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6년 워싱턴 D.C.로 건너온 50대 조 모씨는 “미국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관광 비자로 눌러 앉은 그는 처음 3년 간 접시닦이, 마켓 잡역부, 건물 청소 등 남대문 시장 지게꾼처럼 닥치는 대로 일했다. 새벽부터 밤까지 식사를 걸러 가며 가계를 꾸리고, 7년 만에 영주권까지 땄다. 서울에서 사기로 날린 중소 기업도 이젠 기억조차 희미하다. “불법 체류자도 열심히 일하면 잘 살 수 있다”고 확신하는 그에게 미국은 ‘기회의 땅’이다.
외환 위기 직후인 98년 펜실바니아 주 랭카스터에 정착한 중년 가장 임 모씨. 한국 대기업 중견 간부직을 던지고 미국에 온 그는 우체국 직원으로 일한다. 식료품 가게, 양계장, 카 센터, 복권 인쇄소 등 일감을 따라 동분서주했던 그는 얼마 전 ‘이민 아빠의 아메리칸 다이어리’라는 단행본을 냈다. 기름밥에 절은 자신의 초라한 얼굴, 1백도 날씨에도 에어컨을 못 켜는 아내, 새벽부터 10시간 일해서 번 50달러로 세배 돈을 주던 설날... . 삶의 무게에 익숙해진 그는 이민을 권하지도 말리지도 않는다.
지난 99년 이민 브로커에게 2만 달러를 주고 캐나다를 거쳐 LA에 정착한 김 모군 가족. 부모는 얼굴 마주볼 새 없이 한 달에 4천 달러를 벌지만, 한인 타운의 낡은 아파트 생활은 항상 빠듯하다. 운전 면허가 없어서 타운 밖에 나가 본 적도 거의 없다. 머지않아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김 군은 아직 대학을 고를 엄두가 안 난다. 성적은 괜찮지만, 입학 사정에서 체류 신분이 들통날까 걱정이 태산이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에 하루가 길다.
신규 이민자에게 미국은 커다란 ‘시험지’다. 진저리나는 교육 환경과 불안한 일자리에 한국을 떠났지만, 미국 생활은 듣던 얘기와는 딴판이다. 물론 각자가 느끼는 시험의 난이도와 성적은 천차만별이다. 대체로 먼저 건너온 가족이나 친척이 있으면 첫 단추를 끼우기 쉽지만, 무작정 이민자들은 첫 문제부터 숨이 턱에 찬다. 신규 이민자들이 예외없이 맞닥뜨리는 문제는 ‘생계’와 ‘신분’. 두 문제의 공통점은 ‘정답이 없다’는 점이다.
사실 미국의 생활 여건은 서울보다 훨씬 열악하다. 최근 미국 이민자의 주류는 40·50대 중산층. 서울의 30~40평 대 아파트가 3~5억 원, 연봉이 5천만~1억 원쯤 되는 전문직 종사자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들의 첫 기착지인 LA와 뉴욕 한인 타운의 여건은 미국이라기보다 한국의 지방 소도시 수준이다. 그동안 몸담아온 업종에서도 수평 이동이 어렵고, 수입은 되려 반토막 나기 십상이다. CPA 초봉도 타운은 1천5백 달러, 미국 회사는 4천 달러.
“이민 초기에는 뾰족한 선택이 없습니다.” 심인보 민족학교 사무국장은 “말이 통하는 타운에서 이민자들이 갈 곳은 리커 스토어나 옷가게, 식당 정도”라고 말한다. 여기서 부부가 열심히 일해봐야 수입은 두 칸 짜리 아파트 월세를 겨우 내고 먹고 살 정도. 10년 넘은 이민자들도 형편은 딱히 나을 게 없다. 미주 한인 1인당 연간 소득은 2만 달러. 흑인이나 히스패닉보다 조금 높지만, 일본계나 중국계보다도 낮다.
돈 보따리를 싸들고 온 이민자들도 속 타기는 마찬가지다. 요즘 서울 미국 대사관에서 E2 비자를 받으려면 30만 달러는 투자해야 한다. 이 돈으로 타운에서 살 수 있는 비즈니스는 커피숍이나 소형 마켓. 타운 분식집이 1백만 달러를 호가한다는 얘기에 기가 찬다. 더 위험한 ‘구덩이’는 신규 이민자를 노린 동포 사기. 이민에 앞서 LA의 사업체를 둘러본 40대 중반 박 모씨는 “벤추라의 한 쇼핑 몰에 있는 가게를 60만 달러에 인수했다가 8개월 만에 문 닫고 한국으로 U턴한 사람도 있다”며, 바짝 긴장한 모습이다.
가까스로 생계를 해결한 사람은 또다른 고민에 시달린다. 산 호세에서 피시&칩스를 운영하는 40대 김 모씨는 공무원 출신. 아침부터 저녁까지 생선과 감자를 튀기다가, 가게 뒷문에 기댄 채로 줄담배를 피운다. “이 나이에 내가 여기서 뭐하나”라는 생각에 우울증이 생겼다. 서울의 대기업 부장에서 청소 용역 회사 사장으로 발빠르게 변신한 한 모씨는 “똑같이 한국 말을 쓰지만, 얘기가 안 통하는 사람이 너무 많습디다.” 그는 한국과 교포 사회의 시차가 30년 이상 벌어진 것 같다고 했다.
체류 신분도 이민자의 뒷덜미를 잡고 있다. 9.11 사태와 경기 불황으로 합법 이민자들도 졸지에 불체자로 전락하기 때문. 현대 자동차 서비스 부장으로 명퇴한 50대 초반 이 모씨는 전문직 단기 취업 비자(H1-B)로 미국에 왔다가 얼마 전 불법 체류자가 됐다. 영주권 스폰서 회사가 문을 닫은 뒤에는 시간당 6.75 달러 짜리 건물 청소원으로 일한다. 그래서 ‘한국을 사수하라’는 충고도 적지 않다. 김유진 변호사는 “연고나 사전 준비없이 이민을 강행하느니, 서울에서 새 출발하는 편이 낫다”며, ”1세대의 이민 시험 합격률은 한 자리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