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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록수] 반가운 손님 (3)
친부모만큼이나 정이 들고 은혜를 입은 선생이, 불시에 세상을 떠나서, 영구차나 전송하는 것처럼, 아이들은 자동차 차창에 가 매달려 우는 것을,
“어서들 들어가거라, 내 열 밤만 자구 오마, 응.”
하고 영신은 동혁에게 안겨서 논을 내젓는데, 차는 가솔린 냄새를 풍기며 떠난다. 원재 어머니와 청년들이 앞을 다투어 차에 오르며 간호를 하러 가겠다는 것을 다 물리쳤건만, 중간에서 원재가 뛰어올랐다.
차는 두어 간 거리나 굴러 나가는데,
“여보 — 여보 잠깐만 기다류.”
하고 헐레벌떡거리며 쫓아오는 것은, 교회의 회계를 보는 장로의 아이들이었다. 동혁은 자동차를 정거시켰다. 회계는 숨이 턱에 닿아서, 땀이 나도록 쥐고 온 것을 영신에게 내주면서,
“학부형들이 급히 추렴을 낸 건데요, 위선 급헌 대루 쓰시라구요.”
하고는 뒤도 아니 돌아다보고 뺑소니를 친다. 영신의 손에 쥐어진 것은 십 원, 일 원짜리가 뒤섞인 지전이었다.
“얼마에요?”
“모르겠서오. 온 염치없이…..”
영신은 그 돈을 동혁에게 준다. 동혁은 돈을 세어보고,
“이것만 가지면 급헌 대루 쓰겠군.”
하고 집어넣는다. 그는 하도 일이 급하니까, 자동차 삯이나 병원에서 들것은 ‘설마 어떻게든 되겠지’하고 닥치는 대로 떼거리를 쓸 작정으로, 영신을 업고 나섰던 것이다. 그는 그때에 처음으로 ‘왜 내가 돈이 없었던가’하고 돈 있는 사람이 부러워 탄식을 하였었다. 영신이가 쓰러지는 것을 목도한 학부형들은 눈들이 휘둥그레서,
“허어, 이거 큰일 났군!”
“아무리 억지가 세지만, 잔약헌 여자가 석 달 동안이나 염체 헐 일을 했나베.”
“그러구 보니, 우리들은 남의 집 색시 하나를 잡은 셈이 되지 않겠나.”
“두말 말구 우리 기부금 적은 거나, 빚을 얻어서래두 이번엔 다 내놉시다.”
하고 이 구석 저 구석 모여서 공론을 하고, 제일 머릿수가 큰 한낭청 집으로 몰려가서 그제야 그 말썽 많던 돈을 받아낸 것이다.
……자동차 속에서도, 차체가 자갈을 깐 길바닥에서 들까부는 대로, 영신은 창자가 울려서 아품을 참기 어려웠다.
“아이고! 갈구리쇠루 막 찍어 댕기는 것 같어요.”
하고 동혁의 발과 손등을 막 물어뜯기를 여러 차례나 하였다.
동혁은 아프단 말도 못하고,
“몇 시간만 눈 딱 감구 참읍시다.”
하면서도 가엾고 애처로운 생각에
‘내가 대신 앓았으면.’
하다가,
‘마침 내가 왔기에 망정이지, 혼자 이런 일을 당했드면 어쩔 뻔했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의료기관 하나도 없는 곳에서 고집을 세우다가, 비참한 최후를 마쳤을 것을 상상하니, 몸서리가 쳐졌다.
‘우리가 이생에 연분이 단단히 닿나 보다. 오늘 이런 일이 있을 걸 미리 알구, 누가 불러댄 것 같으니……’
하고 미신 비슷한 운명론자가 되어보기도 하였다.
자동차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또 기차를 기다려 타고, 날이 어둑어둑할 때에야 S읍에 도착하였다. 정류장에서 환자는 인력거를 태우고 삼 마장이나 되는 언덕길을, 원재와 둘이서 뒤를 밀어주며 병원을 찾아 올라갔다. 자혜의원은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문이 굳게 닫혀서, 다시 개인병원으로 찾아갔다. 두 사람이 점심 저녁을 굶어서, 몹시 시장할 것을 생각하고 영신은,
“어디서든지 요기를 좀 허서요, 네?”
