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의 영적 미학
늘푸른언덕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교회의 목회 프로그램 주제를 <능력 있는 삶을 위한 믿음의 사칙연산> 으로 정하여 매주 수학 연산 기호(+, -, ×, ÷, =)의 의미를 풀어내는 설교 말씀을 통해 귀한 영적 깨달음이 있었던 지난 한 달이었습니다.
얼마 전 블로그에서 다루었던 코로나 19로 침체된 교회를 하나 되기 위한 전교인 행사로 [2023 종교 가족 더+어울림 명랑운동회]가 아직도 긴 여운의 행복감으로 남아있습니다.
처음 이 행사를 기획하는 단계에서 행사의 목적을 정하는 슬로건 카피(Copy)를 고민하다가 이 믿음의 사칙연산에 착안하여 고심 끝에 한 문장을 만들어 냅니다.
<예수 사랑에 빠져(-) 갑절(x)의 믿음에 소망을 더하여(+) 풍성한 주의 은혜를 나누자(÷)>
사칙연산의 기호가 지니는 의미 중에서 다른 기호들은 비교적 쉬웠으나 결정적으로 음의 기호인 마이너스(-)에 대한 키워드를 착안하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유인즉 우리가 알고 있는 마이너스(-)는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기에 이에 부합하는 적절한 단어로 슬픔, 욕심, 이기심, 야망, 분노와 같은 단어들이 우선 연상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마이너스의 의미를 다소 억지스럽지만 빠진다(-)는 단어와 결합하여 ‘예수 사랑에 빠져’라는 슬로건 카피를 어렵게 만들어 냈습니다.
슬로건을 세우고 나서 이 슬로건에 쓰인 네 개의 단어인 믿음, 소망, 사랑, 은혜를 다시 발췌하여 명랑운동회 4개의 팀명이 탄생하게 됩니다.
이름하여 믿음 팀, 소망 팀, 사랑 팀, 그리고 은혜 팀!
이번 가정의 달에 진행한 <능력 있는 삶을 위한 믿음의 사칙연산>의 주제별 말씀을 하나씩 들으며 그중에서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뺄셈 기호인 마이너스(-)에 대하여 잠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작년 이맘때 쯤으로 기억합니다.
춘천에 와서 책상에 앉아 일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늘어나면서 운동이 부족하여 불어나던 몸의 체중을 감량하기 위하여 아내와 체중 감량 목표를 정해 놓고 내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난 지금 두 사람 모두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하고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개인적으로 설정한 목표 체중을 1Kg을 남겨두고 다시 무너져버린 가슴 아픈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 상황을 경험하면서 내 몸 하나 스스로 관리하지 못하는 자신을 돌아보며 깊은 반성을 하기도 했습니다.
몸의 일부도 그러한데 나의 욕심, 야망, 고집, 명예욕과 같은 내면의 성품은 내려놓기가 얼마나 더 어려운 것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때로는 빼는 것이 더 긍정적인 효과가 있고 육체적, 정신적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치열하게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전쟁 같은 삶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더하고 곱하는 것만이 승리를 위한 전략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비우고 내려놓고 빼는 것이 더 큰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역설적인 진리도 배우게 됩니다.
“빼는 것이 플러스다!”
언젠가 도심 한복판을 운전하는데 우연히 시선에 잡힌 H사의 기발한 광고 카피입니다.
일반적으로 뺀다는 말은 부정적 뜻으로 우리 의식 속에 박혀있어 심리적으로 상당한 거부감을 동반합니다.
이루고 싶은 목표, 내가 가진 부와 재물, 명예와 권력, 평생을 좋은 관계로 쌓은 인적 네트워크들....
따지고 보면 어느 것 하나 놓기 싫은 것들이며 자신의 새로운 꿈을 이루기 위해서 그 대가로 다른 것을 버려야 할 때 나를 포함한 대개의 사람들은 어느 것을 버려야 할지 몰라 주저하게 됩니다.
제때에 꼭 버려야 할 것을 과감하게 잘 버리는 것도 하나의 삶의 전략이 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몸의 불필요한 체지방, 거품이 담긴 경제, 버려야 할 습관들, 불필요하고 비합리적인 관행들을 과감하게 제거하는 것이 결국 우리의 삶을 플러스로 만들 수 있음을 이 광고는 역설적이며 이색적으로 이야기하며 대중들의 시선을 끌고 있었습니다.
위의 광고 카피처럼 최근의 광고도 발상의 전환에 입각한 기막힌 문구들을 많이 요구하고 있습니다.
광고의 홍수시대 속에서 살아 남아야하는 또 다른 처절한 총성 없는 전쟁이 오늘날 광고업계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음을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쟁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차별화된 창의적 발상에 의한 경쟁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간의 가장 놀라운 특성의 하나는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바꾸는 힘이다.
