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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의 풍수관련 글 모음입니다.
조선의 도읍, 한양의 풍수적 입지(1)
한양의 풍수적 입지를 정하면서 주장하였던 내용들은 풍수를 공부함에 무척 유익할 것 같아 여기에 메모를 남긴다. 본 자료는 고제희의 풍수지리교과서 제2권 한국의 산천편을 읽으면서 발쵀하였다.
1. 한양의 도읍지 천도
1) 지기쇠왕설
역성혁명을 한 군주는 반드시 도읍을 옮긴다라고 주장하며 나라의 기틀을 새롭게 하고, 인심을 얻고자 천도를 계획함. 도선비기에 繼王者李而都放漢陽, 다음의 왕은 이씨이며, 한양에 도읍을 정한다라는 한양도읍설과 개성의 지기는 이미 쇠하였다. 개성은 신하가 임금을 폐하는 망국의 터이다라는 지기쇠왕설이 퍼짐
2) 신도안의 건설
- 1392년 권중화를 파견하여 국도의 후보지로 계룡산 아래 신도안을 물색함
- 1393년 2월 양주 회엄사에 들려 무학대사를 동반하고 계룡산에 도착, 형세와 규모를 관찰
- 1393년 3월 신도안의 공사를 착수. 권중화의 종묘, 사직, 궁전의 설계, 이양달의 지면의 형세 파악,
김사형의 땅 측량
- 1393년 12월 경기도 관찰사 하륜의 상소로 심효생을 보내어 신도안공사를 중단 시킴
* 하륜의 상소 이유
도읍은 마땅이 나라의 중앙에 있어야 하는데 계룡산은 지대가 남쪽에 치우쳐 있어 동면, 서면, 북면과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고 계룡산의 산은 건방에서 오고 물은 손방으로 흘러간다 하니 이곳은 송의 호순신이 이른바 물이 장생을 파하여 쇠패가 곧 닥치는 땅이므로 도읍으로는 적당치 못하다고 상소함
3) 한양 천도론
- 1394년 음양산정도감을 설치하여 권중화, 정도전, 석성린, 남은, 하륜 등 여러 신하와 더불어 서운관원(왕실의 풍수가) 과 함께 풍수지리서를 섭렵케 하고 새 도읍지를 선정토록 함
- 지리신법에 따라 신도안의 공사를 중지시킨 하륜은 새 도읍지 후보로 모악의 남쪽(현재 신촌 연희동 일대)를 추천하였으나 정도전, 석성린, 정총은 명당의 형국이 좁다고 반대함
. 정도전 ; 모악의 남쪽 땅은 한 나라의 중앙이고, 교통은 편리 하지만 땅이 계곡 사이에 있다. 안으로 조시종묘를 받아들일 여지가 없다
. 성석린 ; 산수가 만나고 배가 다닐 수 있는 길지라도 명당이 기울고 협소하며, 뒷산이 낮고, 그 규모가 도읍으로 부적당하다.
. 정총 ; 명당이 매우 협소하며 주산이 낮고 빠져 있어서 수구가 관쇄되지 못했다. 또 이 땅이 길지였다면 어째서 옛사람들이 사용하지 않았던가? 새도읍지를 구하려면 아주 먼 곳에서 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 하륜 ; 모악의 명당은 비록 좁은 것은 사실이나 송도의 강안전(만월대 부근), 평양의 장락궁터에 비하면 오히려 넓다. 이곳은 고려의 秘錄이나 중국의 풍수법에 맞고 나라를 복 되게 하고 계림(신라의 수도)과 평양(고구려의 수도)의 궁궐지에 비하면 넓다. 뿐만 아니라 나라의 중앙에 있고, 배로 물건을 나를 수 있고 山河表裡의 지세이며, 또 동양의 성현이 전한 密設과도 일치하고, 풍수서의 山水朝聚의 형세와도 흡사하다. 이 땅을 두고 다른 땅을 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함
이에 태조는 권중화, 정도전, 심덕부 등을 한양에 파견해 궁궐, 종묘, 조시, 도로의 터를 정하도록 했고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 객사를 임시 별궁으로 하여 1394년 재위 3년만에 한양으로 천도하였다.
2. 경복궁 입지론
1) 궁궐터
조선의 태조 이성계는 모악과 남경을 실제 답사후 남경의 이궁이 있던 터가 국도로서 적합한지를 물었는데 윤신달은 개성이 제일이고 남경은 그 다음이라고 하였다.
. 윤신달 ; 건방이 낮고 명당수(청계천)가 말라 흉하다.
. 태조 이성계 ; 송도도 부족한 점이 많다. 이곳을 살펴보니 형세가 왕도로서 손색이 없으며, 배로 물건을 날을 수 있고, 마을길도 균등해 사람의 일이 편리 할 것이다.
. 무학대사 ; 이곳은 아름답고 높은 산이 사방으로 둘러싸고, 중앙이 평탄해 도읍지로 적합한 땅이다.
그러자 여러 신하들이 태조의 굳은 결심을 알고 이구동성으로 천도할 바에는 이곳이 가장 적당한 곳이라 하여 경복궁을 궁궐터로 잡게 됨
2) 왕십리 전설
무학대사와 함께 한양을 찾아 온 조선의 태조는 궁궐터를 찾다가 지금의 왕십리에 당도하였다. 청계천이 합류하는 곳에 멈춘 뒤 도읍이 될 만한 땅을 찾았다. 북악산과 남산 사이에 상당히 넓은 명당을 발견하고, 그곳이 왕도로 좋은 터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어디에 궁터를 정해야 할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 때 한 할멈이 나타나 이곳에서 십리를 더 간 곳이 좋다라고 일러 준 뒤 사라졌다. 두 사람은 신의 계시라고 믿고 북악산 기슭에 궁궐 터를 잡았다고 전한다.
