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반도체 전쟁, 여·야·정 삼위일체의 지원 필요하다
중앙일보
입력 2023.03.16 00:10 업데이트 2023.03.16 00:26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4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정부는 회의에서 '국가첨단산업 육성 전략'을 발표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정부, 용인클러스터 등 첨단산업 육성책 발표
그린벨트 규제, 균형발전 역행 비판 극복해야
정부가 반도체·미래차·우주·원전 등 첨단산업 육성을 위해 4076만㎡(약 1200만 평) 규모의 15개 ‘국가첨단산업단지’(국가산단) 조성 계획 등을 담은 ‘국가첨단산업 육성 전략’을 내놨다. 민간 기업들은 반도체 등 6대 분야에 550조원을 투자하고, 정부는 인공지능(AI) 등 12대 연구개발(R&D)에 25조원을 투자하는 내용이다. 계획이 실현되면 전국이 첨단산업의 제조 기지로 변신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경기도 용인에 초대형 첨단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하겠다는 정부 계획이다. 정부는 이곳에 710만㎡의 국가산단을 지정하고, 삼성은 2042년까지 300조원을 투자해 시스템반도체 공장 5개를 설립하기로 했다. 이곳을 기흥·평택·이천 등의 기존 반도체 생산단지와 연계하고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업체들을 다수 유치해 세계적 규모의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를 만들겠다는 것이 정부 구상이다.
지금 세계는 국가경쟁력의 핵심인 첨단 반도체 확보 전쟁이 격화하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과학법에 따라 향후 5년간 520억 달러(약 68조원)의 보조금 지원을 내걸고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을 유인하고 있다. 유럽연합(EU)도 ‘EU 반도체칩법’을 통해 최대 430억 유로(60조원)를 투입해 EU의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20%까지 끌어올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인 TSMC 지원에 국가의 총력을 기울이는 대만은 말할 것도 없다. 이번 용인 클러스터 구상은 이런 반도체 패권 전쟁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한 의미 있는 포석으로 평가된다. 사실 한국은 메모리반도체 최강국이면서도 이렇다 할 국가적 반도체 전략이 없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 사이 한국의 강점인 메모리 기술 초격차는 좁혀지고 있고,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와 삼성의 점유율은 작년 4분기 58.5% 대 15.8%로 종전보다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 삼성의 국내 생산기지 건설 계획도 평택 캠퍼스 이후 9년 만에 나온 것이다.
이제 관건은 실행과 속도다. 국가산업단지 조성이 차질 없이 진행되려면 그린벨트 규제, 농지 규제 등 넘어야 할 규제가 많다. 지방 분권에 역행하고 수도권 집중을 강화한다는 비판 역시 극복해야 한다. 충분한 전문인력 양성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지지율이 하락하더라도 감수해야 한다. 대통령실이 “우리나라가 글로벌 반도체 패권을 잡기 위한 승부수를 던졌다”며 윤석열 대통령의 결단을 강조한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일 것이다. 반도체 등 첨단산업 육성은 국가의 미래가 달린 문제다. 그런데도 설비투자 세제 지원 강화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등 답답한 상황이 곳곳에 있다. 허비할 시간이 없다. 여·야·정과 민간이 모두 비상한 위기감으로 뭉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