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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05 - 너의 의미
#1. 골목 안쪽 / 밤
상수파의 사내들이 영신을 포위하듯 걷는다.
바로 옆은 요요. 걸으며 버릇처럼 손에 들린 요요를 감았다 풀었다.
영신이 뒤를 돌아본다. 저멀리 땅에 엎어져 있는 정후.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이 많이 다친 듯하다.
자신의 심장 박동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영신이 머뭇거리자 누군가 영신의 등을 퍽 밀친다. 그 바람에 심장 박동이 더욱 거칠어진다.
영신이 가슴을 움켜잡는다. 호흡 곤란이 시작되면서 기침을 한다.
색색거리는 자신의 거친 호흡소리가 심장박동 소리와 섞이면서 통증이 심해진다.
가슴을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누군가 또 영신의 뒤를 퍽 민다. 비틀거리며 몇 걸음 더 나간다.
멈추려하자 또 누가 민다. 억지로 걷고 걷는데 다리에 힘이 점점 빠진다.
가슴을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이젠 토할 것 같다.
결국 그 자리에 무너져 내리며 주저앉는다.
옆을 걷던 요요가 어이없다는 듯 본다.
요요 : 이 여자 이거 진짜..
하며 영신의 옷깃을 잡아채 난폭하게 끌어올린다.
영신의 시각으로 그런 요요의 모습이 초점이 흐려지며 심장이 터질 듯 뛴다.
영신, 그런 요요를 뿌리치려고 손을 휘두르는데,
문득 요요의 손이 풀린다. 고개를 드는데. 공격을 받아 휘청이며 시야에서 사라지는 요요.
그리고 영신의 머리위로 날아 내리며 덮어버리는 점퍼. 암흑.
그리고 들리는 소리. 때리고 맞고 비명소리. 쓰러지는 소리.
자신의 심장소리. 자신의 거친 호흡소리. 와작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린다.
떨리는 손으로 머리를 덮고 있는 점퍼의 자락을 조금 벗겨 본다.
조금씩 드러나는 앞의 상황. 영신의 시선으로 보이는 것.
가로등 불빛에 실루엣으로 드러나는 정후. 또 하나의 사내를 제압해 넘긴다.
영신의 앞 쪽으로 자리를 잡고 선 정후의 모습. 색이 짙은 안경 위로 후드를 눌러쓴 모습.
영신이 보는 시각으로 사진 속의 힐러의 모습과 흡사하다.
(영신의 시각일 때는 거친 심장소리와 호흡소리)
영신, 순간 치밀어 오르는 기침에 허리를 꺾는다.
// 정후가 영신을 돌아본다.
영신이 가슴을 움켜쥔 채 숨을 제대로 못 쉬고 있다. 머리를 덮어주었던 옷이 반쯤 흘러내리고 있다.
영신의 뒤에는 사내 둘.
정후, 마음이 조급해지며 공격해오는 사내를 또 하나 넘어뜨리는데.
찰칵 소리와 함께 플래시가 터진다.
돌아보면 요요가 정후를 휴대폰으로 찍고 있다. 찰칵 또 한 방의 플래시가 터진다.
요요 : 일마 이거 느낌이 상당히 친근하네. 너.. 혹시 우리 대표님이 무쟈게 보고 싶어하는 그 놈 아니냐?
순간, 정후가 발로 차 올린 벽돌조각(?)을 손으로 잡아채는가 싶더니 냅다 던진다.
요요가 미처 방어하기도 전에 벽돌 조각이 요요가 들고 있던 휴대폰을 맞춘다.
박살이 나며 요요의 손에서 떨어지는 휴대폰.
요요가 벌컥 성이 나는데.
정후는 뒤돌더니 성큼성큼 달려서 영신을 지나가며 영신의 머리 위로 다시 옷을 덮는다.
(자신을 보지 못하게. 폭력 현장을 보지 못하게)
정후가 영신의 뒤 쪽에 있던 둘 이상의 사내들(영신을 노리던)을 공격해 들어간다.
요요가 슬슬 정후에게 다가온다. 그 손에서 현란하게 놀려지고 있는 요요.
정후가 마악 사내 하나에게 반격하려는데, 요요의 손에서 뻗어나가는 요요. 정후의 팔목을 휘감더니 잡아챈다.
정후가 순간, 휘청하며 몸의 중심을 잃는다.
한 손목을 요요 줄에 잡힌 채. 간신이 사내들의 다음 공격을 받아 넘긴다.
손에 감긴 요요를 풀려고 하는데. 어느 틈에 다가온 요요가 공격해 들어온다.
정후가 쉽지 않게 그 공격을 받아 넘기며 요요줄을 겨우 풀었다.
그러나 다시 날아드는 요요줄이 정후의 발목을 감아버린다.
정후. 자칫 넘어질 뻔 했다.
요요가 줄을 당긴다. 그런데, 정후. 피하지 않고 오히려 요요를 향해 달려간다.
그러더니 요요의 허벅지를 발로 차서 짚고 요요의 머리 위로 날아올라 등 뒤로 넘어가며 요요의 등을 차버린다.
그러면서 발목의 줄도 푼다.
요요, 땅을 한 바퀴 굴러 겨우 중심을 잡고 일어선다.
이제 사내들 중에 몇은 땅에서 제대로 일어나지 못하고 있고, 나머지는 정후를 둘러싸고 있다.
일제히 공격해 들어오려는 순간인데. 들리는 경찰차의 사이렌소리. 가까워진다.
다른 사내들이 요요를 쳐다보며 지시를 기다린다.
요요가 에잇.. 정후를 본다. 정후는 영신의 바로 뒤에 자리 잡으며 그들을 보고 있다.
경찰이 오기 전에 제압하기는 쉽지 않겠다.
요요 : 어이 동업자. 또 보자.
하며 영신과 정후를 번갈아보는 요요. 기분 나쁘게 미소 짓는다.
요요의 신호에 따라 사내들이 순식간에 자리를 피한다. 쓰러져 있던 동료들을 부축하거나 메어 들어서.
정후가 영신을 내려다본다.
영신이 덮어진 옷자락 아래로 손을 뻗어 자기 가방의 앞주머니를 더듬고 있다.
정후가 기웃해서 보니. 영신이 작은 플라스틱 약병을 꺼낸다.
그러나 영신, 한 손으로는 자기 가슴을 움켜잡고 있어서 한손으로 약병을 열기가 쉽지 않다.
그런 영신의 뒤에서 뻗어 나오는 정후의 손. 영신의 손에서 약병을 받아간다.
영신의 귓가에 대고 목소리를 들키지 않기 위한 낮은 소리.
정후 : 몇 알.
영신 : (숨이 가빠 기침 사이로 간신히 대답하는) 두.. 두알.
정후가 영신을 뒤에서 감싼 자세로 두 손을 뻗어 약 두 알을 꺼내 영신의 손에 쥐어준다.
영신이 상체를 일으키며 그 약을 입에 넣는가 싶더니 휙 뒤로 몸을 돌린다.
영신의 머리 위에서 점퍼가 스르르 흘러내린다.
영신의 몸이 거의 뒤로 돌았는데. 동시에. 정후. 자신의 웃옷 자락을 벌려 영신을 감싸며 가슴에 당겨 안는다.
영신이 벗어나려 잠깐 꿈틀대지만 정후는 한 팔로 완강하게 영신을 감싸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 정후의 가슴에 고개를 묻어 안긴 영신. 멈춘다. 스스로의 심장소리와 거친 숨소리만 가득하다.
// 영신을 한 팔로 안은 정후. 뒤늦게 당황하고 있다.
다른 손에 잡혀있던 약병을 내려놓는다. 그러나 그 손은 영신을 감싸 안지 못하고 허공에서 멈춘다.
// 정후의 가슴에 안긴 영신의 심장소리가 차츰 잦아든다. 가쁘던 숨소리도 점차 가라앉는다.
그리고 그제야 들리기 시작하는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가까워진다.
순간, 자신을 감쌌던 옷자락이 스르르 풀린다.
영신이 고개를 들어 보는데. 이미 앞에는 아무도 없다.
순간 쏟아져 들어오는 빛. 돌아본다.
골목을 들어서고 있는 경찰차. 그 헤드라이트 불빛. 번쩍이는 경광등.
영신이 다시 반대쪽을 본다. 거기 담?을 빠르게 기어오르는 그림자를 발견한다.
아.. 했을 때 이미 그 그림자(정후)는 담을 넘어 모습을 감춘다.
멈춘 경찰차에서 제복 경찰이 둘 내려서 다가온다.
경찰 : 어이 아가씨. 괜찮아요? 신고하신 분 맞아요?
영신이 비틀거리며 일어서자 경찰 중에 하나가 와서 부축을 한다.
다른 경찰이 주위를 둘러본다.
영신이 힐러의 뒷모습을 쫓다가 순간 생각났다.
영신 : 신고한 애는요?
경찰 : 예?
영신 : 박봉수. 살아 있어요?
#2. 골목 어귀
정후가 처음에 맞아 쓰러졌던 장소. 영신이 급히 오며 찾으며..
영신 : 박봉수. 봉숙아.
경찰 : (뒤를 따르며) 폭행당한 사람이 또 있는 겁니까? 경찰서 가서 신고하 실래요? 아님 더 찾아봐요?
영신 : (급히 휴대폰 단축키를 눌러...) 아부지? 봉숙이 거기 갔어? 애가 없어졌네. 근데 내가 걔 전화번호가 없어.
경찰 : 저기요. 아가씨.
영신 : 연희씨는 별 일 없지? 아부지. 연희씨 옆에 꼭 붙어있어. 문 잠그고 아무도 들이지 말고. 내가 금방 갈게.
근데 봉숙이 얜 어디 간 거야.
경찰 : 폭력배들이 있던 거 맞아요? 아 말을 해줘야 알지.
영신 : 잠깐만요. 내 후배가 없어졌거든요?
경찰 : 그럼 폭력이 아니고 납치신고에요?
영신이 아직 완전히 통증이 가시지 않아 여전히 가슴을 움켜쥔 채, 주위를 둘러보며 찾는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영신과 경찰이 있는 바로 옆 집 지붕 위에 정후(안경을 벗은)가 영신을 내려다보고 있다.
