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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라 소렌토로
아름다운 저 바다와
그리운 그 빛난 햇빛
내 마음 속에 잠시라도
떠날 때가 없도다
향기로운 꽃 만발한
아름다운 동산에서
내게 준 그 귀한 언약
어이하여 잊을까
멀리떠나간 그대를
나는 홀로 사모하여
잊지못할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노라
돌아오라
이곳을 잊지 말고
돌아오라 소렌토로
돌아오라
*
돌아오라 소렌토로 4
아침인걸 깨달은지 3분만에 눈을 떴다. 예전의 나였더라면 필시 세라가 깨우러 올때까지 일어나지 않았겠지만 회귀 후 나는 더이상 늦게 일어날수 없었다. 겨우 이틀째이긴 하지만 나는 아마 계속 이상태를 유지 할것이라고 확신할수 있다. 회귀 전의 과거를 잊어버리지 않는 이상.
"……."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이시간에 일어난게 실로 오랜만이라 현재 상황을 인지하는 부분에서 현저히 떨어진 감각을 보여주고 있다. 일단 후각이 먼저 움직였다. 어디선가 낯선 냄새가 나고 있음을 감지한 것이다. 악취는 아니였지만 극도로 예민해진 후각으로 봤을땐 낯선 사람의 체취,라고 볼수 있다. 여기서 좀더 깊숙히 생각해 보자. 나의 팔이 무언가를 감싸 안고 있었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면서 이 무언가가 나를 안고 있는건지 내가 무언가를 안고 있는건지 분간이 안갈정도로 커다랗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느리게 눈을 깜빡이다 보니 시력도 제 능력을 되찾았다. 동시에 귀에는 낮은 심장소리가 들려왔다. 쿵 쿵. 차분하게 울려퍼지는 심장소리에 하마터면 다시 잠들 뻔했다. 고요해도 너무 고요했다.
나의 기억은 어젯밤으로 돌아갔다. 어제 레오를 만나고 여러가지 생각을 하느라 피곤함을 느끼면서 레오를 안고 잤던것 같다. 푹신하고 보드라운 털의 감촉은 노곤노곤하게 만들었으니깐. 그럼 오늘 아침엔 이 낯선 무언가는 레오인걸까? 하지만 고양이가 언제부터 이렇게 커질수가 있었지?
"깼으면 일어나 멍청한 율리시엄."
몇번밖에 듣지 못했던 목소리였지만 이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지 알수 있었다. 고양이였을 땐 늘 머릿속을 울리기만 했는데 이렇게 직접 '귀'로 들으니 그 느낌도 색다르다.
그의 말따라 최대한 그를 보지 않은채 뒤로 물러났다. 귀족의 침대답게 15살 여자아이의 몸에 맞지 않는 엄청난 크기의 침대였기에 뒤로 물러나봤자 떨어지진 않는다.
"후우."
길게 한숨을 뱉으며 차분해진 머릿속을 회전시켰다. 잠이 확 달아난것을 느끼고 일단 창문부터 열면서 상쾌한 아침바람을 맞이했다. 이거야 원. 세라가 봤다면 기절하고도 남을 일이다. 왠 정체모를 전라의 남자와 자고 있던 소렌토 백작가의 하나뿐인 영애. 흥미로운 이슈거리가 틀림이 없었다. 설마 자고나면 늘 저런상태가 되는걸까?
[나도 몰라. 의식이 있는경우에는 어떻게든 제어가 되긴 하는데 잘때는 나도 몰라.]
"으음. 곤란한데."
[그 전에 내 옷이나 구해다줘. 곤란한건 너뿐만이 아니니깐.]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자기도 왔다갔다 제 몸이 바뀌는데 곤란하긴 할지도.. 그보다, 다시 고양이로 돌아온 레오를 빤히 바라보며 이질감을 느꼈다. 내가 지금 내 생각을 계속 말하고 있었던가? 그리고 저 레오는 고양이로 입뻥긋 하지도 않았는데 또렷하게 목소리가 들려오잖아.
[멍청하긴. 이제서야 깨달은거야? 너의 과거를 공유했었는데 너의 생각이라고 공유하지 못하겠어? 그렇게 뭐 씹은 얼굴하지마. 누군 좋은줄 알아? 너의 시도때도 없이 불쑥나타나는 생각들때문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어.시끄러웠다고.]
"아아."
