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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자주재배 농부들의 둥지 개마고원 원문보기 글쓴이: 개마고원
먹이의 진실9 – 魔의 연금술, 모조식품
경칩이 되면 삼라만상이 겨울잠을 깨고, 춘분이면 천하의 만민이 농사를 시작합니다. 서릿발이 사라지고 부풀어오른 땅을 보면 숨구멍이라도 낸 듯이 작은 구멍들이 송송 나있습니다. 농부들도 기지개를 펴고 논으로 밭으로 부지런한 걸음을 옮깁니다. 작년 겨울 소설에 심은 마늘에서는 작은 싹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마른 풀 이불을 덮고 그 위에 또 눈 이불을 두껍게 덮고 추운 겨울을 견딘 마늘이 드디어 봄을 알립니다. 참으로 신비한 것이 생명입니다.
농촌의 봄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농부들은 하루하루 달라져가는 바람의 결과 흙의 빛깔과 대기의 냄새에서 절기를 느끼고 봄이 다가옴을 압니다. 도시의 봄은 어떻게 올까요? 이전에는 시장에 나오는 먹거리들에서 봄을 느꼈지만, 지금의 현대화된 마트에서는 계절을 분별할 수 없습니다. 다만 달력의 숫자와 아이들 학교일정과 TV를 통해 봄이 왔음을 압니다. 조금 더 지나면 사람들 옷차림에서 확연한 봄을 느끼게 되겠지요. 하지만 TV 속의 봄에는 바람의 결도 흙의 빛깔도 대기의 냄새도 없습니다. 도시의 봄은 느끼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러한 일이 세대를 이어 계속된다면 우리의 감각은 어떻게 되어갈까요? 쉼 없이 정교화 되어온 진화의 가설들 덕분에 우리는 그 미래를 능히 예측할 수 있습니다.
저 같은 초보 도시농부는 아직 절기를 모릅니다. 부드러워지는 바람의 결과 짙어져가는 흙의 빛깔과 온화해지는 대기의 냄새를 맡아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자연을 느끼는 감각과 그 의미를 읽어내는 능력이 퇴화된 것이지요. 달무리를 보고 날씨를 점치고 별빛을 보고 바람의 세기를 예측하며 나오는 풀을 보고 파종의 때를 아는 농부들을 보면 신비합니다. 하늘은 인간과 더불어 의논하지 않으나 인간은 열려진 오감으로 그것을 느끼고 문화적 전승을 통해 그 의미를 이해해왔습니다. 도시와 농촌을 오가며 도시의 인간이 고립되어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자연과의 연을 끊고 문화적 전승과 단절되어 감각의 퇴화를 겪고 있는 것이 어쩌면 도시의 사람들입니다.
인류를 인류로 진화하게 만든 가장 탁월한 선택은 ‘잡식’이라고 합니다. 많은 인류학자들이 인간의 뇌를 이토록 크고 복잡하게 발달시킨 것이 바로 잡식에의 적응이었다는데 동의합니다. 자연의 거대한 파노라마 속에서 무엇을 먹고 무엇을 먹지 말아야 하는지를 분별해내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 고도로 진화한 인류의 뇌를 만들어왔다는 것이지요. 그러한 경험을 통해 축적한 먹거리에 대한 풍부한 정보와 지혜가 농축되어있는 것이 바로 문화입니다.
문화는 전적으로 자연과의 인연 속에서 먹거리와의 관계 속에서 탄생한 것입니다. 문화가 지역성과 특수성을 갖는 이유입니다. 어떤 것을 먹으면 죽는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필시 그걸 먹고 죽은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지요. 실로 숱한 죽음을 통해 얻어지고 전해진 고귀한 지혜라고 할만 합니다. 그리하여 문화적 전승은 돌발적인 죽음을 피해 맛과 영양을 제공해주는 먹거리에 관한 무한한 지혜를 우리에게 전해주었습니다. 그 뿐 아닙니다. 문화적 전승 속에는 선택된 씨앗과 동물을 가꾸고 기르는 농사와 목축의 기술에다 적절하고도 절묘한 조리법까지 담겨있습니다. 문화적 전승은 먹거리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자연과의 인연, 선조들과의 인연을 알게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인간은 수렵과 채집으로 삶을 꾸려갔던 먼 과거의 인간들보다 발전한 것일까요? 그러한 지혜를 이어받은 우리는 그들보다 더 현명하고, 더 능력있고, 더 분별력 있는 존재로 되어왔을까요? 그런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일들을 우리는 해냅니다. 단 며칠 만에 산을 허물고, 단 몇 달 만에 물길을 바꾸고, 하루 낮 하루 밤이면 지구 반대편으로도 너끈히 갈 수 있습니다. 형형색색의 입을 것들이 지천에 널리고, 포장만 뜯으면 먹을 수 있는 온갖 현란한 먹거리들이 공장에서 1분에도 수 백 개씩 쏟아져 나옵니다. 그 무한해 보이는 풍요가 과연 우리의 발전을 말해주는 것일까요? 다음의 이야기 속에서 한번 생각해봅시다.