하고 몇 번이나 돌려다 보며 간청을 하는 것을,
“걱정 마슈! 하루쯤 굶어서 죽을라구요.”
하면서도 동혁은, 고기 굽는 냄새가 나는 음식점 앞에서는, 외면을 하고 숨을 들이쉬지 않고 걸었다.
속옷에 땀이 흠씬 배도록 인력거를 몰아 왔건만, 병원문은 걸렸다. 초인종을 한참이나 누르니까 그제야 간호부가 나와서, 분을 하얗게 바른 얼굴을 내밀더니,
“선생님 안 계서요. 연회에 가셨어요.”
하고 슬리퍼를 짝짝 끌고 들어가 버린다.
“여보, 시각을 다투는 환자가 있는데, 연회가 다 뭐요?”
동혁의 호령을 듣고서야, 간호부는 요릿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의사는 한 삼십 분 뒤에야 인력거로 달려왔다. 진찰실에 전등은 환하게 커졌다. 나이 사십 남짓한 의사는, 술 냄새를 제하느라고 가오루를 깨물며, 끈끈이로 붙여놓은 것처럼 어여쁜 수염을 배비작거리고 앉아서, 동혁에게 대강 경과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짐작하겠소이다.”
하고 영신을 눕히고 자세히 진찰을 해본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군요. 노형 말씀대루 급성 맹장염인데, 밤에는 설비 관계루 헐 수 없으니, 내일 아침에 수술을 헙시다. 위선 진통제나 한대 놔드릴게 절대루 안정을 시키시오.”
하고 영신의 팔을 걷고 주사를 놓고는,
“요행으루 맹장염인 줄 알어서, 일찌감치 서둘렀으니까 수술만 허면 고만이지만, 이분은 몸 전체의 각 기관이 여간 쇠약허지가 않은걸요. 첫째 영양이 대단히 부족헌 것 같은데, 게다가 너무 무리하게 노동을 헌 게, 맹장염까지 일으킨 원인이 됐나 보외다.”
하고 일어서 손을 씻는다. 동혁은 비로소 안심을 하고,
“아무튼 선생께서 생명 하나를 맡어줍시오.”
하니까,
“네, 염려마시오.”
하고 간호부더러 인력거를 부르라고 명령한다. 다시 연회로 가려는 눈치다.
동혁과 원재는, 주사 기운에 말도 못하는 영신의 어깨를 부축해서, 병실로 데려다가 눕혔다.
자궁을 수술하였다는 환자가 옆방에서 신음하는 소리에, 동혁은 잠을 잘 수 없었다. 원재와 둘이서 영신의 침대 밑에 담요 한 자락을 깔고 누웠는데, 삼백 리나 걸은 노독도 채 풀리기 전에 종일 굶고 꺼둘려 와서,
‘눈을 좀 붙였다가 일쯕 일어나야 헐 텐데…..’
하고 억지로 잠을 청하였다. 그러나 맘이 바짝 쓰이는데다가, 창자가 달라붙도록 속이 비어서, 잠은 올 듯하면서도 아니 와주었다. 원재도 춥고 시장한 듯, 사추리(‘샅’의 방언)에다가 두 손을 찌르고 새우처럼 꼬부리고 누워서, 잠을 못 자는 것이 여간 가엾지가 않다.
영신이가 잠꼬대하듯 무어라고 혼잣말을 하는 소리에, 동혁은 벌떡 일어났다.
“왜 그러세요? 나 여깄세요.”
하고 희미한 전등 불빛에 환자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영신은 주사 기운이 아직도 가시지 않은 듯, 눈을 반쯤 뚜고,
“뭘 좀 잡수서요, 원재두……”
하면서 어서 다녀오라고 손짓을 한다.
“난 괜찮어요. 우리 걱정은 허지 마세요.”
하면서도 동혁은 원제 때문에 더 고집을 세울 수가 없어서,
“여보, 일어나우. 일어나.”
하고 원재의 어깨를 흔들었다.
길거리 목롯집(목로주점)에서 술국에 밥 한 덩이를 꺼먹고 들어오는 걸 보고, 영신은 가냘픈 웃음을 띠며,
“근처에 음식집이 있어요?”
하고 반겨준다. 원재가,
“선생님, 시장허셔서 어떡허나요?”
하고 혼자 먹고 들어온 것을 미안쩍게 여기니까,
“시장헌 게 워요. 일부러 굶기두 허는데.”