3) 경복궁의 주산과 좌향
- 무학대사 ; 인왕산을 주산으로 삼고 인왕산에서 남산까지 이어진 산줄기를 백호, 북악산으로 이어진 산세를 청룡으로 삼는 유좌묘향으로 경복궁을 놓아야 한다고 주장
- 정도전 ; 군주는 남면해 정사를 보았고, 아직 동면해 조정에 임한 자를 듣지 못했다. 따라서 북악산을 주산으로 삼고, 인왕산을 백호, 낙산을 청룡, 남산을 안산으로 삼는 임좌병향이어야 한다
- 무학대사 ; 나의 말에 귀를 귀울이지 않으면 2백년 후에 내 말이 헛되지 않음을 깨달을 것이다. 왜냐하면 신라의 의상대사는 산수비기에서 도읍의 터를 택할 사람이 스님의 말을 들으면 국운의 연장을 바랄 수 있으나, 만약 정씨가 나와 시비를 걸면 5대가 되지 못해 찬탈을 당하고 2백년 내외에 외란의 재앙을 입는다고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 태종 때 형제간의 골육상잔이 벌어졌고, 세조가 왕위를 찬탈했으며, 그 후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4) 도읍의 축성
한양은 궁궐보다 도성을 먼저 쌓았다. 무학대사가 궁궐을 짖기 위하여 기둥을 세우는데 곧 넘어져 버렸다. 기둥 하나를 세우는데도 무척 힘이 들었다. 그런데 늙은 농부가 밭을 갈고 있었는데 소가 말을 듣지 않자 농부가 소에게 " 이 종 잡을 수 없는 놈아! 너의 심술궂기는 무학과 같다" 고 하였다. 무학은 농부에게 기둥을 세우는 것에 대해 가르침을 구했다. 그러자 농부는 " 한양의 산천지세는 학이 날개를 편 형상이고, 이곳은 학의 등에 해당한다. 따라서 여기에 건물을 세우려면 학의 날개를 누른 다음에 세워야 한다. 학의 날개를 그대로 둔 채 등에 기둥을 세우려 하니 그것이 넘어 지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 그 말을 따라 도성을 쌓고 그 다음에 궁궐을 세웠더니 공사가 잘 진행되었다. 이것은 남산에서 본 경복궁의 뒷산이 마치 학의 날개를 편 형상과 같아 보여 유래된 전설이다.
한양의 도성은 20만명의 인부를 투입해 그 길이가 9, 975이고, 높이는 28척이며, 8개의 대문을 가진 웅장한 규모로 건설되었다.
한양의 성문 ; 4대문 - 숭례문, 흥인지문, 돈의문, 숙정문
4소문 - 창의문, 광화문, 혜화문, 소의문
서울의 유래 ; 한양은 궁궐을 쌓는 것 보다 도성을 먼저 쌓았는데 어느날 큰 눈이 내렸다. 그런데 아침이 되니 눈이 산마루를 따라 하나의 선을 그었다. 선 밖에는 눈이 쌓였는데 그 안쪽에는 눈이 없었다. 이태조는 이것은 하늘의 계시라고 믿고서 눈이 쌓인 선을 따라서 도성를 쌓았다. 그 결과 한양은 설(雪)
이 울타린 친 도성이란 뜻에서 "설울"이라고 불렸고, 이것이 오늘날 서울이란 지명이 되었다고 한다.
3. 한양의 산세와 수세
1) 조종산의 내력
경복궁은 북한산에서 분기해 솟은 북악산의 남쪽 산 기슭에 자리를 잡았으니, 한양의 지세를 이룬 조종산은 백두산이 태조산이고, 분수령이 중조산이며, 북한산이 소조산이고, 북악산이 주산이자 진산이다.
2) 한양의 산천
북쪽의 북악산을 현무(주산)로 삼고, 서쪽의 인왕산을 우백호, 동쪽의 낙산을 좌청룡을 삼은 뒤 남쪽의 남산과 그 뒤의 관악산을 주작으로 삼았다. 그 결과 한양은 전후좌우에서 사신사를 고루 갖춘 풍수적 길지가 되고, 남산은 도성으로 불어 오는 한강의 세찬 바람을 막아주는 안산의 역활을 담당한다.
- 주산은 북악산(=백악산), 북한산에서 뻗은 지맥, 개화되기 전의 모란꽃 봉우리 또는 학이 날개를 핀 형상
- 한양은 북악산과 그 산에서 좌우로 가지 친 산줄기가 둥글게 껴안은 안쪽에 자리를 잡음
- 북안산에서 출맥해 자하문 터널을 지나 용맥은 몸을 재차 남서진하여 인왕산으로 솟고, 숭례문에서 몸을 낮추었다가 다시 남산으로 솟구쳤다. 남산은 한양의 안산으로 서울 중앙부가 산들에 의해 둥글게 둘러 싸였다.
- 좌우 양측의 청룡과 백호를 살피면 우측 산줄기인 백호가 웅장하면서도 길고, 좌측 산줄기인 청룡은 왜소하고 짧다. 청룡은 장남을 뜻하기 때문에 조선왕조는 산천지세가 장남이 번성하지 못할 땅으로 여겼다.
- 한양은 백호가 팔을 길게 뻗어 껴안은 듯한 우선국으로 도성안쪽의 내당수인 청계천이 서에서 동쪽으로 흐르고, 외수인 한강은 멀리 북동방에서 흘러와 남산의 남쪽을 감고 돌아 서쪽으로 흘러가는데 내당수와 역행으로 흘러 도성안에 생기가 응집할 조건을 만들어 준다.
- 또한 청계천은 북악산과 인왕산의 사이의 계곡에서 발원해 도성의 중심을 북방에서 남동방으로 가로 지르며 흐르는데, 남산의 여러 계곡물을 받아 들인 뒤 중랑천을 거쳐 한강에 유입된다. 청계천은 궁궐의 앞쪽을 흐르는 명당수가 되고, 한강은 암공수가 되어 도성내에 기가 응집되도록 도와준다.
3) 옥녀직금형의 명당
- 한양의 안산인 남산은 그 모양이 누에머리를 닮은 잠두형이다. 이런 잠두를 안산으로 삼은 경우 누에는 고치를 만들고 옥녀는 고치에서 실을 뽑은 뒤 베틀에 올려 비단을 짤 것이다. 그러므로 누에머리를 안산으로 삼은 경복궁은 풍수상 옥녀가 베틀에 앉아 비단을 짜는 옥녀직금형의 명당에 해당한다.
- 옥녀직금형의 터에는 실에 물을 뿜어 주어야 하기 때문에 오른쪽에 침사수가 있어야 한다. 만약 물이 없다면 우물을 파야 지덕이 발동한다고 한다. 남산아래에 남지란 못을 판 것은 산천의 지덕을 발동시키기 위함이었다.
