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구경을 하러 꼭 강원도 산골까지 가라는 법은 없다. 수도권에도 꽤 운치 있는 동굴이 있다. 광명 가학광산동굴은 수도권 유일의 동굴 관광지다. 폐광 이후 방치됐던 광산동굴이 2011년 8월 다시 문을 연 데 이어, 최근에는 문화와 예술이 어우러진 동굴 관광 명소로 탈바꿈했다.
광명 가학광산동굴 내부
가학광산동굴로 가는 길은 제법 수월하다. 서울에서 30분이면 닿는 가벼운 거리다. 서해안고속도로 광명역IC를 경유해 훌쩍 다녀올 수 있으니 주섬주섬 무거운 짐을 챙길 필요도 없다. KTX 광명역에서 광산동굴로 향하는 7-1번 버스가 주말이면 20분 단위로 운행한다.
동굴에 도착하면 커다란 입구에서 쏟아져 나오는 스산한 바람에 늦더위가 화들짝 달아난다. 동굴의 연중 평균 기온은 12도. 이마에 몽글몽글 맺혔던 땀방울이 이내 사라진다. 시간이 남았다면 동굴 앞 냇물에서 물장구를 치거나 인근 가학산으로 연결되는 등산로를 잠시 오르내려도 좋다. 안전을 위해 헬멧을 쓰고 해설사의 듬직한 안내방송이 흘러나오면 본격적인 가학광산동굴 탐험이 시작된다.
[왼쪽/가운데/오른쪽]가학광산동굴 이정표 / 동굴 입구 / 동굴로 들어서는 초입 갱도
광산에서 새우젓 저장고까지, 100년 세월의 동굴
가학광산동굴은 갱도의 총연장이 7.8km, 깊이가 275m다. 그중 1km가량이 40년 만에 일반에 공개됐다. 동굴 초입은 옛 광산을 묘사한 그림과 탄광열차, 광산의 역사를 알려주는 사진들로 채워져 있다.
광산동굴은 단순히 갱도의 의미만 지닌 것은 아니다. 동굴의 초기 역사는 일제강점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산이 처음 문을 연 것은 101년 전인 1912년이다. 시흥동 광산으로 운영되며 1972년까지 금, 은, 동, 아연을 채굴했다. 60여 년간 전성기를 누렸는데, 종업원이 500여 명에 이르고 채굴량이 하루 250톤이 넘었던 수도권 최대의 금속 광산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광부로 근무하면 징용이 면제됐던 서민들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이곳에 삶터를 마련했다. 가학산 일대는 안산, 소래 지역에서 소금을 팔기 위해 서울로 넘어가던 관문이자 물자를 운반하던 도고내고개가 있었다. 광산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피난을 떠나지 못한 마을 사람들의 피난처 역할도 했다. 폐광이 된 이후 오랜 기간 닫혀 있다가 최근 5년간은 소래포구의 젓갈을 보관하는 지하저장고로 사용됐다. 젓갈 보관소에서 동굴관광지로의 변신은 꽤 이례적인 일이다.
[왼쪽/오른쪽]동굴 전시 공간 / 지하저장고로 연결되는 갱도동굴 탐방에 나선 관광객들
동굴 안 예술의 전당과 전시장
동굴의 다사다난한 사연만큼이나 천장이 울퉁불퉁하다. 폭 2~5m, 높이 1.5~4m.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져 냇물을 이루고, 잠시 방심하면 안전모가 곳곳에 부딪힌다. 동굴 안이 미로처럼 연결돼 있지만 해설사가 동행하고 곳곳에 안내요원이 있어 길을 헤매는 경우는 없다. 오히려 느닷없이 나타나는 반전 장면에 입이 떡 벌어진다.
가학광산동굴은 동굴 탐사라는 기본 체험 외에 문화와 예술을 더했다. 막다른 길에서 이색 전시회가 열리고, 영화관과 공연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동굴 전시관에서는 8월 한 달간 동굴문명전이 열린다. ‘엘도라도-황금을 찾아서’라는 테마로 중남미 잉카제국과 이집트 문명의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갱도를 따라 내려서면 젓갈을 보관했던 지하저장고로 연결된다. 지하저장고는 향후 와인을 저장하고 와인체험을 할 수 있는 와이너리로 이용될 계획이다.
[왼쪽/가운데/오른쪽]동굴 안 예술의 전당 / 가학산 등산로 / 동굴 밖에 조성된 냇물
동굴 탐방의 막바지 코스는 국내 최초의 동굴 안 예술의 전당으로 연결된다. 올 여름 처음 문을 연 동굴 예술의 전당은 350석 규모로 각종 음악회와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제법 넓은 공간이다. 동굴 안에서 클래식 공연을 보고 가수들의 무대를 만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독특하다. 인순이 등 대형 가수가 초청공연을 펼쳤으며, 8월 31일 오후에는 보석&패션쇼가 예술의 전당에서 펼쳐진다. 동굴 내 패션쇼 역시 국내에서는 처음 시도된다. 꼬마들은 음악회가 아니더라도 노란 헬멧을 쓰고 만화영화만 봐도 신이 난다. 쩌렁쩌렁 울리는 사운드는 동굴 안이라 더욱 효과 만점이다.
이밖에도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10월 말까지는 매주 토요일 프러포즈 데이를 마련해 동굴 안에서 깜짝 사랑 고백과 이벤트를 펼칠 수 있게 했다. 청소년들을 위한 동굴 탐사 프로그램과 동굴 과학캠프도 연중 진행된다.
100년 역사를 간직한 가학광산동굴에는 더 이상 광부도, 금 덩어리도, 시끄럽게 돌아가는 기계도 남아 있지 않다. 대신 아름다운 선율과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그 빈 공간을 채우고 있다. 동굴 구경 후에는 입구 옆 나무 데크를 따라 가학산을 오르거나 동굴에서 흘러나온 물줄기가 만나는 냇가에서 동굴 탐방의 여운을 즐겨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