하고 동혁은 침대에 반즘 걸터앉아서 영신의 손을 잡았다. 흐트러진 머리를 쓰다듬어 올리며,
“안심허구 잠을 청허시지요. 나두 눈을 붙여볼 테니…..가을밤이라 꽤 지루헌데요.”
하고 위로해준다.
영신은 눈을 감았다 떴다 하며, 창밖의 귀뚜라미 소리를 꿈속처럼 듣고 있다가, 처량스러이 동혁을 쳐다보며,
“동혁 씨, 난 지금 죽어두 행복해요!”
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끌어당긴다.
“천만에 죽다니요. 우리 둘이 이렇게 떠나지 않구 오래오래 살면, 더 행복허지 않겠세요?”
동혁은 사랑하는 사람의 여윈 뺨과,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영신은 눈을 내리감고 뜨거운 키스를 받았다.
시계의 초침이 돌아가는 소린 듯, 창틈에서 재깍거리는 버러지 소리에 가을밤은 쓸쓸히 깊어갔다.
수술대 위에 올라서도, 영신은 동혁의 손을 놓지 않았다. 하얀 소독복을 입고 매우 긴장한 빛을 띄우면서, 수술할 준비를 하고 난 의사와 간호부가, 두 번째나,
“고만 밖으로 나가주시지요.”
하고 재촉을 하여도, 영신은,
“나가지 마서요. 여기 꼭 서 있어 주서요!”
하고 온몸의 힘을 다해서 동혁의 손을 끌어당긴다.
“네, 지키구 섰으께 걱정 마세요!”
하고 동혁은 환자의 머리맡을 떠나지 않았다. 의사가 가제를 덮은 코 밑에 마취액을 방울방울 떨어뜨려 들여마시게 하면서,
“하나……..둘…….셋………”
하고 부르는 대로 영신은 따라 부른다. 오 분도 못되어 영신은 핀셋으로 살을 찔러도 모를 만치 전신의 감각을 잃고 손에 힘이 풀려서 동혁의 손을 놓았다.
동혁은 수술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서, 수술실 밖으로 나갔다. 응접실로 대합실로 복도로 왔다갔다 하며, 생명이 좌우되는 일이 무사히 끝나기를 기다리는 마음은, 몹시도 초조하였다. 예수교 신자인 원재는, 대합실 문밖에 가 꿇어 엎드려 정성껏 기돌를 올리고 잇다. 동혁은 안절부절 못하고 왔다 갔다 하면서도 원재와 같이 일종의 엄숙한 기분에 머리가 들려지지 않았다.
배를 가르고 맹장에 달린 버러지 같은 것을 잘라버리고, 다시 꼬매면 그만인 비교적 간단한 수술이건만, 그것이 거진 두 시간이나 걸린다. 몇 번이나 수술실 도어에 귀를 대고 들어보아도 바스락거리는 소리조차 없다.
동혁은 점점 불안해졋다.
“왜 여태 아무 소리두 없을까요?”
원재는 겁이 나서 우둘우둘 떨기까지 한다.
“글쎄……..”
하면서도 동혁은 속이 바작바작 타서,
‘좀 들어볼까.’
하고 수술실 도어의 손잡이를 비틀어 열고, 들어서는데, 그와 동시에 소독약 냄새가 확 끼치며 의사가 손을 닦던 수건을 던지고 마주 나온다. 수술대 위에 허어연 홑이불을 씌워놓은 것이 언뜻 눈에 띄자, 동혁은 가슴이 선뜻 내려앉아서,
“어떻게 됐습니까?”
하고 당황히 물었다. 의사는 수술복 소매로 이마에 흘린 땀을 씻으며,
“혼났쇠다! 맹장이 썩두룩 내버려뒀으니, 까땍허면……”
하고 담배를 피워 물고 쭈욱 들이빨다가, 한숨과 함께 후우 하고 연기를 토해낸다.
“아, 그래서요?”
동혁이와 원재의 눈은 의사의 입에 가 매달렸다.
“그 수술만 같으면 문제가 없지만, 대장허구, 소장이 마주 꼬여서 간신히 제 위치로 풀어놨는데……”
하더니,
“아아니, 여자가 무슨 일을 창자가 비꾀두룩(‘비꼬이다’의 준말) 허게 내버려뒀드란 말씀요?”
