 거짓말이었던 적이 없습니다. 모두 진실이었죠. 그것을 의심한 것이 바로 '죄'입니다.
3. 이 영화의 최고 명대사 '와타시다'
인터넷을 보면 '아쿠마다'라고 적은 글을 볼 수 있는데, 곡성에서 실제로 일본인이 '와타시와 아쿠마다'라고 한 적은 없습니다.
'오마에가 와타시오 아쿠마다토 오모우노나라 와타시와 아쿠마다'
'네가 나를 악마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악마다'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동굴로 찾아온 부제에게 자신의 손바닥에 있는 성흔을 보여주며 이렇게 이야기를 하죠.
너는 나를 악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기로 찾아온 것이다.
그 증거가 바로 네 손에 들려있는 '낫'이다.
부제의 행동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부제는 성물을 간직하고 낫을 들고 일본인을 찾아갑니다.
악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악마를 퇴치할 물건들을 지니고 간 것이죠.
이미 부제가 일본인에게 '너는 무슨 존재냐'라고 묻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부제는 이미 일본인을 악마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마지막에 기가막힌 대사가 나옵니다.
'와타시다'
'나다'
일본인은 자신을 '신이다', '악마다'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와타시다(나다)'라고 하죠.
즉 상대방에게 묻는 것입니다.
'나다' 네가 보기에 나는 무엇이냐? 네가 나를 신이라 생각하면 나는 신이고, 네가 나를 악마라 생각하면 나는 악마다.
'나다(와타시다)' 네가 생각하기에 나는 무엇이냐?
외지인이 부제에게, 그리고 관객들에게 묻는 것이죠.
'카미(신)다', '아쿠마(악마)'다'라고 이야기 하지 않고
'와타시다'라고 했기 때문에 이 대사가 명대사인 것입니다.
첫댓글 이게 시각적으로 무섭지고않고 장르가 공포도 아닌데 왜케 무서운지 모를..
좋은 분석이네요 이동진도 카오스 이야기 했었던거 같은데 카오스와 코스모스의 대립이랬나
아~ 덕분에 기억이 났네요 코스모스 맞습니다.
우주를 이야기할 때 보통 영어로 3개의 단어가 있어요.
삼라만상이 존재하는 것으로 이야기할 때는 universe(그래서 종합대학은 유니버스이고, 단과대는 college라고 불러요), 공간으로서의 우주는 space, 질서로서의 우주를 cosmos라고 합니다 :)
@Yashin 이과쪽 문외한이라 그런데 공간과 질서의 차이점이 뭔가요? ㅠㅠ 댓글보다가 흥미로워서요
@오오오옹 이건 오히려 문과쪽입니다 ㅎㅎ 철학적인 사고이죠.
우주를 묘사할 때 space라는 표현을 쓰면 광활한 공간으로서의 우주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광활한 우주를 여행하는 우주선을 spaceship이라고 합니다.(universship이라고는 쓰지 않습니다)
우주는 처음에 만들어질 때 혼돈의 상태로 묘사됩니다.
서양에서는 주로 카오스로 묘사되고, 동양에서는 주로 '無'의 상태로 묘사가 됩니다.
어렵고 복잡한 내용이지만, 조금 쉽게 설명을 하자면
카오스의 상태는 예측 불가능이고 정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태어났습니다. 이 사람은 커서 영웅이 될까요 악마가 될까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가 아직 크기도 전에
@Yashin 어떤 존재가 될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습니다. 바로 카오스의 상태이죠.
우주도 처음에 만들어졌을 때는 어떠한 상태로 나아갈지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질서가 없는 상태이죠.
아기가 점점 자라남에 따라 정체성을 형성하고, 아이의 행동이 예측 가능하게 됩니다.
어떠한 질서가 생긴 것이죠. 이 상태를 영어에서는 cosmos라고 합니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은 인터넷에서 cosmos와 chaos에 관해 검색해보시면 도움이 될 거예요 :)
보기
사제 아니고 부제
감사해요~ 아직 부제 신분이었죠 :)
혹시 리뷰 해주는 분이신가요? 유튜브에서 영상봤는데 말투가 비슷하네요ㅎㅎㅎ잘봤슴다
아;; ㅎㅎ 리뷰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은 아니고요, 그냥 카페 회원입니다 ㅋㅋ 종이비행기 국가대표로 알려져있기는 하지요 ㅎㅎ
ㄷ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