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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27) 민심을 잃고 몰락한 이스라엘의 사울왕
1939년 독일의 히틀러는 폴란드를 침공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폴란드를 완전히 장악한 독일은 영국과 프랑스에 평화회의를 제의했다. 영국과 프랑스가 거부하자 독일은 프랑스 파리까지 단번에 진격했다. 이제 마지막 영국만이 남았다. 영국을 향한 공격이 계속됐기 때문에 영국 국민은 대단히 불안했다. 평화 협상을 제의하는 국민들도 많았다. 말이 평화 협상이지 독일에 점령당하는 것이었다.
이때 영국은 처칠을 수상의 자리에 앉히고 전시 내각을 구성했다. 처칠은 의원들과 국민들에게 “내가 영국을 위해 바칠 수 있는 것은 피와 노력과 땀과 눈물뿐입니다. 나는 모든 힘을 기울여서, 또한 하느님의 도움에 의지하여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싸우는 마지막 목적은 단 한 가지, 승리입니다”라고 역설했다. 처칠은 민심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중요한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치는 민심이 떠나면 민심은 모래처럼 흩어지고 힘이 분산되어 전쟁에서는 백전백패한다.
사무엘은 백성들의 요구에 따라 베냐민 지파의 사울을 이스라엘 최초의 왕으로 뽑았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 안에는 ‘어떻게 저런 사람이 우리 민족을 구할 수 있겠어?’하며 얕잡아 보고 사울을 따르지 않는 자들도 있었다. 사울은 처음에는 큰 포용력을 가지고 자신의 정적들을 감싸 안았다. 이스라엘 최초의 왕으로 책봉된 사울은 이스라엘을 잘 다스렸고 백성들은 사울을 하느님이 보내주신 임금으로 섬겼다.
사울이 왕에 오른 지 2년이 지나 필리스티나와 전쟁을 벌였다. 아군의 군대는 적군의 위세에 눌려 모두 떨고 있었고 병사들도 하나둘씩 도망쳤다. 마음이 급해진 사울은 자신이 제사를 지냈다. 그때 바로 사무엘이 나타나 하느님 말씀을 따르지 않은 것을 백성들 앞에서 추궁했다. 사울은 전쟁에서는 다행히 승리를 거두었지만 이스라엘 백성의 전폭적인 존경을 받던 예언자 사무엘의 추궁으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는 큰 결함을 드러냈다.
그런데도 사울은 후에도 전쟁에서 승리한 후 하느님께 드리는 제사보다 자신을 드러내는 전승비를 세우는 것에 더 신경을 썼다. 결국 하느님은 사무엘에게 사울을 버리겠다고 최후통첩을 한다. 하느님의 버림을 받은 사울은 더욱 궁지로 몰렸는데 골리앗을 죽인 다윗이 백성의 인기를 독차지한 것이었다. 사울은 다윗을 노골적으로 질투하고 시기했다. 그럴수록 이스라엘 백성의 민심이 떠나고, 가족들의 냉대를 받고, 스승 사무엘에게도 버림을 받는 신세가 되었다.
사울은 왕의 자리는 차지하고 있었지만 백성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사울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손꼽는 영웅이었지만 국민들의 마음을 놓쳐버린 실패한 군주였다. 능력이 출중한 장수였던 사울왕이 권력을 잡은 후 교만해져 민심을 잃고 하느님의 징벌을 당했다, 추락하는 그의 삶은 모든 지도자들에게도 큰 교훈을 안겨준다. 지도자의 가장 큰 힘은 민심이다.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카파르나움
갈릴래아 호수의 북쪽에는 카파르나움 유적지가 자리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당시 거점으로 삼으신 마을입니다. 히브리어로는 [크파르 나훔] 곧 ‘위로의 마을’이라는 뜻인데, ‘나훔의 마을’이라는 의미로도 풀이됩니다. 따라서 열두 소예언자 가운데 하나인 나훔과 관계 있다는 설도 있지만, 나훔의 고향으로 소개되는 “엘코스”(나훔 1,1)의 위치는 아직까지 수수께끼입니다.