영신의 옆에는 경찰이 서 있고. 저만치에서 경찰차가 다가온다.
아. 내가 무슨 짓을 해버린 거지. 짜증이 확 올라온다.
돌아서는데 휴대폰이 울린다. 꺼내서 화면을 보면 [똘마니]
#3. 문식의 집 / 밤
담 위에 웅크려 앉은 그림자. 대용이다. 휴대폰을 하는 중이다.
대용 : 그 기자씨. 한 시간 전에 여기 도착해서 어떤 여자랑 둘이 저녁밥 쳐 묵고 지금 설거지 중. 아 씨 배고파.
근데 여기가 지 집인가. 기자하면 돈을 엄청 버나봐 형. 집이 완전... (하더니 휘파람..)
그 대용이 바라보고 있는 문식의 집. 그 중 불빛이 환히 비치는 창문.
#4. 명희의 부엌
문호가 설거지를 하고 있다. (낮은 싱크대 키에 맞춰)
문호가 슬쩍 명희 쪽을 본다.
휠체어를 탄 명희가 식탁을 정리하고 있는데 큰 접시에 남은 샐러드며 메인 요리를 유리용기에 넣고 있다.
문호 : 여전하네. 음식을 남게 만드는 거.
명희 : (웃는) 내가 손이 좀 크지. 오늘은 니 형이 안 와서 더 남아버렸네.
문호 : (말할까 잠깐 망설이다가) 음식.. 언제나 한 사람 분 더 만드는 거지?
명희 : (손이 멈췄다가) 그냥 넘어가. 모른척해.
문호 : 얘기..해도 되나? 그 애.. (잇지 못하는데)
명희 : ... 지안이 얘기?
문호 : (설거지를 멈췄다. 돌아서 본다) 해도 돼?
명희 : (요리가 담긴 용기를 무릎에 놓고 휠체어를 밀어 냉장고로 이동)
문호 : 하지 마?
명희 : (냉장고 문을 열고 정리)
문호 : (불안하지만 애써 가벼운 어조로) 지안이가 살았다면 지금 몇 살쯤 되었을까.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그런 얘기.. 해도 돼?
문호 쪽에서 명희는 열려진 냉장고 문 뒤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문호 : (걱정이 되며) 누나..
명희소리 : 다음 생일이 오면 스물여덟 살. 그리고.. 모르겠어. 그 애가 무슨 일 을 하고 있을지.. 어떤 음식을 좋아할지. 모르지. 난.
문호 : (아무렇지 않은 척 얘기하려 애쓰며) 아마 살아 있다면 지안이도 누나나 길한이 형처럼 기자가 되지 않았을까.
보통 그러잖아. 애들은 부모 따라..
순간 명희가 냉장고 문을 쾅 닫는 바람에 말이 끊긴다.
명희가 문호를 돌아본다.
명희 : (웃어 보인다) 죽었잖아. 지안이.
문호 : 내 말은 그냥 만약에...
명희 : 그 애가 살아있는데 내가 어떻게 몰라. 그럴 수 없잖아. (말소리가 떨리기 시작한다)
문호 : (불안해진다. 명희에게 다가온다) 알았어.
명희 : 딸이 살았는데 엄마가 모를 수가 없잖아.
문호 : 그만해. (명희의 어깨에 손을 얹는데)
명희 : (뿌리치며) 살아있는 딸을 버려놓고 내가 혼자 산거면 안 되잖아. 그럼 그 애가 엄마 없이 일년..십년..이십년..
이십일년.. 이십이년.. (간질 발작 직전의 증세.. 메스꺼움이 시작되고 있다) 그런데 나 혼자 잘 먹고 잘 자고.. 잘 웃고..
이렇게.. (억지로 웃는데 입가의 경련..)
문호 : (더럭 겁이 나서 명희 앞에 주저앉아 손을 부여잡으며) 누나. 내가 잘못했어. 그만. 생각하지 마. 누나. 제발...
순간. 명희의 몸이 꺾인다. 간질이 시작되었다.
그 때 문이 열리며 들어서는 문식. (퇴근길. 신사복) 그들을 봤다.
문식 : 명희야. (한달음에 달려와 문호를 거칠게 밀어젖히며) 왜 이래. 무슨 일이야. 명희야. (상태를 살핀다)
문호 : 형 내가 말을 잘못 꺼냈어. 난 그냥..
문식 : (그대로 문호의 멱살을 잡아채었다가 벌컥 밀며) 나가 있어.
문호. 얼른 문 쪽으로 달려가다가 멈칫 서서 돌아본다.
문식이 빠르게 옆의 서랍을 잡아채어 거기 준비되어있던 설압자(미리 붕대를 감아놓은,
서랍 안에는 그렇게 준비된 것이 한 상자 가득)를 꺼내 명희를 안고 익숙하게 설압자를 입에 물린다.
그러다 문호를 돌아본다. 그 성난 눈빛.
문호, 외면하고 나가며 문을 닫는다. 닫힌 문.
(명희의 병력과 증상에 대해선 자료 별첨)
#5. 문식의 집 밖 길 / 밤
대용이 건들거리며 걸어오고 있다. 언제 사왔는지 슈퍼용 삼각 김밥을 볼이 터지게 입에 넣으며 또 하나의 껍질을 깐다.
#6. 문식의 집 정원 / 밤
대용이 여전히 볼 터지게 씹으며 지형지물을 이용해 담 위로 뛰어오른다.
막 넘어가려다 어이쿠. 담 위에 납작 엎드린다. 그리고 살그머니 고개를 들어 보는 곳.
거기 정원 한 곳에 문호. 정원을 서성이며 생각에 잠겨 있다.
// 문호가 문득 걸음을 멈춘다. 들리는 소리.
영신소리 : 그니까.. 내가 내 기사도 취재원도 지키지 못할 거라고요? (따진다기보다는 이해가 안가는 듯)
#7. 회상 까페 내부
영신이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테이블 건너편의 문호를 보고 있다.
영신 : .. 그니까.. 그쪽.... 선배라고 불러도 되요?
문호 : (보기만.. 이렇게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영신 : 안되는구나. 그니까.. 김문호기자..님...한테 내 취재원을 넘기라고요. .... 왜요?
문호 : 그 취재원. 지금 좀 위험할텐데. 설마 위험한지 아닌지 그것도 감이 안 오나? 지금.. 상황 분석이 잘 안 되고 있지?
자기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앞으로 이 판이 어떻게 돌아갈 건지.. 전혀 모르겠지?
영신. 도대체 이해가 안가는 얼굴로. 버릇처럼 점점 말이 빨라지며..
영신 : 제가.. 기자님 팬이거든요. 거의.. 광빠거든요. 기자님이 성우재단 불법자금 파헤쳐서 거기 이사장 쫓아낸 거.
버지니아 조세피난처 터뜨린 거. BM 인터내셔널 주가조작 끝까지 파내서 국무총리 사표 쓰게 만든 거.
대학교 때부터 다 봤고요. 어떤 건 기자님이 했던 리포트대사까지 내가 다 외우거든요. 근데 그거 다.. (심호흡을 하더니)
본인이 직접 취재한 거 맞습니까? 어디 저처럼 얼빵한 기자 찾아가서 니 기사, 니 취재원 내놔. 그랬던 거 아니고요?
문호 : (미소가 지어지는 걸 얼른 감춘다)
영신 : 그래도 그 어디냐. 이라크. 거기 전쟁터는 직접 가셨잖아요.
거기 소녀 가족 학살당한 현장, 직접 카메라 들고 가서 찍었잖아요. 내가 그거 보고 너무 감동해서..
문호 : 채영신.
영신 : ..예.
문호 : 이번에 니가 낸 기사. 뭘 몰라서 얼결에 낸 건지. 나름대로 용기를 내 보겠다고 사고 친 건지 모르겠는데.
(품에서 명함을 내준다) 감당할 수 없게 되면 찾아와.
영신 : (두 손으로 받아든 명함을 내려다보다) 사람이 가끔 잠이 안 오면요. 잡생각을 하잖아요.
제가요.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상상했었거든요. 이렇게.. 김문호 기자한테서 직접 명함 받는 거.. 내 로망이었는데..
원망스럽게 문호를 쳐다본다.
문호, 그런 영신을 본다.
문호소리 : 딱 예전에 누나를 보는 거 같았어. 똑바로 쳐다보는 그 눈이나.. 그 말투나..
#8. 문식의 집 정원 / 밤
서 있는 문호의 뒤에서 들리는 문 열리는 소리.
돌아보았더니 문식이 현관문을 열어 잡은 채 문호를 보고 있다.
문호, 그 쪽으로 걸어간다.
문호 : 누나는. 괜찮아?
문식 : (싸늘하다) 들어가서 얘기하자.
문호가 문식에게 다가서고 지나쳐 들어가며 겹치는 둘의 모습이 카메라 앵글에 잡히면서
찰칵.. 사진이 찍힌다. 한 장 더. 한 장 더.
이만치 담 위에 납작 엎드린 채 사진을 찍은 대용이 남은 삼각김밥을 마저 입에 넣고. 비닐에 묻은 밥알까지 핥아 먹는다.
#9. 문식의 서재
문호의 뒤를 따라 들어온 문식. 문을 소리 안 나게 닫더니 문호를 향해 돌아서는데. 차갑다.
문식 : 형수한테 무슨 말을 한 거야. 뭐랬길래 저 사람이 저 지경이야.
문호 : 오박사는 뭐래요. 지난주에 형수, 검진 받았잖아.
문식, 노려보다가 책상 앞으로 가 앉으며 마음을 가라앉히며.
문식 : 이십년 넘게 똑같지. 재활의학과, 신경외과, 정신과, 한 바퀴 돌고 약 한보따리 받아오는 거.
그래서.. 뭐야. 니 형수. 한동안 별 일 없었어. 몇 달 넘게 발작도 없고 멀쩡했다고..
문호 : (보는.. 아직 어디까지 말해야할지 모르겠다)
문식 : 말해.
문호 : 두 달 전. 연락이 왔어. 누나 딸 지안이. 무덤을 옮겨야한다고.
문식 : (당황했다) 그 말을 한 거야? 명희한테?
문호 : 아직 안했어. 다 끝낸 다음에 알려주려 했지. 그 말을 듣기 전에는.
