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semiconductor)”는 ‘전기전도도가 도체와 절연체의 중간 정도인 결정형 고체들’이라고 하고, ‘이러한 물질들을 화학적으로 처리함으로써 전류를 흐르게 할 수도 있고 전류의 흐름을 조절할 수도 있기 때문에 다이오드·트랜지스터·집적회로 등의 다양한 전자소자를 만드는 데 쓰인다.’는 설명만으로는 솔직히 반도체가 무엇인지는 쉽게 납득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반도체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고 하더라도 현대 사회에서 반도체가 얼마나 중요한 소재인지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그 반도체, 오늘날 대한민국의 반도체는 지금부터 40년 전에 한 기업인의 소망이 가져 온 결실이라고 합니다.
<‘내 나이 73세, 비록 인생의 만기(晩期)이지만 이 나라의 백년대계를 위해서 어렵더라도 전력투구를 해야 할 때가 왔다. 현 단계의 국가적 과제는 산업의 쌀이며 21세기를 개척할 산업혁신의 핵인 반도체를 개발하는 것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난제는 산적해 있다. 그러나 누군가가 만난을 무릅쓰고 반드시 성취해야 하는 프로젝트이다. 이처럼 반도체 개발 결의를 굳히면서 스스로 다짐했다.’(호암자전 368∼369쪽)
꼭 40년 전 한국 반도체 신화가 태동한 ‘별의 순간’이다. 1983년 2월 8일 이병철 삼성 회장은 반도체 투자를 결심하고, 3월 15일 초대규모 집적회로(VLSI) 메모리반도체 공장 건설을 선언했다. 나중에 2·8 도쿄 결단으로 명명됐지만, 당시 세계의 반도체 업계는 조롱했으며, 삼성그룹 내부는 물론 가족 사이에서도 그룹 전체를 위태롭게 할 무모한 구상이라는 반대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노(老)기업인은 생의 남은 에너지를 모두 쏟아 부어 토대를 다지고 4년 뒤 별세했다. 3남 이건희 회장이 이어받아 삼성 반도체 신화를 일궈내고 지난 2020년 10월에 타계했으니, 대한민국은 두 부자(父子)에게 큰 빚을 진 셈이다.
최근 반도체 산업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지만, 반도체 초기의 어려움에 비할 바는 못 된다. 반도체 성공 스토리는 기업과 산업을 넘어 국가 차원에서도 난관을 돌파할 지혜를 제공한다.
첫째, 기업가 정신이 국가 부강의 원천이다. 이병철 회장의 기업관은 사업보국(事業報國)이었다. 국가가 필요로 하는 분야에 대한 투자가 최우선이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뛰어들어선 안 된다. 일자리와 부(富)를 창출하지 못하는 적자 기업은 사회악으로 여겼다. 그만큼 치밀한 준비와 실행을 중시했다. 반도체 결단 뒤에 남모르는 철저한 사전 검토가 있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둘째, 국가의 적극적 지원이 있어야 기업가 정신이 꽃을 피울 수 있다. 당시 반도체 공장의 입지 요건은 ‘서울에서 1시간 이내 거리’였다. 고도기술 인력 유치에 성패가 달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용지를 구하기 어려웠다. 정부는 정부의 ‘특정 용지’를 사용하게 했으며, 이것이 지금의 삼성 기흥캠퍼스이다. 정부는 기술 인재 양성을 위해 이공계 병역특례 제도를 시행했다. 1984∼1986년에 입사한 200∼300명의 병역특례 요원이 반도체 산업의 기초를 다졌다.
셋째, 기술개발인들의 열정과 애국심도 중요하다. 최근 출간된, 임형규 전 삼성전자 사장과 양향자 의원의 대담집 ‘히든 히어로스’에 초기 상황이 생생하게 나온다. 역공학(reverse engineering)으로 포장됐지만, 일본 칩 베끼기였다. 기술 자립을 앞당기기 위해 월화수목금금금 일했다. 미국에 파견된 엔지니어들은 죽을 힘을 다해 배웠다. ‘반도체인의 신조’를 제정하고, 회식 자리에서 애국가를 불렀다. 이런 결기 덕분에 1987년과 1997년 D램 가격 폭락 때, 오히려 생산 시설을 늘리고 생산성 향상을 이루는 역발상으로 일본을 앞설 수 있었다.
이처럼 반도체 역사는 극일(克日)의 역사이기도 하다. 2·8 결단 당시 일본 경제는 욱일승천 기세였다. 그 2년 뒤 세계 선진국들이 일본에 ‘플라자 합의’를 강요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세계 10대 기업 중 7개가 일본 기업이었고, 페블비치 골프장과 록펠러 센터 같은 미국의 상징물은 일본 자본에 팔렸다.
이런 시기에 일본으로부터 배워 일본을 넘어섰다. 죽창가 반일 선동이 아니라 이런 극일이 진정한 애국이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2월 8일은 1919년 도쿄에서 유학생 독립선언이 있었던 날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위대한 도전과 성취가 위험에 처했다. 반도체 특별법은 지지부진하고, 의대는 여전히 이공계 인재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 국회를 장악한 야당은 반(反)기업·반시장·반법치 입법과 선동을 서슴지 않는다.
그나마 윤석열 대통령이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을 자임하는 등 국정 정상화에 나섰다. 정치인 부패와 노조 불법, 간첩망에 대한 공권력 행사를 지지하는 국민도 많아졌다. 그러나 소극적 각성을 넘어 적극적 행동이 필요한 때다.
뒤를 돌아보는 거리만큼 앞도 내다볼 수 있다. 반도체 40년 역사에서 배우고, 제2 제3의 반도체 기적을 만들어야 대한민국 퀀텀점프도 가능하다.>문화일보. 이용식 주필
출처 : 문화일보. [이용식의 시론]반도체 40년史에 국가 재도약 답 있다
우리는 현재 주요 국가들이 자국의 첨단 산업 지원과 기업 유치에 나라의 명운을 거는 이른바 경제안보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경제가 곧 국가의 보호막이며 기업은 국가의 미래라는 얘기를 하면 노동자의 권익부터 얘기하라는 사람들이 많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기업이 있어야 노동자가 일할 곳이 있게 됩니다.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와 지방 정부·의회들은 각종 친기업 정책을 통해 한국 등 외국 기업들의 투자 유치에 총력을 기울이는 한편, 첨단 산업 육성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는 것은 우리 국민들도 다 아는 사실일 겁니다. 그 중심에 반도체가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대만 정부는 TSMC와 사실상 한 몸이라고 얘기합니다. 대만의 택시 기사들도 TSMC를 위해 반도체 부품이나 화학 약품을 배송하는 서비스를 하고 있으며, 이를 사회공헌이라고 자부심을 느낀다니 세계 반도체 산업의 게임체인저 TSMC의 부상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을 겁니다.
거기에 비하면 대한민국의 삼성이나 에스케이는 그들만의 힘으로 거친 태풍을 헤쳐 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정부와 국회는 대한민국의 반도체산업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