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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6:1-15
▣ 최초의 집사들-사도행전 6장-
이제 우리는 교회 내부에 있는 두번째 문제에 봉착한다. 5장에서 문제점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마음에 있던 속임수였는데 여기서는 신자들의 등급에 대한 불평이다.
1. 교회원의 곤경(6:1-7)
어느 의미에서 이 문제는 축복의 증거였다 ! 교회가 급진적인 수적 증가를 보임으로 사도들은 음식을 매일 나누어 주는 일을 다 처리할 수가 없었으며 헬라파 유대인들 중의 더러는 소홀히 되고 있었다. 교회의 성장하는 모습을 추적해 보면 매우 고무적이다. 3,000명의 신자들(2:41)에 믿는 이들이 매일 더하여지고(2:47), 남자의 수만 해도 5,000명 이상이 되었고(4:4), 수가 더 많아졌으며(6:1), 더 심히 많아졌다(6:7).
이 놀라운 성장의 비결은 무엇인가? 5장 41-42절에서 답을 찾아 보자. 지도자들은 그리스도를 섬기기 위해 어떤 값이라도 기꺼이 지불하려는 자세였으며, 사람들은 매일 믿음으로 살았다. 사도행전 5장 42절은 우리가 따라야 할 좋은 본을 보여 준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날마다
-하나님의 집에서-여기서 성전은 “영적으로“ 해석하여 지교회를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집 저집에서
-모든 회원들이
-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파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높인다.
경건한 목회자들이나 직원들만으로는 교회를 성장시킬 수 없다. 모든 회원들이 같이 일을 해야만 한다.
문제는 “먼저 와야 할 것을 먼저 둠으로“ 해결을 볼 수가 있다. 사도들은 그들의 우선적인 사역이 기도와 말씀을 전파함에 있음을 알았다. 만일 지교회들이 그들의 목회자들로 하여금 사도행전 6장 4절을 준수하게 한다면 확실히영적인 능력과 수적 증가를 보게 될 것이다 ! 기도와 말씀은 늘 수반된다(요 15:7/잠 28:9). 사무엘이 이러한 방식으로 사역했으며(삼상 12:23), 그리스도(막 1:35-39)와 바울(골 1:9-10)도 그러했다. 사도행전 1장에서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였다.
에베소서 6장 17-18절은 기도와 말씀이 마귀를 정복할 것임을 언급한다. 고린도후서 9장 9-15절은 기도와 말씀의 사역이 교회가 필요로 하는 재정적인 자원을 공급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기도와 말씀은 모든 면에 있어서 교회를 세운다(행 10:32-36).
이 일곱 사람들은 사실상 “집사들“이라고 불리워진 것은 아니다. 6장 1절에 나오는 ministration(“구제“로 번역됨)은 헬라어로는 “디아코니아“(diakonia)란 단어인데,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집사“라는 말로 번역되었다. 이 단어는 단순히 “종“이라는 뜻이며 6장 2절에서는 “섬긴다“는 뜻으로, 6장 4절에서는 “돌본다 또는 사역한다“는 뜻으로 주어졌다.
사도들이 사실상 “지명“하였으나 선출하는 데는 전 교회가 참여하였다. 사도들은 또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자격 조건을 내 놓았는데, 신자들이 이를 기쁘게 받아들였다. 이 일은 영적인 지도자들과 양무리의 회원들 사이에 이루어진 단합과 조화를 나타내는 한 폭의 그림이다. 이 초기의 임명이 집사 직분으로 발전했을 가능성이 크다(딤전 3:8-).
이들의 주된 임무는 물질적인 일들을 돌보는 것이었고, 이리하여 사도들이 특별한 영적인 사역을 하도록 해방시키는 일이었다. 오늘날 집사는 목회자를 보조하고, 상의하고, 섬기며, 가능한 한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하나님은 집사들이 목회자를 구속하는 곳, 그리고 목회자를 성별된 “심부름꾼“으로 만들고 목회자 주위에서 “왕초 노릇“을 하는 곳에 축복할 수가 없으시다.
