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생명 말씀 말씀 / 마태복음 16:13-15 질문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라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태복음 16장을 보면 예수님이 자들을 데리시고 가이사랴 빌립보 여러 마을로 가시면서 질문을 하십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제자들은 사람들이 대게 예수님을 세례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한다고 대답하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그렇게 예수님을 아주 선지자와 훌륭한 사람, 고향 사람들의 경우는 그들의 체험했던 목수 요셉의 아들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예수님은 곧 이어 두 번째 질문을 하십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번에는 그동안 열심히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보고 배우고 체험한 제자들에게 하신 질문입니다. 막상 아는 것 같았지만 아무도 대답 못하고 머뭇거릴 때 베드로가 나아와 고백을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이렇게 칭찬하십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예수님이 누구신가? 자, 예수님이 누구신가 하는 것이 왜 그리 중요합니까? 예수님을 알아야 믿게 되고, 믿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7:3절 보면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했고, 로마서 10:9-10절을 보면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하였습니다. 나를 누구라 하느냐? 모든 신앙생활의 출발은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출발합니다. 질문이 왜 필요합니까? 질문해야 답이 있습니다. 믿기 전에 먼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잘 알지도 못하는데 믿을 수 없습니다. 또 믿음도 약한데 이것 하라 저것 하라, 교회 열심히 나와라, 헌금도 열심히 해라 하면 이유를 모를 때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힘이 듭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든 모르면 재미도 없고 보람도 없습니다. 만일 잘 알지도 못하고 친하지도 않는 친구가 갑자기 돈 좀 빌려 달라고 하면 선 듯 빌려줄 수 있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정말 잘 아는 친구라면 생명을 담보로 내어줄 수도 있습니다. 얼마만큼 아는가 그게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누구신가 정말 안다면 예수님을 위해 힘들고 아까운 것이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나의 사랑하는 구주요 나의 생명 이시오 영생 임을 안다면 주님을 위해 목숨인들 버린들 아깝겠습니까? 이 예수님을 정말 잘 안다면 예수님 떠나 살 수 있겠습니까?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요한 6:68) 베드로가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알았기 때문이고, 떠나는 사람은 모르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알면 알수록 우리는 투자하게 되고 순교까지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하나님을 아는데 집중하고, 말씀공부, 메일 묵상을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잘 아는 것 같아도 사실 우리는 잘 모릅니다. 성경을 몇십 독을, 100독을 해도 막상 물어보면 잘 모릅니다. 그리고 위기의 상황에 이를 때 보면 그동안 아는 것들이 다 사라지고 백지가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확실하게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반복 반복하고, 암송도 하고, 실천까지 해야 합니다. 이렇게 참으로 안다는 것이 어려운 일입니다. 어린 시절 아는 것하고 청년 시절 아는 것하고, 장년이 된 후 아는 것이 그 깊이 넓이가 다릅니다. 그래서 어거틴은 평생에 두 가지 질문의 기도 제목을 갖고 계속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누구십니까? 하나님 나는 누구 입니까?” 그러기 때문에 우리도 지금 알고 있다 해도 계속 더 알아가는 것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는 아에 모를 때보다도 대충 알 때 생깁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사기도 치고, 문제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잘 알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정조 때 문인 유한준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알면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으로 보인다. 