400ml 비커에 물을 담는다. 타르색소인 황색4호를 넣으면 연노랑의 예쁜 레몬색깔이 나온다. 여기에 산미료 구연산을 넣으면 상큼한 맛은 물론 변색을 방지해 보존기간까지 늘려준다. 아스코르빈산 0.2그램을 첨가하면 간단히 건강에 좋은 것처럼 보이는 ‘비타민C강화’딱지를 붙일 수 있다. 다음으로 액상과당 40ml(10%)를 왕창 부어주면 새콤달콤한 환상적인 맛이 되는데 이것으론 충분치 않다. 이것을 사람들이 ‘먹는 것’ 이라고 여기려면 과일흉내를 내야 한다. 그 요구도 간단하고 저렴하게 해결된다. 화학적으로 제조된 레몬향을 첨가하고, 톱밥으로 만든 셀룰로오즈를 섞으면 과일주스처럼 걸죽하고 레몬향이 듬뿍 풍기는 완벽한 레몬주스가 완성된다. 이 용액을 페트병에 담고‘비타민C강화’,‘설탕 무첨가’ 를 큼직하게 써넣은 라벨을 붙이면 마트선반에서 화려한 모습을 뽐내는 레몬주스의 탄생이다.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해’ (식품업체들이 좋아하는 문구다.) 멜론주스와 오렌지 주스도 있어야 한다. 청색1호와 황색4호를 혼합하고 멜론향을 첨가하면 멜론주스가, 연지벌레를 갈아 만든 코치닐 색소와 오렌지향을 첨가하면 오렌지 주스가 된다. ‘고객층을 다양화하기 위해’ (마켓팅에 필수적인 문구다.) 아이들까지 끌어들이고 싶으면, 첨가하는 액상과당의 양을 늘려 더 달게 만들고, 로열티를 좀 지불하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유명 캐릭터 모습을 라벨에 인쇄한다. 라벨에 인쇄한 ‘비타민C강화’와‘설탕무첨가’그리고 화려한 캐릭터는 주스의 가격을 좀더 올려 더 많은 이윤을 보장하는 합법적이고도 영리한 방법이다. ‘천연’과 ‘자연’을 선호하는 웰빙의 유행은 또 다른 시장을 창출했다. 이 용액에 고온살균처리한 과일농축액을 적당히 주입해주면 라벨에 ‘천연과즙’,‘프리미엄’이라는 문구까지 삽입할 수 있으니 업체를 한층 살찌우는 고부가가치 상품이 된다. 유치원에서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었을 때 이 용액을 먹으려고 하는 아이들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상품으로 포장된 주스를 보여주었을 때 그 용액을 먹어보지 않은 아이들은 또한 아무도 없었다. |
정육생산업체에서 고기를 분해해 포장하는 공정에서는 많은 부산물이 발생한다. ‘잡육’이라 불리는데 하품은 거의 쓰레기 산업폐기물에 해당한다. 하지만 흐물흐물해지고 물이 질질 흘러 도저히 먹을 상태가 못되는 최하품 잡육도 명색은‘고기’다. 20~30종류의 첨가물로 범벅을 하면 충분히 열광적으로 대접받는 인기제품으로 둔갑할 자격이 생긴다. 계란생산이 끝난 싸구려 폐계육을 저며 잡육과 섞어 양을 늘린다. 그냥은 질겨서 못먹는다. 그래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인조육’이라고 부르는 대두단백이다. 이 ‘대두단백’이 마법의 물질이다. 식용유를 짜고 남은 찌꺼기인 대두박에서 단백질을 분리해 만드는데, 햄버거 패티나 햄, 소시지, 어묵, 맛살 제조시에 값싸게 양을 늘려 엄청난 원가절감을 해주는 물건이다. 원료의 대부분이 유전자조작 콩이고, 각종 화학처리공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공업제품이지만 육류가공업계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목이다. 어이없는 건, 이것이 미용, 건강, 노화방지에 좋은 식물성 단백질이라는 정보들이 인터넷에 넘쳐나는 것이다. 