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빈 무덤 그것은 소망입니다.
요한복음 20:1-10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제자들은
그렇게 주님을 따라 살았음에도 빈 무덤을 마주하게 되었고
그 빈 무덤은 예수님의 시체를 놓아두었던 곳이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생을 살다가 이렇게 달려왔고 살아왔음에도
빈 무덤을 마주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그 빈 무덤이 무엇으로 다가오십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후 사흘째 되는 날
때는 아직 어두웠고 해가 떠오르지 않은 새벽이었습니다.
여기서 아직 어두울 때라는 표현은
단지 해가 뜨지 않은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 남은 제자들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어두운 마음으로 근심했을 제자들 두 명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와
예수님이 곁에 두시며 가장 사랑하셨던 제자 요한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마음이 어두웠던 건
단순히 예수님과 더 깊은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예수님을 부인하고 배신하는 데 가장 앞장섰기 때문입니다.
잘 알다시피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제자입니다.
사도 요한은 그가 여기서 표현한 바와 같이 예수님이 ‘사랑하시던 제자’였지만
예수님이 체포되시던 날 밤 그도 도망치기에 바빴습니다.
그렇다면 막달라 마리아로부터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들의 마음이 어땠겠습니까?
예수님은 죽으셨지만, 그들은 아직 예수님을 보내드리지 못했기에
여전히 예수님을 사랑하고, 또 그리워했고
그래서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졌다고 하는 사실은 청천벽력 같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나의 죄를 깨닫게 될 때
우리가 비로소 예수님께 달려갈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20장 4~5절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이렇게 베드로와 요한은 무덤 안에서
세마포가 놓인 것과, 예수님의 머리를 쌌던 수건이 놓여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확인한 것은 예수님의 말씀, 부활을 확인 한 것이 아니라
막달라 마리아가 한 “예수님의 시체를 누가 가져갔다”는 말을 확인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20장 9절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이렇게 그들은 빈 무덤을 보았을 때 다른 사람들이 시체를 옮겼다고 생각했습니다. 소식을 듣고 무덤으로 달려올 만큼 예수님을 여전히 사랑했지만
여전히 그들의 신앙은 부활 신앙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정한 믿음은 단순히 예수님께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을 믿어야 하는 것이고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넘어 부활의 신앙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활 신앙이 없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빈 무덤은 소망이 아닌 절망과 근심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떤 믿음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빈 무덤을 마주할 때
예수님에 대한 미안함, 회개하는 마음으로만 예수님께 나오고 있습니까?
아니면 부활의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십니까?
예수의 빈 무덤 그것은 좌절하고 절망하고 근심이 아니라
예수를 믿은 우리에게 소망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냐면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