모르면 믿지도 않지만 사랑하지도 않게 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예수님의 일에 대해서 무관심하다면 그 이유가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 할 수 있지만 더 근본 이유는 사랑의 강도가 약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믿음보다 더 중요합니다. 믿음이 있어 순종할 수 있지만 사랑이 없으면 억지가 됩니다. 사랑해야 진정 마음을 다하고 헌신하고 열심히 봉사도 하고, 모든 일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자발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사랑에 기초한 믿음, 그게 진짜 믿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처음 제자들을 훈련하실 때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물으셨지만 부활 후 세상으로 보내실 때는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믿음으로 따르면서도 나중에 부인도 하고 도망도 하고 넘어지기도 한 제자들이 사랑 고백 후에는 모두 주님을 위해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알면 알수록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랑하면 할수록 다 바쳐도 아깝지 않는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누구신가 아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신앙생활에 가장 핵심입니다. 다음에 우리는 스스로에게 나는 누구인가 질문해야 합니다. 나가 누구인가? 막상 물어보면 내가 누군 인지 스스로도 잘 모릅니다. 내가 의지로 세상에 나온 것이 아니라 어느 날 태어났고, 부모에 의해서 길리워지고,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자란 것까지는 아는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모릅니다. 무엇인가 의해서 열심히 일하지만 왜 그렇게 하는지도 잘 모릅니다. 다른 사람들이 하니까 그렇게 많이 살아왔습니다. 내가 지금을 알고 있는 지식들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맞는지 틀린지 확실치도 않으면서 그렇게 우리는 불확실한 삶을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불안 해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입니까?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신도 모르는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먼저 내가 누구인지 나 자신도 아는 것이 중요 합니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하였습니다. 모르면서도 안다고 생각하면 사람들은 배우지 않습니다. 더이상 성장 발전이 없습니다. 모른다고 해야 비로소 알려고 합니다. 성경도 말합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 야고보서 4장 14절 말씀입니다. 인생은 안개 같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는 정작 모릅니다. 모르면 안개처럼 허무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자신이 누구인가 계속 묻고 찾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여행을 좋아합니다. 여행을 왜 합니까? 낯선 곳을 다니며 새로운 풍경도 바라보고 새로운 사람도 만나고 즐겁기 때문입니다. 그제 목요일은 김태구 목사님이 와서 독서모임 후에 달마산 트래킹을 하고, 재중집사님이 곷게탕을 사주셔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금요일은 이명남 집사님이 참여하여 보성 일림산으로 해서 율포에 가서 군수로부터 낙지 대접도 받고, 해수찜질도 하고 왔습니다. 피곤도 하지만 여행이 즐거고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여행의 목적은 여행을 하면서 자신을 대면하게 되고 자기를 만나는 것입니다. 사람은 일상의 일을 떠나 여행할 때 자기와 대면 시간을 많이 갖게 됩니다. 독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책 속으로 시공을 초월해서 지적 여행을 떠나는 것입니다. 거기서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삶을 들여다보면서 또 자기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인문, 고전 철학이 좋은 이유는 인간 자신을 돌아보고 인간의 정신세계의 흐름을 공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구인가? 정말 나로 제대로 살고 있는가? 질문을 던지며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나온 수많은 고전 인문 철학 책들이 다 인간의 동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달마산 트래킹을 하면서 잘랄 루딘의 여인숙이라는 시를 읽어보았습니다. 인간이란 존재는 여인숙과 같다 매일 아침 새로운 손님이 도착한다 기쁨 절망 슬픔 그리고 약간의 순간적인 깨달음 등이 예기치 않은 방문객처럼 찾아온다 그 모두를 환영하고 맞아들이라 설령 그들이 슬픔의 군중이어서 그대의 집을 난폭하게 쓸어가 버리고 가구들을 몽땅 내가더라도 그렇다 해도 각각의 손님들을 존중하라 그들은 어떤 새로운 기쁨을 주기 위해 그대를 청소하는 것인지도 모르니까 짧은 글 인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는 나에게 맞는 사람만 받아들이려 합니다. 