예수님의 유년기 고향은 나자렛이지만, 공생활을 시작하신 뒤에는 카파르나움이 ‘주님께서 사신 고을’(마태 9,1)로 여겨졌습니다. 현재 유적지 입구에도 ‘예수님의 고장’이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습니다. 다만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마태 8,20) 하신 걸로 보아 거처는 따로 없이 베드로의 집에서 지내신 듯합니다. 베드로가 장모와 함께 살았을 집(17,25)이 카파르나움에서 발굴되었는데, 현재는 그 위로 배 모양의 성당이 봉헌되어 있습니다. 물고기 낚는 어부에서 사람 낚는 어부로 불림 받은 베드로의 소명을 잘 보여줍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장모는, 고기잡이를 하며 잘 살던 사위가 갑자기 누군가에게 홀려 가정에 소홀히 한다고 화병이 났던 모양입니다. 열병처럼 타오르는 이 화병은, 베드로와 함께 오신 예수님을 만난 뒤 비로소 해소된 듯합니다(8,14-15). 이후 베드로의 집은 최초의 ‘가정 성당’(domus ecclesia)이 되었고, 로마 시대 탄압받던 이들은 이곳에 모여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카파르나움은 ‘예수님의 고장’답게 기적이 많이 일어난 곳입니다. 망령 들린 자, 중풍병자 등이 치유 받았고,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탈리타 쿠미]라는 말씀 한 마디로 소녀를 일으켜 주셨습니다(마르 5,35-43). 이 말은 아람어로서 “소녀야, 일어나라.”라는 뜻입니다. 루카 7,2-5에 따르면, 카파르나움의 회당은 신심 깊은 어느 이방인 백인대장의 도움으로 지어진 것인데, 예수님께서는 이곳에서 생명의 빵에 관한 말씀도 해주셨습니다(요한 6,22-59). 이후 그 백인대장은 자신이 아끼던 노예가 병들자 예수님께 도움을 청합니다. 지금도 미사 때 바쳐지는 그 유명한 청원입니다: “주님, ··· 그저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루카 7,6-7).
카파르나움은 예수님께서 세리 마태오를 부르신 곳이기도 한데요(마태 9,9), 당시 카파르나움은 ‘해변길’(Via Maris)이라고 하는 국제 도로가 지나가는 마을이었습니다. 이사 8,23에 언급된 “바다로 가는 길”이 마을을 통과하였으니 카파르나움에선 세금 거둘 일도 많았을 테고, 그래서 많은 세리가 활동했을 것입니다. 이 해변길 덕분에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과 말씀도 다른 지방으로 쉽게 퍼져 나갔을 테고요. 그래서 마태 4,13-17에 나오듯 “바다로 가는 길··· 이 민족들의 갈릴래아,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게 되었으니, 과연 ‘위로의 마을’이란 뜻의 카파르나움은 ‘예수님의 고장’으로 손색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78)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
사도적 정통성 드러내고 삼위일체 신앙 고백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이하 코린토 2서)은 바오로 사도의 인간적인 면모를 가장 잘 드러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오로 사도의 감성과 성격이 서간 곳곳에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2서에서 자신의 사도직이 정통하고 합법하다 주장하며 코린토 신자들과의 신뢰를 회복하려 합니다.
