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 13:1~16)
‘When I fed them, they were satisfied;
when they were satisfied, they became proud;
then they forgot me.’(6절)
‘내가 그들을 먹였을 때, 그들이 만족했다.
그들이 만족해지자 교만해졌다. 그리고 나를 잊었다.’
북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에프라임은
하나님께 많은 복을 받았지만
교만해졌고 우상에 빠졌다.
그래서 징계를 받았지만 고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죄를 고집하고 우상에게 충성했다.
부유와 안락함이 타락의 소재가 되었다는 점이
눈에 들어온다.
하나님은 짓궂으신 분이 아니시기에
우리에게 풍요로움과 안락함을 제공하기를 원하시는데
그 풍요로움과 안락함이 교만과 더 자극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배경이 되는 것이 인간이다.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잃지 않게 하려고
사랑의 회초리를 가하면
하나님을 무섭고 거친 존재로 인식한다.
스스로 자초한 일이고
안타까움 속에서도 영원한 생명을 지켜주기 위해서
눈물을 머금고 그렇게 하시는 것인데 말이다.
당연히 내가 그렇다.
하나님께 회개할 것이 많다.
좀 염치없지만, 내가 죄를 짓더라도
하나님을 붙드는 일만은 포기하지 않겠다.
양심에 화인 맞을 정도가 되면 안되는데......
‘분투’의 모습이어야 하는데
뻔뻔스러움과 분투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하나님의 수용력은 훨씬(x무한대)
광대하시다는 사실.
<오늘의 명언>
죄는 표면적으로 늘 다른 모습과 이름으로 위장해서
주님이 계셔야 할 곳에 침입해 똬리를 튼다. -어윈 W. 루처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죄로 얼룩진 제 모습이 바로 에브라임의 모습입니다.
축복과 선물을 교만으로 전락하는 재료가 된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제가 그렇습니다.
이 악순환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과의 깊은 사귐뿐입니다. 제가 여러 시끄러운
음성과 영상을 잠시 접어두고 하나님과 사귐을 갖는
시간이 많아지게 해 주시옵소서.
오늘 단국대에 갑니다. 일도 해야 하고 강의도 해야 합니다.
몸은 피곤하고 베스트 컨디션이 아닙니다.
저를 도와주시옵소서.
소영이가 아침에 매우 피곤해 했는데
그의 오늘 하루일정도 보살펴 주옵소서.
정환이의 3차 항암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아픔과 고난을 딛고 일어설 힘을 주시옵소서.
수술한 자국이 앞으로 2년 동안 통증이 있을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에게 견디고 적응할 수 있는 힘을 주시옵소서.
제게 주신 축복의 자녀들을 주님께서 지켜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