또 기분 좋은 일들만 받아들이려 합니다. 그런데 모두를 환영하고 맞아들이라고 합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톨스토이 책을 보면 성장의 문제를 다룹니다. 인간은 누구나 성장이 필요하다는 것을 각성시킵니다. 아윈스타인이 보니 사람들인 머리 5%도 못 쓰고 죽는다고 합니다. 두뇌를 사장시키지 말고 잘 쓰라고 합니다. 니체는 무소처럼 가라고 외칩니다. “너를 떠나는 것이 너를 만나는 길이다. 너를 죽이는 것이 너를 살리는 것이다. 너 안에 천개의 너가 있다. 겁쟁이가 되지 말고 초인이 되라!”고 합니다. 우리의 정신이 번뜩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책을 읽으면 생각하고 질문하게 됩니다. 정말 내가 그런 존재인가? 나는 지금 바르게 잘 살고 있는 것인가? 오래전에 막노동 중졸 출신인 노태권씨가 자신도 공부하고 게임에 빠져 중졸로 끝난 두 아들을 서울 대 4년 장학생을 만든 이야기를 tv 벙송에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대단하다는 생각이들었습니다. 그는 막노동꾼 이었습니다. 글씨도 잘 읽을 수 없었습니다. 안 해본 일이 없습니다. 사업도 많이 망했습니다. 그러나 40이 넘어 아내의 도움으로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이해 안 되면 100번이라도 읽으면서 일하고 나서 하루 5시가 6시간 공부를 했습니다. 아내 때문에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부자집 딸로 사람만 보고 가난뱅이 남편에게 시집 와서 역시 막노동하며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낮에는 일하고 집에 와서 아침 5시까지 남편 공부를 시켰습니다. 더군다나 난독 중에 글씨를 보기 어려워서 아내가 일일이 큰 글씨로 써서 보여주는 바람에 아내 손가락이 휠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온 종일 일하고 새벽 5시까지 공부. 과연 피곤하지도 않을까 졸리지도 않았을까? 일하면서 저런 생활이 가능할까? “어떻게 이런 남편에게 시집올 생각을 하였나요?” 질문하니 가능성을 보았다고 합니다. 이 사람은 이렇게 살 사람이 아니다. 막노동 사업하면서 여러 번 망하고 사촌 언니들이 이제 다시 시작하라 해도 한번 불평 안 했다고 합니다. 오히려 그런 언니들에게 “언니,여자의 지조는 남자가 쫄딱 망할 때 보여주는 것이야” 했답니다. 대단하죠? 그게 인간입니다. 하나님의 DNA를 지닌 사람들은 누구나 닥치면 한다고 하면 하는 것입니다. 그런 믿음에 기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알면 무모한 일도 시도하는 것이고 새로운 삶을 창조하는 것이고, 모르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안 하는 것입니다. 그 차이 입니다. 여러분, 인생이란 아는 만큼 산다고 하지 않습니까? 잘 살기 위해서 알아야 합니다.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고 질문을 해야 합니다. 질문하면 배우게 되고, 무엇이던지 배우면 그만큼 알게 됩니다. 그리고 아는 만큼 사랑하고, 사랑하는 만큼 성장합니다. 전에는 인문 고전이 왜 필요한지 잘 몰랐습니다. 이미 성경을 알고 구원을 받은 나는 세상의 이런 학문들이 더 필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도 다 인간을 똑바로 보고자 하는 공부이고 유익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스로마 신화를 읽어보니 이런 책들도 단지 재미있는 신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신들의 이름으로 표출한 인간의 욕망, 인간의 본성, 인간의 지혜 등을 표현해 낸 인문학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책 표지글을 보면 이렇게 쓰여있습니다. "신화는 인간으로 들어가는 문 이다. 신화를 읽으면 인간 내면 세계를 읽을 수 있다. 인간의 마음을 알고 싶다면 신화속의 신들을 보면 된다. 욕망이 시키는 대로 끝없이 일을 저지르는 신들은 벌거벗은 인간의 모습 그대로 이다" 신화 이야기 중에 영웅 테세우스 이야기가 나옵니다. 당시 아테나에는 사내아이가 자라서 열여섯 살이 되면 앞머리를 잘라 아폴론 신전에 바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테세우스는 열여섯 살이 되자 당시의 풍습대로 아폴론 신전이 있는 델포이로 올라갑니다. 이 신전의 상인 방에 이런 글이 쓰여 있습니다. “그노이티 세아우톤!” 너 자신을 알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 말은 소크라테스가 처음 한 말이 아닙니다. 그 이전에 이미 신전에 쓰여 있는 말입니다. 자신을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신을 향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문은 누구나 제기 할 수 있는데 중요한 것은 그 다음 그 답을 모색하는 경험이 따르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 의문을 제기하고 답을 모색하는 사람은 신화의 주인공이 되고,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지만 의문을 제기하고 답을 모색하지 않는 사람은 반대로 신화의 조연이 되고, 자기가 사는 모든 삶의 조연이 된다고 합니다. 여러분 나는 내 삶의 주연입니까, 조연입니까? 주체입니까 들러리입니까?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니까? 질문을 하면 주연이 되고 주체가 됩니다.