하고 동혁을 나무라듯 한다.
“……….”
동혁은 그 말대답을 할 수 없었다. 간호부가 눈앞을 지나 제약실로 들어 가는 것을 보니, 맵고 뜨거운 음식을 먹고 나온 것처럼, 얼굴에 땀이 주르르 흘렀다.
“너무나 수고를 허셨습니다. 인젠 염려 없겠지요?”
“나 아는 대루 힘껏은 했소이다마는, 퇴원헌 뒤에두 여간 조심을 허지 않으면 재발될 염려가 있으니까, 거기까지는 보증헐 수가 없는걸요.”
하고 시원하지 않은 대답을 하는데, 동혁은 또다시 우울해졌다.
병실로 떠메어 들어온 뒤에요, 영신은 차츰차츰 의식을 회복하였다.
“어…….어머니! 어머니!”
하고 헛소리하듯 어머니를 찾다가,
“도, 도…….동혁 씨!”
하고 머리맡을 더듬는다. 동혁은,
“내 여깄세요. 인젠 아주 안심허세요.”
하고 가만히 그의 두 손을 잡았다.
“물을 좀. 어서 물을 좀…….”
영신은 조갈이 나서 식도가 타는 듯이 목을 쥐어뜯으며 물을 찾는다. 원재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안 돼, 지금 물을 마셨다간 큰일 나게.”
하고 붙들었다. 그래도 환자는,
“한 모금만. 네 한 방울만……”
하고 어린애처럼 안타깝게 조른다. 물이 있고도 못 주는 동혁의 마음은 한자만치나 안타까웠다.
다행히 수술한 경과는 좋았다. 식욕도 나날이 늘어서 이제는 죽을 먹고도 잘 새기고 붙들어주면 일어나 앉아서 이야기를 해도, 피곤을 느끼지 않을 만치나 원기가 회복되었다.
그동안 청석골서 원재 어머니가 와서 아들과 교대를 하고, 교인과 친목계 회원들이 그 먼 길에 반은 타고 반은 걸어서 문병을 왔었다.
“아이고, 여기꺼정 어떻게들 오셨어요?”
영신은 고마움에 겨워 그들의 손을 잡고 말도 못하기를 몇 번이나 하였다. 그중에도 원재어머니가,
“인전 아무 염려두 마시구, 어서 퇴원이나 허서요. 일전에 학부형들이 모두 새집에 모여서 기부금 적은 걸 죄다 내기루 했어요. 집 짓느라구 빚진 건 한푼두 안 남기구 갚게 됐으니깐, 학원 때문엔 조끔두 걱정을 마서요.”
하는 보고를 들을 때, 영신은 어찌나 기쁜지 금세 날개가 돋쳐서 훨훨 날아다닐 듯싶었다. 전장에서 부상을 당한 병정이 승전고를 울리는 소리를 듣는 것만치나 감격하였다.
그러나 영신은 수술한 뒤로 마음이 여려져서 애상적인 감정에 지배를 받는 것은 물론, 한 가지 까다로운 습관이 생겼다. 그것은 동혁이가 제 곁에 있지 않으면, 긴긴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신앙심도 있거니와 여자로는 보기 드물게 중심이 튼튼하던 사람이건만, 난산을 하고 난 산모와 같이 곁에 사람이 없으면 허수해서(마음이 허전하고 서운하다) 못 견디어한다. 어느 때는 도깨비나 보는 것처럼 손을 내두르며 헛소리를 더럭더럭 할 때가 있다. 그러면 문병을 온 부인네들이 성경을 읽고 찬송가를 ㅂ루러서 들려주고 하건만, 귀에 들어가지 않는 듯,
“동혁 씨 어디 갔어? 동혁 씨!”
하고 사랑하는 사람만 찾는다. 그러면 동혁은 길거리로 산보를 나갔다가도, 붙들려 들어와서 그에게 손을 잡혔다. 그래야만 환자는 비로소 마음을 놓고 잠이 든다.
“저렇게 잠시 잠깐두 떨어지질 못 허면섬 입때까진 어떻게 따루따루 지냈다우?”