선출된 사람들이 헬라 이름들을 가지고 있음에 유의하자. 이것은 초대 신자들의 사랑과 서로 서로 즐겨 경의를 표했음을 보여 준다. 빌립은 나중에 복음 전도자가 되었다(8:5/8:26/21:8). 모든 교회의 직원들은 복음 전도자들이 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를 정직하게 직면하여 해결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축복하셨는지 보라 !(7절)"
행 6:8-15
2. 충성된 집사(6:8-15)
스데반이란 이름은 “면류관“이란 뜻이며, 그가 죽기까지 충성했으므로 승리자의 면류관을 획득했을 것이 분명하다. 3절에 의하면 스데반은 신자들 사이에서 명성을 얻고 있었다. 그는 성령으로 충만하였고 실생활에서 지혜를 나타내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따라야 할 참으로 훌륭한 조화가 아닌가! 그는 말과(10절) 그가 행한 일(8절)로써 이중적인 증거를 지니고 있었다. 우리의 행위가 우리의 말을 부인하는 것이라면 그리스도를 성공적으로 증거하지는 못할 것이다.
예루살렘에는 유대인의 회당이 수백 개나 있었으며, 다른 나라에서 온 유대인들이 세운 곳이 많았다. 리버디노(9절)의 회당은 유대인의 노예였다가 해방된 사람들의 후손들인 로마 유대인들이 세운 것이었다(리버디노는 “자유로와진 사람들“로 해석됨). 스데반이 길리기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있는 곳에서 논쟁을 했음에 유의해 보면 흥미로운 점이 있다. 바울이 그 지방 출신이므로(21:39), 회당에서 논쟁할 때 스데반을 대면했을 가능성이 많다.
원수는 언제나 일하고 있어서, 오래지 않아 스데반은 체포되었다. 그들은 스데반이 모세와 율법을 모독했으며 성전이 파괴될 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고발하였다. 요한복음 2장 19-21절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참고가 될 것이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취급했던 방법으로 스데반을 다루었다. 거짓 증인을 세우고 거짓 고발을 하였으며, 정당한 재판의 이점을 취하지 못하게 하였다(막 14:58/막 14:64 참조). 하나님은 스데반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게 하심으로써 스데반의 믿음이 진실이라는 증거를 나타내셨다.
다음 장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이 세대에 걸쳐 내려오며 실패했음을 보여 주는 스데반의 위대한 연설을 상고해 볼 것이다. 이스라엘이 최종적으로 그리스도를 배척함에 따라 7장은 전환점을 이루며 멧세지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이방인들에게로 뻗어가게 되었다.
▣ 실천적인 교훈
사도들은 사실 헬라어를 구사하는 유대인을 소홀히 다루었으나, 그들의 불평이 문제의 해결을 가져오지는 못했다. 이것은 육신의 죄이며(갈 5:20), 하나님은 이 일에 대해 우리를 경고하신다(고전 10:10). 이스라엘은 불평하다가 형벌을 받았다.
어떤 교회에서는 본 장을 완전히 거꾸로 적용하여 지도자들로 하여금 영적인 음식을 준비하게 하기보다는 점심, 저녁, 연회, 만찬을 돌보게 한다. 먹는데 잘못이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또한 교회의 교제에도 잘못된 일은 없다. 그러나 영적인 것보다도 육신적인 것이 더욱 중요시될 때 쇠퇴가 찾아 온다.
교회들은 지도자들과 직원들을 선출함에 있어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나님은 인사 조치에 필요한 조건들을 주시며, 우리는 이 조건들을 따라야만 한다.스데반은 성령께서 그의 사역을 인도하시게 했다. 그는 앉아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회당에서 전도하기 위하여 매일 책상 앞을 떠났다.
초대 교회의 조직은 간단하였으며 영적이었고 성경적이었다. 오늘날은 위원회와 협의회 등과 같은 것이 있어서 주님의 사역을 복잡하게 하며 목회 사역을 방해하고 있다. “최대의 일을 위한 최소의 조직“은 캠벨 모르간(G. Campbell Morgan)이 추종한 정책이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그렇듯이, 기도와 말씀의 사역이 없는 조직은 실패한다. 일곱 사람들은 사도들을 대신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보조하며 돕는 사람들이었다. 교회가 영적인 지도력, 기도, 말씀에 대한 꾸준한 식욕 등이 없다면 “적절한 조직“을 가졌다고 해도 성장하지는 못할 것이다."
행 7:1-60
▣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첫 순교자-사도행전 7장-
본 장에는 사도행전에서 제일 길고, 아마도 가장 중요하게 여겨질 설교 한편이 수록되어 있다.