인문 고전을 통해서 우리가 배우게 되는 것은 바로 질문하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로 시작해서 왜 그런가? 이렇게 사는 것이 옳은가 저렇게사는 것이 옳은가? 인문 철학에서는 질문만이 자기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고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신앙인의 입장에서 살다보면 질문하는 것이 많이 사라집니다. 이미 우리는 답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인문 철학자들은 왜 답이 없는 질문을 하고 있을까?” 생각이 듭니다. 사실 철학에는 답이 없습니다. 그냥 답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답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질문이 없으면 설령 답을 얻어도 주어진 답의 가치도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질문하고 답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답이 진짜 나의 답이 되고, 나는 답을 얻은 주인공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관념적으로 알고 있는 축복의 은혜들에 대해서 다시 질문을 해보며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나는 누구인가? 이미 나는 죄인으로서 행복자라는 말씀을 알고 있지만 왜 내가 구체적으로 행복자인가 다시 질문하며 돌아봅니다.(신명기 33:29)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자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영혼을 소유한 자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 한 자이며, 하나님의 창조적 지혜의 DNA를 가진 아무도 무시할 수 없는 자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인가 끊임없이 질문하며 머리 되신 예수님에 이르기까지 자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 아닌 껍데기들은 벗어버리고 계속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니다. 그래야 내 삶의 주인이요 주체자가 되어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관념이 아닙니다. 실체의 동력입니다. 순가 순간의 삶을 믿음으로 살고, 사랑으로 살아 어제와 오늘이 오늘과 내일이 다르게 성장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일 생명 말씀(2024.4.14) 말씀/ 창1:31, 사 49:1-2 나는 하나님의 명품 이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 ,
<리틀 빅씽>의 저자는 이런 말을 합니다. ”사람은 각 개인이 하나의 상품이다. 그 상품이 어떻게 개발되는가에 따라서 상품성이 달라지고, 가격이 달라진다. 여러분도 자신이 만든 하나의 생산품이다. 스스로를 상품으로 반드는 것은 제조자인 자신의 능력에 달려있다“. 그리고 이런 말을 또 합니다. ”열정은 또 다른 열정을 낳는다, 사랑은 또 다른 사랑을 낳고, 에너지는 더 큰 에너지를 낳는다“. 얼마나 개발하는가에 따라서 계속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냥 두지 말고 내 인생을 최고의 상품이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최고의 상품이 명품인 것처럼 우리도 명품 인생이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명품인가요? 세상에 명품으로 내놓을 수 있나요? 지난 주 독서팀들과 함께 주작산 진달래 트래킹을 다녀왔습니다. 주작산은 진달래 명품 산입니다. 사실 대한민국은 어느 산이든 진달래가 피지 않는 곳은 없습니다. 중국 연변에도 진달래가 유명합니다. 약산에 진달래 즈려밟고 가소서 유명한 시도 있습니다. 중국 선교하고 돌아오신 김효주 선교사님은 주작산 진달래를 보기까지는 연변의 약산 진달래가 최고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주작산 진달래를 보고는 최고가 바뀌었습니다. 주작산이 진달래가 진짜 명품이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꽃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바위산들과 절묘하게 어울러져서 마치 동양화를 연상시키는 모습이 장관이라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좀 늦게 가서 만개한 진달래를 보지 못했지만 어쨌든 주작산 진달래는 최고 명품입니다. 성경도 명품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셨는데 마지막 6일 째에는 특별히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시고 심히 기뻐하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사명도 주시고, 짐승과 달리 최고급 음식으로 채소와 과일을 주시며 짐승들과 구별을 하셨습니다. 이사야는 나는 하나님 앞에 존귀한 자라 하였습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명품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 중에 인간을 명품 존재로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먼저 이런 분명한 인식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알아야할 것은 명품이지만 완성품으로 만들어 보내신 것이 아니라 미완으로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갈고 다듬어야할 금광석같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어느 누구도 처음 테어났을 때 명품 예술가는 없었습니다. 