하는 것은 문병 온 부인네들의 뒷공론이었다. 동혁은 그런 말을 귓결에 듣고 싱글벙글 웃으면서도,
‘이거 한곡리 일 때문에 큰일 났군. 강기천이가 그동안 또 무슨 흉계를 꾸밀지 모르는데, 온 편지 답장들이나 해주어야지.’
하고 몹시 궁금해하였다. 동화와 건배에게 거진 격일해서 편지를 했건만, 무슨 연고가 있는지 답장이 오지를 않아서 몸이 달았다. 그러나 동혁이 역시 어떤 때는 어린애처럼 응석을 더럭더럭 부리며 어머니 생각에 눈물이 마를 때가 없는 영신을, 차마 떼치고 떠나갈 수가 없었다. 아무리 호인처럼 무뚝뚝한 사람이기로, 죽을 고비를 천행으로 넘겨서 아직도 제 몸을 맘대로 추스르지 못하는 사람을 보고,
“난 볼일이 급해서 가야겠소.”
하고 휘어잡는 소매를 뿌리치며 일어설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동혁은 그 사정을 건배에게 편지로 알리고, 밤이 들면 꼭 환자의 침상머리에 앉아서, 신문이나 잡지를 얻어다가 읽어주고, 어느 때는 흑인종으로 무지한 동족을 위해서, 갖은 고생과 백인의 학대를 받으면서, 큰 사업을 성취한 부커 티 워싱턴 같은 사람의 분투한 역사를 이야기해서 들려주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농촌운동에 관한 의견도 교환하고, 시간을 될 수 있는 대로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 하였다.
그러다가 밤이 깊어 영신이가 잠이 드는 것을 보고야, 동혁은 벽 하나를 격한 대합실로 가서, 의자를 모아놓고 그 위에 담요 한 자락을 덮고는, 다시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공상에 잠겼다가 잠이 드는 것이었다.
“인전 갑갑해 못 견디시겠죠? 그렇지만 퇴원헐 때꺼정은 꼭 붙들구 안놀걸요.”
하고 영신은 하루 한 번씩은 동혁을 놀리듯한다. 아닌 게 아니라 동혁은 펄펄 뛰어다니던 맹수가 별안간 철책 속에 갇힌 것 같아서, 여간 갑갑하지가 않았다. 위험한 시기를 지나서 마음이 턱 놓이니가, 그동안 바짝 옥죄었던 온몸의 신경과 근육이 가닥가닥 풀리는 듯, 아무 데나 턱턱 눕고만 싶었다. 사지가 뒤틀리도록 심심해하는 눈치를 챈 영신은,
“이런 기회가 아니면, 나허구 이 주일씩이나 같이 있어 보시겠어요? 이 것두 하나님의 덕택이지요.”
하고는 염치불구하고 하루라도 더 붙들려고만 든다.
“그 하나님 참 감사허군요. 죽두룩 일을 헌 상급으루 그 몹쓸 병이 나게 허구, 그것두 부족해서 배꺼정 짼 게 다 하나님의 덕택이지요?”
동혁이도 영신을 놀리며 청석골 교회의 장로처럼 합장을 하고 일부러 목소리를 떨어,
“오 — 전능하신 하나님, 감사감사하옵나이다.”
하고 껄껄껄 웃어 젖힌다.
“그렇게 하나님을 놀리면 천벌이 내리는 법이야요. 아무튼 나 같은 사람을 영영 버리지 않으시구 이만침이나 낫게 해주신 게, 다 하나니므이 뜻이지 뭐야요?”
하고 영신은 사랑하는 사람을 겉눈으로 살짝 흘겨본다. 영신이가 평소에 동혁에게 대한 다만 한 가지 불평은 저와 같이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다. 부모형제 간에도 종교를 믿는 것은 절대 자유요, 신앙은 강제로 할 수 없는 것인 줄 알면서도, 이 세상을 톡톡 털어도 단지 한 사람인 저의 애인이, 저와 똑같은 믿음을 가졌으면 얼마나 좋을는지 몰랐다. 믿지를 않으면 국으로 가만이나 있지를 않고, 제가 밥상 앞에서 눈을 내리감고 기도를 올릴 때면 곁에서 일부러 헛기침을 칵칵 하기, 김이 무럭무럭 나는 찌개 냄비를, 코 밑에다 들어대가기 일쑤다. 그럴 때면,
“저리 가서요! 자기나 안 믿으면 안 믿었지. 왜 그렇게 비방을 해요?”