문식 : ... ?
문호 : 그 무덤 안이 텅 비어있대. 그 무덤. 그 관 안에 돌멩이 몇 개 밖에 없었다고. 지안이를 그 무덤에 안장한 거, 형 아니었어?
문식 : (어느새 다시 냉정해져 있다)
문호 : 지안이.. 죽은 거 맞아? 아니면 살아 있는 애를 죽었다고 누나한테 거짓말을 했나?
문식 : (흔들림 없이) 지안이는 죽었어.
문호 : 살아 있다면..
문식 : 죽었어. 니 형수가 그거 받아들이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 사람 다시 살게 하는 게 얼마나 어려웠는지 너도 알지?
그러니까 지안이는 살아 있으면 안 되지.
문호 : (말이 막혔다가) 살아있으면 안 돼? 무슨 말이 그래? 그 말은 그럼 그 애가 살아있다면 다시 죽여 놓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문식 : (살피듯 보는) 왜 그런 식으로 말하니.
문호 : 23년 전. 그 때도 그랬나. 길한이 형도 그렇게 처리했어? 살아 있으면 안 돼서?
문식 : 그 날의 사고 얘기, 다시 해줘? 다시 들어야겠어?
문호 : 사고 맞아?
문식 : (보는)
문호 : (가슴 깊이에서부터 떨리며) ... 맞아?
문식 : 사실을 알면.. 어쩔 건데.
문호 : 형.
문식 : 모르고 사는 지금이나. 알고 난 뒤나. 뭐 달라질 수 있나? 니가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문호 : (성큼 다가와서 책상을 짚어) 무슨 짓을 한 거야? 그 사람들한테 무슨 짓을 했어.
문식 : 니가 짐작하는 대로야.
문호 : 내가... 뭘 짐작하는데.
문식 : 나에 대해서 너 다 알고 있잖아. 하나만 빼고. (미소) 넌 내가 개선문 같은 책은 평생 안 읽을 거라고 생각했니?
문호, 움찔한다. 책꽂이에 꽂혀 있는 개선문 책. 거기 숨겨져 있는 카메라 렌즈. 그 위로 문식의 말 계속.
문식소리 : 이 방에서 벌어진 모든 일. 너 다 알고 있어. 그런데 넌 이제까지 아무 것도 한 게 없지.
문식 : 날 말린 적도 없고. 경찰서에 신고한 적도 없고. 니 뉴스에 보도한 적도 없어.
문호 : (울컥) 해봤자 소용없었으니까. 해봤자..
문식 : 그건 말이다. 문호야. 너도 한 편이라는 거야. 나하고 너. 92년 그날부터 지금까지. 우린 한 편이야.
문호 : (더 말을 못하고 있다)
문식 : 아직 인정이 안 되니?
문호, 책상을 짚은 손에 힘이 들어가 떨린다. 냉정하게 그 시선을 받고 있는 문식.
이윽고 문호가 상체를 일으켜 똑바로 서며 속을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는다. 그렇게 형을 내려다본다.
그 위로 들리기 시작하는 파도소리.
#10. 정후 스튜디오 / 밤
// 안경 화면 // 푸르른 바닷가에서 보는 바다. 파도. 푸른 하늘. 끼룩거리는 갈매기소리.
철썩이는 파도 소리가 평화롭기 짝이 없는데.
느닷없이 화면이 퍽 깨지더니 민자의 캐리커처가 딱 뜬다.
민자소리 : 뭐하냐.
정후소리 : 아으..
// 정후. 김이 새서 안경을 벗는다.
정후는 무인도 섬 사진 앞, 선텐 의자에 늘어져 누워있던 중. 스마트 안경을 옆의 테이블에 던지듯 놓고 맥주 캔을 드는데.
저만치에 있던 스피커에 전원 불이 들어오더니 그곳에서 이어지는 민자 소리.
민자소리 : 지금이 일 없으면 너 운동하는 시간이잖아. 근데 뭐하냐고.
정후, 대꾸하기 싫어서 눈앞의 무인도 사진만 보며 맥주를 마시는데 캔이 비었다.
민자소리 : 별로 바쁘지 않으시면 우리 생각이라는 걸 좀 해봅세. 상황 정리. 일단 배상수네 애들이 니가 힐러인 거 알아봤어. 그치?
정후, 맥주캔을 들어 휘익. 던진다. 늘 쌓여있는 빈 맥주캔 더미 위에 안착..하지 못하고 옆으로 떨어진다. 에잇...
민자소리 : 지금 그 보고를 받은 배상수는 머리통을 굴리고 있겠지. 무엇이? 힐러가 나타났어? 왜? 어디에? 채영신이라는 여자 옆에.
정후 : 그려. 내가 잠깐 쳐돌아서 또라이 짓을 했어. 인정. 됐지.
민자소리 : 그럼 지금 배상수는 무슨 지시를 내리고 있을까.
정후 : (으으.. 듣기 싫다)
#11. 배상수네 전산실
민자의 허름하고 복잡한 아지트와는 달리 번쩍거리는 최신 기기와 수많은 모니터들이 자리 잡고 있는 상수네 전산실.
메인 모니터에는 정후의 CCTV 사진이 확대되어 뜬다. (영신이 갖고 있는 것과 같은)
몇 명의 전산요원들이 각각 컴퓨터 앞에 앉아있고.
상수가 우뚝 서서 보고 있는 옆에 요요가 손을 들어 정후 사진을 가리킨다.
요요 : 틀림없습니다. 저 놈입니다. 애들 말에 따르면 지난 번 지하철에 출몰 했던 놈하고도 인상착의가 맞아 떨어진댑니다.
옆의 모니터에 영신의 증명사진이 뜬다.
상수 : 저게 그 놈이 끼고 돌았다는 여자야?
요요 : 그 여자하고 보통 사이가 아닌 거처럼 보였습니다.
상수 : 보통 사이가 아니면. 애인이야. 마누라야. 라면만 나눠 먹는 사이야. 모텔도 같이 가는 사이야.
요요 : 그거까지는..
상수 : 이름.
요요 : 채영신이라고 썸데이 기잡니다. 처리하라고 하셨던 그 기사..
상수 : 그걸 이 여자가 썼다고?
요요 : 그렇습니다.
상수 : 재밌구만. 그럼 그 커넥션이 딱 그려지는 게.. 그러니까.. (생각해본다. 잘 모르겠다.) 집 주소부터 해서 신상 털어봐.
컴퓨터 앞에 앉은 전산요원 중의 하나가 부지런히 키보드를 치기 시작한다.
#12. 정후 스튜디오
정후가 냉장고 쪽으로 걸어간다.
민자소리 : 이 시간부터 채영신이 그 여자 주변에는 너를 찾는 상수 패거리가 촘촘하게 깔려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해야지.
그러면 어쩔 것인가.
정후. 냉장고에서 새 맥주 캔을 꺼내 딴다.
민자소리 : 어쩌고 자시고도 없지. 이제부터 너는 그 여자로부터 무조건 멀리 떨어질 것.
지구상에서 그 여자가 존재하는 쪽은 쳐다보지도 말 것. 보나마나 지금 상수패거리, 그 여자애 직장. 집. 친지관계.
학교 때 성적표까지 다 뒤지고 있을 거니까..
정후 : 상수 패 말이야. 어디까지 해?
민자소리 : 뭘 어디까지 해.
정후 : 일거리 받으면 협박.. 납치.. 그런 것도 하나?
#13. 민자 아지트
민자, 두 발을 테이블에 올리고 뜨개질을 하고 있는 중이다.
모니터 화면에는 테이블에 얹은 정후 안경에 잡히는 무인도 사진.
민자 : 겉으로야 건전하고 합법적인 대행업체지만 그렇게 건전하고 합법적으로 일해서 그 건물 살 돈을 모았을 리는 없다..고 봐야지?
정후소리 : 만약에.. 어.. 완전 만약인데.. 그 놈들 말이지. 잠복을 해도 내가 안 나타나면 채영신이한테 직접 알아내고 싶어질 거잖아.
민자. 뜨개질 하다가 코를 놓치고 어라? 해서 듣는.
정후소리 : 그게 어느 정도까지 ..그니까.. 뭐 설마 납치 감금 고문.. 이런 식으로 알아내려고 하진 않겠지?
민자 : (이것 봐라.. 생각해보다가) 얘. 힐러야.
정후소리 : 어떻게 생각해. 충분히 그럴 놈들인가?
민자 : 채영신이가 그렇게 이쁘드냐?
#14. 정후 스튜디오
창가에 섰던 정후. 맥주를 마시다가 사례가 걸릴 뻔 한다.
민자소리 : 사진으로 보니 이쁘장하긴 하드만. 실제로 보니 더 이뻐? 섹시해?
정후 : 이 아줌마가 한밤중에 노망이 시작됐나.
민자소리 : 아까도 잽싸 튀어야할 순간에. 너 그 여자애한테 달려갔어. 지금도 뭐냐. 지 발등에 불이 지글지글 타오르고 있는데
그 여자애 걱정 하고 있는 거? 그런 거? 그렇게 이뻐?
정후 : 아줌마.
민자소리 : (농담기가 없어지며) 하지 마.
정후 : ...
민자소리 : 너, 수배범이야. 얼마 전부터는 살인용의자고. 무인도 살 돈 모으면 이 나라 뜰 거래매.
그 때 따라가 줄 여자 아니면 하지 마. 암만 이뻐도 하지 마. 그게 뭐든.. 시작하지 마.
정후. 대답 없이... 차가운 유리창에 이마를 댄다.
우울하게 바라보는 유리창 너머 저 아래 도시의 야경. 그 야경 속으로 주욱 줌인..
#15. 도심의 거리 / 밤
홍대 앞. 대학로.. 혹은 그 비슷한 젊음의 거리.
번쩍이는 네온사인들. 밤인데도 거리에 가득한 인파.
웃으며 장난치며 지나가는 커플. 춤추며 지나치는 한 무리의 젊은이들..
정후의 속생각이 시작된다.
정후소리 : 인간이 침팬지나 호랑이들을 볼 땐, 그냥 침팬지고 호랑이다.
