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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는 습관처럼 자신의 엄지손톱을 만지작 거렸다. 정상적인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프레니온을 포함하여 전 대륙이 금기시하고 있는 흑마법이 필요하게 됐다니... 게다가 남몰래 흑마법에 관한 연구를 하다가 발각되어 수감생활 까지 했던 그였다. 그런데 이제와서 흑마법이 필요하게 됐으니 도와달라? 테리는 깊은 숨을 토해내며 다시 서류를 짚어 들었다.
'마튜라, 레플리카(Replica)시전에 대한 연구보고서'
"레플리카에 대해 알고있나?"
"…네, 흑마법 중에서도 가장 고위 마법으로, 생명체의 모습을 그대로 복제시켜 살아있는 꼭두각시로 만드는 마법입니다. 하지만, 워낙에 수식도 어렵고 *마나(MANA)의 양도 방대하게 들 뿐더러, 성공률 또한 극악으로 저조하기 때문에, 현재로선 레플리카를 시전하려는 얼간이는 없죠"
테리의 말이 끝나는 순간, 랄프가 고개를 돌려 황제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시선을 느낀 그가 고개를 한번 끄덕이자, 랄프가 짧은 한숨을 토해냈다.
"맞다. 지금의 흑마법사들 중에선 레플리카를 시전할만한 인재는 없지. 하지만, 정확히 13년 전 '에드릿샤' 극장에서 공연을 관람하던 배우, 관객 모두가 의문의 마나폭발로 인해 전원 목숨을 잃었다. 언론에서는 미친마법사의 단순한 광기라고 공식적으로 기사를 냈지만, 석연치 않는 부분들은 굉장히 많았지"
랄프가 턱짓으로 서류를 가르키자 테리가 반사적으로 서류를 넘기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호흡이 멈추며 두 눈이 커지었다. 그는 안경을 똑바로 고쳐쓰며 서류를 얼굴 가까이 들이밀었다.
"이, 이건..."
"그때 당시 사건을 담당하던 경관이 시체들에게서 흘러나온 피의 형상을보고 이렇게 말하더군, 이건 마치 거대한 마법진과도 같았다고"
서류에 부착되어 있는 흑백사진 속에는 에드릿샤 대극장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은 사진이였다. 쓰러져 가는 시체를 사이에 두고 흘러나온 피들이 여러 수식언들을 머금은채 아주 거대한 원을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피로 얼룩진 화려한 원 주변의 모양과는 다르게, 원 안은 이상하게도 그 무엇도 묻어있지 않은 채 공허하기만 했다.
"믿을 수가 없군요. 이 마법진은…"
"그 광기어린 마법사는 부족한 마나를 생명을 대가로 레플리카를 시전 한 것이다"
"성공..했습니까?"
"모른다"
랄프의 짧은 대답에 테리는 이어서 다음 서류를 넘기었다. 그리곤 곧바로 인상을 찌푸릴 수 밖에 없었다.
"그 마법사의 시체도 이곳에 있었다."
눈이며 코며 입이며, 온 몸의 구멍이란 구멍에서 피를 토해내고 있는 마법사의 사진은 그야말로 혐오 그 자체였다. 게다가 섬뜩하리만치 비릿한 미소를 짖고있는 마법사의 얼굴에는 겉모습과는 상반되는 평온이 피어올라 있었다.
"...이해할 수 없군요, 그런데 이 사건을 갑자기 왜…"
"그가 남기고 간 것이 있기 때문이다."
황제의 목소리였다. 시종일관 냉기어린 시선으로 테리를 유심히 관찰하던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커다란 통유리 창문을 향해 걸었다. 찬란하게 내리쬐는 태양의 빛이 유리를 그대로 통과하여 황제의 피부에게 떨어지자, 마치 그가 몽환적인 빛을 내뿜는 신적인 존재로 보이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그가 태양을 등지고 두꺼운 검은 융단의 커텐을 거칠게 치자 테리는 그제서야 정신이 바짝 들며 황제의 말에 좀 더 집중 할 수 있었다.
"10년 전 그 일 자체는 현재의 프레니온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하지만, 그 일을 다시 반복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순식간에 빛을 차단 당하여 아마릴리스 궁의 내부는 칠흙같이 어두웠지만, 황제의 목소리에선 차가움이 서렸다.
"그 마법사가 죽음으로 인해서 사건은 종결지어 진 것으로 알았지만, 그게 아니였다. 마법진은 시전자의 기력이 다하거나, 마법이 발동되었을 때 자동으로 소멸하는 법. 하지만, 빌어먹게도 그 마법진은 아직 소멸되지 않았다"
"예?!"
테리는 자리에 튀어오르듯 섰다. 시전자가 죽었는데, 어떻게 마법진이 유효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이건 도저히 상식선에선 이해 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리고 그 마법진을 이용해 다시 한번 레플리카를 시전하려는 집단이 있다. 그게 바로 마튜르다."