본 장은 이스라엘의 역사에 있어서 전환점을 이루고 있다. 왜냐하면 세례(침례)요한과 그리스도, 이제 스데반에 이어지는 이스라엘의 세번째 살인과, 왕국에 대한 최종적인 거부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연설에서 스데반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회고하며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선택한 지도자들을 반드시 첫번째는 거절했다가 두번째는 영접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모세와 요셉은 둘 다 처음에는 영접을 받지 못하다가 두번째에 영접을 받았다(7:13/7:35). 이것은 이스라엘이 그리스도를 취급한 방법이다. 그들은 세례(침례)요한과 사도들이 의하여 제시된 주님을 거절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주님께서 두번째로 나타나실 때에 영접할 것이다.
1. 아브라함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7:1-8)
이 언약은 창세기 13장 14-18절에 기록되어 있으며 15장과 17장에도 나온다. 이 약속에는 아브라함의 씨가 약속의 땅을 소유하게 될 것과, 다가오는 시대에는 씨가 번성할 것이라는 약속이 포함되어 있다. 이 언약의 인(印)은 할례였다. 아브라함과 맺은 이 언약은 유대 민족의 기초이다. 하나님은 이방인과 이 언약을 맺지 않으셨고 또한 교회에 적용하지도 않으셨다. 이 약속들을 “영적으로 해석하여“ 교회에 적용시키는 것은 성경을 왜곡하는 것이며 잘못 분변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땅과 왕국을 주겠노라고 약속하셨으나, 이들은 불순종으로 인하여 땅의 소유권을 잃었으며 왕국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아브라함과의 이 언약은 아직도 유효하며,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그의 왕국을 세우기 위하여 돌아 오실 때에 성취될 것이다."
행 7:9-16
2. 이스라엘이 요셉을 거절함(7:9-16)
요셉은 여러 면으로 그리스도의 놀라운 상징이다.
1) 요셉은 그의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다(창 37:3/마 3:17).
2) 그는 자신의 형제들로부터 미움을 받았다(창 37:4-8/요 15:25).3) 그들은 요셉을 질투하였다(창 37:11/막 15:10).
4) 노예 한 사람 값에 팔렸다(창 37:28-/마 26:15).
5) 종으로 겸손히 낮추었다(창 39:1-/빌 2:5-).
6) 거짓으로 고발되었다(창 39:16-18/마 26:59-60).
7) 영광스럽게 승격되었다(창 41:14-/빌 2:9-10).
8) 처음에는 그의 형제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였다(창 42:8/행 3:17).
9) 두번째로 자신을 나타내었다(창 45:1-/행 7:13/슥 12:10).
10) 그의 형제들에게 거절을 당하는 동안 그는 이방인 신부를 취하였다(창 41:45/행 15:6-18).
스데반이 여기서 말하는 것은 족장들(요셉의 형제들)이 요셉에게 대했던 것처럼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대했지만 요셉은 종말에 가서야 자신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요셉이 자기 백성을 구하기 위하여 고난을 받았던 것같이 그리스도는 이스라엘과 온 인류를 구하기 위하여 고난을 당하셨는데 유대인들은 그를 영접하지 않았다.
행 7:17-41
3. 이스라엘이 모세를 거절함(7:17-41)
요셉과 마찬가지로 모세도 그리스도의 놀라운 상징이다.
어린 아이였을 때 박해를 받고 거의 살해될 뻔하였다(출 1:22/출 4:19/마 2:13-20).
세상을 거절하고 자기 백성을 구하려 하였다(히 11:24-26/마 4:8-10/ 고후 8:9).
백성들을 도우려고 했으나 처음에는 거절을 당했다(출 2:11-14/사 53:3)
목자가 되었다(출 3:1/요 10:1-).
거절당하는 동안 이방인 신부를 취했다(출 2:21).
두번째에 그의 형제들에게 영접을 받았다(출 4:29-31/행 7:35).
어린 양의 피로써 백성을 속박에서 구원해냈다(출 12장/벧전 2:24). 모세는 선지자였고(신 18:15-19/행 3:22), 제사장이었으며(시 99:6), 왕이었다(신 33:4-5).
38절에 대해 한 마디를 부언하고 넘어가야겠다. 이스라엘이 “광야의 교회“라고 불리우고 있는데 이 때 교회는 단순히 “에클레시아(Ekklesia), 곧 “총회 또는 불러냄을 받은 기구“라는 뜻이며, 이스라엘이 “구약에 나오는 교회“라는 뜻은 아니다. 구약에서는 교회가 예언된 것을 찾아 볼 수 없으며, 이스라엘(지상의 백성)은 신약 신자들(하늘의 백성)이 가지는 하나님과의 관계와 같은 입장에있지는 않았다.