그런점에선 또 미안하게 생각한다. 나같아도 듣기 싫어도 들을 수 밖에 없다면 짜증이 날지도. 생각해보면 레오의 저 더러운 말버릇과 재수없는 성격은 나에게 원인이 있을지도..
[다 들리니깐 대놓고 욕하지 좀 말지?]
"자유가 억압된 기분이야."
내가 내 마음대로 욕도 못하다니. 제약이 너무 많은걸.
[자유가 사라진건 나야! 분명 어디서든 잘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뚝 떨어진 건 나라고!]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러려니 곱게 넘어가기로 했다. 너가 피해자이니 내가 피해자이니 할시간에 일단 씻고 준비해야했다. 레오의 옷도 살겸 나의 옷도 사러가야했다. 생각하고 싶진 않았지만 몇일 후면 나의 생일이기 때문이다. 그 말은 즉슨 나의 사교계 데뷔가 몇일 후라는 얘기고 좀더 앞서서 말하자면 황자를 만날 날이 몇일 남지 않았다는 얘기이다. 이미 미래를 훤히 알고 있는 나에게 황자를 만난다고 해서 준비할 것은 없었지만 적어도 마음의 준비는 해놓아야 한다.
과거의 경험으로 떠올려 봤을때 황자는 아무래도 나의 위치가 역사 깊고 은근한 세력을 띤 소렌토 가(家)를 무시할수 없어서 제 딴에는 나름 신경써주는 '척' 하며 영혼없는 축하멘트와 별뜻없는 선물을 내놓았다. 그때의 나는 그가 건넨 선물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놀라움을 표시했었다. 다름아닌 '홍염의 반지'였으니깐. 큰 알멩이에 불이 담겨있는듯한 홍염의 반지는 '홍염'이였기 때문에 놀란것이 아니라 '반지'였기 때문에 놀란것이였다. 한창 로맨스에 빠져있던 15살 소녀가 그 반지를 받아들고 무슨 생각을 했을진 개나소나 다 아는 이야기다. 빠져버렸고 감동먹은것. 지금 생각해보면 싸대기라도 날려서 정신을 차리게 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필시 그 선물은 황자가 고른게 아닌 황제나 황후, 제 2황녀가 거지같은 태도를 보일 황자를 억지로 설득해서 준비한 것일수도 있다. 선물의 폼새를 보아 선물준비는 황자가 제 창고에 처박혀있던 아무 물건이나 집어온걸 테고. 생각할수록 재수없는 병맛 황자가 틀림없다. 도대체 어디가! 어디가! 어디가! 나의 눈에 들어온거지?
[그렇게 자괴감에 빠져있을 시간에 준비나 해. 세라 라는 여자애가 오고 있어.]
고양이라 기척도 예민한건지 나의 생각을 공유하고 있던 레오가 귓가를 뒷발로 긁어대며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제야 머릿속을 빙글빙글 돌려가며 떠올렸던 과거의 한 자락을 애써 지운채 화장실로 들어섰다.
*
"와아! 아가씨! 너무 잘 어울려요!"
세라의 감탄 어린 말을 들으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말했던가? 세라는 옷보는 눈이 매우 낮다고. 그건 아버지또한 마찬가지였다.
나의 첫 사교계 데뷔이다 보니 아버지는 한껏 들뜬 마음으로 (나보다 더 들뜨셨다.) 유명한 디자이너를 불러들여 가장 유행하는 디자인으로 드레스를 주문했다. 그 디자이너는 가장 유행하는 드레스 풍으로 만들어오긴 했으나 얼굴은 시퍼렇게 질려있었다. 나는 그 표정의 의미를 십분, 아니 백분 이해할수 있었다. 나와는 엄청나게 어울리지 않는 드레스였기 때문이다.
드레스의 치맛단은 가장 풍성하게 집중되어있었고 디자인또한 과하다 싶을 정도로 수놓아져 있었다. 연한 핑크색의 블링블링하다 싶을 정도로 치장되어있던 그 드레스는 엄청난 가격을 고사하고도 나와 어울리지 않았다. 적어도 키라도 컸더라면 참을만 했을텐데 15살에 아직 성장중,혹은 멈췄을지도 모를 그 몸에 그 드레스란. 아아, 새로운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하지만 썩어있는 표정의 디자이너와 나를 제치고 아버지와 세라는 감동을 먹은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그 시선이 어찌나 부담스러웠던지 괜히 헛기침을 할정도였지만 둘은 상관없다는 듯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연신 찬양을 늘여놓았다. 그 기나긴 찬양이 끝나질 않고 이어가자 디자이너는 곤란한 눈치로 슬쩍 빠져나갔고 나는 얼마 남지않은 시간에 어쩔수 없이 그 드레스를 입고 들어섰다. 덕분에 좋은 교훈을 얻었다. 제 분수를 알자.