하고 여무지게 쏘아붙이기를 한두 번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끝에는 처음으로 악박골 샘물터에서 밤을 새울 때에 뿌리만 따다가 둔, 종교 문제를 끄집어내어가지고 서로 얼굴에 핏대를 올려가며 토론을 하였다.
동혁은 인류와 종교의 역사적 관계를 모르는 것도 아니요, 편협한 유물론자처럼 덮어놓고 종교를 아편과 같이 생각하지는 않으면서도, 근래에 예수 교회가 부패한 것과, 교역자나 교인들이 더 떨어질 나위 없이 타락한 그 실례를 들어, 맹렬히 공격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는,
“권세에 아첨을 허다 못해 무릎을 꿇구, 물질과 타협을 허다 못해 돈 있는 놈의 주구가 되는, 그런 놈들 앞에 내 머리를 숙이란 말씀요? 그따위 교회엘 댕기다간 정말 지옥엘 가게요?”
하고 마룻바닥에다 헛침을 탁 뱉었다. 그러면 영신은,
“교회 속은 누구버덤두, 직접 관계를 해온 내가 속속들이 잘 알어요. 아무튼 루터 같은 분이 나와서 큰 혁명을 일으키기 전엔, 조선의 예수교회두 이대루 가다간 멸망을 당허구 말게야요.”
하고 저 역시 분개하기를 마지않다가,
“나는 그리스도가 인류를 위해서 십자가에 피를 흘리신 그 정열과, 희생적인 봉사의 정신을 숭앙허구, 본받으려는 것뿐이니까요. 거 점만은 충분히 이해해주서야 해요.”
하고 변명을 한 후, 새삼스러이,
“도대체 동혁 씨는 아무 것두 믿으시는 게 없어요?”
하고 정중하게 질문도 하였다.
“천만에, 믿는 게 없이야 사람이 살 수 있나요?”
하고 동혁은 두 눈을 꿈범꿈범하고 잠시 침묵하더니,
“똑똑히 들어두세요. ‘익숙한 선장은 폭풍우를 만나면, 억지로 폭력에 저항하려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으나, 그렇다고 미리 절망을 해서 배가 풍파에 뒤집히도록 내버려두지도 않는다. 항상 굳은 자신과 성산(成算)[일이 이루어질 가능성]을 가지고 최후의 순간까지 온갖 지혜와 갖은 능력을 다해서, 살어나아갈 길을 열려고 노력한다’라고 한 맥도널드란 사람의 말이, 조선의 청년인 나로서의 인생철학이구요, 이것두 학창 시대에 어느 책에서 본 것이지만 ‘아무리 약한 사람이라도 그 전력을 단 한 가지 목적에 기울여 쏟을 것 같으면, 반드시 성취할 수가 있다’라고 한 칼라일이란 사람의 한마디가, 일테면 내 신앙이에요.”
하고 실내를 거닐다가 한곡리 편으로 뚫린 유리창 밖으로 눈을 달리더니, 독백하듯이,
“곡식이 무럭무럭 자라는 시퍼런 벌판을 바라다보는 게, 내 눈을 시원허게 해주는 그림이구요. 저녁마다 야학당에서 아이들이 글을 배우는 소리가, 내 귀를 즐겁게 해주는 음악이에요. 난 그 밖에는 철학이구 종교구 예술이구 다 몰라요. 더 깊이 알려구 들지두 않어요.”
하고는 다시 입을 다물어버렸었다.
가장 불행한 일로, 두 사람은 고요히 고요히 반성할 기회를 얻었다. 이 일 저 일에 책임을 무거이 지고, 그야말로 연자매를 돌리는 당나귀처럼 좌우를 돌려다 볼 사이가 없이, 눈앞에 닥치는 일만 하여왔다. 사실 그들은 자기가 계획한 일을 맹렬히 실행은 하여왔으나, 오늘날까지 실천해온 것을 제삼자의 입장으로 냉정히 비판해볼 겨를을 갖지 못하였던 것이다. 또는 그날 그날 노동을 해야만 먹고 사는 품팔이꾼처럼, 먼 장래를 바라다보고, 그 나아갈 길을 더듬어볼 마음의 여유가 없이 지내온 것도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동혁은 환자가 피로를 느끼지 않을 정도로 틈틈이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면 영신은,
“난 좀 더 공부를 해야겠어요. 원체 무엇 한 가지 전문으로 배운 것두 없지만요, 그나마 인전 밑천이 달랑달랑허는 것 같어요.”
