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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아름다워(194) - 곁에서 함께 한 날들이 자랑스럽다
-천혜경로원 창립 60주년을 축하하며
오늘( 7월 13일)은 천혜경로원이 설립된 지 60년이 되는 날이다. 전쟁의 상흔, 지독한 가난, 격변의 세월을 견디며 형편이 어려운 어른들의 낙원이요 따뜻한 삶의 보금자리로 우뚝 선 천혜경로원의 모든 분들에게 충심으로 축하와 경의를 표한다. 아침에 '옳은 길 따르라 의의 길 온 세계 만민이 의의 길 이 길 따라서 살 길을 온 세계에 전하세만 백성이 나갈 길 어둔 밤 동 튼다 환한 빛 보아라 저 빛,,,'이라는 찬송을 부르며 설립 이래 옳은 길, 선한 일에 힘쓴 천혜경로원의 창립 60주년 맞이를 감사하였다.
타인으로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으로는 말라'(잠언 27장 2절)는 말씀을 실천하려는 듯 묵묵하면서도 꿋꿋하게 어지러운 사회를 밝히고 맑히는 빛과 소금 노릇을 충실히 감당하고 있는 천혜경로원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그간 여러 매체와 기관을 통해서 자주 소개되고 인정받았다. 그러한 관심과 보살핌가운데는 하늘의 은혜로 세운 집답게 하나님의 도우심도 들어 있다. 이 기회를 통해 1988년에 학동그리스도의 교회에 출석하면서부터 24년간 지켜본 천혜경로원의 발자취를 되새겨본다.
1. 이웃사랑을 온몸으로 실천한 설립자, 강순명 목사
어느 신문은 천혜경로원의 시작을 이렇게 적었다.
'한국 전쟁의 와중에서 강순명(1898~1959) 목사가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의 구걸을 지켜보고 있었다. 골목 첫 집에선 할머니가 부르는 소리에 나왔던 사내가 걸인이 서 있는 것을 보고는 문을 쾅 닫고 돌아서 버렸다. 두 번째 집도, 세 번째 집도 마찬가지였다. 다리를 힘들게 끌며 골목을 다 다녀도 보리쌀 한 줌도 얻지 못한 할머니가 눈물을 훔치는 것을 본 강 목사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자기 집에 데려갔다. 하루하루를 죽으로 연명하며, 방 두 칸에 대식구가 겨우 살아가는 비좁은 집에 식구 하나가 늘었다. 광주천 다리 밑을 지나다가 거적때기를 둘러쓰고 죽어가던 또 다른 할머니를 업고 와 집 안방에 누였다. 그렇게 집에 데려온 사람이 무려 30여 명, 강 목사가 전쟁 중 데려온 걸인 할머니 때문에 강 목사 가족들은 방안에 들어가 앉을 수도 없어 한뎃잠을 자야할 지경이었다. 그것이 천혜경로원의 시작이었다. 1952년 7월이었다.'(2007년 2월 21일자, 한겨레신문)
천혜경로원의 직원 박보람 씨는 금년 2월에 광주대학교 사회복지전문대학원 석사논문으로 강순명 목사의 사회복지활동에 관한 연구를 썼다. 설립 60주년에 맞추어 알맞게 나온 논문이다. 그 요지는 이렇다.
' 강순명은 기독교 야사(野史)의 인물로서 그에 대한 학문적인 연구가 미흡했다. 강순명은 참된 목자이면서 신앙을 바탕으로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에서 해방 후인 1950년대까지 소외되고 어려운 이들을 보살피는 농촌복지, 교육복지, 노인복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벌인 사회복지실천가였다.'
2009년 4월, 강순명 목사의 진면목을 조명한 광주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라운드 테이블이 있었다. 이때 발제한 호남신학대학교 차종순 총장의 강연내용을 간추린다.
‘강순명 목사는 1898년에 광주시 방림동에서 태어나 1918년 최흥종 목사의 딸 최숙이와 결혼하였다. 1921년 일본 동경 정칙중학교에 유학 중 동경대지진을 겪으면서 예수님을 다시 만나는 경험을 하였다. 1929년에 전주의 배은희 목사와 함께 독신전도단을 조직하여 농촌지역에서 오늘의 새마을 운동과 비슷한 부흥운동을 전개하였다. 1934년에 첫 부인 최숙이가 사망하고 그 후 평양신학교에서 같이 공부한 장신애와 재혼하였다. 1952년에 천혜경로원과 학동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워 하늘의 소명을 온몸으로 감당하였다. 강순명 목사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한데 묶어 실천하였는데 그로 인해 자신과 가족의 생계와 안위를 뒤로하고 철저한 헌신의 삶을 살았다. 그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본다.