기억에도 새로운 중국산 멜라민 파동이 바로 이 대두단백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음 공정은 이렇게 양을 늘리고 부드러워진 모조고기에 맛을 내는 일이다. 비프농축액으로 고기향을 내고 라드와 변성전분을 넣어 씹을 때 매끄럽게 하며, 제조시 공장의 기계작동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증점제와 유화제를 넣는다. 색소를 첨가하여 먹음직스러운 색깔을 만들고, 보존기간을 늘리기 위해 pH조정제와 산화방지제를 첨가하면 일단 미트볼이 완성된다. 여기에 빙초산을 희석해서 캐러멜색소로 색을 내고 화학조미료로 맛을 낸 모조 소스, 그리고 토마토 페이스트에 색소와 산미료와 증점제를 넣어 만든 토마토케첩을 발라 진공팩에 넣고 가열살균하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미트볼 완제품이 탄생하는 것이다. 마트선반에서 장바구니에 집어넣어 오면 전자레인지에 2분 돌려 접시에 담는 걸로 한 끼 식사가 해결된다. 먹는 것도 잠깐이다. 두어 번만 씹으면 바로 목구멍으로 넘어가니까. |
고기로 이윤을 늘리는 방법 중에 단연 으뜸은 햄이다. 햄에는 기본적으로 소금과 설탕과 향신료가 들어간다. 순수한 고기에 천일염과 삼온당과 향신료만을 넣어 만든 고급제품은 비싸다. 마트에서 구입하는 일반적인 햄은 대개 푸딩햄이다. 이 푸딩햄은‘물먹인 햄’이다. 이 제조법으로 돼지고기 100kg을 120~130kg으로 간단히 만들 수 있다. 돼지고기에 물을 주입해 양을 늘리려면 특별한 방법이 동원된다. 물에다 겔(gel)화제를 녹여 젤리액을 만든다. 겔화제로 쓰이는 것이 대두단백, 난백, 유단백 등인데 물에 녹고 굳을 수만 있으면 무엇이든 쓸 수 있다. 이 젤리액을 바늘이 100개 정도 달린 기계를 사용해 고기덩어리에 주입한다. 주입이 끝나면 균일하게 퍼지도록 주무르고 밟고 두들긴다. 엉뚱한 것을 넣어 스펀지처럼 말랑해진 고기덩어리를 두툼하고 먹음직스러운 햄으로 둔갑시키는 마술이 각종 첨가물에 의해 이루어진다. 모양을 잡고 탄력을 주기 위해 변성전분같은 증점제와 인산염같은 결착제가 사용되고, 색깔과 풍미증진을 위해 발암물질로 지목된 아질산나트륨 같은 발색제가 쓰인다. 맛과 향은 화학조미료, 단백가수분해물, 돈육농축액이 맡고, 보존기간 늘리는 건 소르빈산 같은 합성보존료와 항산화제가 책임진다. 주입하는 젤리액과 첨가물을 늘리면 대형마트의 미끼상품이 되어 기획상품이란 이름을 달고 저렴하게 팔려나간다. |
국민식품, 빈자들의 일용할 양식 라면은 완전한 공업제품이다. ‘라면 맛은 스프 맛’이라는 말처럼 튀겨진 면을 갖가지 요란한 맛으로 먹을 수 있게 해주는 스프의 정체를 보면 이 말이 확실해진다. 값싼 식염 2.5~3.5g에 화학조미료를 넣고, 쇠고기농축파우더나 해물농축파우더 등을 소량 첨가한 단백가수분해물을 넣는다. 여기에 캐러멜, 후추분말, 양파분말, 마늘분말 등을 넣고 특정한 맛에 따라 향신료를 첨가한다. 시원한 맛을 내주는 산미료와 국물을 걸죽하게 만들어주는 증점제도 반드시 들어간다. 라면스프의 맛을 결정하는 건 식염과 화학조미료와 단백가수분해물이다. 라면스프 외에도, 매일 한 봉지 이상은 먹어치우는 스낵과자의 씨즈닝, 간편하게 주부들의 일을 덜어주는 육수원액(가루) 등이 모두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 이 세가지가 공업적으로 생산되는 모든 가공식품의 맛을 구성하는 뼈대이자 근본물질인 황금트리오다. 이들의 위세는 대단하다. 