4. 한양산천의 풍수적 약점
1) 진곤저허의 지세
경복궁에서 보면 청룡인 동쪽(진)의 낙타산이 낮고 인왕산에서 남산으로 이어지는 남서방(곤) 쪽의 백호가 낮아 소위 진곤저허의 형세를 이룬다. 여기서 낙산이 낮은 이유는 도성 안에서 생긴 바람과 물이 모두 그 방위로 빠져 나가니 청계천으로 인해 산이 깍여 나간 결과이다. 남서방이 낮은 이유는 인왕산에서 남진한 용맥이 남산으로 솟기 위하여 스스로 몸을 낮추고 움츠린 고개마루이기 때문이다. 즉 용맥을 타고 흐르던 지기가 기를 가다듬고 힘차게 뿜어내는 과협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풍수지리적으로 낮은 곳을 허라고 하고, 허한 곳을 외적이 침범할 염려가 있어 꺼리는데 인진왜란은 선조 25년 왜군에게 동쪽을 통하여 함락을 당했고, 병자호란은 인조14년(1636) 청의 조공을 거절하자 남서방을 통해 침략했는데 싸워보지도 못하고 함락되고 말았다,
2) 관악산의 화기
관악산은 남산 너머에서 경복궁을 조응하는 조산인데, 일찍이 무학대사는 북악산을 주산으로 삼아 남향으로 경복궁을 지으면 정면의 관악산이 궁궐을 위협하니 그로 인해 외우내환이 잦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이유는 관악산의 형상은 화기를 품은 화산이고 그 기운이 한강을 건너 궁궐에 전달될 염려가 컸기 때문이다. 풍수지리는 보이지 않는 살기는 관계치 않으나 보이는 살기는 해가 된다. 는 원리에 따라 관악산이 비록 한강 너머의 먼 곳에 있지만, 경복궁에서 그 산이 바라보이기 때문에 실하지 못하다고 판단한다. 역사적으로 경복궁은 화재가 자주 일어났다.
3) 북악산의 동산
진산은 국도 즉 수도에 지기를 공급하고 수호하는 산으로서 지기는 산줄기를 따라 흐르기 때문에 국도의 뒷쪽에는 진산이 꼭 있어야 한다. 만약 진산이 없으면 늙은 거목을 당산목으로 삼아 하늘의 가호를 받고자 했다. 북악산은 경복궁의 진산인데, 암반이 밖으로 드러난 童山이라 마치 머리에 부스럼이 났거나 상처를 입은 사람처럼 생기롭지 못하다. 이러한 동산은 흙이 두텁지 못하여 기가 쇠약한 산이고, 그곳에서 뻗어 내린 내룡 역시 지기가 왕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4) 청계천의 건수
내룡을 타고 흐르는 지기는 물을 만나야 생기를 응집하는데, 북악산에서 경복궁으로 흘러내린 정기는 청계천을 만나 기를 응집한다. 그렇지만 산과 물은 서로 음양의 조화를 추구하니 물의 양이 크면 음인 산의 지기도 크고, 물이 적으면 산도 적은 것이다. 청계천은 경복궁에서 보아 물의 근원이 매우 가깝고 또 안반으로 이루어져 물의 저장능력이 부족한 북악산과 안왕산에서 발원한 계류라서 수량이 풍족하지 못하다. 따라서 청계천을 맞이한 도성안쪽도 지기가 왕성하고 크다고 보기 어렵다.
5. 한양산천의 풍수적 비보
1) 흥인지문
도성의 동쪽이 낮고 허술해 한양이 임진왜란 때 함락되었다는 소문이 돌자 이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동쪽으로 산과 성을 높게 쌓는 대시 문 이름에 갈지(之) 를 넣어 흥인문을 흥인지문이라고 하여 갈 之자를 대문의 이름에 보태어 지세의 허약함을 비보하였다.
2) 창의문
창의문은 경복궁에서 보아 북서방에 위치한 낮은 고개위에 설치한 문으로 북문 또는 자하문이라 부른다.그런데 1416년 풍수지리설을 주장하는 사람이 이 문의 통행이 궁궐과 왕조에게 불리하다고 하여 대문을 걸어 잠근채 일반백성들의 통행을 금지하였다.이것은 성문밖의 산세가 흡사 지네를 닮았는데, 이 지네의 독기가 성문을 넘어 궁궐로 살기를 뿜어 대어 이것을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506냔 이문의 통행을 재개하였는데 지네의 천적인 닭 상을 조각해 지네의 독기가 창의문을 넘어가는 것을 닭이 쪼아 먹게 비보하였다.
3) 숭례문
한양의 도성에 성치된 8개의 문에는 역법의 팔괘를 본 떠 정도전이 문액을 써 붙였다. 남쪽의 대문은 숭례문인데 숭례의 예를 오행에 해당시키면 화이고 화의 방위는 남방이기 때문에 남쪽을 나타낸다. 그런데 이 성문의 문액만이 세로로 써 달았는데 이것은 숭례의 두 글자가 화의 염상을 상징하는 바, 궁궐에 직면하는 관악산의 화기에 대항키 위한 풍수적 염승읜 셈이었다.
4) 해태상
서울의 광화문 양쪽에 서 있는 괴이한 석수는 본래 해치인데 세간에서는 흔히 해태라고 부른다. 어느 것이나 빛나는 눈으로 남쪽에 솟아 있는 관악산을 노려보고 있다. 그것은 관악산이 화산모양을 하고 있어 이 산과 직면한 경복궁이 자주 화재를 당한다는 말에 따라 대원군이 경복궁을 재건할 때 정문 앞에 물의 신인 해태를 설치해 화기를 퇴치하고 자였다.
5) 남지
남지는 조선초부터 숭례문 밖에 있던 못이다. 한명회는 한양에 정도 할 때에 관악산의 화기를 누르고자 남지를 팠으나 불이 끊이질 않은 것은 그 못이 메워진 탓이다라며 못을 복구할 것을 상소했다. 그러나 이 못을 복구하면 남인이 번성하다는 속설로 당쟁의 와중에 다시 못이 메어 졌다.
6. 한국의 수도, 서울의 풍수적 입지
1) 서울의 지맥
서울의 강북은 분수령을 태조산으로 하여 백두대간에서 분기한 정맥이 대성산-> 용임산을 거쳐 북한산으로 솟고, 이 산에서 남서진한 용맥이 남쪽의 한강을 만나 지기를 응집한 땅이다. 하지만 강남은 백두대간의 속리산에서 분기한 한남정맥이 칠현산->광교산을 거쳐 관악산으로 솟고, 이 산에서 북동진한 용맥이 북쪽의 한강을 만나 지기를 응집한 땅이다.
강북 땅은 크게 창릉천과 중랑천에 의해 남북으로 경기도와 경계를 지으며 청계천에 의해 도성내의 지맥이 동서로 나뉜다.