① 금강산 구룡폭포에서 신병을 비관한 배은희 목사가 폭포에 뛰어들어 자살을 기도하자 자신의 생명을 돌보지 않고 뛰어들어 구출해 냈다
② 농촌의 무교회 지역에서 아무도 돌보지 않고 버려진 결핵환자를 등에 업고 집에 데려와 두 달간 헌신적으로 보살피는 것을 지켜 본 주민들이 감동하여 한꺼번에 몰려들기도 하였다.
③ 형 강태성 장로가 사준 주택을 중앙교회 건축헌금으로 몽땅 바쳐서 모처럼 마련한 가족들의 터전을 잃는 것도 감수하였다. 일찍 부모를 여윈 형제는 어려서 형은 양복기술, 동생은 이발 기술을 익혔다.
④ 길거리에 쓰러진 행려환자, 가족들이 버린 남녀노인, 걸인 등을 가리지 않고 집으로 데리고 와서 씻기고 입히고 먹이고 재우며 복음을 전하고 이들이 죽으면 정중히 장례를 치러주었다.
강순명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준 사랑과 헌신의 삶을 몸소 실천한 분으로 광주의 시민들은 그를 통하여 예수의 모습을 보곤 했다.'
강순명 목사가 어른들의 장지마련을 위해 친지들에게 붓글씨로 써서 판 ‘인간처세좌우명’ 중에는 ‘남에게 사랑을 받으려고 하지마라 다만 사랑하라 그때 그대는 사랑을 받으리라’는 문구가 들어있다. 스스로 그 좌우명을 실천한 강 목사가 천혜경로원을 운영한 기간은 7년여로 길지 않았지만 양로원에서 요양원, 전문요양원으로 그 기능이 바뀌면서도 믿음, 소망, 사랑의 설립정신을 구현하면서 부인 장신애, 아들 강은수, 며느리 박영숙에 의해 설립 후 6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한 줄기 등불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음은 노인복지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오늘의 사회복지분야에 좋은 본보기라 할 것이다.
2. 삶의 보금자리, 오두막에서 궁궐이 되다
1988년, 천혜경로원에 처음 왔을 때 있던 건물들은 모두 다섯 채로 어느 것은 중간에 새로 지어 제법 말쑥한 건물이었으나 설립당시에 지은 예배당과 부속건물은 토담집에 지붕에서 물이 새는 곳이 있을 만큼 낡은 건물들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800평이 넘는 넓은 대지와 연면적 천여 평에 이르는 현대식 건물에는 비단처럼 잘 자란 잔디밭을 비롯하여 갖가지 화분과 수석, 서화들이 조화를 이루어 마치 동화책에 나오는 궁궐처럼 쾌적하고 아늑한 보금자리가 되었다. 박세화 목사님은 창립기념예배에서 천혜경로원은 하나님의 말씀 따라 반석위에 굳건히 세워져 있음을 강조하였다.
작년 이맘 때 최신건물인 천혜관의 준공행사가 있었다. 그때의 기록을 통해 품위와 격조를 갖춘 축복의 터를 살펴보자.
'2011년 7월 14일, 천혜경로원의 노인요양시설증축공사 준공식이 성황리에 열렸다. 이날 행사의 인사말에서 강은수 천혜경로원장은 설립초기에 끼니를 걱정하며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텨온 어려운 시절에도 설립자인 강순명 목사께서는 하나님께 전보를 쳤으니 걱정하지 말라던 옛날을 회상하면서 후원자들의 정성어린 성금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아름다운 보금자리가 들어서게 된 것을 크게 감사하였다.
불가능한 여건에서 쾌적하게 머물 수 있는 반듯한 건물을 짓겠다는 꿈을 실현한 박영숙 사무국장은 경과보고를 통하여 1구좌 당 백만 원을 후원하는 1004운동을 통하여 248명의 개인과 단체로부터 모금한 4억3천3백만 원을 토대로 국비와 시비 10억6천5백만 원을 지원받아 총 14억9천8백만 원의 공사비를 들여 연면적 417평에 2~3인이 거주하는 15개의 방과 프로그램실, 상담실, 도서실, 카페, 황토방, 편백실 등 품위 있는 노인요양시설을 갖추게 되었다고 설명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준공식을 마친 후에 내빈들은 방마다 아름답게 단장한 천혜관을 돌아보며 공들여 지은 새 건물에서 좋은 삶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하였다. 운치 있게 꾸민 카페의 응접세트는 유명호텔에서 쓰던 고급 소파를 물려받아 깨끗하게 수리한 명품이고 계단 올라가는 벽에 걸린 조연임 할머니가 쓴 액자도 유명서예가의 글씨 못지않게 품격이 느껴졌다.
