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 하느님의 어린양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순교정신
그때에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4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25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루카 9,23-26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우리나라는 18세기 말 이벽을 중심으로 한 몇몇 실학자들의 학문적 연구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받아들였다. 이들 가운데 이승훈이 1784년 북경에서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돌아와 신앙 공동체를 이룸으로써 마침내 한국 천주교회가 탄생하였다. 선교사의 선교로 시작된 외국 교회에 견주면 매우 특이한 일이다. 그러나 당시의 조선은 충효를 중시하던 유교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어, 그리스도교와 크게 충돌하였다. 그 결과 조상 제사에 대한 교회의 반대 등으로 박해가 시작되었다. 신해 박해(1791년)를 시작으로 병인박해(1866년)에 이르기까지 일만여 명이 순교하였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의 해인 1984년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이 순교자들 가운데 한국인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와 평신도인 정하상 바오로를 비롯하여 103명을 시성하였다. 이에 따라 그동안 9월 26일에 지냈던 ‘한국 순교 복자 대축일’을 9월 20일로 옮겨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로 지내고 있다. 현재 한국 교회는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를 중심으로 순교자들의 시복 시성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한국 천주교회는 해마다 9월을 순교자 성월로 정하여 순교로 이 땅에 신앙을 뿌리내린 수많은 신앙 선조를 기억합니다.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포기하지 않던 이들을 기억하며 그 굳건한 신앙을 본받고자 기도합니다.
우리 믿음도 신앙 선조들처럼 늘 그렇게 굳건하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그러나 박해 시대가 아닌데도 우리는 유혹에 자주 노출되고 신앙도 쉽게 흔들립니다. 그러한 위협들은 밖에서 오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우리 안에서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내 마음대로 할 것인가 아니면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드러내는 일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쉽고 단순해 보이지만, 사실은 대단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 선택을 마주하였을 때, 하느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선택해 주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순교 성인의 선택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어리석은 선택으로 보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로 의미 없는 선택이었다면, 그 신앙이 지금 우리에게까지 이어지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 선조들이 목숨을 바쳐 지켜 낸 신앙을 물려받았습니다. 때로는 불편하고 부담스럽다고 느끼면서도 그 신앙이 얼마나 가치있고 위대한지 알고 있기에 여전히 고민하고 갈등하면서도 이 신앙을 놓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 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교만한 생각을 버리고 하느님을 따르는 수고와 희생을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순교자의 후손으로서 우리 신앙을 자랑스럽게 지키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왕태언 요셉 신부님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에서)
********
조명연 신부님 글 드립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
어떤 책에서 재미있는 질문 하나를 보았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그 질문을 똑같이 던져 보겠습니다.
“이번 여름에 친구들과 함께 바닷가에 수영하러 가기로 한 당신, 당신이 앞으로 해야 할 행동은 무엇입니까?”
뭐라고 답하시겠습니다. 물론 여러 답이 나올 수 있겠지만 ‘수영복을 산다.’, 또는 ‘수영복을 찾아둔다.’가 대답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부분은 ‘다이어트를 한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왜 이러한 대답이 많았을까요?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반응과 평가에 유독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남에게 보일 나’에 대한 생각 때문에 가장 중요한 수영복을 준비하는 것을 잊어버리는 것이지요.
사실 사람들은 남에게 그렇게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실제로 어떤 대학에서 이러한 실험을 해 보았습니다. 먼저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고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잠시 머물다 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은 사람을 어떻게 생각할 지를 보는 것이었지요. 이 옷을 입은 사람의 대다수는 다른 사람들이 이상한 옷을 입고 있는 자신을 알아챌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 옷을 기억하는 사람은 단지 23%에 불과 했습니다. 나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계속해서 보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 보고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해야 할 일을 다른 사람의 시선 때문에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때 더 많은 하느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가슴으로 살아갈 때, 그대의 삶은 그 자체로 기쁨이 된다(혜광). >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루가 9,23-26)
わたしのために自分の命を失う者は、
それを救うであろう。
(ルカ 9,23-26)
For whoever wishes to save his life will lose it,
but whoever loses his life for my sake will save it.
(Lk 9,23-26)
年間第25主日
내가 후하다고 해서
ネガ フハダゴ ヘソ
시기하는 것이오?
シギハヌン コシオ?
(마태오. 20,1-16)
それとも、わたしの気前のよさをねたむのか。
소레토모 와타시노 키마에노 요사오 네타무노카
(マタイ20・1-16)
Why are you envious
when I am kind?'
(Mt 20,1-16)
Twenty-fifth Sunday in Ordinary Time
Matthew 20:1-16a
Jesus told his disciples this parable:
"The kingdom of heaven is like a landowner
who went out at dawn to hire laborers for his vineyard.
After agreeing with them for the usual daily wage,
he sent them into his vineyard.
Going out about nine o'clock,
the landowner saw others standing idle in the marketplace,
and he said to them, 'You too go into my vineyard,
and I will give you what is just.'
So they went off.
And he went out again around noon,
and around three o'clock, and did likewise.
Going out about five o'clock,
the landowner found others standing around, and said to them,
'Why do you stand here idle all day?'
They answered, 'Because no one has hired us.'
He said to them, 'You too go into my vineyard.'
When it was evening the owner of the vineyard said to his foreman,
'Summon the laborers and give them their pay,
beginning with the last and ending with the first.'