- 강북의 중구, 종로, 서대문, 마포, 용산구의 지맥은 모두 북악산을 소조산으로 삼으며
- 성북, 도봉, 강북, 은평구는 북한산을 소조산으로 삼는데 중랑천의 동쪽인 노원, 중랑, 광진구는 수락산이 소조산이다.
그리고 강남 땅은 크게 안양천과 탄천에 의해 지맥이 남북으로 갈리고 경기도와 경계를 삼는다.
- 강남의 서초, 강남, 관악, 동작, 영등포, 금천구는 모두 관악산을 소조산으로 삼으며
- 송파, 강동구는 청량산(남한산성)을 소조산으로 삼는데
- 안양천 서쪽의 구로, 양천, 강서구는 군포의 수리산이 소조산이다.
2) 서울의 산천
(1) 산야 ; 북쪽의 북한산을 현무로 삼고, 동쪽의 응봉을 좌청룡 서쪽의 인왕산을 우백호로 삼은 뒤 남쪽의 관악산을 주작으로 삼았고 중심에는 한강이 동에서 서로 흘러가는 형세이다. 북쪽은 북한산에서 보현봉으로 이어지는 산맥이 험준한 형세로 병풍을 둘러쳤고, 동쪽에는 수락산에서 불암산을 거쳐 아차산으로 이어지는 산 능선이 웅장한 형세라 튼튼히 보인다. 또한 남쪽은 관악산에서 우면사능로 이어지는 산 능선과 청계산에서 인릉산-> 대모산으로 이어지는 높은 준령이 요세적 형세를 갖추었다.
그런데 서울의 서쪽은 한강이 흘러 나가는 방위라 낮은 그릉과 평지를 이루어 지세가 낮고 허하다. 따라서 서울의 산야는 북, 동, 남쪽이 산으로 에워싸인 가운데 남서쪽 곤방과 서쪽 태방이 낮으며 넓게 트인 곤태저허의 형세이다.
(2) 하천 ; 멀리 동쪽에서 흘러 온 한강은 서울의 동쪽에서 중랑천과 탄천이 북쪽과 남쪽에서 유입되고, 서쪽에선 창릉천과 안양천이 북쪽과 남쪽에서 유입되는 안쪽에 서울이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서울의 중심을 통과하는 한강은 금성수와 반궁수의 형태를 취하는데, 강북의 경우 광진구 자양동, 용산구 동부이촌동, 강남은 강동구 암사동, 강남구 압구정동이 한강을 금성수로 맞이해 길하다.
이와 반대로 강북의 성동구 금호 옥수동, 강남의 송파구 잠실동, 서초구 반포동은 한강물을 반궁수로 맞이해 바람과 홍수의 피해가 심했던 곳이고 또 중랑천과 탄천은 한강이 반궁수로 휘돌아 흐르는 금호동과 잠실동에서 한강에 유입되니 홍수가 심할 때면 하천이 역류하기 때문에 두 지역은 침수의 패해가 많았던 곳이다.
3) 여의도
여의도는 한강의 모래가 쌓여 형성된 섬인 독산이라 지기가 쇠약한 터이다. 따라서 행정상으로는 서울에 속하지만 지맥상으로는 한반도 지맥이 아닌 이국의 땅에 해당한다. 그래서 여의도는 쓸모가 없어 너나 가지라는 뜻을 가졌는데 지금은 한국의 맨하탄이라고 불릴만큼 금융, 정치 그리고 방송의 중추적 역활을 담당하는 기관이 많이 들어 서고 있다. 이곳은 새롭게 연구하여야 과제의 대상이다.
4) 행주형의 명당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수한 한강은 서울의 중심을 완만한 유속으로 관통하면서 탄천, 중랑천 등을 합쳐 복서쪽의 서해로 흘러간다. 이처럼 물이 모여 시가지 중심을 통과하면 풍수지리는 항구에 정박한 배가 이제 막 출항아려는 행주형 이라 부르고, 재화와 사람이 풍성히 모여 번창할 땅이라고 한다. 행주형의 터는 도읍의 입지로서 제일로 꼽는다. (전통적 행주형 ; 서울, 평양, 청주, 남원)
그 결과 서울의 풍수적 형국은 도성내의 국세만을 판단한 한양의 옥녀직금형에서 한강을 중앙에 두고 강북과 강남을 포괄하는 행주형으로 바뀌었는데 이것을 서울의 지기가 왕족과 고관대작을 배출하는 터에서 벗어나 수 많은 인재와 재물이 함께 모여들 터로 변했음을 의미한다.
* 자료원 ; 대동풍수지리학회 고제희 학회장의 전통적 주거입지론 중에서 ...
조선의 도읍, 한양의 풍수적 입지(2)
1. 강북과 강남의 상이한 지기
1) 강북의 지기
북한산에서 보현봉으로 이어진 정맥은 보현봉에서 기맥을 남진시켜 서울의 진산인 북악산으로 솟아 났다. 북악산에서 서진한 용맥은 자하문 터널을 지나 인왕산으로 솟고, 이 산에서 출맥한 용맥은 몸을 낮게 움추린 다음 남산으로 솟았으며 다시 동진해 응봉으로 솟은 후 중랑천을 만나 전진을 멈추었다.
따라서 강북의 지기는 북한산, 북악산, 인왕산, 남산, 수락산에 의해 형성되었는데 화성인 북한산과 수락산의 기운을 받는 땅은 문장가가 배출될 땅이고, 목성인 북악산과 남산의 정기를 받는 땅은 관운이 높으며, 수성인 인왕산의 지맥이 닿는 곳은 예술가나 선비가 배출되니 강북의 지기는 대체로 높은 관원이나 예술적 재능이 많은 학자가 배출될 땅이다.
2) 강남의 지기
안성의 칠현산에서 북진한 한남정맥은 용인의 석성산에서 탄천을 따라 북진하는 용맥을 낳았고, 이 용맥은 청량산을 거쳐 하남의 검단산으로 솟고 한강을 만나 전진을 멈추었다. 또 한남정맥의 광교산에서 북진한 용맥은 두 팔로 껴 안듯이 과천분지를 만든후 서쪽 능선은 관악산으로, 동쪽 능선은 구룡산으로 솟아났다. 또 수원을 거쳐 군포의 수리산으로 솟아난 정맥은 낮은 구릉성 평야를 이루며 김포평야로 뻗어간다. 강남의 지형은 대부분 관악산의 정기를 받는데 관악산은 화성이라 문장가가 배출하고 토성을 이룬 구룡산은 재물이 많은 터를 이룬다. 따라서 강남의 지기는 대체로 부자나 학자, 관원을 배출할 땅이다.