이스라엘에 거룩한 지도자가 있었으며 하나님 자신이 그들 중에 계셨어도, 이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뜻에 반항하고 거부하였다! “그들의 마음은 다시 애굽으로 향했다!“ 그들은 우상 숭배에 빠졌고, 하나님은 그들을 포기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 위에 그들과 함께 계시는 동안에도 이 백성은 같은 일을 행하지 않았는가? 모세는 기적을 행하였으며 광야에서 그들의 필요에 대처하였고 하나님의 말씀을 주었으며, 그리스도는 능력의 일들을 행하셨고 백성들을 먹이셨으며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다. 그러나, 그들은 등을 돌렸다!"
행 7:42-50
4. 이스라엘이 선지자들을 거절함(7:42-50)
스데반은 아모스 5장 25-27절과 이사야 66장 1-2절을 말한다. 유대인들은 성전이 있으니 해를 당하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께서 반드시 축복하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선지자들은 성전이 있다 해도 그들의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축복을 확신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하늘과 땅에 편만하신 하나님이 어떻게 손으로 만든 성전에 제한될 수가 있는가?
이스라엘의 종교 생활은 미신에 불과했다. 외적인 종의 모양은 지녔으나,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있지 않았다. 이들은 선지자들의 소리를 거절하였고 이들을 박해하며 죽이기까지 하였다(마 23:29-33). 선지자(그리스도)가 나타나자(37절),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고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다!
행 7:51-60
5. 굳혀진 이스라엘의 심판(7:51-60)
이스라엘은 과거에 두 번의 살인을 했는데, 이제 세번째 살인을 하려고 한다. 세례(침례)요한이 목베임을 당하게 버려 둠으로써,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세례(침례)요한을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를 거절하였다.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을 때는 하나님의 아들을 배척하였고, 이제 스데반을 죽여서 “용서받지 못할 최후의 죄“를 범하며(마 12:31-32) 성령께 저항하고 있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그처럼 취급한 민족을 용서해 주실 것이지만, 그처럼 능력있게 아들을 증거하시는 성령께 저항하는 유대인들을 용서하실 수는 없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메시야라는 증거를 다방면에 걸쳐 증거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목과 마음을 굳게 하기를 더 좋아했다(7:51). 오늘날의 죄인들과 얼마나 비슷한가!
스데반은 성경을 사용했으며, “성령의 검“(엡 6:17/히 4:12)은 이 유죄 판결을 통하여 그들의 마음을 찔렀다. 죽게 되었을 때에 스데반은 시선을 하늘로 향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이가봇“(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 삼상 4:19-22)은 이제는 이스라엘 민족에 대해 씌어졌다. 그러나 스데반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광을 보았는데, 이는 우리들이 오늘날 보는 그 영광이다(고후 4:1-).
시편 110편 1절, 마가복음 16장 19절, 히브리서 1장 3절, 그리고 10장 12절 같은 구절들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사역을 완성하셨으므로 “앉아 계심“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55절은 그가 “서 계신다“고 말씀하신다. 어떤 이들은 주님께서 그의 순교자 스데반을 영접하기 위하여 일어서신 것이라고 설명한다. 스데반이 영광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들은 그리스께서 유대 법정의 증인이 보통 취하는 모습을 취하셔서 스데반의 멧세지와 사역이 사실임을 입증하며 서 계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또다른 사실은 스데반의 죽음이 유대인들에게 왕국을 제시하는 일을 종료하며, 진정한 의미에서 사도행전의 전환점이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무대를 채우기 시작하며, 이 교회가 곧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오른편에서 사역하시고 계신 교회이다. 여기서 누가복음 22장 69절을 읽어야 하겠다.
유대 지도자들은 그리스도의 간증을 상기했을 것이 분명하다. 스데반의 기도는 자기 백성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보여 주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상에서 우리를 위해 중재하신 일을 생각나게 한다. 그리스도가 서 계신 것을 보며 스데반은 아마도 이들의 반복된 죄로 말미암아 주님이 이 민족을 심판하려(시 7:6) 하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며, 그래서 은혜와 진노의 연기(延期)를 원했을 것이다. “그가 잠들다“는 표현은 신자들에게 있어서 죽음의 의미가 어떠한가를 알려 주는 아름다운 묘사이다!
