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용장이었으나 배신자로 기억된 맹호, ‘여포’ 편
십팔사략 속 인물들의 매력을 찾아서(38)
여포의 초상화 (그림출처 위키백과)
<뒤통수를 친다>는 관용어는 우리 사회에서 흔히 배신의 행위를 지칭한다. 이 뒤통수를 치는 행동은 숨 가쁘게 돌아가는 이 시대를 살아간다는 나름 합리적인 핑계 속에서 일신의 이익과 생존을 위해 자주 목격되기도 한다. 오랜 시간을 정과 신의로 소통하며 좋은 추억을 나누었더라도 이 유쾌하지 않은 행동은 배신의 피해자이든 가해자 모두에게 남몰래 괴로워할 쓰린 상처를 남기기 일쑤다. 물론 양심이라는 도덕적 기제의 작동이 더딘 사람에게는 잠깐 지나갈 불편한 상황처럼 전혀 힘든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대다수가 역사 속 인물들 중 배신자로 많이 떠올리는 이는 아마 ‘여포’일 것이다. 여포는 재미나게도 젊은 세대들에게 배신자의 이미지보다 다른 의미를 갖는 신조어로 더 친근한데, 바로 현실 세계에서는 소심하여 말 한마디 꺼내는 것조차 부끄러워하나 온라인에서의 익명성을 방패로 맹수처럼 용감해지는 이를 가리키는 ‘방구석 여포’라는 단어이다.
물론 과장된 표현이지만 중국 역사 속 최고 용장들이 거의 반이나 출현했다고 말하는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 속에서 최상위급의 무예를 갖춘 여포는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실력자임에도 불구하고 경박한 처신과 지모가 모자란 배신자로 등장한다. 나관중의 소설 뿐 아니라 ‘진수’의 정사 <삼국지>에도 그의 경솔한 모습들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이 나오는데, 어찌하여 천하 최고의 무장으로 이름을 날리던 그가 이런 형편없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는지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인중여포 마중적토’라고 일컬어지는 오늘의 주인공 여포의 자는 ‘봉선’으로 지금의 내몽고 포두 서북쪽인 후한 말 오원 구원 출신이라고 한다. 그의 고향은 오로도스 사막에 가까운 몽골 지역으로 당시 한족들이 두려워하고 가장 싫어한 흉노족의 거주지였다. 물론 여포가 흉노족이라는 확실한 역사적 증거는 없다고 한다.
출중한 무예를 갖추었으나 그에 걸맞은 인격과 지략은 부족했다고 알려진 여포
(중국드라마 '신삼국지' 중에서)
달리 용맹하고 사나운 성격과 함께 몸놀림이 재빠른 여포는 그 누구라도 보면 탐낼 정도로 뛰어난 무공의 소유자였다. 그의 능력을 보고 처음으로 발탁한 이가 병주자사 ‘정원’인데,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정원이 여포의 무예에 반하여 그를 자신을 수행하는 이로 씀과 동시에 양자로 삼았다고 하나, 역사서인 정사 <삼국지>에서는 그러한 사실이 보이지 않는다.
상관을 따라 수도 낙양으로 간 여포는 그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무시무시한 권력자를 만나게 되는데, 악명으로 이름을 떨쳐 후한 말을 흔들었던 ‘동탁’이다. 그 또한 무장이었던 동탁은 한눈에 여포의 출중한 능력을 알아보고는 본인의 수하로 만들기 위해 수를 쓴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극적 재미를 더하기 위해 동탁이 명마인 적토마를 여포에게 선물하여 양부이자 상관인 정원을 암살하고 자신에게 의탁하도록 유도했다고 하나, 동탁을 만나기 전 이미 여포는 적토마를 소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어찌되었던 이전 상관을 냉혹하게 등지며 배신의 여정을 시작한 여포는 동탁이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부자지간의 관계를 맺게 된다. 여포는 이내 새 상관을 호위하며 정원에게서도 인정받은 무서운 무예 실력으로 동탁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조정의 다른 이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든다.
하나 사납고 괴팍한 성정의 동탁은 자신의 심복이자 양자라고 아끼는 여포가 심기 거슬리는 언행을 하자 이를 괘씸히 여겨 그에게 창을 던지는 무모한 일을 벌인다. 동탁이 얼른 여포에게 사과하고 그의 마음을 풀려고 노력하였지만, 이 일로 그의 양자는 동탁에게 앙심을 품게 되고 여포의 배신자로서의 두 번째 이력을 만들게 되는 계기가 된다.
양부이자 상관인 동탁에 대한 충성심이 와해되기 시작할 무렵, 동탁을 제거하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왕윤’이 이런 여포의 마음을 이용하여 동탁 암살 작전을 기획한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동탁을 제거하려는 왕윤이 절세미녀 ‘초선’을 통해 미인계로 동탁과 여포의 사이를 이간질하는 모습이 나온다. 알다시피 초선이라는 인물은 나관중이 창작한 허구의 인물일 뿐, 정사 <삼국지>에서는 여포가 동탁을 시중드는 여인과의 사통 문제로 근심하자 왕윤이 이 일을 이용하여 그에게 동탁을 암살하여 한 왕조의 공로자가 되도록 부추겼다고 전한다.