명품 트롯 가수로 테어난 사람도 없고, 명품 축구 선수로 태어난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가 할 줄 아는 것은 우는 것과 젖 빠는 것 뿐 이었습니다. 인류의 명품 프로라고 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대리석같은 존재를 갈고 다듬어서 명품 인생으로 빚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바이올리니스 비발디가 세계 최고의 명품 바이올린 '스트라디바리우스'로 연주를 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 바이올린의 가격은 자그마치 30억 대입니다. 콘서트홀은 대만원을 이루었고, 이윽고 비발디의 연주가 시작되자 청충들은 숨을 죽였습니다. 아름다운 바이올린 선율에 청충들의 찬사가 쏟아졌습니다. "역시 악기가 좋으니까 아름다운 소리가나는구나" "소름이 끼질 정도야!" 비발디는 청중들의 말을 들었습니다. 다른 곳에서 연주를 할 때도 청중들은 똑같이 반응했습니다. 비발디는 멈췄습니다. 그리고는 바이올린을 들어 올려 바닥에 내리쳤습니다. 30억대 바이올린은 산산조각이 나는 것을 본 청중들은 그의 행동에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사실 그 악기는 싸구려 바이올린 이었습니다. 비발디가 바이올린을 부순 것은 참된 음악이란 악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님을 보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안 청중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스트라디바리우스가 명품이 맞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진짜 명품은 그 악기를 연주하는 연주자라는 것입니다. 평범한 사람이 불면 그저 평범한 악기입니다. 프로가 불어야 명품 악기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색소폰도 그렇습니다. 사람이 명품이 되어야 좋은 소리가 나옵니다. 초보자가 부르며 삑사리도 나오고 싸구려악기와 다를바가 없습니다. 지난 주에 동행 동호회에서 와서 합주를 해주시지 않았습니까? 너무 멋있어서 계속 앵콜을 해서 5곡은 연주하였습니다. 그 멋진 소리가 단지 악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6명이 일주일에 세 번은 모여서 밤낮 연습하고 맞춰보고 노력하여서 명품 연주가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사람들이 명품,명품 합니까? 명품이 되면 우선 여기저기서 오라고 합니다. 들려주고 보여주라고 합니다. 잘한다고 돈도 줍니다. 나도 즐겁고 듣는 사람도 즐겁습니다. 명품이 아니면? 안 부릅니다. 사람들이 명품을 선호하는 이유는 아주 좋기 때문입니다. 보기 좋고 듣기 좋고 느낌이 좋기 때문입니다. 옷이나 구두 가방 촉감이 좋고, 질기고, 뷰티가 나고 색이 바래지 않고, 환경 기후 조건에 쉽게 변형되지 않습니다. 오래 입고 써도 질리지 않습니다. 명품은 겉보기만이 아니라 속에서 깊은 맛과 분위가 흘러나옵니다. 악기의 경우는 언제나 아름답고 맑은소리가 납니다.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짝퉁은 깊은 맛이 없고, 거칠고 곧 실증이 납니다. 명품은 소리 없이 강합니다. 사랑도 같은 사랑이 아닙니다. 명품 사랑이 있습니다. 오래 참는 사랑, 자기 목숨까지 내어주는 사랑, 조건 없이 우리의 모든 죄의 빚을 값아주는 사랑,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하신 주님의 사랑이 명품 사랑입니다. 그 명품 사랑에 우리는 감동을 받고 생명을 바칠 것을 각오하는 것입니다. 음식도 명품이 있을까요? 있습니다. 식당도 한번 가서 한번 맛보면 또 가고싶은 곳이 있습니다. 또 먹고 싶은 음식이 있습니다. 먹고 나면 다시 먹고 싶고 다른 사람도 맛보여주고 싶은 음식이 명품입니다. 계속 먹어도 질리지 않고 또 먹고 싶습니다. 그런데 어떤 음식은 한번 먹으면 끝입니다. 식당에 가서 아니다 싶으며 다시 그 식당에 가지 않습니다. 명품이란 것이 이렇습니다. 우리가 자주 대림식당 자주 가는데 질리지 않습니다. 기본이 깔끔합니다. 밥맛이 좋고 반찬이 집 반찬 같기 때문입니다. 들어보니 여러 번 방송에서 취재하려고 했답니다. 거절했답니다. 방송 안 해도 사람들이 오는데 구태어 일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곳이 명품입니다. 음식 중에 김치도 명품 있습니다. 얼마 전에 김형남 사모님이 신학교 다닐 때 김치를 해서 가지고 갔는데 동기들이 너무 맛있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얼마나 맛있길래 했는데 지난 주일 색소폰 모임에 정상국 목사님이 열무김치. 파김치. 오이 김치, 깻잎 골고루 가져왔습니다. 천 권사님이 오셔서 저 먹을 것 남기도 덜어들였습니다. 점심에 먹어보니 정말 맛있었습니다. 저녁에 다시 먹는데 더 맛있었습니다. 국수를 삶에 얄무에 비벼 후루룩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먹을수록 맛있는 것은 처음입니다. ”와우 명불 허전 명품 김치입니다“. 형남 사모님께 문자 메시지를 보내드렸습니다. 다시다 안 넣으셨다고 하는데 맛있고, 깰끔하고, 재료들도 연한 것이 정말 명품이라고 하였습니다. 김치 선교하라는 이야기도 들으셨다고 합니다. 이렇게 무엇이든지 명품이 되면 인기도 좋고 다시 찾고 여러 사람들이 행복합니다. 단연 이런 명품들 중에 최고의 명품은 사람입니다. 다아아몬드 번쩍이는 보석과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해도 사람을 넘어서지는 못합니다. 명품 같은 사람은 자주 만나고 보아도 질리지 않습니다. 