이스라엘의 심판은 굳혀졌다. 다음 장에서 우리는 은혜의 복음이(왕국의 멧세지가 아니다) 유대인들에게서 사마리아와 이방인들에게로 옮겨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행 8:1-40
▣ 사도행전에 나타난 복음-사도행전 8장-
1-7장은 시련의 기간을 묘사했는데, 이 기간 동안에는 왕국이 이스라엘에게 세 번 제시되었다. 8-12장은 이동의 기간을 묘사하며, 이 기간 동안에는 다음의 변화가 일어난다.
활동의 중심지가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이동한다.
멧세지가 유대인들로부터 사마리아 사람들에게로, 그리고 이방인들에게로 전해진다.
지도자로서, 베드로의 왕국 사역이 끝나고 바울이 그를 대신한다.
세례(침례)는 더이상 신자들이 성령을 받는 필수 조건이 아니다.
“공산 체제“를 이루었던 “왕국의 경제“는 지교회로 말미암아 본래대로 되돌아 갔다. 교회는 오순절 이후로 존립해 있었으나 하나님의 계획 안에 들어있는 그 의미와 위치는 바울의 은혜의 사역을 통하여 계시되었다.
왕국의 복음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으로 대치된다.
구스(이디오피아)내시가 만일 흑인종(그가 흑인이었다고 말하는 이들이 더러 있음)이었다면 창세기 8-10장에 나오는 노아의 세 아들들과 닮은 세 사람의 뚜렷한 회심자를 보는 셈이다. 구스인은 함족이고 유대인은 셈족이며, 이방인 고넬료는 야벳족이다. 이리하여 우리는 복음이 전 인류에게 전파되고 있음을 그려볼 수 있다.
1. 복음 전도자 빌립(8:1-25)
사단은 신자들을 삼키려고 다시금 사자처럼 공격한다. 이 큰 박해를 주도한 지도자는 바울이었으며, 그는 이 사실을 여러 차례 시인했다(행 26:10-11/행 22:4-5/행 18-20/딤전 1:13/고전 15:9/갈 1:13). 바울이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했다고 분명하게 언급하는 것을 눈여겨보자. 이 말은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서 교회의 위치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지만, 바울이 회심하기 전에 교회가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사도들이 예루살렘을 떠나 주님의 사명을 성취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박해를 허락하셨다고 가르치는데, 이 말은 전혀 틀린 말이다. 처음에 사도들은 그 도시를 떠나지 않고 용감하게 남아서 유대 지도자들에게 멧세지를 전했다. 이들은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요행을 바라고있었다. 사도들은 예루살렘 내에서 이러한 사역을 할 수 있었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하신 명령은 거기 머물러 있으라는 것이었다. “땅 끝까지“ 복음을 가져간 사람은 바울이었다.
박해는 봉사의 기회이다. 빌립은 여기서 신약 복음 전도자의 본보기로 주어진다. 그보다 앞선 스데반이 그러하였듯이, 집사로서 부름을 받은 빌립은(6:5) 영적인 은사를 더하여 주시는 것을 깨닫고 위대한 복음 전도자가 되었다. 그는 복음을 가지고 사마리아로 갔으며, 이는 그리스도께서 요한복음 4장에서 행하셨던 일과 같다. 이렇게 되어 사도행전에서는 처음으로 말씀의 사역이 유대영역으로부터 이동해 가는 것을 보게 된다.
고린도후서 13장 8절은 우리가 진리를 거스려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언급하고 있는데, 빌립은 이 말을 입증한다. 박해는 구령의 문을 열어 놓았을 뿐이다. “큰 박해“로 시작된 일은(1절) “큰 기쁨“이 되었다(8절).
사단이 파괴를 통해 뜻을 이루지 못하자 이번에는 속임수로써 뜻을 성취하려고 한다. 사자가 뱀이 된다(요 8:44). 마술사 시몬은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고백하고 세례(침례)까지 받았으나, 이후의 사건들은 그의 마음이 변하지 않았음을 입증한다. 그의 “신앙“은 요한복음 2장 23-25절에 설명된 것과 같았다. 결국 시몬은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이다.
베드로는 20절에서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라고 말했으며, 또한 “이 문제(21절), “이 도“)에는 네가 관계(교제)될 것도 없고 분깃될 것도 없느니라“고 말했다. 23절은 그가 불의에 매인 바되었음을 시사한다. 시몬은 사단의 모조품이었으며 “마귀의 자녀“였다.