When those who had started about five o'clock came,
each received the usual daily wage.
So when the first came, they thought that they would receive more,
but each of them also got the usual wage.
And on receiving it they grumbled against the landowner, saying,
'These last ones worked only one hour,
and you have made them equal to us,
who bore the day's burden and the heat.'
He said to one of them in reply,
'My friend, I am not cheating you.
Did you not agree with me for the usual daily wage?
Take what is yours and go.
What if I wish to give this last one the same as you?
Or am I not free to do as I wish with my own money?
Are you envious because I am generous?'
Thus, the last will be first, and the first will be last."
2026-09-20「それとも、わたしの気前のよさをねたむのか。」
+神をたたえよう。神は偉大、すべては神に造られた。
おはようございます。
今日は年間第25主日です。
御心の主・イエス・キリストと御心の聖母マリア、聖母の配偶者聖ヨゼフ、諸聖人の大いなる祝福がありますように!
また、大天使とすべての天使、私たちの守護の天使が今日も皆さまを見守り平和でありますようお祈りします。
*********
マタイによる福音
<それとも、わたしの気前のよさをねたむのか。>
そのとき、イエスは弟子たちにこのたとえを語られた。20・1「天の国は次のようにたとえられる。ある家の主人が、ぶどう園で働く労働者を雇うために、夜明けに出かけて行った。2主人は、一日につき一デナリオンの約束で、労働者をぶどう園に送った。3また、九時ごろ行ってみると、何もしないで広場に立っている人々がいたので、4『あなたたちもぶどう園に行きなさい。ふさわしい賃金を払ってやろう』と言った。5それで、その人たちは出かけて行った。主人は、十二時ごろと三時ごろにまた出て行き、同じようにした。6五時ごろにも行ってみると、ほかの人々が立っていたので、『なぜ、何もしないで一日中ここに立っているのか』と尋ねると、7彼らは、『だれも雇ってくれないのです』と言った。主人は彼らに、『あなたたちもぶどう園に行きなさい』と言った。8夕方になって、ぶどう園の主人は監督に、『労働者たちを呼んで、最後に来た者から始めて、最初に来た者まで順に賃金を払ってやりなさい』と言った。9そこで、五時ごろに雇われた人たちが来て、一デナリオンずつ受け取った。10最初に雇われた人たちが来て、もっと多くもらえるだろうと思っていた。しかし、彼らも一デナリオンずつであった。11それで、受け取ると、主人に不平を言った。12『最後に来たこの連中は、一時間しか働きませんでした。まる一日、暑い中を辛抱して働いたわたしたちと、この連中とを同じ扱いにするとは。』13主人はその一人に答えた。『友よ、あなたに不当なことはしていない。あなたはわたしと一デナリオンの約束をしたではないか。14自分の分を受け取って帰りなさい。わたしはこの最後の者にも、あなたと同じように支払ってやりたいのだ。15自分のものを自分のしたいようにしては、いけないか。それとも、わたしの気前のよさをねたむのか。』16このように、後にいる者が先になり、先にいる者が後になる。」(マタイ20・1-16)
**********
ソン・ヨンミン使徒ヨハネ神父様の毎日のミサ・「今日の黙想」です。
イエス様の考え方は、私たちのこの世の考え方とは大きく異なります。資本主義の論理に慣れている私たちにとって、「正当な労働に対する正当な報酬」は経済的正義の基本です。しかし、イエス様がお語りになったぶどう園の労働者と賃金のたとえでは、主人は後から来てわずかな時間しか働かなかった人にも、朝早くから一日中働いた人にも、同じ一デナリオンを支払います。これは、私たちが考える経済的正義とは一致しません。
ぶどう園の主人と労働者が交わした約束から見れば、同じ賃金を支払うことは正当です。しかし、先に来て働いた人には、より多くの賃金を受け取る資格があると考えるのも、常識的にはもっともなことでしょう。
けれども、今日の福音は、私たちが慣れ親しんでいる経済的正義について語ろうとしているのではありません。ここでの賃金は、値段を付けることのできない神様の恵みを表しています。神様の恵みは、量で測ることのでき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私たちには不公平な賃金のように感じられるかもしれませんが、神様にとっては、どちらも同じ重みを持つ愛のしるしです。その愛を多く受けるか、少なく受けるかということを決めるのは神様であり、人間ではありません。
「後にいる者が先になり、先にいる者が後になる」とイエス様がおっしゃったように、神様の恵みと愛は、この世の物差しで決めることのできないものであると悟ることが大切です。
イザヤ預言者も、「わたしの思いは、あなたたちの思いと異なり、わたしの道は、あなたたちの道と異なる」と伝えています。また、使徒パウロが、「わたしにとって、生きるとはキリストであり、死ぬことは利益なのです」という逆説的な言葉を語るのも、この世の論理では決して理解することのできない福音の偉大さを表すためです。
私たちが福音を宣べ伝えるのは、先に福音を聞いた者として、救いを先に保証されたことを誇るためではありません。すべての人を憐れみ、赦してくださる神様の限りない御心を、世の人々と分かち合うためであることを忘れないようにしましょう。
***********
今日の福音を読み、世の中の物差しで人を比べるのではなく、すべての人に注がれる神様の恵みと愛を喜んで受け入れることができますように。聖霊、来てくださ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