코린토 2서는 ‘코린토에 있는 하느님의 교회와 온 아카이아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바오로 사도와 티모테오’가 공동명의로 보낸 서간입니다.(1,1; 로마 16,21 참조) 하지만 실제 저자는 코린토 1서와 마찬가지로 바오로 사도 자신입니다. 아카이아는 로마 제국의 속주로, 이 지방의 수도가 코린토입니다. 그래서 코린토 1·2서의 수신인은 일반적으로 ‘코린토 교회를 중심으로 한 아카이아 지방의 모든 신자’라 하겠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사도의 권위’로 코린토 1서를 써보내 코린토 신자들이 겪는 갈등과 교리적 의문을 해소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일부 코린토 신자는 바오로 사도가 선포한 복음 내용과 맞지 않는 가르침을 전하면서 그의 사도직을 부인합니다. ‘바오로의 적대자들’인 그들은 유다계 출신으로(11,22-23) 코린토 교회에 몰래 들어와 새로운 가르침을 제시하면서 바오로 사도의 위상을 퇴색시켰습니다. 그들은 “그의 편지는 무게가 있고 힘차지만 직접 대면하면 그의 몸이 약하고 말도 보잘것없다”(10,10)며 바오로 사도를 헐뜯었지요. 이에 바오로 사도는 “그 특출하다는 사도들”이라 비꼬며 그들을 자신만을 내세우는 ‘거짓 사도들’이라 혹평했습니다.(11,5-15)
바오로 사도가 ‘거짓 사도들’이라고 비난한 이들은 누구일까요? 코린토 2서는 이들의 정체를 명확히 밝히고 있진 않지만, 성경학자들은 다음의 부류를 지목합니다. 먼저 그리스도교를 유다교화하려는 이들(11,21-23)로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에게 율법뿐 아니라 할례와 정결례 등을 지킬 것을 강요하는 자들, 두 번째는 영지주의자들로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니라 자신들의 광신적 생각과 이론을 전파하는 무리입니다.(12,12.21) 세 번째로는 신적인 영을 지닌 자로 자처하는 유다계 유랑 선교사들입니다. 이들은 바오로 사도 일행과 다르게 복음을 선포한 자들입니다.(10,12-18; 11,4) 마지막으로 자신을 사도들의 위임을 받은 자들이라고 과시하며 남을 속이려고 일삼는 자들입니다.(11,13)
코린토 신자들은 이들의 사주를 받아 코린토 교회 설립자인 바오로 사도의 사도직을 부인하고 티토의 일행(12,17-18)을 거부합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직감한 바오로 사도는 에페소에서 코린토로 가서 얼마간 머물지만, 사도로서의 위상과 존재의 중요성이 퇴색되고 웃음거리가 되는 상황에 부닥치자 결국 코린토를 떠납니다.(2,5-11; 7,2)
하지만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교회를 포기하지 않고 ‘매우 괴롭고 답답한 마음으로 많은 눈물을 흘리며 쓴 편지’(‘눈물 서간’)를 티토 편으로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냅니다.(2,1-4; 7,8) 그 결과 코린토 신자 대부분은 바오로 사도에게로 돌아섭니다. 이에 바오로 사도는 마케도니아에서 용서와 화해로 평화로운 관계를 회복한 것에 대한 기쁨을 표현한 편지(‘화해 서간’)를 코린토 신자들에게 다시 보냅니다.
