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5일(금) 휴가여행 4일째 되는 날
광주 처갓집에서 이틀을 자면서 짐과 몸을 재정비한 나는 2001년부터 인터넷 Wind Bird를 통해 글로써 정을 나눈 좋은날 전병윤님을 만나기 위해 충북 진천으로 출발한다.
이번 여정에 진천을 포함시킨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오랜 시간 전병윤님의 글을 읽으며 서로 통하는 게 참 많은 사람일 거라는 생각을 예전부터 해왔는데 몇 번의 문자와 여행 직전 전화통화를 하는 과정에서 전병윤님의 진천에 꼭 들르라는 말씀과 나 역시 뵙고 싶은 마음이 하나.
그리고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死去龍仁) 이라는 말이 있듯 살기 좋은 그 진천에 정작 단 한번도 가보질 못해 이번 여행 시 꼭 가고픈 마음이 두번째 이유.
진천을 향해 가는 날은 날씨가 아주 화창해서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목화 솜처럼 뭉실뭉실 피어오르는 아주 좋은 여름날. 아마도 이렇게 좋은 날씨는 일년을 통해서 몇일 되지 않을 듯 싶다.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 나름 서두르는데 '어여 오세요. 시원한 막걸리가 기다립니다.ㅎㅎ' 하고 전병윤님으로부터 5시 55분 문자가 온다.^^
광주에서 진천까지 직접 가는 교통편이 없어 청주를 거쳐 시외버스로 가는데 진천군 광혜원읍에 사시는 전병윤님, 진천터미널까지 마중나오신다고 문자가 또 온다.
12시 30분경 진천터미널에 내려 서울가는 버스 시간표를 잠시 보고 있자니 누군가 툭하고 치며 인사를 건네 쳐다보니 바로 전병윤님. 처음 뵙는 데도 서로 한 눈에 딱 알아보게 되더라는.ㅎㅎ
반가운 인사와 더불어 가벼운 hug를 나누며 터미널 밖으로 나오니 승용차 안에는 전병윤님의 부인께서도 함께 마중을 나오셨더라는.
역시 반갑게 인사를 마치자 전병윤님, 오는 날이 장날이라고 진짜로 오늘이 진천 5일장이 서는 날이라고 하시며 장 구경을 하시겠냐고 물으시길래 당근 OK.^^*
진천 5일장은 전국에서 몇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그 규모가 아주 크다고 하신다.
넓고 빈 공터에 천막이며 파라솔등을 이용해 이렇게 난장이 벌어지고 그 위로 파란 하늘과 무심하게 떠가는 뭉게구름이 시골장의 여유있는 분위기를 연출하다.
장터에 나온 하룻강아지(?)들이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며 서로 장난을 치고 있는데 그 모습이 너무 귀엽다.
아주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장난감 말, 이제는 사라져 버린 줄 알았는데 이렇게 진천 장터에서 다시 만날 줄이야.
올해 수확한 밤고구마, 감자, 당근, 양파의 모습이 정겹다. 이를 위해 누군가는 밭을 일구며 많은 땀을 흘렸으리라.
커다란 공터에 펼쳐진 장은 이렇게 중간 중간 골목으로 이어지고 있어 그 규모가 만만치 않다.
충청북도 내륙지방인 진천의 어느 밭을 일구게 될 호미, 아마도 대장간에서 만든 게 아닐까 싶다.
플라스틱 빗자루만 보다가 이렇게 옛날 비를 만나니 너무나 반갑고 정겹더라는.
즉석에서 만들어 파는 생선 어묵의 맛이 얼마나 고소할까? 어린 시절 어머니 따라 시장가면 막 만든 어묵을 간장에 찍어 먹곤 했는데.ㅎㅎ
내륙지방인 진천에 귀하디 귀한 홍어가 웬일일까 해서 상인에게 물어보니 칠레산 홍어란다.
시골 장터의 한 구석엔 이렇게 한 잔 막걸리로 목을 적시고 출출함을 채워 줄 빈대떡, 전집이 있기 마련. 우리 3인의 일행도 이 곳에서 간단한 전과 함께 진천 막걸리 한 잔으로 목을 축인다.
글로써는 10년이란 시간을 만났지만 직접 이렇게 만나기는 처음인 전병윤님. 첫 대면에 서로 알아보고는 금방 스스럼 전혀 없는 오랜지기가 된다. 지금 사진을 보니 두 사람의 웃는 모습이 참 많이 닮은 것 같다.^^
곡식의 낱알을 고르는 대나무로 만든 키, 얼마만에 보는 것인지.