3) 상이한 지기
강북은 화성(북한산과 수락산)과 목성(북악산과 남산)의 정기를 강하게 받는 터라서 대체로 관원이나 예술적 재능이 많은 학자가 배출되고 화성인 관악산과 토성인 우면산 그리고 금성인 구룡산의 지기를 받는 강남은 부자가 많이 배출될 터이다.
따라서 강북은 정치와 문화적 귀인을 배출시킬 위주로 땅을 이용하고 강남은 경제인을 배출시킬 위주로 땅을 이용할 때 지덕이 발동해 발복을 가져다 준다. 현재는 땅의 성격과 궁합에 맞는 이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강남의 지맥은 남쪽에 있는 청량산, 구룡산, 우면산, 관악산의 지맥이 모두 한강이 있는 북쪽으로 뻗어 나갔다. 따라서 남고북저의 지형을 이룬다.
2. 곤태저허의 지세
서울의 서쪽인 마포와 서대문구는 남진하는 창릉천 가에 자리를 잡았는데, 이 지역은 천리를 뻗어 온 한북정맥이 바다와 가까운 한강하류를 만나 기력을 다하고 기맥을 땅속으로 감춘 평지룡이다. 또 서울의 남서쪽인 강서구는 만 리를 뻗어 한남정맥이 서해를 가까이 두고 넓은 김포평야로 몸을 땅속으로 감추었으니 서울은 북, 동, 남쪽이 산으로 에워싸인 가운데 남서쪽과 서쪽만이 낮고 넓게 트인 곤태저허의 형세이다.
한양은 동쪽(진방) 과 남서쪽(곤방)이 공결한 진곤저허의 지세라 운명적으로 일본과 청나라의 침입을 당했다. 그런데 서울의 지세는 높은 산 능선이 동쪽을 막아 섰으니 일본의 침입은 걱정할 것이 못된다. 그렇지만 서쪽과 남서쪽의 지세가 공허하니 중국이 정치적, 경제적으로 침범해 피해를 입힐 위험이 크다.
3. 수구의 결함
서울의 지세는 북, 동,, 남쪽은 수려하고 높은 산들로 에워싸여 천혜의 요새를 이루나 한강물이 빠져나가는 서쪽과 남서쪽은 서울의 수구로서 낮은 구릉과 평지를 이뤄 지세가 낮고 허하다. 즉 수구가 넓게 비어 있으니 서울 내에 생기가 응집되지 못 하고 누수되니 부가 쌓이기 어렵다.
4. 진산의 살기와 한강의 반궁수
1) 북한산의 살기
북악산은 서울 강북 대부분 지역에 지기를 공급하는 강북의 진산으로 목성의 형체를 뛰고 있으나 암반이 밖으로 드러난 동산이다. 그런데 동산은 흙이 두텁지 못해 지기가 쇠약하고 그 곳에서 뻗어 내린 내룡 역시 지기가 왕성치 못하니 마치 머리에 부스럼이 난 사람처럼 생기롭지 못한 모습이다.
북악산은 목성체라 귀인을 배출하거나 관운이 높지만 이런 살기를 품은 산을 배경으로 터를 잡으면 고위관리로 등용되어도 관재구설에 휘말려 벼슬길이 순탄치 못할 터이다.
2) 관악산의 살기
관악산은 강남 대부분 지역에 정기를 공급하는 강남의 진산이 되었다. 그런데 관악산은 암반이 밖으로 드러나 살기를 강하게 내뿜는 형상일 뿐 아니라 불이 피어오르는 화성체라서 화기가 강하다. 따라서 관악산의 살기와 화기를 직접 전달 받는 강남은 화재뿐만 아니라 살기로 인해 이상한 재앙에 시달릴 위험이 있다.
5. 지맥에 역행한 건물의 입지
1) 강남의 지맥
한남정맥에서 분기한 관악산,수리산, 청량산에서 출맥한 지맥이 북쪽의 한강을 향해 뻗어 대체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흘러 뻗었다. 따라서 강남의 주택이나 빌딩을 건설할 때면 북진하는 지맥에 순응해 북향을 놓아야 지덕을 강하게 받을 수 있다.
그런데 강남의 주택과 빌딩은 남향을 놓거나 또는 도로와 면접한 경우는 지맥의 흐름과 관계없이 도로를 향해 건물의 좌향을 놓으니 지맥과 역행하여 건물을 않히는 경우가 많다.
2) 강남의 바람
강남은 남쪽에 산이 있고 북쪽에 한강이 있는 지역이다. 낮에 태양이 비추면 산 능선은 급히 따뜻해지나 평지와 한강물은 그 보다 늦게 뜨거워진다. 낮바람은 북쪽의 차가운 강바람이 남쪽의 따뜻한 산을 향해 남향으로 불고 밤이 되면 반대로 북향으로 바람이 분다.
따라서 지맥과 역행하여 건물을 남향으로 세운다면 대개는 찬 밤 바람을 직접 맞아 바람으로 인해 사람이 풍병이 들고 기업은 사업운이 트이지 못한다.
6. 곤태저허의 비보
1) 하늘공원의 造山
풍수지리에서 도읍의 나성에 허하고 빈 곳이 있어 풍수상 완전치 못할 때는 흙을 높히 쌓아 산을 만들고 그 위에 돌을 쌓아 올려 언덕을 만드는 등 造山을 하여 허점을 보완하고 실기를 막아낸다.
하늘공원은 서울 서쪽이 공허한 풍수적 결함을 치유하는 조산으로 훌륭하다. 다만 공원의 긴 면을 한강과 나란히 조성한 관계로 살기를 막는 효과는 떨어진다. 따라서 한강의 흐름과 직각으로 큰 키의 나무숲을 빼곡히 조성한다면 조산의 규모를 더 확장시키는 효과를 가져와 서쪽의 허점을 진정시킬 수 있다.
2)거북설치와 성벽조성
서울의 남서쪽인 강서구는 김포평야가 자리해 놓은 산맥이 이어지지 못한다. 따라서 하늘공원 내에 상징적 의미로써 돌로 된 거북석사을 설치하고 전통양식의 성벽을 축성하면 낮은 지맥의 공결이 비보되어 이어지고 서울의 지기가 누수되지 않는다. 성벽은 예로부터 지기가 흘러가는 산 능선을 따라 쌓으면 성벽을 자연스럽게 지맥이 연결된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7. 수구의 비보
1) 가로수 조성
한강이 서해로 흘러드는 서울의 수구 부분은 평야지대가 넓게 펼쳐져 서울시내에 기가 모이지 못하여 누수될 염려가 크다. 따라서 서울의 수구를 나무로써 보완하기 위해 성산대교에서 행주대교에 이르기가지 한강 북쪽의 강변북로와 남쪽의 올림픽대로에 가로수 길을 대대적으로 조성하면 길하다.