하나님은 우리로 합력하여 선한 일에 힘쓰라고 권면하거니와 박영숙 사무국장은 아산재단에서 복지실천분야의 수상자로 받은 상금을 건축기금으로 쾌척하였고 강은수 원장의 전 가족과 직원들, 경로원에 살고 있는 여러 어른과 많은 후원자들이 천사운동에 참여하였다. 또한 같은 경내에 있는 학동그리스도의 교회 어린이로부터 어른에 이르는 교우들이 동참하였고 우리 가족도 작은 힘을 보탰다. 새 건물 입구에는 성금기탁자들의 이름을 일일이 새긴 목판이 선한 사업의 표상으로 가지런히 걸렸다. 그중에는 유명을 달리한 분들의 이름도 들어있어 옷깃을 여미게 한다.
천사(1004)들의 소망으로 지어진 천혜관이여, '집은 지혜로 말미암아 건축되고 명철로 말미암아 견고히 서며 또 방들은 지식으로 말미암아 각종 귀하고 아름다운 보배로 채우게 되느니라.'(잠언 24장 3-4절)는 말씀 따라 반석 위에 지은 집처럼 견고하고 귀한 보배로 채운 방처럼 아름답게 쓰이라.'
3. 천혜경로원을 가꾸고 일군 일꾼들
이곳에 왔을 때 원장은 강순명 목사의 부인이신 장신애 여사였는데 1995년에 90세를 일기로 타계하셨다. 그의 생전에는 물론 타계소식을 접한 사회 각계에서 그분의 훌륭한 삶을 칭송하는 글을 많이 실었다. 그 중의 하나를 소개한다.
'천혜경로원장 장신애 씨(86세)는 지난 40여 년 동안 갈 곳 없이 방황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지친 육신과 외로운 영혼의 회복을 위해 소임을 행하고 있는 의인이다. 이제는 연로해서 천혜경로원의 실질적인 업무는 아들 강은수 씨가 대를 이었지만 자신의 여생이 남아 있는 한 무의무탁 노인들의 벗으로, 보호자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다짐한다.'(여성신문 199년 9월 13일자)
2년 전에 그분의 15주기를 맞아 다음과 같이 추모하였다.
'8월 21일은 천혜경로원의 원장으로 수십 년을 봉직하신 장신애 원장님이 우리 곁을 떠나신지 15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90세가 되도록 정신이 총명하시고 믿음이 돈독하셨던 장신애 원장님의 모습이 눈에 선한데 벌써 15년이 흘렀군요. 삶의 마지막까지 흐트러짐이 없이 경로원의 발전과 교회의 성장을 위해 크게 애쓰셨던 염원을 이어받아 더 낳은 외형과 내실을 다지고 제 몫을 감당하는 기관들로 발돋움하는 모습을 보시며 크게 기뻐하시리라. 우리 모두 그 유지를 받들고 실천하는데 더욱 진력하기를 다짐하며 하늘나라의 영원한 평화와 복락 누리시기를 기원합니다.'
장신애원장의 동생인 장선애 권사는 북한에서 피란 내려와 장애를 지닌 딸과 단 둘이 살면서 말년을 언니가 있는 천혜경로원에서 함께 지냈다. 그분은 근검절약하여 모은 자신의 전 재산을 천혜경로원에 기증하여 어른들의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귀중한 밑거름이 되게 하였고 천혜경로원은 그 뜻을 기려 천혜관의 황토방을 '장선애 황토방'으로, 편백실은 딸 이름을 붙여 '나미성 편백방'이라 이름 지었다.
천혜경로원은 1998년에 국무총리상을 받은 것을 비롯하여 강은수 원장과 박영숙 사무국장은 굵직한 사회단체로부터 '좋은 한국인상'과 '복지실천상'을 수상하는 등 천혜경로원의 운영자로 사회에 큰 본이 되는 헌신적인 삶을 살고 있다. 수십 년간 한결같이 어른들을 섬기는 여러 직원들과 말없이 힘을 보탠 봉사자, 후원자들의 노고도 값지다. 모두들 합력하여 선한 일에 힘쓴 일꾼들이다.
4. 삶의 향기가 넘치는 아름다운 사연들
이번 창립기념행사는 예배와 함께 칠순에서 백수에 이르는 어른들의 장수 잔치를 곁들였다. 이처럼 천혜경로원은 늘 잔치분위기가 감돈다. MBC 방송은 20년 전 '인간시대'라는 다큐프로그램에서 천혜경로원 식구들의 삶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그 외에도 방송매체와 신문, 잡지들이 수십 차례에 걸쳐 천혜경로원의 아름다운 삶의 모습들을 소개하고 보도하였다.