장터에 쳐진 하얀 색의 천막과 맑고 파란 여름 하늘 그리고 하얀 뭉게구름의 조화가 참 아름답다.
장에 일찍 나오시느라 새벽부터 잠을 설치셨을까? 그늘막에서 잠시 오수를 즐기는 장사꾼의 모습에서 시골장의 여유와 넉넉함이 절로 느껴진다.
진천 5일장 구경을 마친 우리는 차로 장소를 옮겨 평소 꼭 한번 곤드레밥을 먹고 싶었던 내 의견에 따라 산골맛집이라는 이름도 정겨운 음식점으로 왔다. 진천에서 만나는 산과 하늘 그리고 구름은 전병윤님의 글과 함께 올려졌던 풍경 사진 그대로다.
산아래 한갖진 위치에 자리한 이 집은 이 근방에선 꽤 유명한 곳인 듯 점심 손님들로 꽤 붐비고 있었다.
주문 전 마실 물을 내오는데 물 잔과 주전자가 다른 집과는 달리 자기 제품이다. 그리고 물도 그냥 물이 아니라 겨우살이와 헛개나무 끓인 것이라 하는데 그 맛이 예사롭지 않다. 한 잔 물에서도 진천의 푸근한 인정이 느껴진다.
주문한 곤드레밥이 나오기 전 '막걸리 마니아'이신 전병윤님이 그 고장마다 막걸리 맛이 다르니 꼭 한번 맛보라고 권하셔서 식사 전 딱 한 잔씩의 막걸리를 마시는데 구수한 누룩맛과 새콤한 맛이 그야말로 명품 막걸리임을 알 수 있다.
전병윤님의 소탈한 웃음과 아직도 수줍은 소녀같은 부인의 웃음이 한 폭의 그림마냥 잘 어울리고 정겹다.
드디어 곤드레밥이 나오다.
고슬고슬 잘 지어진 밥에 곤드레 나물과 깔끔한 양념장을 넣어 소박하게 비벼 먹는데 더불어 나온 밑반찬들이 하나같이 정갈하고 맛깔스럽다. 첨 먹어본 곤드레밥은 아주 담백한 맛, 정말 맛나게 잘 먹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진천에 있는 비구니 사찰 보탑사로 갔다. 전병윤님이 꼭 보여주고 싶은 곳이란다. 절 주차장 옆에는 이렇듯 제법 넓은 연꽃밭이 조성되어 있어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사찰 앞에 350년된 느티나무가 넓은 그늘을 드리워 많은 사람들에게 시원함을 제공하고 있다. 마치 부처님의 자비심을 대신 알리듯.
보탑사 사천왕문으로 오르는 계단
사찰 마당에 활짝 핀 여름꽃 백일홍
3층 탑 형식으로 지어진 대웅전. 그래서 보탑사로 명명되어진 게 아닐까 싶다. 사면으로 이루어진 까닭에 각각의 방향에 석가모니불,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등이 모셔져 있는데 이 3층의 목조건물을 짓는데 단 하나의 못도 사용되지 않고 가구식 짜맞추기로 되어 있다니 정말 놀랍다.
대웅전 3층에서 바라본 정경이 오늘의 만남처럼 참으로 편안하다.
역시 3층에서 바라본 정경.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한가롭고 무심하다. 불가에선 사람의 일생이 뭉게구름 하나 피어나고 지는 것과 같다고 하지않던가.
처마끝에 풍경이 산능선과 기막힌 조화를 이루고. 그야말로 한여름낮의 정숙과 침묵이 따로 없다.
비구니 스님들이 거주하시는 요사체 역시 산세에 거슬리지 않고 이 곳의 자연과 잘 어울린다.
그 옛날 석가모니께서더 더운 여름날엔 이처럼 잠시 오수를 즐기셨을까
통나무로 지은 산신각이 특이하고 정겹다.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또 다른 계단
저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 저 여인네들은 무슨 정담을 저리 나누고 있는 것일지.
보탑사에서 시원한 바람을 쏘이며 사찰 구경을 마친 우리는 사찰 아래 계곡물에 잠시 발을 담그고 휴식을 취하다.
그 후 진천군 중에서도 바로 경기도와 경계를 이루는 광혜원면으로 이동(전병윤님은 바로 이 광혜원에 살고 계신다.)