그 중에 좀 더 이쁜 침팬지나 좀 더 잘생긴 호랑이를 골라내는 건 쉽지 않다. 내 눈에는 인간도 마찬가지다. 다 비슷하다.
거리의 인파들에서 죽 빠지면. 근처의 빌딩 옥상. 혹은 높은 집 지붕
#16. 옥상 위 / 밤
정후가 앉아서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늘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구경한다.
정후소리 : 근데.. 비슷한 인간들 중에 그 애는 좀 다르다. 어떻게 다른가 하면
정후, 음... 생각해본다.
정후소리 : ...언젠가 다큐멘터리에서 본 표범 같다. 다리가 부러졌던 그 표범이 하이에나 떼를 만났는데..
다친 데다가 쪽수로도 절대 안 될 게 뻔 한데.. 그 표범은 먼저 공격했고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17. 회상 / 2부 #16. 건물 화장실
영신이 숨을 헐떡이며 정후를 향해 말하고 있다.
영신 : 그거 내 가방 맞지? 그러니까 넌 도둑놈 맞고.
#18. 회상 / 2부 #18. 건물 화장실
비명을 지르며 잡혀 들어간 영신. 역시 비명을 지르며 정후의 정강이를 발로 찬다.
#19. 회상 / 4부 #61. 골목길
영신 : 내가.. 내가 막을 테니까 넌 무조건 도망쳐.
(중간편집) 영신이 정후를 뒤로 밀쳐내며 정후를 막듯이 해서 앞으로 나선다.
그런 영신의 뒷모습을 어이없어 보는 정후의 얼굴. 위로.
정후소리 : 그 애도 그랬다. 뭘 몰라서 겁이 없는 게 아니라. 얼마나 무서운지 알면서.. 용감했다.
#20. 옥상 위
우두커니 앉아있는 정후.
정후소리 : 그 표범 다큐 보고. 와.. 진짜 엄청 울었다. 지금 생각해도 울컥하네. 어휴..
고개를 젓고 슬슬 일어선다. 가볍게 몸을 푼다.
정후소리 : 어쨌든.. 그건 나도 그렇다. 도망가거나 숨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울리는 휴대폰 진동. 들어보니 [똘마니]가 보낸 메일. 열어본다.
열린 메일 속의 사진. 현관 앞에서 문식과 문호가 함께 찍힌 사진이다.
밀어서 보는 서너 장의 사진에 연속적으로 둘이 잡혀 있다.
정후소리 : 맹수끼리 붙었을 때, 안 무서운 놈은 없다. 누구나 다 무섭다. 다만 먼저 공포의 냄새를 풍기는 쪽이
목줄을 끊기게 돼있다. 그러니 나를 노리는 놈이 있으면 약한 모습 들키기 전에 먼저 공격해라.
그게 동물의 세계에서 살아남는 법이다.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마음을 정한 정후가 훌쩍 자리를 뜬다.
슬슬 뛰는 속도가 빨라지며 옥상과 옥상 사이를 혹은 건너편 옥상으로 가볍게 몸을 날려 넘어가며 도시의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그 도시의 밤이 새벽이 된다.
#21. 배상수 회사 건물 앞 / 이른 아침
길 건너에 상수네 건물. 모던하게 보이는 신축건물?
그 입구로 나오는 사내들. 용식이 다른 사내 두어 명과 나와서 기다리던 봉고차에 타고 출발해간다.
#22 윤형사 차 내부
그 모습을 길 이쪽의 차안에서 보고 있는 윤형사와 차형사.
(먹던 햄버거나 음료의 포장지로 언제나 어지럽고 더러운 윤형사의 차 내부)
윤형사 : 저기 덩치 큰 놈이 오용식. 배상수의 왼팔 비슷한 놈이고요.
그들이 보는 곳에서 입구 쪽에 기대 서 있는 요요가 보인다. 요요는 손에 들린 요요를 갖고 놀고 있다.
윤형사 : 저기 입구 쪽에 장난감 갖고 놀고 있는 놈이 일명 요요. 배상수의 오른팔입니다.
차형사 : 저것들에 대해서 많이 알고 계신가보네.
윤형사 : 몇 년동안 주욱 팔로잉하고 있는 중이지요. 간판 내걸고 명함 파서 영업하는 놈들이긴 하지만,
캐보면 줄줄이 가마니로 나올 놈들입니다.
차형사 : 그 말씀은 아직 제대로 캐보진 못했다..
윤형사. 기분 나빠서 돌아본다. 차형사는 순진한 얼굴.
윤형사 : 배상수가 델고 있는 해커들, 팬타곤도 넘보는 애들입니다. 그래서 우린 이렇게 판단하고 있죠.
우리가 (손가락으로 자기 눈을 가리키고 상수네 건물 가리키며) 노리고 있어서 그나마 저것들이 이 정도
조신하게 놀고 있다....
#23. 상수네 건물 전산실
해커로 보이는 사내 셋이 각자의 키보드 앞에서 뭔가 열심히 작업 중.
그들의 앞에 늘어져 있는 수많은 모니터들. 그 중에는 각 지역의 인공위성 사진도 있고, 어딘가의 감시 카메라도 있고.
해킹 중인지 C언어가 가득한 것도 있고.
그리고 채영신과 정후의 사진이 나란히 들어있는 모니터가 있다.
상수소리 : 그 썸데이 기자를 추적하는 중에 재미난 게 걸려들었습니다.
저만치 말소리가 들리지 않을만한 곳(구석?)에서 상수가 전화 중.
상수 : 저에게 맨 처음 지시하셨던 거 말입니다. 심부름꾼 중에 힐러란 놈을 찾아라. 그리고 처리해라.. 하셨지요?
그 놈이 이 기자와 연결되어 있는 거 같습니다.
#24. 문식의 서재
문식이 전화를 받고 있다.
상수소리 : 그래서 제 판단으로는 말입니다. 이 기자가 뭔가 찝찝한 기사를 썼다고 하셨단 말입니다.
그 일하고.. 이 힐러 놈하고 커넥션이..
문식 : 배대표.
상수소리 : 예.
문식 : 판단하지 마세요.
상수소리 : 예?
문식 : 배대표는 아무 것도 판단할 필요 없어요. 그냥 지시한 것만 제대로 해주면 돼.
상수소리 :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문식 : 그래서 주연희라는 여자, 거처는 알았어요?
상수소리 : 썸데이기자가 알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밀착 잠복 중입니다.
문식 : 힐러란 자는?
상수소리 : 끌어낼 길을 알았으니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문식 : 하세요 그럼. 연락은 그 뒤에 하고.
문식이 전화를 끊는다. 앞에 앉아 기다리던 오비서. 계속 보고.
오비서 : 주요 일간지 쪽은 협조 약속 받아냈고요. 방송 쪽도 얘기 끝났습니다. 그래도 백프로 커버하기는 힘들 겁니다.
인터넷이니 팟캐스트 같은 자잘한 데서 계속 물고 늘어질 수도 있고..
문식 : 상관없지 않나?
오비서 : 이번 껀은 작지 않습니다. 차기 서울 시장 후보가 건설업체 사장에게 성접대를 받았다는 겁니다.
피해자라는 여자가 경찰에 정식 고소까지 했고요. 야당 쪽에서 자체적으로 조사 들어갔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완전히 막긴 어렵습니다.
문식 : 자잘하다면서.
오비서 : ?
문식 : 그것들이 왜 계속 자잘한 줄 아나? 합해지지가 않아. 각자 지 방구석에 앉아서 말로만 떠들 뿐이야.
그러니 뭐 할 수 있는 게 없어. 계속 자잘하게 존재하는 거 밖에. 안 그런가.
오비서 : (빙긋) 예.
문식 : 다음.
오비서 : (노트북을 보며) 봉진생명 말입니다. 검찰 쪽에서 흘러나온 얘긴데요..
문식 : 그런데..
오비서 : 예?
문식 : (생각에 빠져 있는) 힐러..란 말이지.
오비서 : 그 심부름꾼 말입니까?
문식 : (문득 웃는) 익숙한 이름이거든. 그 때 그렇게 불렀어. 아주 예전에.
#25. 영신의 방
벽에 붙어있는 정후의 사진.
그 사진 앞에 서 있는 영신. 사진을 이쪽 각도에서 보고 저쪽 각도에서 보고 가까이 들여다보기도 한다.
그래도 물론 그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문득 들리는 소리.
정후소리 : 몇 알?
#26. 플래시 회상 5부 #1. 골목길
점퍼로 덮여 보이지 않는 영신. (#1과는 다른 각도, 영신 중심의)
그 등 뒤에서부터 영신을 감싼 정후가 묻는다.
정후 : 몇 알?
#27. 플래시 회상 2부 2부 #18. 화장실 내부
영신을 뒤로부터 안은 정후가 영신의 귓가에 대고
정후 : 담부터는 겁도 없이 아무나 따라가지 마요. 그러다 죽습니다.
#28. 영신의 방
영신이 디카로 그 사진을 다시 사진 찍으며.
영신 : 맞다니까. 맞어. 그 놈이 그놈이야. 힐러 이 놈! 근데.. 왜. 날 왜애?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연희. 쪼르르 창문 쪽으로. 창문 밖을 내다보려고 한다.
영신이 기겁을 해서 연희를 끌어당기며
영신 : 창 가로 가지 말라고 했잖아요. 놈들이 나를 따라왔을지 모른다니까.
연희 : 밖에 누가 있는지 봐봐요.
영신 : 누가 있다고? 내 그럴 줄 알았어. 아아 어뜩하지. 그 깡패시키들.
연희 : 아니 그 남자요.
영신 : ..에?
#29. 치수네 가게 앞 / 이른 아침
출근해서 오는 철민. 정체를 알 수 없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오다가 어라.. 해서 선다.
거기 가게 앞에 플라스틱 의자 두 개를 붙여놓고 그 위에서 잠이 들어있는 사내. 어디서 주운 신문지를 덮고 있다.
슬그머니 가까이 다가선 철민이 발로 의자를 툭툭 친다.
끄응 사내가 돌아눕는데 정후다. 정후가 겨우 잠이 깨는지 억지로 실눈을 뜬다.
철민 : (냅다 소리 질러) 형니임.
#30. 치수네 가게 일층
치수가 떠억 서서 보고 있다.