참된 씨(그리스도인/ 마 13:36-40 참조)가 뿌려지는 곳에는 어디나 사단도 그의 모조품을 뿌린다.
베드로는 오순절날 “천국의 열쇠“를 처음으로 사용하여 유대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 놓았다. 그는 사마리아인들에게 성령을 전해 주었을 때 천국 열쇠를 두번째로 사용한다.
이제까지는 사람들이 성령을 받으려면 세례(침례)를 받아야 했는데 이제는 안수함으로 받는다(9:17 의 바울의 경우 참조). 사도행전 2장 38절이 오늘날을 위하여 하나님이 설정하신 본보기라고 가르치는 사람들은 사마리아, 신자들이 세례(침례)를 받은 지 며칠 후에 성령을 받았는가를 설명하려면 곤란한 입장에 놓일 수밖에 없다. 사도행전 10장에 이르러서 이방인인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명령을 접하게 된다. 곧, 말씀을 듣고, 믿고, 성령을 받고, 세례(침례)를 받는 것이다."
행 8:26-40
2. 개인 전도자 빌립(8:26-40)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하나님께서 사마리아에 주신 것 같은 부흥을 즐거워할 것이지만, 한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해 이러한 모임을 떠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빌립은 주님께 순종하여 나라의 높은 공직에 있는 구스인을 발견하였는데, 그는 유대인의 신앙에 개종했음이 분명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서 효과적인 개인 전도와 구령의 필수 요소들을 본다.
하나님의 사람-빌립은 성령께 순종적이었으며,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곳으로 갔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구주이심을 알고 있었다. 다른 이들을 인도하는 하나님의 방법은 조직적인 기구나 세상적인 방법이나 높은 권력으로 진흥시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사람들, 곧 성령께 순종하려는 헌신한 사람들이다.
빌립은 흥이 넘치는 공식 집회를 기꺼이 떠나 하나님만이 보실 수 있는 은밀한 장소에서 한 영혼을 도와 평화를 찾게 하는 복음 전도자였다.
하나님의 영-성령은 추수의 주님이시며 우리가 전도할 권능을 가지게 되는 것도 성령을 통해서이다(행 1:8). 성령은 빌립이 그 사람에게 가도록 길을 열어 놓으셨다. 성령께서 이 탐구하는 죄인에게 성경을 열어 놓으셨으며, 이 죄인의 마음을 구주께 열어 놓으셨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 그리고 성령만이 복음의 진리를 그 죄인에게 가르칠 수 있으시다.
성령께서 준비된 종과 준비된 죄인을 함께 만나게 하실 때에 논쟁이나 논란이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로마서 10장 17절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말한다. 여기서 사용된 성경은 이사야 53장인데 하나님의 어린 양에 대한 놀라운 구약의 상징이다. 이 성경에서부터 빌립은 그리스도를 전파했다. 빌립은 그 사람이 읽던 곳에서 시작하여 성경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시며, 그가 행하신 일이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는 참된 회심이 있을 수 없다. 다음의 구절들을 깊이 숙고하자(요 5:24/엡 1:12-14/살전 2:1-6/살후 3:1/딤후 4:1-5/딛 1:3). 열매를 맺는 개인 전도는 말씀의 씨를 뿌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이다.
구스(이디오피아)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세례(침례)를 받음으로써 자신의 신앙을 입증하였다. 빌립은 사역을 위해 다른 곳으로 이끌려 갔으나 그 구스 내시는 기뻐하며 그의 길을 갔다.
빌립이 성에서 그리스도를 전파하였을 때 큰 기쁨이 있었고(8절), 사막에서그리스도를 전했을 때에 새로운 신자는 기뻐하며 자기의 길을 갔다. 기쁨은 참된 회심의 증거이다.
▣ 실천적인 교훈
박해는 봉사의 기회일 때가 많다. 순교자의 피는 여전히 교회의 씨앗이다.
사단은 밖으로는 박해하고(사자), 안으로는 가장하여(뱀) 하나님의 말씀에 반대한다. 말씀에 순종하면 언제나 사단을 무찌른다.
거대한 복음 전도 모임은 놀라운 것이지만, 한 영혼의 중요성을 절대로 잊지 말도록 하자.
참된 구령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그리스도께 중점을 두어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고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영과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함께 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