그리고 인접한 경기도 안성에 위치한 칠장사를 다시 찾아 나선다. 한여름 사찰만큼 편안하고 한적한 곳이 어데 또 있을까?
칠장사는 고려 때 창건한 절인데 얼마 전 화재가 나서 많은 전각이 소각되었다 한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소박하면서 옛스런 사찰의 모습은 보탑사와는 또 다른 평온함을 안겨 준다.
칠장사 경내를 한 바퀴 둘러보고 나니 벌써 5시 30분.
다시 광혜원읍의 전병윤님 아파트 앞에 차를 세우니 거기가 바로 부인께서 운영하시는 민속주점.
그 곳에서 정성껏 차려주신 김치찌개에 저녁밥을 먹고 서울로 출발, 이번 휴가여행의 대미를 장식한다.
하룻밤 묵고 가라는 말씀을 주셨지만 더운 여름날 집을 떠나 동으로 서로 장소를 이동하며 여행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니 그야말로 기진맥진 상태.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지난 3박 4일을 되새겨 본다.
그러자니 그 여행길에서 만났던 자연과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맑은 여름날 파란 하늘의 하얀 뭉게구름처럼 순수하게 피어난 인연 그리고 그 인연으로 인해 연꽃같이 아름다운 만남은 이어지고.
이번 여행,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갑자기 긴장이 풀리고 피로가 엄습, 고단하지만 편안하게 잠으로 빠져든다.
아직 여름날은 보름 이상 남아 있지만 내게 있어 올 여름은 이 것으로 끝나는 느낌이다. 수년만에 홀로 자유로이 떠난 휴가여행, 비록 힘들고 기진맥진 했지만 훈훈한 만남이 있었고 많은 걸 느끼고 깨달을 수 있었는데 언제 한번 다시 감행할 수 있을런지.^^
첫댓글 아름다운 사람과 풍경과의 만남이군요. 저도 같이 여행한 느낌입니다. 잘 보았습니다.
새날의님 정말 오랫만에 글을 접합니다. 진천가는 중간에 내리고 지나친 청주, 예전과 너무도 모습이 달라져 어데가 어덴지 모를 정도더군요. 더운 여름날 휴가나 다녀오셨는지요?
훈장님의 3박4일 여행...
참으로 값지고 소중하셨던 여행이셨던 것 같습니다.
닉 네임을 '좋은날'을 쓰신다는 전병윤님과 사모님과의 만남도 그렇고...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死去龍仁)...
제 고향이 강원도 원주인데, 진천과도 인접해 진천 출신 고등학교 동창들도 꽤 여러명 있었는데...
그 친구들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도 했구요...
전병윤님, 늠름하시고 당당하시고, 옆지기님은 청아하시고, 아름답습니다.
훈장님 넉넉하게 잘 읽고 갑니다.
수고 하셨구요...
아하허향님도 진천과는 또 그런 인연이 있으시군요. 좋은날님과 사모님 정말 너무 잘 어울리시고 산행도 늘 함께 하신다니 그야말로 아름다운 인연으로 멋진 삶을 살고 계시더라는.
없는것빼곤 다있을것같은 정겨운시골장터넘 보기 좋네요옆지기님도 아름다우시고..너무너무 알찬시간들이셨을것 같아요
전병윤님도 반갑고
올리브 여사님 정말 저도 저런 시골장 오랫만에 구경했습니다. 너무너무 정겨운 모습들이었지요.
시골장터 우리네가 어릴적에 장터이군요..
저도 이젠 저런 장을 만날 수 없으려니 했는데 그 날이 마침 장날이라 정말 기뻤답니다.
세세히 찍어오신 훈장님의 여행일지 잘 보고 갑니다.
저도 이다음에 시도해 봐야 겠어요
마마님도 정승님과 함께 한번 가보심 어느 여행보다도 정말 좋으실 겝니다.
아좋은날로 가입하신 분이 전병윤님이신거죠
하세요 전병윤님 아주 좋은 구경 맛난 음식 많은 것을 보여주셨네요..덕분에 앉아서 사오모친구들도 구경거리 많아 좋습니다
알흠다운 인연의 다정한 이야기입니다. 한번 봐도 평생을 본 듯한 사람이 있고 내 봐도 그저그런 사람이 있지요..효자이신 전병윤님과 고운 미소를 가지신 효부 아내분의 모습이 차암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