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몰라도 돼!
不識亦無妨-모른다 해도 해로울 것 없다
何須盡解詳-어찌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하겠는가.
人生多曲折-인생은 굽이굽이 복잡하니,
隨緣且自足-인연(因緣)따라 스스로 만족하면 그만이다.
雲淡天自遠-구름이 옅으면 하늘은 멀고
水深魚自藏-물이 깊으면 물고기는 스스로 숨는다.
知足心常樂-만족함을 알면 마음이 늘 즐겁고
未明亦安康-모르는 것이 있어도 평안하리라.
농월(弄月)
“몰라도 돼! 어떻게 다 알고 살겠냐?”
중국 명(明)나라 말기의 유학자(儒學者) 여곤(呂坤)이 쓴 신음어(呻吟語)가 있다
며칠전 “신음어(呻吟語)”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신음어(呻吟語)의 문학편(問學篇)에 “지기가지(知其可知)”라는 글이 있다.
이 말은 “자신이 꼭 알아야 하는 것은 안다”는 뜻이다.
君子知其可知 不知其不可知.
군자는 자신이 꼭 알아야 하는 것은 알고
몰라도 되는 것은 알려고 하지 않는다.
不知其可知則愚 知其不可知則鑿.
알아야 하는 것을 모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만
알 필요도 없는 것까지 알려고 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어떤 일의 핵심에 모든 걸 집중했다고 한다.
즉, 그들은 중요한 일에만 파고 들었던 것이다.
핵심 속으로 파고 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파고든 다는 것”은 곧 자신이 할 수 있는 다른 모든 일을 무시하고 반드시
해야만 하는 그 일에만 집중하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말한다!
탁월한 성과는 당신의 초점(focus)을 얼마나 좁힐 수 있느냐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핵심을 파고 들게 되면 단 하나만을 바라보게 된다.
그게 가장 중요하다.
사업에서도 그 단 하나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삼성의 이병철 회장이 반도체를 시작한 것처럼--
즉, 사업의 핵심이 되는 하나의 제품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시장을 점유(占有)할 수 있다.
※점유(占有)-물건(物件)이나 영역(領域) 지위(地位)따위를 넓게 차지함.
구글(Google)을 예로 들어보면
그들이 가진 중요한 하나는 검색(Retrieval)이다.
그것은 그들의 핵심 수입원인 광고(廣告advertisement)를 가능케 한다.
자신이 꼭 알아야 하는 것은 안다는 “지기가지(知其可知)”를 보며
경쟁이 치열한 인간사회에 복잡한 세상일을 모르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사자성어(四字成語)라 할 수 있다.
“좀 몰라도 된다, 어찌 다 알고 살겠느냐.”
이글의 제목은 필자의 말이 아니다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한 젊은 의사가 자기가 치료한 환자에 대하여
“모르는 것이 있다”는 말에 대하여
김사부가 젊은 의사에게 한말이다.
필자가 이글의 제목으로 선택한 것은
이 짧은 한 문장에는 어깨 위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라는 듯 한 깊은
위로와 함께 삶의 진리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알려고 한다.
알려고 애쓴다.
그래서 “식자우환(識字憂患)”이란 문장이 생겨났는지도 모른다
“학식(學識)이 있는 것이 오히려 근심을 사게 된다”는 말이다
▶“식자우환(識字憂患)”은
중국 북송(北宋)시대의 최고의 시인 소동파(蘇東坡)의
시(詩) “石蒼舒醉墨堂詩(석창서취묵당시)”에 있는 글이다
이 시는 소식(蘇軾소동파의 본명)이 북송(北宋)시대 서예가 석창서(石蒼舒)의
서실(書室)인 “취묵당(醉墨堂)”을 보고 쓴 것이다.
총168자의 긴 시(詩)다
“식자우환(識字憂患)”이 들어있는 부분만 여기에 옮긴다.
人生識字憂患始-인생은 글자를 알면서부터 근심과 걱정이 시작되니
姓名粗記可以休-이름자나 대강 쓸 수 있으면 그만두는 것이 좋으리
何用草書誇神速-어찌 초서(草書빨리쓰는글)로 신속함을 자랑할 것인가?
開卷惝怳令人愁-책을 펼치면 황홀하고 아득하여 사람을 근심케 하네.
我嘗好之每自笑-내가 일찍이 그것을 좋아하여 늘 스스로 웃었는데,
君有此病何年瘳-그대도 이 병이 있으니 어느 해에나 낫겠는가?
※소동파(蘇東坡)는 지식(知識)을 병이라 하였다.
▶또 “식자우환(識字憂患)”은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 조조가
서서(徐庶)라는 인물을 불러 오기 위해서 서서(徐庶)의 어머니 필적을
흉내 낸 것을 “식자우환”의 어원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안다”는 것은
넓게는 세상의 이치(理致)부터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심지어 자기 자신의 미래까지, 모든 것을 명확히 파악하고 컨트롤하려는
욕망으로 때로는 우리 자신을 지치게 짓누른다.
하지만 이 글의 제목처럼
사람은(우리는) 애초에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도록 설계된 존재가 아니다.
만물이 사는 세상은 끝없고 복잡하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변수가 발생한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알 수 없는 영역이 이세상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과 순간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그러므로 이 “모름”이야말로 오히려 삶을 숨 쉬게 하는 여백(餘白)이다.
이 “모름”의 대상과 시간이 역설적으로 삶의 휴식을 열어주는
공간(空間space)이 된다.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는 강박(強迫)을 내려놓으면, 우리는 마음의 여유가
생겨 비로소 현재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당장 알지 못해도 괜찮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다른 사람의 부족한
모습이나 세상의 불완전함을 조금 더 너그럽게 바라보고 포용할 수 있다.
“모름”은 겸손함을 동반한다.
겸손(謙遜)함은 마음의 안정을 가져온다.
“안다”는 것은 학벌이 좋고 책을 많이 읽고 글을 잘 써서 노벨상을
받는 것이 아니다.
인생은 모든 물음에 대한 답을 채워 넣어야 하는 시험지가 아니다.
“모르고 알 수 없는 것들”과 함께 인생의 먼 길을 걸어가는 여정(旅程)이다.
서양화(西洋畵)에 비하여 한국화(韓國畵)의 특징은 그림의 물체보다
흰 바탕 그대로의 빈공간이 많다
이것을 한자(漢字)로 여백(餘白)이라한다.
비어있는 공간(空間)이란 뜻이다.
여백(餘白)도 그림의 한부분이다
이것을 한국화(韓國畵)에서 여백의 미(餘白之美)라한다.
“모름”도 인생 여백(餘白)의 한 부분이다.
그림이고 지식이고 다 알지 못하는 빈칸 덕분에 우리는 여유를 갖고
호흡을 깊이 하며 내일을 기대하며 살아가고 있다.
때로는 목적도 모르고 걸어가는 길이 예상치 못한 아름다운 풍경(風景)을
만나기도 한다.
그러니 오늘, 아니 평생을 다 알지 못해도 괜찮다.
필자의 경험이다.
그 “모름”이 역설적으로 자유로운 삶이다
그 “앎”이 자유를 구속한다.
“어찌 다 알고 살겠습니까?”
그저 지금 주어진 하루를 충실히 살아내는 것
꼭 돈을 벌고 상(賞)을 타서 신문방송에 나는 대단한 일이 아니라도
운동으로 걷는 것, 빨래하는 일, 주방에 설거지, 마루 청소하는 것
때로는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창밖 하늘을 바라보는 것
이것들도 충분히 가치 있는 삶이다.
농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