2) 돌탑의 조성
마을의 수구가 넓어 풍수상 기가 빠져 나갈 허점이 보인다면 마을 입구에 돌무더기를 조성해 마을의 기를 보전하였다. 한강에 떠 있는 선유도는 서울의 수구를 막아선 禽星에 해당되는데 풍수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풍수지리에서 금성은 수구부분에 새처럼 날짐승 모양의 바위들이 막아선 것을 말하는데 금성이 수구를 닫아 주면 벼슬 높은 관원이나 지방관이 배출된다고 한다. 따라서 양화대교가 통과하는 선유도에 새의 형상을 본 뜬 돌탑들을 조성하거나 울창한 니무숲을 조성하면 훌륭한 수구막이가 된다.
8. 화기의 비보
1) 소나무 식재
암반이 군데 군데 드러난 북악산에 소나무를 식재하고 나아가 청룡과 안산에 해당하는 인왕산과 남산에도 소나무를 대대적으로 식재하면 석산으로 인한 도성의 화기는 스스로 사라질 것이다.
2) 청계천 복원
관악산은 불꽃 모양의 화성이라 화기로 인해 이상한 재앙에 시달릴 위험이 높다. 조선시대에는 남지를 팠으나 지금은 청계천을 복원하여 시냇물이 흐르므로 화기를 비보해 주고 , 물은 재물과 관계되니 청계천이 복원됨으로서 서울의 지기를 왕성케 하고 재복을 크게 해 주리라고 풍수지리는 기대한다.
9. 반궁수의 비보
1) 사탑건설
평양 모란대에 있는 영명사는 평양 북쪽 지세의 허함을 보완하여 주고 있고 강남의 봉은사와 국립현충원 내의 호국지장사는 서울의 반궁수에 대한 비보사찰이란 상징성을 갖고 있다.
2) 방풍림의 조성
서울에서 한강이 반궁수로 미치는 대표적인 곳이 금호동인데, 한강수가 반궁수로 휘몰아치기 때문에 바람이 세찬 곳인데 이것을 막기 위해서는 뚝섬에 나무 숲을 조성해 방풍의 비보를 하여야 한다. 뚝섬에 생태공원을 조성하고 서울의 숲을 만듬은 풍수비보차원에서는 매우 반가운 일이다.
10 산천의 비보
1) 서울타워
서울의 풍수적 형국은 행주형인데 남산 정상의 서울 타워는 행주형의 서울에서 돛대를 상징하는 것이고 서울의 발전을 위한 가치있는 풍수물이다. 따라서 현재의 모습보다 더욱 현란한 모습으로 치장해 많은 사람들에게 볼 거리를 제공해야 한다.
2) 여의도의 닻
여의도는 정치와 금융 그리고 방송의 중추적 역활을 담당하는 기관이 많아 생기가 왕성해야 한다. 그렇지만 한강물이 서해로 빠져나가는 모습이 멀리까지 보여 재물이 빠져나갈 흉상이다. 따라서 닻 형상의 대형 조각품을 여의도 공원안에 설치하면 재물이 도망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닻은 배에 실린 재물이 바다에 표류하지 못하도록 붙들어 주기 때문이다.
3) 용산공원
남산을 주산으로 삼은 용산 땅은 두 갈래로 지맥이 나뉘는데 남동진한 용맥에 기대어 한남동과 보광동이 자리하고 남서진한 용맥에 이태원동과 용산동이 자리를 잡았다. 풍수적으로 쌍룡이 서로 여의주를 차지하려고 다투는 쌍룡쟁주형의 명당인데 용이 다투는 여의주는 한강 가운데 떠 있는 노들섬이다. 그런데 내룡의 형세는 몸을 땅속으로 감춘 채 잠을 자는 지룡으로 이런 곳은 휴식과 안정이 기대되는 편안한 땅이다.
따라서 용산가족공원, 국립중앙박물과 같은 공공시설이 들어서야 땅의 성격과 부합된다. 하지만 이곳은 현재 용 머리에 국방부 청사를 비롯해 미군부대 등 군사시설이 넓게 자리를 잡고 있다. 이것은 마치 용의 머리에 총부리를 들이댄 형국으로 용이 승천하는 것을 위협하거나 막는 식이다. 이런 까닭에 용산의 발전을 위해서는 총의 위협에 기 죽은 용이 다시 머리를 들고 승천하도록 군 관련 시설을 모두 다른 곳으로 이전시켜 여의주를 놓고 쌍룡이 서로 다투도록 도와줘야 한다. 용산의 여의주인 노들섬에 세계적인 음악당이 들어서면 지기가 분출하면서 용산은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4) 도시조경
서울은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로 그로 인해 수질, 대기, 토양, 환경오염과 더불어 교통난이 심각하다. 또 비싼 지가로 인해 초고층 빌딩이 건설되니 그 결과 바람의 이동통로도 막히고 녹지공간도 부족해 열섬현상이 나타나며 환경의 질도 떨어진다. 도로변의 가로수를 대폭 정비해 특색이 있는 식재를 한다면 나무로 인해 흙과 물이 보호되면서 미기후까지 조절된다. 아울러 가로수 정비와 더불어 옥상조경으로 고층빌딩으로 인해 강화된 양기와 살기를 나무를 이용해 가려 막고 덮음으로써 순화시키는 역활을 담당해 서울의 지기를 왕성하게 한다.
*자료원 ; 고제희 대동풍수지리학회장의 한국의 산천편에서 발췌....
