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대 말에 한국땅 어는 시골에서 태어 났으니까...이제 근 60년을 산게 되겠네요.
하루세끼 굶지 않는다는게 엄청난 복인줄 알고 죽이든 밥이든 가리지 않던 유년시절의 기억이야 어찌 또렸하겠습니까마는..부모님 일손 도우랴,소며 닭이며 집에서 키우던 짐승 챙기랴....숙제나 겨우해가던 청소년 시절이 아쉽기만 하네요..
크거나 작거나꿈을안고,,, 세상을 향해 던져진 청년 시절...시리고 고된 기억이 거의 전부인거같았던 시절 중에도 33개월 이라는 적잖은 기간을 마음에도 없는 애국 하느라 남은 젊음을 어느 산모퉁이에 쏟아 부엇고요...
고진삶에도 나이가 들어 가정을 이루니 늘어나는 식구만큼이나 책임도 짊어지고 오는지라,남들보다 못키웠단소리 들을세라,남들보다 작은집에 산단소리 들을세라...밤인지 낮인지도 모르고 고단한 발걸음을 재촉 했었지요.
한숨을 돌리려 하늘을 바라보니....하늘이 왜그렇게 넓어 보이 던지요.
저 넓은 하늘 아래살면서 왜 땅 한 귀퉁이만 베고 살고 있나 싶어 또 고생을 자초 한것이 이민행 비행기에 오르는 것이었을 겁니다.
그나마 텃세도 우리땅 보다는 덜한것 같고,원칙대로만 하면 그럭저럭 밥세끼 걱정은 할필요 없다손 치더라도..신사적일것만 같은 코쟁이 들이 제 가진것좀 나눠 달라고 ,같이좀 먹고 살자고 돋자릴 제옆에 깔라치면...양같던 심성이 늑대로 둔갑하여 언제 돋자릴 걷어갈지 몰라서 젊은시절,군에서 갈아두었던 오기의 날을 맞서 세우곤 했었지요....
우리백성의 근성 덕분인지,어릴때했던 고생이 바탕이 된건지는 모르겠으나.....타국 생활 17여년 만에..이제는 깔고 앉은 땅에서 얼굴색에 관계없이 아이들도 잘 커 줬고 자리매김도 그럭 저럭 한것 같은데...어릴때 고갯마루에서 보았던 파란 하늘이 점점 그리워 집니다.
주변에 그런대로 성공적인 타국삶을 사신 분들이 집이며 사업장을 임대주고 한국으로 하나둘 떠나고들 있네요.
임대료며,이나라에서 주는 연금이며....한국에 계신분들이 보면 꽤 고 소득 자인것 처럼 보이지만 마음의 뿌리가 그다지 튼실해 보이진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모두에겐 함께 행복한 삶을 살겠다는 의지가 늘 마음속에 똬리를 틀고 있을줄 압니다.
한시대를 그것도 비슷한 환경에서 함께 부딛혀 산 우리들 로서는 더 절절 한 마음으로 더 길어진 남은세월을 살아 내야 될 책임이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어디에 있던 무엇을 하던....같은 말, 같은 생각으로 같이 살아간다는 자부심과 위로로 훌륭한 미래를 이뤄내시기를 이국땅 어느 하늘 아래서 염불처럼 주절 거려 봅니다........
뉴질랜드 사는 한국 출신 농부 입니다.
첫댓글 고생하셨고 충분히 편안히 살 권리 있으십니다.시간이 되시면 뉴질랜드삶을 글과 사진으로 일기형식으로 보내주세요...
생각만 해도 유년의 철부지때 추억으로 고향을 그리며 사실것이라고
생각이 드네요.
멋진삶 성공으로 거두시고 향수도 달래시며
그리 사시길 빌어 드리겠읍니다.
강물처럼, 바람처럼,구름처럼 마음이 흘러가게 사시기바랍니다.
꼭 한번 여행 가보고싶은 나라가 뉴질랜드 입니다!
행복한 날만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
댓글을 많이 남겨 주셨네요.
모두들 행복하시고...가끔 사진을 올려 보겠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올수있는데가 뉴질랜드 입니다.
메일보냈는데요
답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운 내 고향 언제나 가보리....
그래도 보고 싶고 가고 싶은 내 고향. 꿈에도 잊지 못하리....
수고 많으셨습니다.
언어와 문화 가치관이 생소한 외국에서 살아오시느라 얼마나 고생을 하셨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찡하군요. 항상 건강하시고 좋은일 많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반갑습니다..저도 뉴질랜드에 살다가 시드니로 건너온지가 벌써 16년째 입니다..
그래도 아직 뉴질랜드가 그립습니다.. 가끔 아내와 다시 뉴질랜드로 돌아 갈까라고 그냥 한마디씩 내뱄곤 한답니다..
지나고 나서 생각 해보니 뉴질랜드 만큼 자연이 아름답고..사람들 친절 한곳도 없다는생각이 듭니다..
좋은 나라에서 행복 하시기를 기원 합니다..
이민도 힘들지만 역 이민은 더 힘든듯 합니다
아름다운 나라에서 항상 건강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