보아도 또 보고 싶고, 만나면 기분 좋아지고 행복해집니다. 명품 인생이 되어 보세요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흠모하고 따르고 배우려고 하겠습니까? 손흥민이 명품 축구선수가 되니 온 세상에 칭찬합니다. 광고비도 엄청납니다. 좋은 조건들의 청혼이 들어옵니다. 그런데 이강인이 인성이 좋지 않다고 축구계에서 수없이 비난이 쏟아지며 끌어내리려하여 위기를 맞은 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서울대 법대, 하바드를 나와도 대통령 장관, 목사가 되어도 사람이 명품이 안 되면 다 무너지고 욕만 먹는 표적이 됩니다. 이번에 국민 심판 받으면 욕먹는 윤석열과 한동훈 보세요.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명품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잘 모릅니다. 이미 정해진 것처럼 생각합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내가 명품이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본질적으로는 들어가보면 인간은 누구나 다 하나님의 DNA를 가진 명품 인생입니다. 중요한 어떻게 거친 대리석같은 내 안에서 명품으로 다듬어내는가 하는 것입니다. 명품은 그냥 태어나지 않습니다. 스펙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누군가가 믿음을 가지고 속으로부터 꺼내야 합니다. 똑같은 재료인데도 한 사람은 꺼내지 못하고, 한 사람은 꺼냅니다. 도나텔로는 포기한 것을 미켈란젤로는 꺼냈습니다. 미켈란젤로가 천재라고 하지만 그도 3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이렇게 정성것 손질하고 깍아내고 다듬고 샤퍼로 밀면서 명품이 탄생 되는 것입니다. 일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 전문가가 되기 위한 노력을 언급할 때 관용어처럼 자주 쓰이는 말로 누구나 일만 시간만 투자하면 그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다. 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만 시간은 하루 3시간씩 10년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숨겨진 금강석입니다. 누가 내 안에 명품을 꺼냅니까? 내가 나 자신의 장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선은 내가 근본 하나님 앞에 명품임을 믿어야 하고, 끈질기게 다듬어가야 합니다. 생각, 몸짓, 언어 하나하나 변화 성장 발전해 나가야 합니다. 미소도 명품이 있고, 춤도 명품 춤이 있습니다. 미소도 자주 짓는 사람이 명품 미소 , 춤도 자주 추는 사람이 명품 춤을 주는 것입니다.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는 명품 미소의 힘으로 세계를 바꾸었다고 합니다. 반 인종 차별 활동으로 27년 6개월간 수감 생활을 한 뒤 71세 백발이 되어 1990년에야 석방이 되었지만 그는 미소를 잃지 않았습니다. 주어진 운명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감옥이라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일하고, 운동하고,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93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고, 이듬해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최초로 흑인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대통령이 되어서가 아니라 그 자신을 최고의 명품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만델라는 “강철같은 의지와 필요한 기술만 있다면 세상의 어떤 불행도 행복으로 바꿀 수 있다.”고 말합니다. 환경을 극복하고자 하는 자신의 의지와 태도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명품은 대리석이던 나무토박이던 금광석이던 장인의 의지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명품 되는 것은 나 자신의 의지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아멘!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브라함은 어떤 인생이었습니까? 그는 강 건너 갈대아 우르에서 우상을 숭배하던 아버지 데라의 집에서 그 영향을 받으며 살던 자였습니다. 75세가 되도록 결혼을 했지만 자식이 없었습니다. 세상에 그를 알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는 그냥 쓸모없는 늙은이였습니다. 처음에 그를 보고 명품 인생이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늙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20년이란 세월 동안 그를 믿음의 사람으로 다듬고 키우셨습니다. 중간중간 자식 문제로 힘들어할 때도 있었지만 마침내 믿음 테스트에 합격을 받고 복의 근원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11:‘12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 그는 이렇게 쓸모 없는 인생에서 믿음으로 빚어져 인류역사에 명품 인생이 된 것입니다. 