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로 산 한국의 인물들
전정희 / 홍성사
이재명, 이완용을 처단하다
이재명은 칼집에서 칼을 빼 들었다. 이완용은 종현성당에서 열린 벨기에 황제 레오폴드 2세의 추도식에 참석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이재명의 칼에 이완용은 어깨와 허리를 찔렸다. 칼은 이완용의 폐를 관통했다. 그러나 숨을 끊을 수는 없었다. 스무 살 남짓의 이재명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푸르디 푸른 그의 젊음을 매국노 이완용을 처단하기 위해 바쳤다. 평북 선천 출신이며 평양 일신학교를 졸업한 기독 청년이었다. 저자는 단 두 줄로 기술된 ‘청년 이재명’을 찾아 나섰다. 저자 전정희는 국민일보 논설위원이자 저술활동을 겸하고 있다. 처음 저자의 글을 접했을 때 교회사의 고고학자 같았다. 기억 너머에서 흐릿해져버린 믿음의 사람들을 발굴하여 단아하고 매력적인 글로 그려낸다.
교회사가는 교회사의 흐름에 주요한 인물들과 그들의 이야기들을 다룬다. 기술의 과정 속에서 불가피하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던 인물들은 제외될 수밖에 없다. 교회사의 인물들을 발굴하면서 원칙을 세웠다. 주기철, 손양원, 조만식 등 이미 잘 알려진 인물을 제외했다. 글로만 소개하지 않고 직접 현장을 확인했다. 한 가지 더 있다면 현장들을 답사할 수 있도록 약간의 수고를 더하는 것이다. 2017년 1월부터 시작된 작업은 3년 가까이 계속되었다. 70여 명의 인물 중에서 31명을 선별해 묶었다.
서울, 경기, 강원충청, 호남, 영남, 제주 지역까지 두루두루 탐사를 다녔다. 발굴된 내용들은 지금까지 어떤 교회사 책에서도 찾아낼 수 없었던 다양한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다. 서두에 소개한 청년 이재명은 처음 접하는 인물이다. 그뿐 아니라 현해탄의 투신 정사의 주인공 윤심덕이 기독교인이라는 사실도 놀라웠다. 심지어 현해탄에서 투신했다는 것도 가능성에 불과했다니. 사의 찬미를 부른 윤심덕 너머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는 윤심덕의 다른 얼굴이 있다. 모태신앙이었고, YMCA 강단에서 찬송가를 부른 유명한 가수였다는 점이다. 지금도 가슴 아픈 김옥균은 갑신정변을 일으킨 주모자로 알려져 있지만 명성황후를 주측으로한 수구파를 처단하고 개혁을 일으킨 주역이었다는 사실이다.
버릴 것 하나 없는 이야기들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통속적 이미지 너머 숨겨진 이야기들을 통해 역사를 충분히 다르게 해석할 수 있음을 알려주는 책이다. 한국교회는 현재를 있게 만든 믿음의 선배들을 과도하게 망각하고 있다. 현재의 한국교회가 처음 마음에서 너무나 멀리 떠나 있다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과도하게 비역사적 종교로 퇴보한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기까지 하다. 사도행전과 같은 책이다. 한국교회의 첫 모습, 지금까지 알려진 주류의 역사의 아닌 그 너머에서 살아왔던 믿음의 선배들의 이야기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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