짜서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소금물도 화학조미료와 단백가수분해물을 첨가하면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이 황금트리오에 풍미가 다른 농축분말이나 향료를 첨가하면 원하는 맛을 무궁무진하게 만들어낼 수 있다. ‘단백가수분해물’은 낯선 물질이다. 30년 전에 등장해 단순한 화학조미료의 맛을 뛰어넘는 깊고 다양한 맛으로 가공식품업계에 날개를 달아준 주역이다. 이것은 고기나 콩 등의 단백질을 분해하여 얻은 아미노산인데, 포장지에는 (천연)조미료나 아미노산으로 표기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이 천연재료라고 막연히 착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대두박, 젤라틴, 어분 등의 단백질을 염산에 처리하여 중화시킨 물질로 천연의 것이 아니다. 염산의 작품인 이 단백가수분해물은 발암물질인 염소화합물을 만들어낸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또한 전통적인 간장과 된장의 천연 아미노산이 만들어내는 깊은 맛을 왜곡시켜 맛의 감각을 퇴화시키는 주범이기도 하다. |
첨가물과 가공식품업계에서 일했던 사람의 이야기들입니다. 아주 일부분에 불과하지요. 첨가물로 범벅된 가공식품의 이야기를 하려면 두려움이 앞섭니다. 어디에서 시작하고 어디에서 끝내야 할지 막막해지지요. 모든 화학물질은 음식이 아닙니다. 먹어도 되는 화학물질이란 없습니다. 완벽하게 배설되는 화학물질도 없습니다. 사람이 평생 먹어도 이상이 없을 만한 양을 ‘일일섭취허용량’이라고 내세우지만 그것은 기만입니다. 사람이 그것만 먹는 경우는 없으니까요. 사람에게 해가 없다면 그런 몰지각한 허용량을 계산해내는 수고도 필요없을 겁니다. 가공식품을 통해 먹는 모든 화학물질은 우리 몸 속에서 발암물질이 되고, 뇌와 신경세포를 공격하고, 호르몬 대사를 교란시키고, 면역기능을 떨어뜨리고, 영양 불균형과 정서불안을 불러오고, 노화를 촉진시킵니다. 사람의 몸에 서서히 축적되어 질병을 불러들이고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것들을 먹으면서 스스로 현대화되고, 문명화되고, 고급화되고, 편리해지고, 위생적으로 되었다고 믿습니다. 미디어를 통해 융단폭격처럼 쏟아지는 광고는 그것을 소비하는 일이 사회적 승인투쟁에서 승리하는 길임을 끊임없이 주입합니다. 쾌적하고 세련되고 화기애애한 이미지를 무기로 하여, 브랜드로 각인된 기업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강요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식품산업의 볼모로 잡혀 그들의 이윤과 우리의 건강을 맞바꾸고 있습니다. 그래도 먹습니다. 알고도 먹고 모르고도 먹습니다. 남들이 먹으니까 먹고, 남들이 병에 걸리니 나도 걸립니다. 먹고 죽은 귀신 때깔도 곱다니까 먹습니다. 하긴… 이런 것들을 먹으면 안된다는 것을 우리의 위대한 선조들처럼 죽음으로써 증명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우리는 그렇게 장막에 갇혔습니다.
이런 가공할 제품들을 우리는 ‘가공식품’이라고 부릅니다. 그 정체에 비해 너무 관대한 이름이지요. 그것들은 결코 ‘가공’이 아닙니다 ‘모조’입니다. 이 ‘모조식품’들이 만들어지는 원리는 간단합니다. 양 늘리기, 유통기간 늘리기, 저질재료 감추기, 편리하게 먹게하기, 세련되게 포장하기, 다섯 가지입니다. 이 다섯 가지는 다시 하나로 수렴되지요. 바로 ‘원가절감' ‘이윤추구’입니다. 먹을 것이 이윤추구의 중요한 소재로 된 것은 사람에게 있어 커다란 재앙입니다. 동시에 자본주의라는 무한이윤추구사회가 결국 도달할 수밖에 없었던 필연이기도 합니다.