그런 고된 과거를 가지고 있던 나는 이번기회에는 그 실수를 만회하고자 직접 드레스를 고르러 나섰다. 속셈으로는 레오의 옷을 사러간 거였지만 어쨌거나. 세라를 대동한 나의 외출에 아버지는 조금 삐지신듯 했으나 고개를 끄덕이며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아마도 묘하게 바뀐 딸의 태도가 그리 나쁘진 않으셨던것 같다. 그모습이 너무 좋아서 살짝 뽀뽀를 남겼다는건 부가적인 일이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나는 세라의 선망어린 그 눈빛, 낯설지 않은 그 눈빛을 애써 피하며 점원의 파르르 떨리는 입꼬리를 확인했다. 거울속의 나를 볼수가 없어서 대충 분위기만 봤을 뿐인데도 현재의 내 상태가 어떤지 알수 있었다. 다행이면서도 슬프다.흑.
"다른걸로."
착잡해지는 마음을 추스리며 점원에게 말하자 점원은 잽싸게 다른 드레스를 꺼내들었다. 세라가 갸웃,고개를 흔들며 잘어울리시는데? 하고 중얼거린 말은 넘어가도록 하자.
단순한 디자인에 무늬도 간간히 투명하게 보였다. 보석도 큼지막한 보석대신 자잘자잘한 보석들로 박혀있었어 어찌보면 너무 단순해 묻힐지도 모르는 드레스였지만 은은하게 보일듯 말듯 풍기는 푸른빛깔이 맴돌아서 이 드레스가 보통 재질로 만들어진 드레스가 아님을 알수 있었다. 달콤한 향기가 풍기는 걸로 보아 확실히 아까의 드레스보다 값어치가 더 나갈것으로 예상된다.
"어때?"
부드러운 실크가 몸에 달라붙어 그렇게 불편하지도 않아서 나름 마음에 들었다. 이것마저 점원과 레오가 비웃는다면 될대로 되라지,하는 식으로 나갈 심산이였다.
"너무 아름다우세요! 아마 몇일 후 사교계에서 아가씨가 가장 아름다우실꺼에요!"
세라야 어쩌피 아까부터 연신 칭찬만 했으니 그러려니 치고, 점원의 기색을 살펴보니 아까처럼 무슨 말을 해야할지 고심하는 눈치가 아니였다. 마지막으로 피곤해보이는 레오를 향해 시선을 던지자 귀찮은듯 하면서도 나의 모습을 확인한 그가 긍정적인 답을 내놓았다.
[이게 제일 낫네.]
"이걸로 할게."
더이상 여기 옷집의 옷들을 입기엔 나도 지쳐버려서 다행이라는 마음으로 원래 입고 왔던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 드레스가 나의 예상을 빗나가지 않고 무척 높아서 아버지께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딱히 이제 사치를 부릴데가 없으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황자에게는 이제 아무것도 갖다 바치지 않을것이다. 그렇다면 과거보다 훨씬 지출이 절감되겠지. 그정도면 다른 골빈 영애들보다 훨씬 좋은 효도라고 생각한다.
길거리로 나와보니 북적거리는 사람들의 활기가 느껴졌다. 과거에는 뭐에 그리도 쫓겼던건지 바빠서 볼수 없었던 것들이 이제서야 눈에 들어왔다. 길거리 아이들이 뛰어놀고있었고 여기저기서 물건들을 권유하는 상인들의 드높은 목소리도 그럭저럭 들을만 하게 느껴졌다.
"좀더 구경하다 갈래."
"예? 하지만 냄새가 많이 베길텐데요."
여러 음식냄새에 사람들이 워낙에 많은지라 여러 악취가 나긴 했으나 이곳은 소렌토였다. 비록 내가 차기 백작으로써 재능이 있는건 아니지만 어쨌거나 후계자는 나뿐이다. 이 거리를 다스릴 사람이 언젠가 나로 바뀔지 모르는 마당에 정작 이 거리를 거닐어 보지 않는다는 건 모순이다. 어쩌면 그런식으로 납득화해서라도 구경하고 싶은걸지도 모르지만.
