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와 떨기나무, 그리고 타지 않는 불
오늘은 이냐시오 영성 강의를 들으면서 함께 관상기도를 하게 되었다.
탈출기의 독서와 묵상을 거쳐 관상에 이르도록 안내를 받으면서 내 밖은 어둠으로 바뀌고 내 안은
총천연색 동영상이 펼쳐진다.
눈을 감자 시나이 산에 오르던 풍경이 떠올랐다. 그리고 바위산이며 돌멩이가 구르던 사막을
오르던 날 만난 떨기나무가 보인다. 나는 내적 풍경 속으로 걸어간다.
모세가 양을 버리고 불타오르는 떨기나무로 오르는 모습이 보인다.
'그래 이미지가 보이는데 놀라지 않을 수가 없어. 하느님이 사인을 주신거야. 나라도 후다닥
오르기로 작정할 것 같아'
"다가올 것 없다고......"
'맞네 어디든 다 거룩한 곳이야. 봐. 신을 벗으라는 말씀이들리쟎아. 그랬어 온전히 나를 붇들고
있는 문제를 벗어야 그 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어.'
고2 아들이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고있을 때 상담을 청했다.
"신부님이시라면 어떻게 안내하시겠습니까."
"알고 묻는 거지요. 간단한 답인데요. 지금의 조건 아래서 최선을 다 해 공부하고 성적이 되는대로
원서를 쓰고 정히 갈 곳이 없으면 고졸로 마무리 하시고, 먹고 살 일이 없으면 최종적으로 하느님의 자비에 기대야지요."
"제 아들 더러 얻어먹고 살라고요?"
"순리대로 살아도 안되면 그러라는 말이지요."
아무리 자식을 낳아 키워보지 않았다고 저럴 수가 있는가 약이 오르기도 하고 속이 상하기도
하다가 이내 수긍을 하고 말았다.
"하느님의 자비에 기댈 일까지는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단호하게 답을 하고 나니 눈물이 났다.
그리고 그날 나는 신발을 벗었다. 아들에게 괜찮다고 말하고 속이 타는 위선자 엄미가 아니라
진정으로 아들의 문제이니까 성적표도 보여주지 말고 인생이 질문을 하면 개똥철학이라도 해서
답을 얻고 공부를 하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자식에게 폐가 되는 엄마가 아니기를 바라며 나의 욕망을 비워내고 내 마음을
거룩하게 만들 의지만 세웠다.
외부와 삶을 거의 섞지 않고 하루에 4시간씩 수련에 들어갔다.
우선 단전 호흡 1시간-> 성서읽기->묵상하기-> 관상기도하기-> 글쓰기로 이어가며 6개월간
이어갔다. 눈은 퀭하고 체중은 4킬로그램이 빠졌으나 정신은 맑고 강건해졌다. 모든 관계가
원만해지고 상황은 점진적으로 좋아졌다.
일단 하느님의 마음읽기가 되면서 내가 어떻게 응해야 하는 지를 적기도 하고 그분과 합일되는
기분이 좋아서 참묵 속으로 들어가는 즐거움이 커졌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나면서 몸에도변화가 왔다. 배꼽에서부터 이마사이에까지 시퍼런 빛의 빔이
쏘아져 올라오는 것같아지더니 두렵거나 위축되는 점이 사라졌다.
6개월간의 교재를 그대로 따라갔더니 사물의본질을 찾아보는 눈이 열리고 사는게 어렵지 않다는
느낀을 받았다. 영식별 훈련을 하면서 다소의 부정적 습관이 붙는 것같았으나 이내 자비심을 불러
들이면서 뛰어넘을 수 있어졌다. 잊을 수 없는 수련체험이다. 안다는 것과 아는 것을 산다는 것과
아는 것을 타인에게 안내해줄 수 있는 정도이 차이를 극복하기위해 날마다 성찰의 글을 쓰는
습관을 들였다.
그때로부터 20년이 흘렀으나 나는 언제나 엊그제 같이 느껴진다.
나는 지금 타인의 나이에 비해서는 넉넉하고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것같은데 실은 조금 외롭고
공감대를 가진 영적 친구를 만나지 못해 간신히 하루하루를 견디어내는 생활이다. 내가 호기심에
차서 가까이 가려는데 거룩한 곳이라 하시니 순간 놀랐다. 매순간 순간이 놀랍고 거룩한 행위의
부분임을 느낀다. 어느 부분은 결과이고 또 다른 부분은 과정일지라도 이 모든 것이 통째로 좁은
문으로가는 여정이 아니겠는가.
타지 않는 불, 그 사인을 읽을 줄 아는 눈을 가지면 세상은 모두가 기적이고 거룩한 곳이 되고
신발을 온전히 벗는 순간,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된다는 것, 잠시 잊었던 것 찾았다. 아멘
우리에게 어머니음을 주어서거룩하지 않은 곳은 없다고 믿게 된다. 묵주기도할 때 각
장마다 그려진 그림을 이용하여 관상기도를 할 때도 있다.
오늘 아침에는 "성모님은 예수님의 옆에 계시네. 그렇지 가리지도 않고 뒷전으로 밀려서 있지도
않는 거지."하며 옆자리를 묵상해 보았다.
피하지 말기, 물러서지 말기, 앞서가며 주님을 가리지 말기를 찾았다.
그리고 하느님 사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자주 찾는다. 너무나 잘 아는 사이의 동기간이나 이웃은
너무나 자주 만나지 않기로 한다. 기도 중에 만나고 반모임에 만나고 해야 할 말이 아니면
립서비스 같은 말은 하지 않기로 한다. 성모님이 시키는대로 하라고 했으니 하면 되는 정도로
살기로 한다.
예수님과 성모님을 생각해서 위로를 받지 못할 사람은 이 지구상에 없으므로, 그 내용을 느끼고
있으므로 예수 마리아 요셉을 외면서 님들의 삶에 비하면 내 삶은 너무나 송구스럽고 안일하다고
여기면 감사가 따라온다.
관상기도 참 좋다. 집에서 혼자 하는 것보다 성전에서 함께 하니까 충분히 풍요로와진다.
성당에 관상기도 모임이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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