사람의 지위가 지속적으로 높아져온 것이 인간의 역사라고 배웠습니다. 과거 노예제 사회나 군주제 사회, 근대사회와는 달리 모든 사람이 사회의 주인으로서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지게 된 것이 현대사회라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먹을 것을 놓고 벌어지는 이 참혹한 현실은 사람의 지위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던져줍니다. 사람이 가장 높은 지위를 갖는다면 사람에게 이런 것을 먹일 수 있을까요? 사람의 지위보다 높은 자리를 차지한 것이 이윤일 때만 가능한 일입니다. 이런 사회를 사람을 위해 구축된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런 사회에서 사람은 도구가 될 뿐입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지갑을 열어 돈을 지불할 때에만 온전한 지위를 가진 사람으로 대접받습니다.
우리는 자연의 맛을 느끼는 감각을 잃었습니다. 하늘은 사계절을 알려주고 땅은 먹고 입는 재물을 낳아주지만 현대인은 그것을 알아보고 읽어내는 감각과 지혜를 잃었습니다. 현대인은 먼 과거의 선조들보다 무능합니다. 추위에도 더위에도 약하고, 면역력과 저항력도 떨어집니다. 더 빨리 달리지도 못하고 더 멀리 걷지도 못합니다. 더 잘 들을 수도, 더 잘 볼 수도 없고 냄새에도 무딥니다. 뼈와 근육도 약하고 힘도 떨어집니다. 신체적 능력뿐 아니라 정신적 능력도 퇴화되고 있습니다.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사고능력을 잃고 손익만을 따지는 사술과 궤변에 휘둘립니다. 머지 않은 미래에 인간에게 남는 능력이란 손가락으로 단추를 누르는 정도뿐일지도 모르지요.
하늘을 날고 바다 위를 달린다고 하지만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기계가 하는 일입니다. 현대인은 기계에 의존해 환각에 빠졌습니다. 능력을 잃어가면서 능력을 갖게 되었다고 착각합니다. 사실상 인간은 퇴화되고 있습니다. 이미 피크가 지났다는 경고에 봉착한 기름에너지가 떨어지면 신출귀몰한 인간의 능력도 함께 끝납니다. 이슬람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답니다. “할아버지는 낙타를 타고 아버지는 자가용을 탄다. 아들은 제트기를 타지만 손자는 낙타를 탄다.” 그럴 듯 한가요? 글쎄요… 뭐 낙타가 남아있다면 타게 되겠지요. 저에게는 걷는 게 더 실제에 가까워 보입니다.
우리는 분별력을 잃어버렸습니다. 과거 우리의 선조들은 먹을 것과 먹지 못할 것을 정확하게 분별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들을 분별해내는 온전한 감각과, 윗 세대로부터 전해지는 문화적 전승을 갖고 있었습니다. 현대는 ‘단절의 시대’로 불리게 될 것입니다. 현대인은 먹을 것을 분별하는 감각도 잃어버렸고, 과거 시대로부터 전해진 문화적 전승도 잊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후손에게 전해줄 어떤 것도 갖지 못할지 모릅니다. 우리의 후손들은 아마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들에게 있어 현대는 그야말로 미싱링크(잃어버린 고리)가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먹을 것과 먹지 못할 것에 대한 분별력이 이토록 무디어지고 흐려졌던 시대는 없었습니다.
인간의 고상함은 먹을 것에서 나옵니다.
인간의 고귀함은 먹을 것에서 지켜집니다.
장막을 걷으면 전혀 다른 것을 느끼게 됩니다.
감각이 돌아오고 진정한 문화에 눈을 뜹니다.
장막을 걷어내는 일을 도와줄 몇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 온 삶을 먹다 / 낮은산
* 맛있는 식품법 혁명 / 김영사
* 인간이 만든 위대한 속임수 식품첨가물 / 국일미디어
* 음료의 불편한 진실 / 비타북스
*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1, 2 / 국일미디어
* 차라리 아이를 굶겨라 / 시공사
* 독소 / 랜덤 하우스
2013년 3월 개마고원에서
첫댓글 ㅋㅋㅋ.
이제 아셨구먼유.
제 맛이 아닌 모든 식품은 조작된 맛의 비밀이 숨어 있지요.
그래서 농사도 마찬가지예요.
자연생산은 맛이 그만큼 있다고 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