철민의 뒤를 따라 비실비실 들어서는 정후.
정후 : (꾸벅 절을 한다) 죄송합니다.
이층에서 영신이 우당탕탕 뛰어내려온다.
영신 : 야. 박봉수.
정후 : (얼른 영신에게도 꾸벅하며) 미안합니다.
영신 : 너 괜찮아? 맞은 데는? (달려와 살피는)
정후 : (우물쭈물) 괜찮습니다. 근데 (치수에게) 먼저 도망쳤습니다. 선배를 지켜보라고 하셨는데. 너무 무서워서..
도저히 뭐 어떻게 해볼 수도 없고, 정신을 차려보니까 제가 혼자 도망치고 있던데요.
치수 : (영신에게) 이 놈 무쟈게 얻어맞았다고 하지 않았냐.
영신 : 그러게. 너 어제 맞고 기절했던 거 아냐?
정후 : 그러게요.
치수 : 어디 보자. (하며 다가와서 정후의 얼굴을 들어 이리저리 보고 가슴을 여기저기 쑤셔본다) 말짱한데.
정후 : (간지러워서)
철민 : 근데 왜 밖에서 자고 있었던 거냐.
정후 : 선배도 걱정되고.. 근데 밤이라 깨우긴 그렇고.. 어떻게 하지.. 생각하다가 너무 졸려서..
치수 : 손은 왜 그래.
치수가 보고 있는 정후의 손. 영신을 보호하다 피딱지가 맺혀있는 손등 마디들.
정후 : (얼른 손을 뒤로 감추며) 모르죠. 맞았거나.. 뭐.. 맞다가 넘어졌거나..
하는데 그 손을 잡아들어 보는 치수.
폭력배들을 오래 보아온 치수가 보기에 뭔가 이상해서 상처를 보고 정후를 보고.
정후. 손을 거두며 그 시선을 슬쩍 피한다.
영신 : 봉숙아.
정후 : 예. 근데 봉숙이가 아니고..
영신 : 이 누므 시키. 그래도 니가 신고를 해준 덕분에 내가 살았다야. 겁은 드럽게 많은 놈이 그렇게 엊어 맞고도
그 와중에 신고도 하고.. (하더니 성큼 다가와서 정후를 와락 안는다)
정후 : (기겁을 해서 빼려는데)
영신 : (그 등을 두들기며) 내가 얼마나 너 걱정했는지 알어? 으이그..
옆에서 치수가 둘을 떼어놔야 되나 어쩌나 안절부절..
#31. 이층 거실
부엌 쪽에서 치수는 식사 준비를 하고 있고. 연희는 테이블로 음식들을 나르고.
이쪽 소파에서 영신이 정후의 손마디에 약을 발라주고 있다.
정후는 이 상황이 무지 불편한 채로 영신에게 손을 내주고 있다. (상처는 늘 혼자 알아서 스스로 치료해왔다)
영신 : 오늘 경찰서 갈 때 절대 아버지하고 연희씨 둘만 가면 안 되는 거 알지. 그리고 이 집도 안전한 거 아니니까..
하다가 정후가 아픈 듯 움찔하니까. 별 생각 없이 호오호오 상처를 불어준다.
정후. 굳어서.. 그러는 영신을 내려다본다.
치수 : 아버지가 누구냐. 전화 한통화면 달려올 절친들이 사방팔방에 한 트럭씩 있어. 사기꾼 절친. 절도 절친. 폭력 절친.
분야별로 다 있어야. 필요하면 비상연락망 한번 돌리면 끝이야. 근데 거 약 아직 덜 발랐냐.
뭔 손을 그렇게 오래 부여잡고 있어. 남녀가.
영신 : (마지막으로 넓은 밴드를 붙여주며) 다 됐다. 밥 먹자.
정후 : 나도 말입니까?
치수 : (괜히 벌컥) 아 그럼 우리 먹는데 자네만 거기서 굶고 앉아있을래.
영신이 정후의 팔목을 잡아끌어 식탁으로.
정후 불편해서 팔목을 비틀어 빼고 의자 하나를 끌어 앉는다.
식탁을 보고.. 놀랐다. 밥공기마다 먹음직스러운 잡곡밥에 된장국에 갖가지 집반찬들.
연희가 다가와 새 반찬 그릇을 내려놓는다. 윤기가 자르르한 감자조림이다.
연희 : 이 감자조림은 영신씨가 만든 거에요. 드셔보세요.
치수 : (고등어구이를 가져와 놓고 앉으며) 채영신이가 만들 줄 아는 음식이 딱 세 가진데 감자조림이 그 중 하나야.
영신 : 딱 세 가지는 아니다. 감자조림. 김치볶음밥. 카레도 있고. 또... 음..
치수 : (무시하고) 잘 먹자.
연희 : 잘 먹겠습니다.
영신 : 잘 먹겠습니다.
정후 : 잘... (아무래도 그 다음이 안 나온다)
다들 맛나게 먹다가 치수가 정후를 본다.
정후. 젓갈을 든 채 그냥 식탁을 내려다보고만 있다.
치수 : 왜 안 먹어. 빵 체질이야? 그럼 아래 내려가 봐. 빵 체질 철민이가 토스트 만들고 있을 거니까.
정후 : 아닙니다. 반찬이.. 너무 많아서..
하고는 감자조림을 하나 집어 든다. 입에 넣고 먹는다. 기억하던 그 맛이다. 잠깐 울컥하는 기분이다.
#32. 치수네 집 앞 골목
선팅을 짙게 한 승합차 하나가 와서 주차한다. 치수네 가게가 저만치 보이는 곳이다.
조수석 쪽의 창문이 내려지고 안이 보인다. 사내들이 타고 있다.
조수석의 사내가 창문을 내리고 담배를 피려다가 뒤에서 누군가에게 뒤통수를 엊어 맞고 다시 창문을 올린다.
이만치 가게 안에서 철민. 접시를 들고 토스트를 뜯어 먹으며 그들이 탄 차를 보고 있었다.
#33. 문호 방송국 보도1부 사무실
책상에 걸터앉은 문호가 종수와 두 명 더 후배들을 앞에 놓고 지시 중이다. 후배들은 열심히 적으며..
문호 : 경재는 지난 삼년에서 오년 사이, 재국 건설이 참여한 입찰 건. 다 뒤져봐. 황재국 사장이 대가성 접대를 했다면.
분명히 그 입찰 중에 김 의찬하고 연결된 게 있을 거야.
경재 : 예 알겠습니다.
문호 : 조달청부터 가 봐. 거기 오과장, 전화 넣어 둘테니까.
경재 : 옙.
문호 : 황재국의 엔터에 소속된 애들, 얼마나 있다고 했지.
종수 : 열두어명 되는데요. 와 진짜 이 양반, 냄새가 완전 구립니다. 아니 건설업을 하는 분이 뭣때매 연예인 매니지먼트에
손을 댔냐고요. 별 유명한 애도 없어요. 다 키워준답시고 여기저기서 끌어 모은 여자 애들이거든요.
키워주긴 개뿔. 보나마나 접대 자리에 끌고 다니면서..
문호 : 보나마나?
종수 : (이크) ... 그니까 그게..
문호 : 보나마나 뻔해? 너 기자야. 무당이야.
종수 : 잘못했습니다.
문호 : 거기 소속된 애들 하나씩 접촉해봐. 주연희하고 같은 일 당한 애는 없는지. 주연희 일을 알고 있는 애는 없는지.
종수 : 맡겨주십셔. 여자들하고 인터뷰는 제가 또 전공이라.. (하다가 문호의 뒤를 보고 찔끔)
문호 : 김의찬 의원 쪽도 붙어줘야겠는데. 거기 보좌관 중에..
종수 : 선배.
문호 : 아는 사람 있어?
종수 : 아니 뒤에..
그제야 문호가 뒤를 돌아본다.
저만치에서 민재가 벽에 기대 선 채 문호를 보고 있다. 한손에 들린 테이크아웃용 커피.
#34. 민재의 방
민재가 먼저 들어와 의자에 앉으며.
민재 : 김의찬하고 황재국 사건. 다른 팀에서 붙었어. 자기가 해줄 건 따로 있어. (하며 서류철을 내준다) 필리핀 좀 다녀 와줘.
거기 한국 건설업체 사장. 그 딸이 유괴된 사건 알지?
문호 : (따라 들어와 대충 의자를 발로 밀어와 민재의 앞에 앉으며) 알지.
민재 : 그거 특집으로 만들어 보자. 자기가 맡아줘.
문호 : 그 유괴사건. 일년 전에 있었던 거 아닌가.
민재 : 해외에 한국업체들 진출이 늘어나면서 이런 범죄 사건들도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 포커스를 두고..
문호 : 니 생각이야. 더 위에 생각이야. 아니면 밖에 생각인가.
민재 : 이 특집?
문호 : 일년도 전에 있었던 사건, 급하게 뒤져내서, 김문호에게 떠안기고. 당분간 해외에 보내놓자는 생각.
민재 : 문호야.
문호 : 우리 누나 보니까 요리를 내놓을 때 데코레이션이란 걸 하더라. 허브 잎을 얹기도 하고. 꽃가지도 얹고.
그러니까.. 이 부서에서 내 기사 하나쯤, 데코레이션 한다 치고 얹어주면 안될까? 모든 방송 뉴스가 다 비슷한 논조에
비슷한 순서로 떠들 때 비뚤어진 내 기사 같은 거 하나 정도..
민재 : (보는)
문호 : 도저히 안 되겠니?
민재 : 우리. 보도국 중에서도 특집 부서야. 내가 그 특집들 관리하고 있고. 내가.. 내 부원인 너에게 이런 거 취재해오라고
지시하고 있잖아. 어뜩할까. 두 손 모으고 부탁이라도 해야 되니?
문호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는 민재가 내려놓았던 커피컵에서 골지 슬라브를 빼내어 잘 편다.
민재 책상 위의 연필통에서 사인펜도 하나 꺼내 골지에 뭔가를 쓴다.
민재 : 지금 내가 말하고 있잖아. (하다가 쓰여지는 글자들을 보고 기가 막혀서) 무슨 짓이야.
문호가 골지를 민재의 앞으로 밀어놓더니 미소 지으며 일어선다.
