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바람이 푸르고 싱그러운 건 보리밭을 지나왔기 때문일 게다. 지저귀는 종다리 소리로 보리밭을 핥고 온 바람의 푸른 혀를 보면 알 수 있다. 그 바람의 말씀으로 세상 연초록 새순들이 더욱 짙어갈 무렵..
바람의 말씀으로 세상 연초록 새순들이 더욱 짙어갈 무렵,
푸른빛을 바람에게 내어준 보리밭은 서서히 황금빛으로 바뀌며 6월을 맞이한다.
경북 포항시 대보면 구만리 일대가 요즘 보리밭을 빗질하는 바람과 종다리 소리로 소란하다. 해맞이 명소가 된 호미곶 주변이다. 10만여평
보리밭이 파도치는 초록 바다를 이루고 있다.
바람이 불어온 곳에는 높디 높은 보릿고개가 있었다. 어느 시인이 읊기를 그 고개는 “안 넘을 수 없는 운명의 해발 구천 미터”였다. 쌀은
떨어지고 보리를 수확하기엔 이른 시기.
칡뿌리와 나무껍질로 연명해야 했던 그 ‘보릿고개 넘기’는 1960년대까지도 이어져 온, 해마다 되풀이되는 연례행사였다. 이맘때가 바로 그
보릿고개 무렵이다. 채 익기도 전에 보릿대째 구워먹고, 삶아먹었던 푸른 보리가 이젠 볼거리가 되어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전국에 드넓은 보리밭들이 있지만 대보면 보리밭은 바다와 어우러진 경치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색다르다. 바닷가쪽으로 들어선 일부 전봇대와
전깃줄이 경관을 오염시키고 있지만, 자리를 잘 잡으면 푸른 바다가 배경에 깔린 아름다운 보리밭 지평선이 펼쳐진다.
바닷가쪽으로 넘어간 푸른 밭들도 다 보리밭이다. 특히 대보면 사무소 앞 길 건너 들판이 장관을 이루는데, 보리밭 한가운데 껑충하니 솟은
너댓 그루 소나무가 경치를 돋보이게 만든다. 모두 나이가 100년을 넘었다고 한다.
그중 한 그루는 몇년 전 태풍에 부러져 줄기만 남아 있다. 구룡포쪽에서 갈 때 면사무소를 50m쯤 지나서 왼쪽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
들어가면 소나무들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사진작가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다.
면사무소 못 미쳐 왼쪽으로 차가 들어갈 만한 시멘트길이 있다. 양쪽으로 펼쳐진 보리밭을 관통해 들어가는 길이다. 400m쯤 가면 다시
큰길과 만난다. 보리밭 한가운데서 가만히 들어보면 세상 사는 얘깃거리란 게 다 종다리들의 몫임을 알 수 있다.
바람이 거센 날이면 보리밭은 색깔을 바꾸며 눈부시게 일렁이는 바다가 된다. 이 청보리밭이 누런빛을 띠기 시작하는 때는 5월 중순
이후부터다. 6월 초순이면 황금 들녘으로 바뀐다. 6월10일을 앞뒤로 콤바인을 이용한 수확·탈곡이 이뤄지는데, 수확이 끝난 보리밭은 다시
콩밭이 되어 가을까지 푸르른 바람을 맞아들인다.
보리 상식. 10월 중순부터 11월 초에 걸쳐 파종하고 이듬해 망종(올해는 6월6일) 무렵부터 수확한다. 다 익었을 때 낱알에 껍질이
붙어 있는 겉보리와 껍질이 떨어져나가는 쌀보리로 나뉜다. 요즘 재배되는 보리는 대부분 겉보리다. 식량말고도 엿기름 등으로 활용돼 수맷값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대보면 사무소 (054)284-9301. 포항시 농업기술센터 (054)3621.
포항/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가는길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경부고속도로 경산나들목이나 영천나들목을 나와 영천 거쳐 28번 국도 타고 포항까지 간 뒤 31번 국도 따라
우회전해 직진, 구룡포읍 다 가서 925번 지방도로 좌회전해 구룡포읍 지나 대보면 호미곶까지 간다.
중앙고속도로를 탈 경우 서안동나들목을 나와 안동~영덕 거쳐 7번 국도 따라 내려가 포항으로 가도 된다. 포항에선 호미곶까지 10여분
간격으로 시내버스가 운행된다.
먹을거리 포항 죽도시장이나 구룡포 등 바닷가 도로변에 물회·복탕·대게 등을 내는 횟집들이 많다. 구룡포읍 구룡포주차장옆
장미식당(054-276-3005)은 30년 동안 복탕·대게·물회 등을 내온 집이다. 친절하고 반찬도 깔끔한 편이다. 물회 7000원,
활어물회는 1만원.
묵을곳 구룡포항에서 대보쪽으로 가다 있는 이어도모텔(054-284-4555), 해송모텔(054-284-8245) 등이 바다 전망이 좋다.
평일 3만~4만원, 일요일·휴일 전날 4만~6만원.
주변 볼거리 해맞이 장소로 이름난 호미곶에 호미곶등대와 등대박물관, 해양수산관, 바다 가운데 우뚝선 조각품 ‘상생의 손’ 등이 볼거리다.
925번 지방도를 따라 구룡반도를 한바퀴 도는 드라이브도 즐길 만하다. 임곡리 휴게소의 민속전시관은 폐쇄됐다. 포항시청 관광진흥계
(054)245-60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