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이야기] 말라리아와 싸운 100여년
'학질' 창궐 막은 세 명의 위인…
노벨상 주인공 됐죠
지금도 세계적으로 100만여 명 숨져
원충 발견한 의학자·활용 의사 이어 치료제 개발한 '투유유' 올해 수상
우리나라에서도 19세기 흔히 발병… 기후 변화 따른 확산 대비해야
말라리아 치료제를 개발한 투유유 박사가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발표됐을 때 '말라리아가 아직도 노벨상을 받을 만큼 치명적인 병일까'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하지만 말라리아는 지금도 무시무시한 병이에요. 말라리아는 매년 전 세계적으로 100만 명에 달하는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데, 이는 단일 질병으로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내는 것이라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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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 지방에서 생기는 대표적 풍토병인 말라리아는 '나쁜 공기'라는 뜻이에요. 썩은 물이 고인 웅덩이나 습기가 많은 숲에서 생기는 나쁜 공기 때문에 생긴 병이라고 생각해 이런 이름이 붙었지요. 그렇지만 사실 공기가 아니라 해충 모기를 통해 전염되는 병이에요. 그런데 이 끔찍한 병을 연구하던 의학자 가운데 역대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가 3명이나 나왔다는 것 알고 있나요? 1907년, 1927년, 그리고 2015년 노벨상을 세 번이나 받게 한 특이한 질병이 말라리아랍니다.
◇100년 넘게 연구해 온 말라리아
말라리아를 일으키는 범인은 아주 작은 '원충'이라는 미생물이에요. 얼마나 작은지 현미경으로 무려 1000배 확대해야 겨우 볼 수 있을 정도랍니다. 원충은 주로 사람이나 동물의 몸 안에 살아요. 몸 안에서 별 말썽 없이 가만히 있는 원충도 있지만, 일부는 말라리아 같은 병을 일으키지요. 말라리아 원충은 모기가 피를 빨 때 사람의 몸에 들어온 뒤에 혈액 속 적혈구 안으로 쏙 들어가고, 그 안에서 계속 자라요. 그러다 원충이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 적혈구가 터져 혈액 속으로 나오게 돼요. 이때 몸에서 열이 나 말라리아에 걸리게 되는 거예요.
이 말라리아 원충은 약 100년 전, 프랑스의 의학자 라브랑이 발견했어요. 라브랑은 이 공로로 1907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답니다
▲ 지난 10월 5일 스웨덴 카롤린스카연구소에서 열린 노벨위원회 기자회견에서 투유유 박사가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발표됐어요(위). 말라리아 치료제를 개발한 투유유 박사가 노벨상 상장을 들고 있어요(아래). /노벨 미디어AB·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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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말라리아를 다른 병의 치료를 위해 사용한 적이 있었다는 거예요.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옛날에 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았던 매독이라는 병이 있어요. 매독균은 오래 몸 안에 머물다 심지어 뇌를 침범하기도 하고, 정신 질환과 비슷한 증상을 나타나게 하기도 했어요. 그 때문에 이전엔 매독 환자들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기도 했어요.
오스트리아 빈의 한 정신병원에 바그너야우레크란 의사가 근무하고 있었어요. 그는 한 환자가 열이 심하게 난 뒤에 증상이 낫는 것을 우연히 발견하고 '정신병 환자에게 열병을 앓게 하면 병이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말라리아가 바로 일정한 간격으로 며칠에 한 번씩 열이 나는 특징이 있었어요. 바그너야우레크는 매독으로 정신병 증상을 보이는 환자에게 말라리아 환자의 혈액을 주사하고 지켜보았어요. 그랬더니 환자의 몸에서 몇 번 고열이 난 다음 정신병 증상이 거의 사라졌어요. 이후 그는 다른 환자들에게도 비슷한 치료를 해서 효과를 확인하고, 연구 결과를 발표했답니다.
이 발표로 당시 의학계는 깜짝 놀랐어요. 왜냐하면 그때까지 정신 질환에는 특별한 치료법이 없다고 생각해 그저 환자를 병원에 수용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말라리아를 이용해 열이 나게 하는 정신 질환 치료법은 큰 주목을 받았고, 바그너야우레크는 1927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죠. 하지만 이 치료법은 환자를 인위적으로 말라리아라는 무서운 질병에 걸리게 해야 하는 등 여러 가지 부작용이 드러나 더 사용되지 않게 되었답니다.
◇완치 어려워 계속 연구·치료해야 해요
올해 말라리아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탄 투유유 박사는 개똥쑥에서 말라리아 특효약인 '아르테미시닌'을 뽑아내 1990년대 이후 말라리아 퇴치에 크게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요. 하지만 아직 인류는 말라리아를 완전히 몰아내지 못했답니다.
발생 지역에 따라 말라리아의 종류는 달라요. 열대 지방에서 발생하는 '열대열 말라리아'는 무서운 질병이지만, 우리나라와 같은 지역에서 발생하는 '온대열 말라리아'는 목숨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에요.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죠. 온대열 말라리아에 걸려도 높은 열과 후유증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또, 한번 몸 안에 들어온 말라리아 원충은 숨어 있다가 수시로 재발하기 때문에 완치도 어려워요. 고치기 어려운 말라리아를 예전엔 학질이라고 불렀어요. 어려운 일로 진땀을 뺀다는 뜻인 '학을 떼다'는 표현은 이 '학질을 떼다', 즉 '학질을 고치다'에서 나온 말이라고 해요. 학질은 과거 우리나라에서 아주 흔했어요. 19세기 우리나라 최초 서양식 병원인 제중원에서도 알렌이라는 의사가 "진료한 환자 중에 말라리아 환자가 가장 많다"는 기록을 남겼다고 해요.
학자들은 최근 지구온난화로 말라리아 등열대성 질병이 온대 지방으로 점차 확산할지 모른다고 걱정하며 연구하고 있어요. 만약 동남아시아·아프리카 등에서 발생하는 질병들이 기후 변화로 우리나라에서도 발생한다면, 치료법과 예방법을 서둘러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말라리아처럼 무서운 전염병들을 물리치기 위해 노력하는 의사와 과학자가 여러분 가운데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여인석 연세대 의과대학 의사학(醫史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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