수도 서울은 세계 제일의 대명당터
세계 어디를 가 보아도 서울 같이 아름답고 국세가 좋은 명당터를 발견하기가 쉽지가 않다. 서울 성곽을 돌아보면서, 남산과 인왕산에 올라 서울 시내를 바라보노라면 서울에 대한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국세가 좋은 곳이다. 오늘은 한양국세에 대하여 좋은 글이 있기에 여기에 옮겨둔다. 水火相反, 서울은 화형체산이 많아 화형국세인데 조선시대는 해태상으로 화기를 감소하였는데 오늘날은 한강만수와 하천에 물에 흐르게하여 화기를 막음으로써 화기를 조절한다. 한강의 정비, 사대문안의 청계천 정비, 서초.강남의 양재천 정비, 송파의 성내천에 맑은 물이 흐름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사대강 사업도 그런 차원에서 국운상승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백두산의 총정기가 금강산을 거쳐 광주산맥으로
우측은 한탄강, 좌측은 북한강,남한강과 합류하여 한강으로 흐름
. 관악산 -김포를 거처 북으로 거수, 임진강 하류와 합세하여 광주산맥을 둘러 쌈
. 광주산맥의 정기는 삼각산을 이루어 불암산이 보산되어 음양의 이치로써 서울로 동행
. 북악산으로 정돌취기봉을 이루어 한양국세의 주산의 위엄을 갖추고
. 웅장한 백호 인왕산, 청룡은 이화동으로 돌아 동대문에서 끝남
. 남산은 안산으로 응기하여 사대문안은 천하명당국세로 自成됨
. 남쪽 차령산맥은 당진으로 거슬러 호위했고 북쪽은 마식령산맥이 개성으로 내려가서
산 따라 물따라 보산하여 한양국세를 이룸
. 삼각산, 도봉산, 불암산, 관악산의 화성체-> 해태상으로 화기를 감소- >한강의 만수
로 수화가 상반(水火相反)되어 길조를 이룸
한양국세, 우리 서울의 명당
관산의 실례로 현 서울을 평해 본다. 고도인 한양(현 서울)의 국세는 천하대지로서 지금부터 600여년 전에 무학대사의 안목에 의하여 정해졌는데, 그 혜안에 대해 찬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태조산은 백두산이다. 백두산의 總精氣는 너무 강하여 한국의 중심지로 흐르다가 금강산을 이루니 세계의 유일무이한 대명산으로 정기충만한 聳秀現象이다. 광주산맥은 금강산의 총정기를 받아 내려가는데, 우측은 한탄강이 보호하고 좌측은 북한강이 보호하여 흐른다. 남한강과 합세하였다. 양수리가 되고 합세하여 흐르는 물이 한강이 되어 흐르는데, 관악산이 김포로 거슬러 북으로 거수함에 한강물을 산 따라 돌아 북으로 흐르다가 임진강하류와 합세하여 광주산맥을 둘러싸 놓았다. 광주산맥에 흐르는 산천정기는 한점의 泄氣없이 크게 삼각산을 이루어 불암산이 保山되어 음양의 이치로써 서울로 동행한다.
그 장엄하고 길한 암석이 기세는 우리나라에서 둘도 없는 산천정기로 응결된 명산이라 항상 瑞氣하고 있다. 剝換(석비레 또는 마사토로 삭아 떨어지는 과정)의 현상으로 항상 서기의 모습을 보인다.
정기가 충만된 장엄한 기상은 북악산으로 정돌취기봉을 이루니 웅장한 모습으로 한양국세에 주산의 위엄을 갖추었다. 서쪽으로는 인왕산이 웅장하게 백호로 감싸주고, 청룡은 이화동으로 돌아 동대문에 와서 끝나고, 남산은 안산으로 응기하여 사대문안은 천하명당국세로 自成된 것이다.
이와 같은 明局勢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따라서 서울은 한국의 수도로서 영구하리라 보며, 또 옮겨서도 안 되는 대명당 국세이다.
또한 사대문 안과 같은 국세가 형성되는 데는 남쪽 차령산맥이 당진으로 거슬러 호위했고, 북쪽은 마식령산맥이 개성으로 내려갔으니, 물도 산 따라 돌아 보산하여 한양국세가 자성된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그 당시 무학대사가 한양을 도읍지로 정할 때, 조선오백년 도읍지라고 예언한 것은 무학대사가 이태조의 능을 소점할 때 명혈론으로 “오백년간은 이씨가 한양에서 도읍할 것”이라는 예언을 한 것이지 한양의 명당국세를 보고 도읍의 시효을 예언한 것이 아니다.
산형지세의 시효란 천지개벽 같은 변화가 없고서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상식이다. 혈에는 매장된 백골에 대하여 혈의 차등에 의한 자손의 음복의 시효가 있다. 한양은 삼각산, 도봉산, 불암산, 관악산, 등이 화성체 산형으로 국세를 이루어 화형국이라 논하였다. 화가 너무 왕성하다 하여 한양을 들어오는 길목마다 수를 상징하는 해태상을 세워서 화기를 감소시키고자 하였으나 이는 무학대사의 도력으로는 그 당시나 유효한 예방이며 오늘날 과학문명시대에는 믿기 어려운 말이다. 그러나 실제 풍수설로 논의 할 때 국세를 水火相反으로 조화시킨다면 한강수가 만수되어야 할 터인 즉, 국운이 생기하는 징조로써 현재 한강 만수작업이 시작되었으니 풍수지리학적으로 보아 이는 진리의 수화가 상반되는 길조이니, 자연의 이치로써 감응되어 대한민국이 선진대열에 어깨를 나란히 할 길조인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경기지역은 명당국이어서 인재, 미인의 출생이 많고, 또한 만물의 결실도 좋아 경기미가 제일로 소문난 것이다. 이 또한 지리풍수의 진리이면 , 한국의 수도 서울이 이룩되어 우리 모두 잘 살 수 있는 明氣가 이상과 같은 명당 한양국세의 이치 가운데 있는 것이다. 정암김종철 선생의 명당답사기 중에서.
서울의 지리적 위치
문화유적 지표조사 종합보고서,서울지역 선사유적의 조사현황
서울 역사박물관
서울은 지리적으로 한반도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수리적으로 동경 126.45~127.11, 북위 37.25~37.41에 위치하고 있다. 동단에는 강동구 상일동이 위치하고 서단에는 강서구 오곡동이 위치하여 동서간 거리는 36.78Km이다. 남단에는 서초구 원지동, 북단에는 도봉구 도봉동이 위치하여 남북간 거리는 30.3Km이다. 서울의 면적은 강북이 297.94평방키로미터, 강남이 307.56평방키로미터로 전체 605.6평방키로미터를 차지하고 있다.
서울은 지형적으로 북쪽에 북한산(837미터), 서쪽에 덕양산(125미터), 남쪽 관악산(629미터), 동쪽에 용마산(348미터)의 4외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또한 서울은 한강을 경계로 강북과 강남으로 양분되는데 북쪽 경계에는 북한산, 도봉산, 남장대, 인수봉 등 600미터를 넘는 고봉들이 있으며 북서쪽에는 고도 150~250미터 내외의 구릉성 산지가 분포하고 있다.