황제의 목소리가 아까와는 다르게 조금 빨라진 듯 싶었다. 오싹- 지독하게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는 주위에 음산한 기척마저 들었다. 황제는 아랑곳 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마튜르는 머지 않아 10년전과 같은 끔찍한 상황을 만들어 내겠지. 레플리카만 자유롭게 구사 할 수 있다면, 그들에게는 엄청난 병기가 생기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까. 하지만 녀석들은 먹이를 앞에두고 우리안에 갇힌 짐승처럼 전혀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 거기에 대해서는 아직 자세한 이유를 알지 못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녀석들이 주춤하고 있는 그 시간이 우리에게는 기회라는 것이지"
황제의 목소리는 더욱더 빨라졌다. 숨이 가쁜 것도, 흥분한 상태에서 음역대가 올라간 것도 아니다. 그저 아까와 똑같이 차가움이 뚝뚝 떨어지는 싸한 음성 이였지만, 단지 말하는 속도가 조금 빨라졌을 뿐 이였다. 그리고 분명 주위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고요하기만 한데, 알 수 없는 산만함이 몸을 꿰뚫었다.
"우리는 마튜르가 흑마법을 시전하기 전에, 마법진을 파괴할 것이다. 그래서 그대를 부르게 된 것이다. 현재 마법사의 탑 안에 속해있는 마법사 중에선 그대만큼 흑마법에 대한 유서가 깊은 사람은 없으니까. 그리고 본격적으로 마법진에 대한 연구를 시작할 것이다. 공식적인 자리를 가장한 비공식 수사를 통해서..."
황제의 말이 계속 될 수록 기분 나쁜 뜨거운 바람들이 서서히 불기 시작했다. 테리가 이상함을 느낀 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고개를 돌려가며 주위를 경계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마법진이 발동되고 있는 에드릿샤 아니, 현 베로니카 극장으로 향할 것이다"
황제의 마지막 말이 끝나자마자 붉은색 섬광이 쏟듯이 터져나왔다. '콰강-' 소리를 내며 섬광이 닿았던 천장 위로 구멍이 깊은 구멍이 뚤렸다. 그 여파로 파편들이 우두두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폐하!"
랄프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덩치 큰 무언가가 후려 맞는 소리가 들리더니, 우저적- 뼈 으스러지는 듯 한 소리가 들렸다. 테리는 우왕좌왕 하며 어쩔 줄 몰라하다가 손을 뻗고는 외쳤다.
"라이트(Right!)"
순간 테리의 왼 손에서 흰색 구체가 띄어오르며 사방을 밝히었다. 하지만, 테리는 자신이 라이트를 시전한 것에 대해 바로 후회 할 수 밖에 없었다. 하나는 자신의 바로 옆에서 검고 긴 털을 휘날리며 거대한 이빨사이로 점성이 깊은 침을 뚝뚝 떨어트리는 대형개 때문이였고, 또 하나는 순간 핑-하고 머리가 돌 정도로 얻어맞았던 랄프의 우왁스런 손 때문이였다.
"멍청아! 당장 빛을 없애!"
순간 어질한 머리를 뚫고 들어오는 랄프의 큰 목소리에 테리는 당장에 마법을 캔슬 시켰다. 하지만 한 발 늦은 것인지, 자신의 옆으로 붉은 불길이 혓바닥을 내 두루는듯 쏟아져 왔다.
"으어어!"
"저런 머저리 같은!"
그리고 그 순간 랄프가 튀어올라 개의 목부분을 세게 걷어찼다. 순간 어울리지 않는 '깨갱-'소리를 내며 벽으로 나가떨어지는 개를 향해서 랄프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허리춤에 있는 긴 검을 뽑아 목에 박아 넣었다. 그리고 칼을 뽑자 마자 분수처럼 쏟아지는 피를 한쪽 어깨가 흥건하게 젖어가도록 맞은 랄프는 어둠속에서 카힐의 안부를 걱정하였다.
"폐하!"
그리고 다시금 몸을 옥죄어 오는 검은 바람에 랄프는 또 다시 칼을 들어야 했다.
"이런 젠장!"
랄프가 거칠게 검을 내려 치려는 순간 다른 한 놈이 달라 붙어선 그의 몸을 거칠게 쳐내었다. 한쪽 벽이 무너질 정도로 심한 충돌을 겪은 랄프는 거친 신음을 토하며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대체 몇마리나 있는거야!
놓친 검을 마주 잡으려는 순간 푸른빛이 일직선으로 랄프 앞을 꿰뚫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 빛은 랄프 앞의 대형개들의 목을 일제이 뚫고 지나갔고, 그 순간 피가 터지며 살점들이 바닥으로 쏟아져 내려왔다. 그 모습을 본 테리가 올라오는 구역질을 참으려 입으로 손을 막았지만, 짙게 몰려오는 피냄새에 정신이 어질 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방금 전 여파로 검은 커텐이 갈갈이 찢겨지고 카펫이 치솟아 올라 종이짝 처럼 하늘하늘 내려왔다. 커텐 사이로 조금씩 비춰오는 빛은 청아했으나 아마릴리스 궁의 내부는 그야말로 처참했다.