왕윤과 손을 잡고 동탁을 암살함으로서 또 다시 배신의 행위를 벌인 여포는 분무장군이 되어 온후(溫候)에 봉해져 권력을 쥐게 되나, 동탁의 또 다른 심복이었던 ‘이각’과 ‘곽사’의 십만 군사에게 패하여 장안성에서 도망가고 만다. 두 번째 배신으로 화려한 장밋빛 꿈을 꾸었던 여포는 잠시 권력의 단맛을 맛보고, 생존을 위한 힘겹고 기나긴 방랑의 시절로 접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최고의 용장은 이제부터 경박한 반복무상(反覆無常)으로 인해 세상의 멸시를 받게 된다. 이각과 곽사에 의해 수배령이 내려진 여포는 ‘원술’에게 의탁하려고 하였으나, 상관을 두 번이나 죽인 여포를 원술은 거절해 버린다. 다행히 원술의 이복형제 ‘원소’는 그를 받아들여 여포를 이용하여 ‘장연’을 토벌한다. 하나 공을 세웠음에도 원소는 그를 죽이려했고, 어쩔 수 없이 여포는 진류의 ‘장막’에게 의탁하여 원주목이 된다. 이후 조조에게 패한 여포는 ‘유비’에게 도피한 뒤, 원술을 공격하여 하비를 점령 후 스스로 서주자사라 칭한다. 그러나 나름의 주둔지를 만들고 싶었던지 떠돌이인 자신을 받아준 유비의 신의를 저버리고, 여포는 원술과 다시 손잡고 하비에서 유비를 공격한다.
하나 생존을 위한 배신의 여정은 뜻대로 계속되지 못한다. 유비를 도운 조조에게 보기 좋게 패한 맹장 여포는 부하들의 배신으로 조조의 앞에 붙들려온다. 자신의 목이 곧 떨어질 상황에서도 여포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조조에게 넉살좋게 “명공은 보병을 거느리고 나 여포에게는 기병을 거느리게 해주면 천하의 평정이 쉬울 것이다”라고 스스로를 구명하기 위해 솔깃한 제안을 한다. 평소 인재영입에 욕심이 많은 조조는 여포의 화려한 무예 실력에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하였으나, 곁에 서있던 유비가 냉정하게 “정원과 동탁을 죽인 것을 잊었느냐”라고 하자 조조는 이내 마음을 바꾼다. 유비에게 분노한 여포는 “귀 큰 놈이 가장 믿지 못할 인간이다”라고 악담을 퍼부으며 최고의 용장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초라한 죽음을 맞는다.
여포가 장군들의 무예를 평가하고 사열을 받은 점장대
(사진출처 아주경제 '걸어서 삼국지기행 33 허난성편' 중에서)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서 그의 출중한 무공을 화려하게 소개함과 동시에 일신의 안위와 욕심을 위해 자신을 인정해주고 중용한 이와 힘들 때 도와준 이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때리는 여포의 행보를 더욱 치졸하고 비겁하게 이야기한다. 두려움 없이 호랑이처럼 용맹하게 전장을 누비는 용장의 모습은 어리석고 옹졸한 처신으로 인해 빛이 바래고 만 것이다. 정사 <삼국지>의 저자 진수조차 “천박하고 교활하며 번복하기를 잘하며 오직 이익만을 보고 일을 도모하였다”고 평가하는 것을 보면, 사람 간의 도의보다 현실의 이익을 우선시한 여포의 삶은 그 누구라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어버리는 듯하다.
물론 이러한 여포의 행보를 변호하는 의견들 또한 존재한다. 즉, 그의 배신의 여정을 한족이 아닌 흉노족 출신이기에 상이한 삶의 방식으로 인한 민족 간의 불통의 문제와 한 치 앞도 모르는 매우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는 어쩔 수 없는 처절한 몸부림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먼저 그의 이익만을 탐하는 천박한 행보는 한족들이 이해 못하는 유목민 흉노족의 독립적인 생존방식에서 기이한 것이라는 것이다. 흉노족 거주지에서 출생한 그 또한 흉노족의 후예일 터, 정착하지 않고 이동하며 그 상황에 맞추어 생존하는 흉노족과 정착하여 농사를 지으며 형식적인 예법을 중요시하는 한족과의 민족적, 문화적 괴리감으로 인해, 한족들이 보기에 일신의 영달을 위해 배신을 밥 먹듯 행하는 여포의 모습에 경멸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유비에게 자신의 부인의 침실에서 술을 마시고 또 그 부인에게 술을 따르도록 한 모습은 예법을 중시하는 한족의 입장에서는 패륜적인 모습이나, 흉노족에게는 최고의 예우로 여겨지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문화 상대주의 관점에서 본다면 납득이 가능하나, 한족의 사회에서 무장으로 활동하는 한 이민족의 이질적인 모습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그의 상황을 설명한다.