아.. 하더니 들고 있던 펜을 정중하게 다시 연필통에 꼽아준다.
민재 : 너 지금 아주 유치하고 치졸한 거 알지? 니가 스무 살짜리 애야?
문호 : 민재야. 가끔은 좀 웃어라. 아깝잖아. 니 웃는 얼굴, 정말 짱인데.
하더니 미련 없이 나간다.
민재 벌떡 일어났다가 다시 내려다본다.
문호가 적어서 내민 골지에는 [사직서/ 보도부 차장 김문호/ 본사와의 성격 차이로 사직합니다. ] 사인과 함께 적혀있다.
#35. 썸데이 건물 외경
지나가는 차 소리 뿐. 조용하다.
#36. 썸데이 편집실
책상 위에 놓인 전화기들.. 조용하다.
선재와 찬영이 서로 마주보았다가 한쪽의 눈치를 본다.
여기자도 모니터 뒤에서 고개를 스윽 빼서 눈치를 본다.
그들이 보는 곳. 자기 책상 앞에 앉은 장부장과 그 앞에 선 영신.
장부장은 영신을 노려보고 있고, 영신은 괜히 다른 데를 이리저리 보며 되도록 시선을 피하는 중.
장부장 : 우리 그냥 자리 바꿀래? 내 의자가 더 편해 보이지?
영신 :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장부장 : 왜애. 여기가 햇볕도 더 잘 들어오잖아.
영신 : 자외선은 피부에 안 좋습니다.
장부장 : 채영신. 너 이눔 시키야.
영신 : (움찔) 다신 안 그러겠습니다.
장부장 : 뭘. 뭐가. 뭐얼.
영신 : 일개 기자 내부랭이가 부장님의 허가도 없이 기사를 떠억 올려놓고. 비록 그것이 누구도 건드리지 못했던 특종으로서
썸데이 신문 사상 최고의 조회수를 올렸고, 검색어 순위까지 들어갔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감히 일개 기자 나부랭이가 부장님의 허락도 없이 감히..
하다가 벌떡 일어선 장부장이 손가락을 영신의 입 안에 쑤셔 넣으려는 바람에 얼른 입을 다문다.
장부장 : 여기자.
여기자 : 예.
장부장 : 오늘 채영신이 기사 어케 됐어. 아직 검색 순위에 있나?
여기자 : 없습니다. 사라진지 한참 됩니다.
장부장 : 특종이란 건 말이다. 다른 데서 그걸 받아줬을 때 비로소 특종이 되는 거야. 지 혼자 대한민국을 팔아넘기든
화성에 제국을 세우든.. 아무도 관심을 안 가져주면 그건 그냥 쓰레기야. 설사하고 나서 휴지 대신으로도 못 쓰는 쓰레기.
영신 : 맞습니다.
장부장 : 여기자.
여기자 : 예.
장부장 : 김의찬. 황재국 기사 받아쓰는 데 있어?
여기자 : 몇 군데 있습니다. 오나라 뉴스, 사실과 진실. 그리고 팟캐스트 중에..
장부장 : 그런 지들만의 세상 말고. 세상 사람들이 읽어주는 신문. 봐주는 방송 중에 말이다.
여기자 : 없습니다.
장부장 : 그리고. (책상 위에 있던 봉투를 들어 흔들며) 우리 신문사로 이런 게 날아왔어.
김의찬 의원 사무실에서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대.
영신 : 말도 안 됩니다. 김의찬 실명 쓴 적 없습니다. 내가 언제..
장부장 : (모니터의 기사를 읽는) 3선의원으로서 차기 서울시장 후보인 K의원. 이 정도면 김의찬 실명보다 더 실명스럽지 않나?
봐아. 실명실명..
영신 : 죽을 죄를 졌습니다. 저기..근데요. 재판 비용이 많이 들까요. 제가..
장부장 : (손가락으로 영신의 입을 찌르려고)
영신 : (입을 다문다)
장부장 : 둘 중에 하나다. 첫째..
영신 : (울상) 사표는 못 씁니다. 그건 너무 억울합니다. 전 단지 술을 좀 많이 마신 거 하고 잠이 모자랐던 죄 밖에 없습니다.
장부장 : 그럼 둘째.
영신 : 뭐든지 하겠습니다.
장부장 : 제대로 해봐.
영신 : 그건 너무..... 예?
장부장 : 기사를 쓰든, 재판에 증거로 제출하든. 제대로 써먹을 수 있는 뭔가를 캐와. 그래야.. 우리가 산다.
영신 믿어지지 않아서 본다. 다른 기자들도 놀라서 본다.
장부장 여전히 진지한 얼굴로 영신을 보며
장부장 : 방금 내 대사, 기억해둬라. 내 입에서 나오기 힘든.. 괜찮은 대사니까.
#37. 탕비실
정후가 커피 메이커의 커피가 내려오는 것을 기다리며 귀에 꼽은 이어셋으로 통화중.
정후 : 아줌마. 아직 삐쳐있나?
아무 대답이 없다.
정후 시계를 들어 들여다보며 (시계의 카메라를 향해) 고양이처럼 눈을 깜박여 보인다. 나름 애교 부리는 중.
정후 : 아줌마. .. 누나..
#38. 민자 아지트
민자. 책상에 올린 두 발에 털실 타래를 끼고. 털실 뭉치를 만들면서 모니터를 힐끗 본다.
시계 카메라에 비친 정후 얼굴.
정후 : 민자씨. ..여보.
민자 : 미친 놈.
정후 : 흐흐흐.. 하루도 못 가서 대답할거면서 앙탈은.
민자 : 단디 알아둬라. 니가 경찰에 잡히거나, 다른 놈에게 정체가 드러나거나 그 즉시 난 너를 버릴 거고.
정후 : 알지.
민자 : 니가 감방에서라도 목숨을 유지하고 싶으면 나하고의 모든 기억은 칼같이 지워야 한다는 거.
#39. 탕비실
정후 : (커피를 따르며) 아줌마하고의 기억이 뭐 있긴 하나. 내가 아줌마 얼굴을 알어. 집 주소를 알어. 민자라는 이름도 본명 아니지?
민자소리 : 그래서 넌 거기서 계속 슈퍼맨 놀이를 하겠다는 거냐.
정후 : 슈퍼맨? 걔가 뭐했는데. (커피를 마셔본다. 으엑. 무지 맛없다.)
민자소리 : 슈퍼맨도 몰라. 암만 영화를 안보는 놈이라도..
정후 : (설탕을 듬뿍 집어넣으며) 맨이 무지 많잖아. 그 중에 어떤 맨.
민자소리 : (한숨) 너처럼 여자 때문에 신문사에 위장취업한 놈이 하나 있다. 암튼 그래서 뭐. 또 뭐.
정후 : 사진 하나 보냈어. 그 사진에 울 아부지하고 싸부님 말고 세 명이 더 있거든. 어떤 인물들인지 좀 알아봐줘.
제일 좋은 건 싸부한테 물어보는 건데. 그 영감탱이 아직 연락 안 되지?
커피를 맛본다. 으으.. 너무 달다. 여전히 맛없다. 설탕을 더 넣는다.
정후 : 그리고 지금 대용이가 배상수 따라다니고 있거든. 적당한 시간이 되면 아줌마한테 콜이 갈 거야. 그럼 알아서 붙어줘.
민자소리 : 적당한 시간이라니 먼 시간. 알아서 뭘 붙어.
정후 : 배상수 그놈이 나를..
하다가 멈칫. 뒤에 신경이 간다.
다음 순간 문이 벌컥 열리며 들어서는 영신.
영신 : 봉숙아.
정후 : (그제야 놀랐다는 듯 돌아본다)
영신 : 차 운전 할 줄 알아?
정후 : 면허는 1종 대형으로 있는데.
영신, 다짜고짜 정후의 팔목을 잡아채서 끌고 가는 바람에 정후, 커피를 쏟을 뻔.
#40. 민자 아지트
모니터에 떠 있는 과거 다섯 명의 사진.
민자, 키보드를 두두둑 쳐서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잠시 후 스피커에서 들리는 발신음 소리.
따르르르 나는가싶더니 달칵 소리와 함께 으헤헤헤헤 해골이 웃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고
영재소리 : 36 25 36의 남태평양 섬미녀가 지금 내 옆에 있거등. 그니까 빨랑 녹음하고 빨랑 끊어. 그리고 전화 좀 하지 마. 쫌.
녹음을 위한 삐이 소리.
민자가 보고 있는 다섯 명의 사진. 그 중에 짝다리로 서있는 기영재.
민자 : 어이 정치범. 당신 제자가 당신 친구들한테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 그냥 냅둬 어째. 그리고 당신 제자 말이야.
지는 아직 모르고 있나 본데.. 여자 때문에 업무고 인생이고 헷갈리기 시작한 거 같아. 이런 식이면 내가 곤란해.
좀 지켜보다가 계속 정신을 못 차리면 갈아치워야지 싶다. 후계자 키운 애 더 없나? 힐러 자리 넘겨 줄만한 애.
#41. 도로
달리는 차. 운전하는 정후. 조수석의 영신.
정후, 옆을 본다. 허.. 어이없어서 다시 앞을 봤다가 못 참고 또 힐끔 옆을 본다.
영신은 혼자 리듬을 타고 있는 중. 신나기보다는 심각한 얼굴로.
노래의 앞부분(윤미래 하루하루?)을 뭔 소린지 모르게 폼만 잡으며 흥얼거리다가 소리를 내어 노래를 부른다. 역시 폼만 좋게.
영신 : 혼자 있어도 난 슬프지 않아. 그대와의 추억이 있으니..
정후 : 원래 그렇게 아무 데서나 아무 노래나 시도 때도 없이 막 부르나?
영신 : 아무 노래는 아니지. 내가 요즘 노래를 별로 안 좋아해서 소위 고전 명곡만 부르거든. 그리고. 내가 노래를 부를 때는
다 시와 때가 있어요. 엄청 좋을 때. 엄청 빡칠 때. 그리고 지금처럼 초조하고 겁도 좀 나고 심난할 때.
(흔들거리며 노래) 하루하루 지나가면 익숙해질까.
정후 : 약속은 잡은 거야? 황재국 사장이란 자. 찾아가면 만나주긴 하나?