하고 어떻게든지 공부를 더 할 의향을 보인다.
“그렇지요. 좀 더가 아니라, 인제버텀 공부를 하기 시작해야겠세요. 농촌운동이란 결코 우리가 처음에 생각허던 것처럼 단순헌 게 아닌 줄을 깨달었세요. 그렇지만 피차에 거진 삼사 년 동안이나 농촌 속으로 파고들어가서 실지로 일을 했으니까, 그 체험헌 걸 토대 삼어서 제일보버텀 다시 내디뎌야 되겠는데, 그게 지금 형편으로는 용단하기가 어려워요. 아무튼 영신 씨는 이번에 퇴원허시면, 적어도 몇 해 동안은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헐 수 없으니까요. 병이 재발이 되는 날이면 정말 큰일이 날 테니, 여간 주의를 허지 않으면 안 돼요. 청석골은 어느 정도까지 일에 터가 잡혔구, 영신 씨가 당분간 떠나 있더래두 원재 같은 착실헌 청년들을 길러놔서 학원 일을 해나갈 만허니까, 휴양허는 셈 치구 떠나보시는 게 좋겠지요.”
동혁은 이번 기회에 영신이가 해외로라도 나가보기를 권고한다. 저와 더 멀리 떨어져 있을 것은 무한히 섭섭하지만, 만일 영신이를 다시 청석골로 보냈다가는, 그의 성격이 몸만 자유로 쓰게 되면, 잠시도 쉬지 않고 또 그러한 과도한 노동까지라도 하지 않고는, 베기지 못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두 연합회에서 명색 사업보조비라구 보내주는 게 있지요?”
“한 삼십 원씩 오더니, 그나마 벌써 두 달째나 꿩 궈 먹은 자리야요. 거기서두 경비가 부족해서 쩔쩔들 매니까요.”
“집으루 가서, 어머니 슬하에서 얼마 동안 쉬어보시는 게 어떨까요?”
“싫여요. 나는 그저 어디서든지 몸 성히 있다는 소식이나 전허는 게 효돈데, 이 꼴을 허구 집으로 기어들어보서요. 가뜩이나 나 때문에 지늙으신 우리 어머니가 얼마나 간장을 태우실까.”
“그두 그렇겠지만………”
동혁이도 좋은 방책이 나서지를 않았다.
‘제에기, 우리 집 형편이 웬만만 허면……..’
해보기도 하나 그것도 공상이기는 매일반이다.
“동혁 씨는 앞으로 어떡허실 테야요?”
영신은 침대에서 반쯤 몸을 일으키며 묻는다.
“내야 한곡리 송장이 될 사람이니까요. 내가 없으면 처리헐 수 없는 복잡헌 문제가 많어서, 그동안 나와서 있는데두 몹시 궁금헌데….사실 안직은 믿을 만헌 사람이 없세요.”
하고 여러 날 빗질도 못 해서, 부스스하게 일어난 머리를 북북 긁으며, 한참이나 무엇을 생각한다.
“입때까지 우리가 헌 일은, 강습소를 짓고 글을 가르친다든지, 무슨 회를 조직해서 단체의 훈련을 시킨다든지 하는 일테면 문화적인 사업에만 열중했지만, 앞으로는 실제 생활 방면에 치중해서 생산을 하기 위한 일을 해볼 작정이에요. 언제는 그런 생각을 못 헌 건 아니지만, 외면치레가 아니고 내부적인 문제를 생각허구, 또 실행해야 될 줄루 생각해요.”
“참 그래요. 무엇버덤두 먼저 생활이 있구서, 그다음에 문화사업이구 계몽운동이구 있을 것 같어요.”
영신이도 매우 동감인 뜻을 보인다.
“그러니까 이런 점에두 우리에 고민이 크지요. 우린 가장 불리헌 정세에 지배를 받고 있는 게 사실이니만치, 우리 힘으로 헐 수 있는 한도까지는 경제적인 사업까지, 끈기 있게 헐 결심을 새로 허십니다!”
하고 두 사람은 밤 깊도록 그 구체적인 방법을 토론할 때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