모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그를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자로 부르셨을 때 그는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자인지 입이 뻣뻣하고 둔한 자이니 보낼만한 자를 보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말이 어눌한 자였고, 혈기가 많은 자였습니다. 혈기 때문에 살인도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만들어주신 십계명의 돌판도 화가난다고 집어던졌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40년 양 똥치는 훈련 그리고 40년 광야길의 훈련을 통해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세상에서 가장 온유한 자라는 명품 인생으로 태어났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보십시오. 그들을 어떤자들 이었습니까? 그 중에 문벌 학벌 좋은 사람이 없습니다. 대게는 비린내 나는 어부 출신들이었고, 공인된 세리였고, 열혈당 이었으며 의심도 많은 자들 이었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다들 도망간 비겁자들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겨자씨 잡풀과 같은 존재들이었는데 예수님은 이런 허물 많은 자들을 데리고 다니시면 함께 잡수시고, 함께 주무시고, 말씀으로 가르치시고 삶의 본을 보여주시면서 키우셨습니다. 마침내 끝까지 따른 자들은 예수님의 위대한 제자요 순교자요, 성경의 저술가요, 인류의 스승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비린내 나는 어부들 역시 명품 인생으로 태어났습니다. 일본의 100세 할머니 시바타 도요는 99세에 시집을 냈습니다. 부유한 가정의 외동딸로 자랐지만 형편이 어려워지자 학교를 그만두고 생계에 뛰어들어 배운 것도 없고 가난했던 일생, 결혼에 한 번 실패했고 두 번째 남편과 사별한 후 혼자 사는 여성으로 너무 힘들어서 죽으려고 한 적도 있었습니다. 도요씨도 다른 노인들처럼 “빨리 죽어야 되는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몸이 쇠약해져 취미로 하던 일본무용을 못하게 되자 아마추어 시인인 아들의 권유로 90대에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시를 쓰고 나서부터 부정적인 말들이 싹 사라졌습니다. ‘비밀’이라는 시를 보면 그 후 달라진 그의 마음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 말야,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어.하지만 시를 짓기 시작하고 많은 사람들의 격려를 받아 지금은 우는소리는 하지 않아. 98세라도 사랑은 하는 거야 꿈도 꿔. 구름도 타고 싶은걸 "한 노인의 중얼거림이나 혼잣말 같은 것인데, 이게 시가 되었고, 시를 읽은 많은 사람들에게 힘이 되었습니다. “살아있는 동안 계속 시를 쓰겠다”고 했던 할머니 99세에 출간한 첫 시집 <약해지지마>는 100만부가 팔렸습니다. 일본 열도 전체를 놀라게 했습니다. 100세에도 이렇게 명품 인생이 된 것입니다. 성경 역시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우리가 잘 행하다가 지치지 말지니 낙심하지 아니하면 정하신 때가 되어 거두리라"(갈라디아서6:9). 이사야 49:1-2절 말씀을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섬들아 나를 들으라 원방 백성들아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내가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가 어미 복중에서 나옴으로부터 내 이름을 말씀하셨으며 내 입을 날카로운 칼 같이 만드시고 나를 그 손 그늘에 숨기시며 나로 마광한 살을 만드사 그 전통에 감추시고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나의 종이요 내 영광을 나타낼 이스라엘이라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이사야의 입을 날카로운 칼같이, 그를 마광한 살로 만드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너는 내 영광을 나타낼 이스라엘이라“. 하나님은 이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기 위해서 이사야를 갈고 닦아 명품 인생을 만드셨습니다. 명품이 되어야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낼 수 있습니다. 저도 3류 출신의 삶을 살아온 사람이라 자랑 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 이었습니다. 그러나 날마다 내가 하는 일들 조금씩 갈고 닦고 다듬어서 명품 큐티말씀, 명품 설교, 명품 독서모임, 하나 하나 세계에 유일한 하나뿐인 명품을 만들어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벌써 명품이란 말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저도 그렇고 여러분들도 그렇고 우주교회 명품 인생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싸구려 인생을 살 수도 있고 명품 인생도 살 수 있습니다. 대리석같은 인생으로 태어나도 명품 다비드 인생이 될 수 있고, 금광석으로 태어나도 그냥 돌덩이 같은 존재로 살 수 있습니다. 주님께 맡기는가 맡기지 못하는가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날마다 주 안에서 변화 성장함으로 내가 있는 자리 내 위치에서 모두가 나만의 명품 인생으로 빚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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