또한, 혼란한 후한 말의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배신이란 행보는 당연할 수밖에 없다고 하며 여포를 변호하는 의견도 있다. 특히, 자신을 신뢰하여 곁에 둔 정원과 동탁은 여포의 능력을 이용만하지 진실로 그를 아껴 출세의 기회를 주지 않았기에 그 둘을 암살한 것은 여포 나름의 신분상승을 위한 전략이라고 두둔한다. 정원과 동탁 모두 양부라고 알려져 있지만 정원이 양부라는 말은 정사 <삼국지>에는 찾아볼 수가 없고, 동탁과의 부자 관계 또한 동탁이 여포를 떼어놓지 않으려는 술수였을 뿐더러 애틋한 부자간의 정이 솟아나기에는 1~2년이라는 시간이 짧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원말에 살았던 한족 출신 나관중은 그들의 원수인 오랑캐에게 지배당하는 열패감에 흉노족으로 추측되는 여포를 더욱 경멸스럽고 형편없는 인물로 과대 포장했을 수 있다는 추론도 있다. 이는 나관중이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한 왕조의 일족인 유비를 고고한 인격의 소유자로 묘사하고 조조와 같은 이를 교활한 인물로 설정한 부분에서도 동일한 그의 관점을 알 수 있다.
여포의 최후 (중국드라마 '신삼국지' 중에서)
여포가 한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예의와 도리가 없는 비굴한 인물이든, 문화와 도덕적 기준이 다른 사회에서 이질적인 행위로 억울하게 매도된 인물이든 분명한 것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그를 신뢰한 이들을 배신하고 죽이고 훔쳤다는 것은 변치 않은 사실이다. 물론 관습이 전혀 다른 사회에서 이방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은 힘든 일이나, 이미 정원에게 발탁되어 무관으로서 한 나라의 관료 사회를 경험한 인물이었다. 즉, 여포가 활동하고 살아갈 세계에 대한 배움의 시간과 기회는 최소한 주어졌을 것이고 스스로 수없이 되돌아볼 성찰의 순간 또한 여러 번 존재했을 것이다. 물론 특정 민족이나 국가가 우월한 생활양식을 지니고 있다는 판단과 편견은 옳은 일이 아니다. 그러나 신의를 저버리는 연이은 행동으로 세상의 지탄을 받는다는 것은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지녔다 하더라도, 한 인간으로서 행보에 분명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
여포는 백년에 한번 나올 정도로 훌륭한 무예를 갖춘 장수였으나, 인간 여포로서 보여준 경박한 행위로 인해 배신의 아이콘으로 전락하여 조롱받아왔다. 만약 그가 늘 고수해온 개인의 사고에서 벗어나, 잠시의 이익을 탐하지 않고, 보다 넓은 마음으로 더 먼 곳을 바라보았더라면 용장으로서 더 많은 갈채를 받았을 것이다. 중원의 패자로 대접받는 조조까지 삼십육계 줄행랑 칠 정도로 무서운 맹장이었으나, 그 마지막이 너무도 궁상스러워 아쉬움이 남는다. 역시 사람은 자기하기 나름이듯, 장수로서 모든 것을 타고났을 지라도 훌륭한 영웅으로 남기 위해 끊임없이 지모를 닦지 않고 현실의 안위만을 추구한 그의 오만함과 게으름이 초라한 말년을 만든 것이라 하겠다.
마음을 연 상대에게 깊은 상처를 줌으로서 살아남는 생존은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같은 방식으로 되돌아오는 것이 세상 이치다. “배반당하는 자는 배반으로 인해서 상처를 입게 되지만 배반하는 자는 한층 더 비참한 상태에 놓여지게 마련이다”라고 한 ‘세익스피어’의 말은 협소한 안목으로 이익만 탐하는 얄팍한 처신에 일침을 가한다.
정도를 중시하는 우보보다 재빠르게 하나라도 가지고자하는 가벼운 발걸음이 현명하게 여겨지는 세태다. 그만큼 시간이 갈수록 살아가기 버겁고 편안한 삶을 지켜내기가 어렵고 힘겨워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삶은 한번 뿐이고 그 삶을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인생에 대한 진지한 관점과 슬기로운 영위 방법이 필요하다. 영리하게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되도록 많은 실리를 탐하는 것도 중요하겠으나, 정신없이 걸어가다 한번쯤 뒤돌아보았을 때 그래도 든든하게 잘 꾸려왔다는 만족감을 찾을 수 있는 여정이 스스로에게 더 의미 있는 선물이 되지 않을까 싶다.
[출처] 최고의 용장이었으나 배신자로 기억된 맹호, ‘여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