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솓되는 엘리바스의 책망성 권고입니다. 엘리바스의 말에는 자신감이 묻어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연구한바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욥을 향하여 책망성 권고를 합니다.
엘리바스의 말을 따라가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기도에 대한 응답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입니다. 욥이 향하여 할 분은 하나님입니다(1절). 상식적인 신앙을 말합니다. 본노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 시기가 어리석은 자를 멸망하게 합니다(2절). 누가 이 말에 반대하겠습니까?
미련한 자가 뿌리를 내리는 것을 보고사 저주하였다고 합니다. 미련한 자의 자식들은 구원에 멉니다. 고난 당할 때 누구도 구해주지 않습니다. 미련한 자는 열심히 일하도 결국 다 뺀앗기고 맙니다.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은 땅의 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태어났습니다. 이것은 마치 불꽃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과 같은 합당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께 부탁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합니다.
엘리바스는 논의를 하나님께로 향합니다. 자신이라면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부탁하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을 알지 못하는 엘리바스의 오만입니다. 더구나 욥이 하나님을 찾지않고 의탁하지 않았다는 확증편향입니다.
이런 생각으로 하나님을 증거합니다. 욥이 모른다는 생각이던가? 욥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입니까? 천지를 창조하신 분입니다. 만물을 섭리하시는 분입니다. 낮은 자를 높이시고 애곡하는 자를 일으켜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분입니다.
엘리바스는 갑자기 하나님께 징계받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욥을 향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전합니다.
하나님은 아프게 하다가 싸매시고 상하게 하다가 고쳐주시는 분입니다. 어떤 환난에서도 지켜주십니다. 재앙,기근,전쟁에서도 지켜주십니다. 고난과 멸망속에서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들에 있는 돌 즉 밭과 들 짐승도 화목하게 지낼것입니다. 집도 얻게 되고 자손도 많게되고 장수하다가 죽게됩니다. 이것이 엘리바스가 연구한 것입니다. 들어보면 알것이라 말합니다. 엘리바스는 신학적으로는 타당하였지만 사랑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자칫 울리는 꽹과리가 될수있습니다.
욥은 하나님께 징계받지 않았고 업신여기지도 않았습니다. 엘리바스는 욥을 좀더 이해하고 살펴야했습니다. 그러나 고난은 죄의 결과라는 확증편향으로 욥을 정직하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사랑으로 진리를 전하지 못했습니다. 엘리바스의 모습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나의 모습에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진리를 나타내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