영신 : 그럴 리나 있나. 하지만 이 선배가 누구냐. 다년간 연예부에서 미행과 잠복과 무작정 쳐들어가기에 숙달된 몸으로서..
근데.. 너 방금 나한테 말 놓은 거냐?
정후 : (무심한 얼굴) 설마.. 잘못 들으셨겠죠.
영신 : 아니. 니가 좀 전에 분명히...
정후 : 다 온 거 같은데.
하며 차의 속도를 줄인다. 영신도 밖을 내다본다.
#42. 고급 주택가 골목
정후가 운전하는 차가 주택가 골목으로 접어든다.
차를 운전해가던 정후가 순간. 한 쪽에 신경을 쓴다. 골목 옆으로 세워져 있는 승용차.
정후가 슬슬 운전해가며 사이드 밀러를 조정한다.
사이드에 비친 아까의 그 차. 운전석에 윤형사의 모습이 잡힌다.
정후 : 안 좋은데.
영신 : 뭐가. 왜?
저만치 앞에 보이는 저택. 대문 앞에 사내들 몇이 이리저리 서 있다.
영신 : 으메.. 안 좋네. 많이 안 좋아.
정후가 슬금슬금 차를 몰고 간다.
사내들이 다 이쪽을 바라본다.
정후 : 그냥 지나쳐 가는 방법도 있고. 이쯤에서 유턴하는 방법도 있고.
영신 : 그럴 순 없지. 세워.
정후. 그 사내들 앞에 세우는데.
영신 : 아냐. 패스. 고고. 작전 먼저 짜고. 아니.. 스톱. 정면승부다.
// 사내들이 보기에. 정후의 차는 덜컥 멈췄다가 빌빌 출발했다가 다시 덜컥 서고 있다.
// 차 안의 영신이 고개를 저으며
영신 : 안되겠다. 일단 주욱 저리로 가서 약속 먼저 잡자. 고 고.
정후. 다시 차를 출발시키다가 급정거를 한다.
정후의 차 바로 앞으로 와서 막으며 멈추는 배상수의 스포츠카.
정후. 뒤로 몰려고 돌아보지만 이미 사내들이 몰려와서 차를 둘러쌌다.
스포츠카에서 내리는 상수. 기웃하고 상체를 굽혀 정후네 차 안을 들여다본다. 영신을 보더니 씨익 웃는다.
#43. 저택 내부 정원
안에서 총총 나오던 요요가 얼른 고개를 숙여 보인다.
상수의 안내로 들어오고 있는 영신과 정후.
정후는 요요를 보더니 재빨리 앞머리를 부수수 앞으로 내린다.
요요가 옆으로 비켜서 상수네가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겁먹은 얼굴로 걸어오는 영신. 그리고 그 뒤를 따라오는 정후.
요요가 정후를 유심히 본다.
그런데 정후는 이미 자세를 기우뚱하게 하고 걸음걸이를 어정쩡하게 해서 키를 줄이고 인상을 바꿨다.
요요 신경을 끄고 다시 앞을 본다.
#44. 황사장 뒷정원 온실
상수가 앞서고, 다른 사내들에게 둘러싸여 들어오는 정후와 영신.
각종 난이며 화초들이 피어있는 온실이다. 황사장의 취미생활.
거기 황사장이 화초들을 돌보고 있다가 돌아본다.
옆에는 미니스커트를 입은 수정-20대 여배우 지망생-이 시중을 들고 있다.
황사장 : 어이 배대표. 웬일이야. 애들이 나 잘 보살피고 있나.. 감시하러 왔어?
당신네 애들 일 잘해. 기자 떨거지들이 얼씬도 못해. (웃는데)
상수 : 제가 기자 한분을 모셔왔습니다.
황사장 : 뭐야?
상수 : (영신을 가리키며) 사장님 기사를 최초로 냈던 그 기잡니다. 아마 주연희라는 계집도 이 여자가 숨기고 있지 않나..
추정하고 있고요.
황사장 : 이 여자였어? (다가오는) 사내도 아니고 계집이었어?
영신, 얼결에 두어 걸음 물러서다가 뒤에 서 있던 정후에 부딪힌다.
정후가 한 손을 영신의 어깨 위에 얹는다.
영신, 정신을 차리고 용기를 내서. 정후의 손을 스윽 밀어내며
영신 : 안녕하십니까. 썸데이뉴스 채영신기자라고 합니다. 괜찮으시면 몇 가지 여쭤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황사장 : 전화도 아니고. 이메일도 아니고. 직접 날 찾아왔어. 이야. 훌륭하네. 발로 뛰는 기자야. 배짱도 좋고. 간댕이도 크고.
영신 : (점점 주눅 들며) 전화 드려도 안 받으실 거 같고, 사실은 안 만나 주실거라고 생각해서.
대문 사진이나 한 장 찍어 갈려고.. 왔는데..
하는데 이미 황사장이 영신의 바로 앞까지 바싹 다가와 선다.
영신. 얼었고. 그 뒤의 정후. 난감하다. 뒤를 돌아본다.
거기 요요를 비롯한 사내들이 입구 쪽으로 서있다. 다시 영신 쪽을 보다가 꿈틀.
황사장이 영신의 턱을 잡더니 치켜 올려 얼굴을 들여다본다.
황사장 : 오오.. 이것 보게.. 쓸 만 해. 어때. 아가씨. 내가 스카웃해 줄까?
영신 : 아 제가 어떻게 감히.. 저는 그런 거.. (턱을 빼려고 애쓰지만)
황사장 : (집요하게 잡은 채) 내 엔터 회사. 제법 커. 계약금도 팍팍 준다. 아주 팍. 팍..
황사장이 농담을 했다는 듯 웃는다.
정후가 저도 모르게 발이 반보 앞으로 나서지는데.
영신이 자기 턱을 잡고 있는 황사장의 팔목을 잡는다. 두 손으로 힘을 주어 떼놓는다. 애써 태연한 척 하고 있다.
영신 : 황재국 사장님. 주연희씨라고 아시지요? 황사장님이 소유하신 재국 엔터에 소속되어 있는 연기자분입니다.
황사장 : (손을 빼주며) 나 얘 볼수록 맘에 들어.
영신 : 그 연기자 분께서 황사장님을 경찰에 신고하신 것도 알고 계시지요. 배임증죄에 준강간. 그리고 폭력도 당했다고 하던데요.
(두려움에 자꾸 목이 말라 갈라지지만) 얻어맞고 병원에서 찍은 사진도 저희가 확보했습니다. 사장님 견해를 듣고 싶은데요.
황사장 : (얼굴에 웃음이 사그라지며) 근데.. 말하는 건 영 싸가지가 없네. 아가씨. 몇 살이야.
영신 : (무섭지만) 먹을만큼 먹었는데요.
황사장 : 그런데 아직 모르겠나. 아가씨. 암만 기사 써봤자. 낼 데 없어.
영신 : 있습니다. 우리 썸데이뉴스는..
황사장 : 그 신문사 세무조사 한번 털어보라고 할까? 거기 오너가 들으면 말이지. 당장 나한테 달려와서 무릎 꿇게 돼있어.
영신 : 저기요. 사장님.
황사장 : 주연희 그 년 지금 어디 있니?
영신 : 말씀이 자꾸 저렴해지시는데..
황사장 : 뭐? 폭행을 당해? 이런 거?
말하며 슬슬 수정에게 걸어가며 옆에서 화초 지지대를 묶은 화초묶음을 든다.
그러더니 냅다 옆에 있던 수정의 등짝을 후려친다. 엎어져 주저앉는 수정.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는 영신.
정후. 성큼 영신의 옆으로 나섰다.
황사장이 다시 수정을 발로 차며
황사장 : 이런 거 말인가.
그 순간. 정후가 그 모습을 못 보게 영신을 향해 막아선다.
그 뒤로 황사장이 다시 수정을 패는 듯. 수정의 비명 소리가 들린다.
영신이 정후를 비키게 하고 나서려는 것을 완강하게 막아서며.
정후 : 선배. 나갑시다.
영신 : 비켜봐.
정후 : 무서워서 그래요. 나 더 못하겠어. 안 할래. 그만 갑시다. 예?
황사장 : 아직 가면 안 되지. 내가 아가씨한테 가르쳐줄 게 좀 많아. 배대표. 들었지. 내가 할 말이 남았다고.
정후가 보는 저기 앞, 요요와 사내들이 입구를 막아선다.
뒤에서 들리는 폭행하는 소리. 여자의 비명소리.
정후, 멈칫. 아래를 내려다본다. 영신의 손이 정후의 가슴께 옷자락을 부여잡고 있다.
정후가 기웃해서 영신의 기색을 살핀다. 영신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있다.
정후가 뒤를 돌아본다.
황사장 : 인터뷰? 그래. 내가 데리고 있는 애들 다 불러줄게 물어봐. 딴따라에 목숨 건 떨거지 같은 것들, 델고 와서
내가. 얼마나 하해와 같은 은혜를 베풀었는지. 물어봐.
그러며 묶음으로 옆의 기둥을 후려친다.
정후가 영신을 본다. 영신이 그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정후에게 더 붙는다.
정후의 옷자락을 움켜쥔 영신의 손.
영신이 용기를 내어 억지로 정후를 옆으로 밀더니 본다.
바로 앞에 보이는 광경. 황사장이 수정의 등덜미를 잡아채서 내동댕이치고 있다.
#45. 영신의 회상 / 3부 #30과 같은 공간
얼굴은 보이지 않고 하반신만 보이는 사내가 옷장 속의 어린 영신을 끌어낸다.
/ 내동댕이쳐지는 어린 영신.
/ 사내가 옷장 문을 들고 있던 막대로 콰앙 친다.
#46. 온실
황사장이 제 분에 못 이겨 두 손으로 막대를 들어 화분을 후려친다. 화분이 산산이 부서진다.
정후가 다시 영신을 막아서 영신의 어깨를 잡아 들여다보며
정후 : 선배. 나 좀 봐.
영신은 지금 눈앞의 것을 보고 있지 않다. 과호흡 증세가 시작되고 있다.
또 들리는 요란한 소리에 움찔. 영신의 귓가에 들리는 굉음.
