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끝은 멸망입니다.”
바오로는 오늘 십자가의 원수에 대해 언급합니다.
십자가의 원수라! 십자가의 원수란 무엇입니까?
십자가의 원수가 있다면 십자가의 벗도 있나요?
십자가의 원수와 벗에 대해 생각하니 반성부터 됩니다.
저의 주보인 레오나르도 성인이 지금의 14처 십자가 길을 널리 보급한 분이기에
저는 수련 때부터 십자가 길에 대한 신심이 있었고 자주 십자가 길을 하였고,
적어도 한 주일에 한 번 금요일에는 십자가의 길을 했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십자가의 길을 거의 하지 않는데
그렇다면 예전의 저는 십자가의 벗이었고, 지금은 십자가의 원수인가요?
그런데 이런 지금의 제가 무척 부끄럽긴 해도 십자가의 원수는 아닙니다.
십자가를 원수로 제가 생각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내가 십자가를 원수로 생각지 않으면 나는 십자가의 원수가 아닌 건가요?
사람 간에 관계를 예로 들어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나는 그를 원수로 생각지 않지만, 그는 나를 원수로 생각할 수 있잖아요?
장난삼아 개구리에게 돌을 던질 때
나는 개구리를 원수로 생각지 않지만, 개구리는 나를 원수로 생각하지 않을까요?
같은 논리로 나는 십자가를 원수로 생각지 않지만
나는 얼마든지 십자가의 원수가 될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요?
십자가 삶 그것도 그리스도의 십자가 삶을 살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도 이런 뜻에서 십자가의 원수,
그것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가 되지 말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이어지는 말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네 배를 하느님으로,
자기네 수치를 영광으로 삼으며 이 세상 것만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 것만 생각하는 사람이 십자가의 원수입니다.
또는 이 세상 즐거움이랄까 쾌락이랄까
이런 것들을 즐기는 사람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입니다.
아무튼 종합하면 나는 십자가를 원수로 여기지 않지만
실제로는 바오로 사도가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는
‘많은 사람’ 또는 ‘그들’이라고 하는 사람 가운데 하나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이 마침 금요일이네요.
그리스도 십자가의 벗이 되겠다는 뜻으로
오늘은 제가 오랜만에 십자가 길을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