애들러, 심리학자
지금으로부터 6년 전 블로그를 처음 시작할 때, 힘을 빼는 것과 관련하여 골프에 대한 제 경험을 정리한 적이 있습니다.
미국 주재원 시절 골프의 매력에 한창 빠져있을 때 어느 코치님으로부터 들었던 골프 스윙에 대한 간결하고 기막힌 비결입니다. 골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멘탈이고 두 번째로 스윙 스킬인데 골프의 비거리와 정확성을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한 비결을 두개로 된 영문 이니셜로 배운 기억이 납니다.
그것은 ‘DB’와 ‘HP’입니다.
이 말의 뜻은 DB, 즉 ‘대가리(머리) 박고’, HP! 즉 ‘힘을 빼라’는 것입니다.
골프 스윙에서 ‘머리를 박으라’는 이야기는 임팩트의 순간까지 공에 끝까지 시선을 두라는 이야기이고 스윙 과정에서 전체적으로 힘을 빼고 치는 순간에만 임팩트를 주라는 것입니다.
운동을 좋아하다 보니 전반적으로 힘을 빼야만 더 큰 힘을 낼 수 있다는 힘의 원리를 잘 알고 있습니다.
힘을 빼야 더 멀리 칠 수 있다는 힘의 역설에서 마이너스의 미학을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이 마이너스(-)에 어떤 영적 의미가 담겨 있는지 묵상해 봅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마이너스가 가진 영적 의미는 ‘비움’과 ‘내려놓음’이란 말로 대체될 수 있습니다.
한편 십자가의 사랑 속에 담긴 고귀한 ‘헌신’과 ‘희생’이란 단어도 생각납니다.
‘비움’과 ‘내려놓음’과 관련하여 성서에서 전하는 이야기를 찾아봅니다.
어떤 청년이 어느 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부자’였고 직업은 ‘관원’이었으며 율법을 잘 지키는 ‘경건한’ 청년이었습니다. 부족한 것이 없어 보이는 청년입니다. 이런 완벽한 청년이 예수께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하여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완전해 보이는 부자 관원인 청년에게 다음과 같은 한 마디 말씀을 던지십니다.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라.”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의도는 ‘자기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선의를 베풀어야 영생을 얻는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네 마음의 주인이 누구인가?’하는 것을 확인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청년은 자신의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라는 말씀에 심히 근심하며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마음의 주인이 자신이었고 자신이 섬기는 우상이 바로 재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참 주인이신 하나님을 위하여 자신이 가진 것을 비우거나 내려놓을 수 없었던 청년의 모습입니다.
이 부자 관원의 이야기와 대조를 이루는 비움과 내려놓음에 관한 성서 속 이야기를 찾을 수 있는데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세리장 ‘삭개오 이야기’입니다.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였던 삭개오는 예수님께서 자신이 사는 마을에 온다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보기 위하여 무화과나무에 올라갑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가까이에서 보지 못할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세리는 유대인들에게 죄인이었습니다. 분위기상으로 나무 위에서 예수님이 지나가는 모습만 봐도 만족할 정도였는데 그런 삭개오를 예수님께서 부르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우러러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누가복음 19장 5절
예수님이 자신을 불러준 것, 자신의 집에 찾아 오신 것, 이 모든 것이 죄인 삭개오에게는 희망의 빛이었습니다. 그런 삭개오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그의 삶이 바뀝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하기에 이릅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누가복음 19장 8절
삭개오의 이 고백을 듣고 예수님은 삭개오의 집에 구원이 이르렀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2000년 죄악과 탐욕으로 얼룩진 이 세상을 구원하시려 사랑하는 그의 독생자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이 세상을 구원할 계획으로 그의 가장 귀한 독생자를 내어 놓으신 하나님의 그 마음은 내려놓음, 곧 ‘희생’과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장 16절
그리고 육신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독생자 아들 예수는 그의 공생애 기간을 통하여 세상에 천국 복음을 전하시고 말씀을 가르치시고 병든 자와 소외된 자를 치유하고 대가 없이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인류의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단 한 점의 흠이 없고 아무 죄가 없는 분께서 십자가상에서 달려 죽기까지 십자가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움이요, 내려놓음의 정수입니다.
그리고 2000년이 지난 오늘 그 십자가 사랑에 담긴 비움과 내려놓음을 다시 묵상하며 부끄러운 모습으로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무엇을 내려놓고 또 무엇을 드릴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영적인 답을 구하기 위해 다시 기도가 깊어지기 시작합니다.
첫댓글 빼는 것이 플러스!
힘을 얻으려면 때론 힘을 빼야 할 때도 있습니다.
믿음의 사칙연산 중 마이너스(-)의 역설적인 발상의 전환이
가지는 영적 의미에 대하여 생각해 봅니다.<늘푸른언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