"...죄송합니다, 또 도움을 받았군요"
피를 잔뜩 뒤집어 쓴 랄프와는 다르게 황제의 모습은 깔끔했다. 단지, 그의 검 아래로 촉촉히 떨어지는 핏방울이 참담했던 그 현장을 말해 주고 있을 뿐이였다. 검주위로 띄워졌던 푸른 빛이 피를 머금고 있다가 이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 이건 도대체 뭐죠?"
테리가 겨우 목소리를 내 입을 열었다. 눈 앞의 살점들과 지독한 피때문에 제대로 눈도 뜨지 못한채 엉거주춤한 모습이였다. 그런 테리를 보고 랄프가 뛰듯이 달려가 멱살을 쥐어잡았다.
"한번 더 그런 멍청한 짓을 했다간 당장에 개밥으로 던져 줄테니까 각오해"
"히익! 왜, 왜이러세요!"
잔뜩 겁먹은 소리로 힘껏 소리치는 테리를 거칠게 놓아 주었다. 테리는 켁켁 거리며 자신의 목을 쓰다듬고는 은근슬쩍 황제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그의 두 눈동자에는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았다. 그저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시체들을 단순한 무기질 덩어리를 바라보는 듯 냉랭했다.
"이녀석들은 마튜르의 레플리카 실험체. ‘퍼펫(Puppet)’ 이다"
"네?!"
갑작스런 랄프의 말에 테리가 정신을 바짝 차렸다.
"인간 복제까지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이런 동물들의 퍼펫은 꾸준히 보내왔지... 쓸데없게"
랄프는 쳇하며 자신의 발 앞에 굴러온 개의 머리를 툭 하고 차버렸다. 그 머리가 테리의 발 언저리에 다가오자 테리는 거의 경기를 이르키다시피 호들갑을 떠며 랄프 옆으로 도망치듯 피했다.
"이녀석들은 빛이 없으면 아둔해지지. 즉, 빛이 생기고 시야가 트이면 물만난 고기마냥 덤벼든다 이거야. 복제품인 만큼 진짜 동물들의 습성은 가져오지 못했어. 생긴 모양만 닮았을 뿐, 동물적인 감각은 현저히 떨어진다고, 그저 살육을 하는 기계에 불과해"
"하... 이런 것들이랑은 얼마나 더 마주쳐야 하죠?"
"매일 아침 신문에 나있는 따분한 스캔들기사 만큼이나"
테리의 안색이 창백하다 못해 하얗게 질려갔다. 랄프가 자신의 품 안에서 양피지 종이 한장과 만연필을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물론 양피지 종이 마져도 피에 물들어 제대로 된 종이 구실을 하기는 어려웠지만 말이다.
"사인해라, 정식으로 황실 마법사가 된다는 서류다. 뭐.. 딱히 별 효능은 없지만, 절차이니 해두는게 좋다"
테리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촉에 잉크를 묻히고 종이를 가까이 가져다 댔다. 그리고 문득, 고개를 들어 랄프를 쳐다 보았다. 랄프는 '또 뭐' 하는 마음으로 그를 마주보았다.
"그런데, 저에 대한 뭘 믿고 이런거 저런거를 다 말씀해 주시는거죠?"
"뭐?"
"솔직히, 제가 나쁜 마음 품고 비싼 돈 받고 이 이야기 세상에 전부 누설 할 수도 있는거잖아요. 아, 안그래요?"
"그렇다면 누설해라"
"폐하?"
황제가 피묻은 자신의 검을 한참이나 들여다 보며 낮게 읊조렸다. 테리는 그런 그의 모습을 긴장한 채로 바라보다가 아차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대가는 받을 것이다. 너의 하찮은 목숨을 포함하여, 마법사의 탑 원로들도, 그리고 너의 하나 뿐인 여동생까지도. 이미 알려진 소문에 대해서는 발설을 금지 시킬것이다. 만약, 명을 어기는 자가 있으면 내일 아침 뜨는 해를 마지막으로 단두대에 서있겠지"
테리는 더 말할 것도 없이 곧 바로 사인을 했다. 혹여나 글씨가 튀어나갈까 싶어 심혈을 기울여 아주 정갈하게 써 내려갔다. 랄프는 그의 그런 모습을 보고 '속 보이는 놈' 이라며 고개를 절레 저었다.
*짜투리 잡담*
분량을.. 좀 줄여야 겠어요. 시점이 바뀔 때 마다 맞춰쓰려니.. 이것 참..ㅎㅎ
요즘 많이 덥네요.. 더위도 더위지만.. 습도가 장난이 아니네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으아앙 ㅠㅠ 감사하게도 봐주시는 분이 계셔서 ㅠㅠ너무 큰 힘이되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