"그럼 일단 새로 산 옷들을 마차에 보내놓을게요. 여기서 기다리셔야 해요?"
"응 알겠어."
신신당부하는 세라의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에게 타이르는 것 같아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마음이 안놓이는 듯 내 쪽을 바라보던 세라가 제 모습을 감추고 나서야 품에 안겨있던 레오를 확인했다. 고양이들은 햇살을 좋아한다던데. 그말이 거짓은 아니였던건지 햇살을 받으며 잠이 들어있는 모습은 꽤나 귀여웠다. 동물을 쉽게 접한적도 없고 생각해본적도 없어서 새롭게 느껴졌다. 이 작은 생물이 나의 품안에서 잠들어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몽실몽실한 기분이다.
"많이 피곤하면 너도 먼저 돌아가있어. 나랑 세라는 좀더 구경할거라 힘들거야."
[됐어. 너랑 떨어져 있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데. 신경쓰지 마.]
갸르릉 거리며 내용은 날카롭게 세워진 발톱같은 말인데도 말의 어투나 분위기상 평소보다 부드럽다는걸 느꼈다. 햇살이 고양이에게 이런 영향을 주는구나. 새삼 갑작스러운 결과를 얻어낸 후 레오를 좀더 편안하게 안아들었다.
"흐아. 아가씨, 안무거우세요? 제가 들어드릴까요?"
언제 다가왔는지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내며 말하는 세라에게서 거친 호흡이 느껴졌다. 이 더운 날씨에 '혹시'라는 생각으로 뛰어갔다왔을 세라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시원한 음료수집을 눈짐잣으로 둘러봤다.
"레오가 낯을 많이 가려서 안될거야,아마. 그리고 나는 괜찮으니깐…아, 저기 가서 음료수먹을까?"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데다가 색깔도 언뜻보니 알록달록한것이 한눈에 봐도 상큼해보였다. 이 더운 날씨에 달달한건 무리고 시큼한것이 땡기던 터라 눈에 끌었는데 자세히 보니 길가는 사람들 마다 제 각기 손에 저 음료수집의 음료를 들고 있었다. 유명한건가? 세라가 나의시선이닿은곳을 확인하더니 잘 아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포크스네요. 소렌토의 명물이긴 하죠. 톡톡 튀는 음료수 맛이 일품이거든요. 관광객들이라면 필수코스랄까. 그보다 고양이를 좋아하세요? 이름도 지어주시구. 이름이 레오에요? 음. 어디서 많이 들어본것 같은데."
그렇게 유명하단 말이야? 소렌토에서 15년, 아니 19년을 살아왔는데 그거 하나 알지 못했다니. 심장이 쿵, 내려안는 기분이다. 왠지 소렌토의 모든 하나하나에 예민해지는 것 같다. 예전같으면 그러려니, 이제라도 알았으니 됐거니 했을텐데. 회귀 후 달라진게 많아졌다.
"레오라는 이름이야 흔하니깐. 일단 음료수부터 사자. 그후로 둘러보는게 좋겠어."
"햇볕이 뜨거운데 그늘에서 기다려주세요.제가 금방 갔다올게요."
"아니야, 가끔은 햇볕도 받아봐야 건강해진데. 같이 가."
피부가 상할텐데.. 중얼거리며 세라가 안절부절한 모습을 취하긴 했지만 무시한뒤 포크스 상점으로 향했다. 북적거리는 사람들사이로 들어가기가 민망하던 찰나에 불쑥, 손하나가 튀어나왔다.
"에스코트 해드릴까요?"
곱게 휘어진 녹안에 어리둥절한 모습을 보이다가 일단 호의를 받아드려 단숨에 포크스 상점 앞으로 도착할수 있었다. 매끄러운 동작으로 이리저리 사람들과의 접촉을 막아준 남자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려 시선을 돌린사이 남자는 눈깜짝할 사이에 저 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세상에 언제 저기로 간거지?
"귀여운 아가씨 무슨 맛을 드릴까요?"