천혜경로원의 식단은 전국의 어느 복지시설보다 다채롭고 실속 있기로 정평이 나 있다. 때에 맞춰 적절한 영양식을 공급하는 것은 물론 과일과 간식도 늘 풍성하다. 이번 창립기념일에도 계절의 진미인 우럭 탕을 비롯하여 맛깔스런 음식들을 깔끔하게 준비하였다. 예배에 앞서 봉사자들이 정성으로 마련한 차 맛도 좋았고.
천혜경로원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인간답게 살아야 하는 것을 실천하는 일에도 늘 앞장을 선다. 매월 경로원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이야기로 적은 경로원 이야기는 벌써 20년 넘게 지속되어 그간 두 번이나 책으로 엮어 출판하였다. 함께 사는 어른들 한 분 한 분에게 따뜻한 시선과 아름다운 마음을 기울여 담아내는 이야기들은 찌든 세파에 메마른 가슴을 한 줄기 바람처럼 시원하게 해준다.
한 때는 일할 수 있는 어른들의 일거리를 마련하여 소일도 하면서 용돈을 마련하는 수익프로그램에 열중하기도 하였고 틈나는 대로 윷놀이, 보물찾기를 비롯한 각종놀이와 여흥, 국내외의 명소를 탐방하는 여행프로그램을 다채롭게 운영하였다. 그중에는 금강산, 일본, 중국도 들어 있고 제주도도 여러 차례 다녀왔다. 여행할 때마다 적은 알찬 기록이 책 한권은 넉넉히 되리라. 지금도 어른들의 건강이 받쳐주면 어디든지 떠나련만 몸이 따라주지 않아 예전처럼 자주 못가는 것이 아쉽다.
같은 경내에 있는 학동그리스도의 교회와 연합하여 어려운 이웃을 돕고 봉사하는 일에도 빠지지 않는다. 해마다 학동 관내 기초생활수급자들에게 긴요한 생활용품을 선물하기도 하고 재난과 이웃돕기에도 빠지지 않는다. 함께 사는 어른들이 도움을 받기만 할 것이 아니라 도움을 주는 일에도 자부심을 갖도록 배려하는 마음으로.
생일을 맞이하는 어른들에게 일일이 생일파티를 열어주고 먹고 싶은 음식을 특별메뉴로 해드리는 등 각자의 욕구와 소망을 적절히 경청하고 들어주는 것도 좋은 일이라 여겨진다. 요즘은 봉사와 복지가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고 있어서 사회복지시설도 이에 큰 몫을 감당한다. 각종 교육프로그램의 실습과 사회봉사의 현장역할도 충실하게 수행한다.
2002 월드컵 때는 얼굴에 페인팅을 한 어른들과 함께 응원하며 환호하였고 부산의 신망애요양원과 자매결연을 맺어 영호남의 우의를 증진하고 상호 방문하는 등 교류를 활성화하였으며 경내의 교회를 통하여 꾸준한 신앙생활을 유도하는 등 내실 있는 삶의 모습을 구현하고 실천하는데 늘 앞장서고 있다. 이 모든 내용과 사연을 곁에서 지켜보며 자랑스럽고 행복하다.
해마다 10여명의 어른들이 세상을 떠난다. 처음 왔던 때부터 계신 이는 이제 서너 분밖에 없다. 그간 얼추 200여 분이 이곳을 거쳐 삶을 마감하였다. 설립 때부터 헤아리면 그 몇 배가 되리라. 그때마다 강은수 원장, 박영숙 사무국장과 직원들이 마지막 가는 길을 정성으로 챙기며 씻겨주고 옷 갈아 입혀 드렸다. 또한 교회에서는 간절한 기도와 정중한 예배로 이분들의 하늘 길을 아름답게 전송하였다.
가신 분들 중 기억에 남는 이들이 많다. 마지막 외롭게 가는 길에 찬송을 부르며 임종을 지킨 이도 여럿이고 한국전쟁 때 빨치산으로 가족들을 잃고 오랜 수감생활 끝에 갈 곳이 없어 이곳에서 말년을 보낸 할아버지가 젊어서 책 한 권 잘못 읽어 일생을 그르쳤다고 회한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한 분, 한 분의 스토리가 경로원 이야기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모두 소중한 생명들, 그들을 따뜻하게 보살피는 손길 하나하나가 감사하다.
기념행사에서 살핀 지난 60년의 여러 모습들에서 열악한 여건의 60년 세월, 험난한 세파를 견디며 오늘에 이른 과정이 경이롭다. 의연한 가운데 꾸준히 보람과 감동을 가꾸어온 천혜경로원의 지난날을 거울삼아 앞날에 더 큰 발전과 번성 있으라. 묵묵히 일하는 40여명의 임직원 여러분과 온 천혜가족들에게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이 함께하기를 기원한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우리곁에서 늘 힘이되어주시고 함께 해주셔서 든든합니다.
한눈에 볼 수 있는 귀한 글...감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