북동쪽에는 동대문구에서 도봉구를 지나 의정부까지 단층선을 따라 중랑천이 한강으로 유입되게 된다. 한강 이남 지역은 충적지 내지 낮은 구릉지로 평탄하지만 남쪽의 중앙부에 관악산(632m), 청계산(493m) 등 비교적 높은 산이 위치하고 있고 이들 산지 사이에 안양천, 탄천, 양재천 등이 흘러 좁은 충적지를 형성하면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한강은 서울 권역으로 들어오면서 하상이 넓어짐에 따라 넓은 충적지를 형성하였다.
이렇게 강북 지역의 청계천, 불광천, 사천, 중랑천, 왕숙천 주변의 넓은 충적지와 강남지역의 서남부와 동남부의 충적지와 한강변의 넓은 하상 충적지 일대에 예로부터 인간이 살기에 좋은 지형 조건을 구비하게 되었다.
* 자료원 ; 문화유적 지표조사 종합보고서, 서울지역 선사유적의 조사현황
한국의 국토는 세계 제일의 명당
한국은 산이 아름답고 물이 맑아 예로부터 금수강산이라고 불려왔다. 특히 한국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시작해서 전 국토를 끊어짐 없이 하나로 연결하고, 중간에 연결된 여러 산과 맥을 통해 생기를 전달하고 있다. 또 토질은 알맞은 습기로 전체적으로 탄력이 있어, 발산되는 빛과 소리가 밝고 명랑하다. 물 역시 맑고 깨끗해서 세계에 내 놓아도 손색이 없다.
한국의 국토는 지리적으로 아시아대륙이 시작하는 첫 번째 지점에서 태평양을 향해 길게 뻗어 나와, 마치 아시아 대륙은 지구상에서 가장 넓은 땅이며, 태평양 역시 세계에서 가장 넓은 바다이다. 한국의 국토를 음양이론으로 분석하면, 바다는 낮은 곳에 있어서 음이며 여성을 상징하고, 육지는 높은 곳에 있어서 양이며 남성을 상징한다. 따라서 대륙에서 바다를 향해 길게 뻗은 한국의 국토는 남성의 생식기와 같은 모양이다. 생식기는 음과 양을 결합시킴으로서 새로운 생명체를 만드는 가장 신비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신체의 각 부분은 생식기가 정상적으로 가능하도록 각 종 에너지를 우선 공급한다. 음과 양이 서로 결합해서 조화를 이루는 공간을 명당이라고 한다면 한국의 국토는 최고의 명당인 것이다.
서해안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9미터에 이르는 간만의 차를 나타낸다. 이러한 간만의 차에 의해 조성된 갯펄의 폭도 몇 십 키로미터에 이르러, 세계에서 드문 매우 긴 개펄을 형성하고 있다. 흔히 모세의 기적이라고 말하는 바다가 갈라지고 바다 건너편의 땅으로 통로가 나타나는 현상은 전라남도 진도 앞 바다를 비롯해서 해안 여러 곳에서 해마다 나타난다.
개펄은 육지가 되기도 하고 바다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개펄은 음과 양의 기운이 서로 결합하는 이른바 음양이 총화하는 공간으로서 생기가 충만하다. 이러한 생기에 의해 서해안 개펄은 조개와 굴, 그리고 기러기를 비롯한 수많은 생명체의 보금자리가 되고, 이 곳에서 생긴 여러 해산물은 건강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또한 서해안의 생기는 바람을 타고 내륙 깊은 곳 까지 전달되어 전 국토를 생기있는 명당으로 만든다.
한국의 국토를 대륙과 바다가 결합하는 생식기에 견줄 때, 바닷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현상은 음과 양이 결합하는 과정으로 분석된다. 이것은 곧 한국의 국토가 강력한 생명력이 있는 세계적인 명당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또 세계에 널리 알려진 인삼은 한국의 것을 최고로 꼽는다. 중국이나 미국에서도 인삼이 재배되기는 하지만 약효면에서 한국제품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4천년전에 진시황이 삼을 구하기 위하여 선남선녀를 한국으로 보냈다는 기록은 중국에 삼이 없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은행잎이 독일산 은행잎보다 20배 이상 약효가 있다는 것도 이미 입증된 사실이며, 한국 남성의 소변에 신비한 약효가 있는 물질이 있다는 것도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러한 시실들은 한국이 세계 제일의 명당임을 확인시켜주는 것들이다.
과거 한국 구토에 대한 풍수지리 이론에 한국의 지리는 백리 가는 평야가 없고 천리 가는 물이 없어 큰 인물이 태어나지 못하며 따라서 한국이 대국이 되기에는 부족하다라고 말한 부분이 적지 않다. 이는 한국구민들이 자긍심을 갖는 것을 방해해서 중국이나 일본 같은 외국을 섬기게 하고 민족을 분열시키고자 퍼뜨린 말이다. 삼천리를 뻗어 내려간 후륭한 대간이 한국의 구토에 있다는 사실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다.
풍수지리에서 땅의 기운을 분석하는 가장 중요한 대상은 산과 물이다. 산의 기운과 물의 기운이 음과 양의 조화를 이루면 무한한 에너지가 발생한다. 따라서 한 국가의 지세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대간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사실만을 강조해서 국토에 대한 의미를 비하시키는 것은 한국 국토의 아름다움과 무한한 잠재력을 두려워한 외국인들의 간교한 술책이다. 아프리카 대륙에는 넓은 나일강 같은 긴 강이 많지만 큰 나라나 큰 인물은 나지 않는다. 이는 들판의 넓이나 강의 길이가 결코 국력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또 하나의 예로 한국과 지리적 조건이 비슷한 이탈리아를 들 수 있다. 유럽 대룩의 일부가 남쪽으로 뻗어 내려와 알프스 산을 이루고 있고 그 기운이 지중해로 내려 와 삼면은 바다로 나머지 한면은 육지와 연결됨으로써 바다와 육지가 음과 양으로 결합하는 형태를 이루고 있다. 기후도 한국과 큰 차이가 없으며 노래를 즐기고 사랑하는 면에서도 비슷하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주변 다른 나라에 비해 결코 큰 나라가 아니며 더욱이 긴 강도 없다. 그러나 과거 역사를 보면 이탈리아는 로마제국을 건설해서 천년 이상 유럽을 통치하였다. 국력은 결코 들판의 면적이나 강의 길이와 관계없음을 알 수 있다. 즉 국력은 음양의 조화에서 발생하는 힘에 의해 만들어 지는 것이다.
자료원 ; 박시익, 한국의 풍수지리와 건축, 일빛, 200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