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여행을 준비하면서 맛집을 점검하다보니 참으로 안타깝게도, 적지 않은 기억 속의 맛집이 사라졌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안동 풍산면의 산수가든이 그러하고, 당북동의 이웃집식당이 그랬습니다. ‘02년 어머니 칠순 잔치를 마치고 바로 2박3일의 가족여행을 시작한 게 벌써 이십년이 넘었습니다. ‘18년 안동호반자연휴양림을 처음 찾은 이후 매년 여기를 아지트로 삼아 3년을 내리 여기에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21년, ‘22년은 쉬었고 올해 어렵게, 엄청난 경쟁을 뚫고 예약에 성공했습니다. 예전엔 명소, 맛집을 찾아 500~700km를 다니는 일정을 잡았지만 이젠 휴양 개념으로 쉬면서, 가까운 명소만 돌아보는 일정을 잡습니다. 하지만 맛집은 놓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예전에 다녔던 맛집, 새로 뜨는 식당을 찾지만, 사실 이미 검증된 맛집을 선호하는 게 우리 집 스타일입니다. 그런데 꼭 맛보고 싶었던 산수가든, 이웃집식당이 참으로 아쉽게도 문을 닫았던 겁니다. 요즘 인터넷이 워낙 발달해서, 새로운 맛집을 찾는 데도, 기존의 맛집을 확인하는 데도 큰 역할을 합니다. 지난 5월, 신세동벽화마을을 찾으면서 당북동의 이웃집식당을 검색했을 때, ’21년 10월 이후의 글이 없기에 긴가민가했는데 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다른 가게가 영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산수가든도 마찬가집니다. ‘21년 8월 이후의 인터넷 소개글이 없더군요, 전화해보니 카페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두 곳의 인터넷 정보가 끊긴 시점을 보면, 팬데믹 장기화의 영향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어떤 정보도 찾을 순 없었습니다. 이번 가족여행에서 이곳의 음식을 맛볼 수 없다는 아쉬움보다는, 이런 맛집이 문을 닫았다는 사실 자체가 안타까운 마음이 컸습니다.
제가 구미에 살기 시작한 지도 벌써 37년이 지났습니다. 제2의 고향이란 말은 결코 틀린 말이 아니지요, 참으로 많은 식당, 술집을 거쳐 갔습니다만, 입사 초기의 단골밥집이었던 시골집, 회식장소였던 고석정, 시내의, 이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횟집, 나이트 한국관, 금오산맥 등등 중, 지금도 영업을 하는 곳은 한 군데도 없습니다. 영원한 건 없다지만, 단골이 없어지는 게 제겐 고통이라 말해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아직도 신평 돼지식당골목 등 몇 곳이 남아있긴 하지만, 수십 년 인연을 이어온 곳 대부분은 이미 추억의 장으로 넘어가 버린 지 오래입니다. 그래서, 3년의 잃어버린 세월 동안 자주 찾지 못했건 단골식당을 자주 찾으려하지만, 이젠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직장 퇴직 후 고향으로 내려가고, 자식 따라 서울로, 타지로 가버리고... 남은 이는 토박이 친구 몇에, 사회 친구 몇입니다. 그래도 남은 단골 몇 지키기 위해-이마저 사라지면 낙이 없을 것 같아서-지인들과의 만남을 코로나 이전만큼 활성화해야겠다 싶습니다. 연락 오면 만나는 게 주였는데, 이젠 먼저 약속을 잡고, 제 단골식당에서 보도록 해야겠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제 구미 단골식당은 꼭 지키고 싶습니다. 친구를 지키고 싶은 마음은 당연히 더 크지만요... 단골식당도 오랜 친구와 다르지 않지만, 그윽한 맛을 내는 친구들을 추억이 녹아있는 단골식당에서 만난다면 최상이겠지요.
자연은 언제나 그대로 있어 좋습니다. 여름 강변은 더 좋습니다. 기꺼이 더위를 이기려는 자, 피하려는 자가 공존하는 공간이 되어 줍니다.
https://blog.naver.com/bornfreelee/223136212962
그윽한 맛을 내는 친구(모셔온 글)========
잊고 있다가 문득 생각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잊고 살다가 문득 내 삶 속으로 들어오는 정겨운 이들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있는 것조차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지만
힘겨운 날에 외로운 날에 힘이 되어주는 이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만남은 그저 일회용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두고두고 기억되고
오래도록 유지되는 관계라서 아름답습니다.
오래 묵어서 그윽한 냄새와 깊은 맛을 보여주는
된장처럼 창고에서 오랫동안 먼지를 뒤집어 쓴
세월이 오랜 만큼 더 진하고 아름다운 맛을 낸다는
포도주처럼 오랜 세월 함께 하며 그윽한 정이 들은 사람들이 아름답습니다.
그러고 보면 잊혀져간 친구들
소리 없이 떠나간 친구들도 많습니다.
손을 잡으면 누구나 정이 흐르고 가슴을 헤집어
보여주고 싶은 친구들도 많은데 어찌하다 보면
여러 가지 이유로 떠나가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보낸 것도 아닌데 공간적인 거리가 멀어진 것도 아닌데
모두들 면목이 없어서 떠난 이도 있고 빚이 있어서
찾지 못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좀 더 솔직하고 좀 더 진실을 보여준다면 면목이
문제되지도 않으며 빚이 문제되지도 않을 것이지만
우리는 왜 가면을 쓰고 사는지 모릅니다.
있는 듯 없는 듯 평소엔 느끼지 못하는 가족들
너무 가까워서 특별하게 생각되지 않는 사람들처럼
지금 주위에 남아있는 사람들 오랜 시간 함께 한
사람들이 누구보다도 진실한 친구들입니다.
너무 편해서 잊고 있는 이들을 더 소중히 여겨야겠습니다.
그리고 더 오랜 시간이 흐를수록 깊은 맛을 내며
오랜 세월 우려내도 그 맛이 변하지 않는 듬직한
친구들을 소중히 여겨야겠습니다.
친구 잊혀져간 친구들에게 이 글을 바치고 싶어집니다.
----- 최복현 <아침을 여는 참 좋은 느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