푸짐한 인상에 동글동글해보이는 상점 주인이 현란한 솜씨로 병들을 흔들며 물었다. 그제야 주문할 차례가 됬다는 걸 알고 메뉴판으로 보이는 글씨들을 살폈다. 대체로 처음보는 것들이라 쉽사리 고르지 못하자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몇명이십니까?"
"음..두명. 아니 세명."
"그렇다면 A코스를 추천해드릴께요. 세가지 다른맛이라 고루고루 먹어볼수 있답니다."
"오, 좋아요. 그걸로 해주세요."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귀여운 아가씨."
살에 접힌 눈을 보니 그가 윙크를 한것이라고 뒤늦게 알아챘지만 어쨌건 간에 둔해보일거라고 생각했던 그의 팔은 휘양찬란하게 움직이면서 이리저리 병들을 던지고 받고 묘기를 부렸다. 그제야 포크스의 상점 앞에 사람들이 많은 이유를 짐작할수 있었다. 눈을 뗄수 없게 하는 이 전략도 훌륭했다. 확실히 유명한 이유는 맛뿐만이 아닌게 분명하다.
"여깄습니다,꼬마아가씨. 나중에 또들려주세요."
세개의 음료를 들기엔 벅차긴 했지만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나를 찾고 있던 세라가 뒤늦게 나를 발견하고 재빨리 음료를 들었다.
"아가씨! 정말,정말!"
눈가가 빨간것이 아무래도 내가 어디 이상한데로 갔나싶어서 걱정이 되었나 보다. 하긴, 짧은 시간안에 사라졌었으니 놀란만도 하지. 살짝 미안한 마음에 나름 애교스런 미소를 지어 보이자 헬쓱한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쩌겠어, 지금은 괜찮잖아.
"왜 잔이 세개에요? 또 누구 줄사람이 있나요?"
원래는 두잔만 사려했지만 품안에 안겨있던 레오또한 먹을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무심코 세개의 잔을 주문해버렸다. 근데 너무 곤히 자고 있어서 깨울수도 없고. 괜한 짓을 한것같아 곤란해지려는 데 아까 호의를 베풀고 그냥 가버렸던 남자가 눈에 띄었다. 언제 또 다시 왔지? 걸음이 엄청 빠른 남자였다.
"저기!"
레오를 안고 있어서 손을 들진 못했지만 나름 크게 불르자 용케 알아들은 남자가 또다시 금세 내 앞에 섰다. 고개를 젖히고 볼 정도로 키가 무척 컸다.
"아깐 죄송했습니다,레이디. 잠시 볼일이 있어서. 무례를 용서해주시겠어요?"
길거리에서, 갑작스럽게 한쪽 무릎을 꿇고 손등에 키스를 남기며 묻는 남자의 말에 소름이 오도독 돋아버렸다. 과거에 이런 경험을 안 받아본건 아니지만 너무 무뎌지긴 했나보다. 이 오글거리는 멘트가 나와는 무척 어울리지 않는다는걸 알아버렸다.
"예. 용서할게요. 그러니깐 일어나주지 않겠어요?"
"이런이런. 매우 화가 나보이신것 같은데 부디 선처를."
전혀 화가 나지 않았음에도 되려 화가나게 만들려는 속셈인건지 이젠 발등에 키스를 하려는 행동을 취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사람들의 시선이 모아진건 두말할것도 아니였거니와 나의 얼굴은 필시 새빨게졌으리라. 세라가 입을 떡 벌린채 어버버하는 사이 이 남자는 부끄러움이란게 없는건지 벌써 나의 발등위에 입술을 대려하고 있었다. 여기 미친놈이 있어, 아버지.
퍽-
이건 불가항적 일이였어. 세라,레오. 안그래?
나도 모르게 남자를 향해 발길질을 날려버리고 남자가 잠시 굳어있더니 풀썩-하며 뒤로 넘어졌다. 아니, 이게 말이돼? 내가 찬게 얼마나 쎄다고 그거에 넘어져? 물론 약한건 아니였지만..
"대단해. 깔끔한 발차기였어."
"분명 바람핀 남자일꺼야. 그래서 여자가 찬게 틀림없어."
"난생 처음으로 저렇게 아름다운 발차기는 처음봐."
더욱 놀라운건 주위 사람들의 시선과 대화소리였다. 세상에. 소렌토가 원래 이랬던가?
+로맨스 회귀물
첫댓글 대화하는내용이 더많으면더재밌을것같아요
대화요? 음... 좋습니다. 뽑아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