#47. 고속도로 / 밤
갓길에서 보는 고속도로. 거대한 트럭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앞을 지나간다.
/한밤중 또 다른 차들이 앞을 질주해서 지나간다.
/그 갓길에 서 있는 다섯 살 영신.
#48. 온실
정후가 초조해지며 영신을 감싸다시피 하며 손목시계를 조작한다.
눈으로는 요요패들과 상수를 살펴보며
정후 : (시계에 대고) 지금이 적당한 시간이야.
#49. 황사장 집 밖 길
저만치 상수네 패들이 보이는 은밀한 곳 (담 위?) 대용이 귀에 꼽힌 이어셋을 조작하며 찡그린다.
대용 : 지금? 아 형. 지금 놈들이 무쟈게 많은데.
#50. 온실
넋이 나가 있는 영신.
정후가 영신의 머리를 가슴에 품어 안으며 뒤를 돌아본다.
황사장이 이쪽을 보며 막대로 가리킨다. 그 옆에 수정이 엎어져있다.
황사장 : 거기 아가씨. 일루 와봐. 인터뷰 하자고. 아주 깊게. 심도있게.
정후, 옆을 돌아본다. 상수가 정후 쪽을 돌아본다.
#51. 황사장 집 앞 길
아직 집 밖을 지키고 있는 사내들. 그 한 쪽에 세워져 있는 상수의 오픈카.
그 때 길 한쪽에서부터 요란한 굉음이 들린다.
사내들 놀라서 돌아보면 거기 대여섯 개의 오토바이가 달려오고 있다.
대부분 배달용 오토바이들. 마스크를 쓴 사내들이 둘씩 타고 있다.
앞의 사람이 운전하고 뒤의 사람은 저마다 등에 메고 있던 장난감 길다란 플라스틱 물총.
멋지게 저마다 빼어든다.. 혹자는 빙그르르 돌리기도 하고.
상수파의 사내들이 뭐야.. 놀라서 본다.
달려오는 오토바이들. 길 양쪽에는 세워져 있는 상수파의 자동차들.
오토바이족들이 그 상수파의 차에다 일제히 물총을 쏘아댄다. 각종 현란한 물감이 쏘아져 나와 차에 끼얹어진다.
상수파 사내들이 난리가 나서 쫓느라고 난장판이 된 순간.
한쪽에서부터 달려온 대용. 오픈카로 거의 날아 들어가 운전석 아래로 납작 엎드린다.
상수파 사내 중의 하나가 기척을 느끼고 돌아봤지만 대용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다시 시선을 돌려 오토바이를 쫓는다.
운전석 아래 납작 엎드린 채로 대용이 재빠른 손길로 네비게이션에 잭을 꼽는다. 잭은 대용의 휴대폰에 연결되어있다.
이어셋 통화중.
대용 : 연결 했습니다.
#52. 민자 아지트
모니터에는 그 골목의 난리법석인 모습이 찍혀서 보이고 있다.
민자가 씨익 웃으며 열손가락을 허공에 털어서 손가락을 푼 다음, 빠르게 키보드를 치기 시작한다.
자동차의 암호 신호값을 푸는 중이다.
그 옆의 모니터에 비치는 골목길 상황.
#53. 황사장집 앞 골목
오토바이들이 쌔앵 돌려서 다시 달려온다. 이번에는 오토바이 뒤에 탄 누군가가 자동차마다 밀가루 같은 것을 던진다.
물감에 밀가루에 곤죽이 되는 자동차들.
오토바이들이 우루루 빠져나가고. 상수파 사내들이 화를 내고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54. 민자 아지트
민자가 마지막 암호를 풀어 엔터를 치며.
민자 : 그라췌.
#55. 골목길
사내 하나가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차의 시동 걸리는 소리.
어. 해서 돌아보면 상수의 자동차가 부릉부릉 시동 걸리는 소리. 그러나 오픈카의 공간에 운전자는 보이지 않는다.
// 차 내부. 바닥에 납작 웅크린 대용이 손만 뻗어 재빨리 조작한다.
// 순간 비어보이는 자동차의 덮개가 빠르게 덮여진다.
그제서야 이상한 걸 느낀 상수파들이 차로 모여든다.
누군가 앞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보려는 순간. 와이퍼와 물이 한꺼번에 작동을 한다.
차문을 열려하지만 문이 잠겨있다.
다음 순간. 차가 부웅 출발을 해버려서 주위에 모였던 사내들이 기겁을 하며 피한다.
#56. 온실
상수가 휴대폰을 받는다.
상수 : 뭐야. (듣다가) 뭔 소리야. 내 차에 귀신이 들렸다니. (황사장에게) 잠시 가보고 오겠습니다.
빠르게 나가며 빠르게 따라온 자들과 남을 자들을 지시한다.
요요와 몇 사내가 상수의 뒤를 따르고 서너 명이 남는다.
그런 상황을 보던 정후가 어.. 해서 돌아보면 품안에 있던 영신이 스르르 주저앉고 있다.
두 손을 모아 봉지처럼 만들어 숨을 몰아쉰다. 스스로 과호흡을 조절하려 하는 중.
황사장이 그런 영신을 향해. 다가온다. 막대 묶음을 땅에 질질 끌며. (악몽 속에서 보던 것처럼)
영신의 시선이 어쩔 수 없이 그 막대를 본다.
황사장 : (영신의 앞에 쭈그려 앉으며) 기자 아가씨. 누가 맞는 거 첨 봤어? 아니 보지도 못한 걸. 그렇게 겁도 없이 기사로 쓰면 되나.
기자는 말이야. 발로 뛰어서 제 눈으로 보고 제 귀로 들은 것만 써야지. 요즘은 신문사 입사할 때 그런 거 안 가르쳐주나?
자.. 제대로 봤으니까 이제 써야지. 응? 뭐라고 쓸래? 한번 읊어봐.
황사장이 떠드는 동안. 그 옆의 정후가 주변의 기물들을 빠르게 살펴보고 있다. 공간 구성 능력이 발휘되고 있는 중이다.
바로 옆에 늘어져 있는 줄. 그 줄이 이어진 곳. 천정 곳곳에 넝쿨식물의 화분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그 아래에는 화분들이 늘어져 얹혀진 선반이 있고. 그 선반 한쪽 끝에는 키가 큰 화분이 있다.
선반의 한쪽 끝에는 석회?가 쌓여있는 손수레가 있고. 그 손수레에 삽이 하나 꽂혀 있다.
그 물건들 사이를 생각 속의 줄이 기하학적으로 이어졌다가 풀어졌다가..
그러다가 정후가 한곳을 기웃 본다. 거기 화분들을 얹은 선반의 한쪽 다리가 좀 기울어져 있다.
계산 끝났다. (현장의 상황에 따라 알아서 배치, 계산해주세요. 일단 대충.)
#57. 황사장 골목 앞
부앙.. 소리도 요란하게 상수의 오픈카가 골목을 달린다.
대문에서 달려나온 상수와 요요. 바로 그 앞을 지나쳐 달려가는 오픈카.
상수 : 뭐해. 저거 잡아.
잡으려고 달려가는 요요. 마악 따라잡으려는데. 차가 멈춘다.
어어.. 하는 새 요요를 향해 후진해 달려오는 자동차. 속도가 장난 아니다.
요요 별수 없이 어어어.. 하더니 뒤돌아서 도망치기 시작한다.
상수가 옆에서 차에 잡아타려고 달려오지만 결국 놓치며 바닥을 구른다.
상수, 으아아아.. 폭발하기 직전이 된다.
#58. 온실
황사장이 영신의 턱에 손을 대며
황사장 : 어이 고개 좀 들어봐. 그렇게 무서웠어?
하는데 영신이 간신이 손을 올려 황의 손을 뿌리치더니.
영신 : 재.. .재..
황사장 : 뭐? 안 들리는데.
하면서 귀를 갖다 댄다. 그 귀에 대고 영신 호흡이 가쁘지만.
영신 : 재.. 재활용도.. 안되는 개.. 쓰레기.
황사장이 어이가 없어 영신을 돌아보는 그 순간. 정후가 옆의 줄을 슬그머니 휘어잡더니 냅다 당긴다.
휘청, 매달렸던 자리에서 굴러 떨어진 화분이 그 아래 선반 위로 떨어진다.
그 요란한 소리에 모두 이쪽을 쳐다본다.
그 선반 아래에 기울어져 있던 다리가 그대로 하중을 받아 휘청. 그런데 버틴다.
정후가 슬쩍 남들 모르게 바닥에 있던 벽돌 조각을 발로 찬다.
그 벽돌이 선반 다리를 치면서 다리가 휘청 기울어진다.
선반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며 그 위에 있던 화분들이 줄줄이 경사를 따라 무너져 내리며 석회가 담긴 손수레를 덮친다.
삽이 튕기며 석회가 사방에 날린다.
황사장이 놀라서 저만치 도망치는데. 바로 그 앞으로.. 선반의 끝에 있던 큰 화분이 질질질 미끄러져 내려온다.
황사장이 기겁을 해서 다른 곳으로 피하고, 화분은 수레에 퍽 파묻힌다(수레가 뒤집어진다).
석회가 사방에 퍼지며 시야가 가려진다.
영신이 죽을 듯이 기침을 하다가 주위를 둘러본다. 비틀거리며 일어서며
영신 : 봉수야. 봉숙아.
석회가루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정후가 영신을 보더니 울먹이며
정후 : 선배.
영신 : 너 괜찮아?
정후 : 살려주세요. 으엑... (기침을 한다)
영신. 고개를 저어 정신을 차리더니 비틀거리며 쓰러지려는 정후의 손목을 잡는다.
영신 : 봉숙아. 날 봐. 나만 잘 따라와. 할 수 있지?
정후. 끄덕이며 기침을 한다.
영신이 가쁜 숨을 쉬며 주위를 둘러본다. 사내들이 황사장을 보호하겠다고 기침을 하며 달려오고 있다.
그런 사내들을 피하며 영신이 정후의 손목을 잡고 입구 쪽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영신에게 손목이 잡힌 채 그 뒤를 따라 달려가는 정후. 저도 모르게 싱긋 웃음이 나온다.
영신이 이렇게 반응할 줄 알았다.
=5부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