이 2통의 편지를 하나로 엮은 코린토 2서가 경전 목록에 오릅니다. 이를 헬라어 신약 성경은 ‘Προs Κορινθιουs Β’(프로스 코린티우스 베타),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Ad Corinthios Ⅱ’,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으로 표기합니다. 성경학자들은 코린토 2서가 바오로 사도의 제3차 선교 여행이 끝날 무렵인 56년이나 57년 말에 쓰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코린토 2서는 13장으로 구성돼 있는데 ‘인사말과 위로와 당부’(1,1-11), ‘화해 서간’(1,12-7,16),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모금’(8,1-9,15), ‘눈물 서간’(10,1-13,10)으로 구분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서로 격려하며 평화롭게 살자고 인사합니다. 그런 다음, 자신이 코린토 방문을 연기한 것은 신자들을 아끼기에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서라고 합니다.(1,12-2,13) 그러면서 자신은 ‘새 계약의 일꾼’(3,6)인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화해의 직분’(5,18)에 충실하기 위해 온갖 고난을 즐겨 받아 왔다고 회고합니다. 그러면서 코린토 신자들에게 교회의 위기를 잘 극복해줘 기쁘다고 합니다.(7,5-16 참조)
바오로 사도는 이어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이들을 위해 모금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의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기에 기쁜 마음으로 도움을 줄 것을 청합니다. 그는 자신을 반대하는 이들을 비난하면서 자신은 오로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데 온 힘을 쏟는다고 밝힙니다.(10,1-18) 그리고 자신의 약점과 고통을 하느님의 권능과 위력을 드러내는 자랑거리로 내세웁니다.(11-12장)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2서에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합니다. 그는 성부·성자·성령이 서로 다른 위격이지만 한 분이신 하느님으로서 똑같이 함께 교회의 삶 속에 깊숙이 개입하시어 구원을 이루신다고 밝힙니다.(1,21-22; 13,13)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26) 이스라엘 최후의 판관 사무엘
옛날 아테네에서 누더기 옷을 걸친 한 노인이 거리에서 소리를 쳤다. “여러분, 돼지가 되어 즐기기보다는 사람이 되어 슬퍼하십시오. 사람은 먹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하여 먹는 것이니까요.” 노인은 당대의 스승, 소크라테스였고 많은 젊은이들이 그의 말에 호응했다. 소크라테스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래야 어떻게 하며 살아야 할지 알게 된다고 했다.
특히 소크라테스는 당시 아테네의 부패한 정치가와 학자들을 날카롭게 비판하며 올바르게 살라고 충고를 거듭했다. 아테네 정부는 눈엣가시 같은 소크라테스를 잡아 “청년들을 현혹하고 국가에 해를 끼친다”는 죄로 사형을 선고했다. 그의 제자들은 스승을 탈출시키려 했지만 ‘악법도 법이다’라는 명언을 남기며 끝내 사형당하고 말았다.
예언자는 히브리말로 ‘나비’(nabi)혹은 ‘로에’(roeh)라 하는데, 하느님의 말씀을 대리해서 전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다 보니 권력자의 미움을 받아 박해나 죽음을 당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존경받는 영적 지도자였다. 이스라엘 역사상에서 가장 유명한 예언자를 꼽으라면 사무엘이 빠질 수 없다. 사무엘은 예언자 중의 예언자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판관 시대에서 왕정 시대로 넘어가는 시대에 핵심적 역할을 담당한 마지막 판관이었다. 또한 이스라엘의 첫 예언자로 칭송받는다.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인과 본래 살고 있던 필리스티아인은 계속해서 충돌했다. 기원전 10세기경 필리스티아인과 이스라엘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이스라엘은 실로에 있던 하느님의 계약 궤까지 모셔와 전투를 했지만 대패하고 계약 궤마저 필리스티아인에게 빼앗기고 만다.(1사무 4,1-17) 나중에 이스라엘은 우여곡절 끝에 하느님의 계약 궤를 되돌려받았다.
전투에서 진 후 이스라엘에서는 강력한 왕조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사무엘이 등장해 왕정을 분명하게 반대했다. 왕조국가가 되면 생겨날 폐해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설명했다. 결국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왕의 종이 될 것이라 경고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의 경고를 귓등으로 들었다. 할 수 없이 사무엘은 12지파 중 선택된 야곱의 막내아들 베냐민 지파 중에서 사울을 초대 왕으로 뽑았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민족중흥의 주역이었으며, 왕국의 건설자 역할을 했다. 이스라엘의 왕은 주변 나라의 군주와 분명히 다르다. 이스라엘 왕은 절대군주가 아니며 이스라엘의 왕은 오직 주 하느님뿐이었다.
위대한 예언자 사무엘도 자식 복은 없었다. 늙은 나이에 판관으로 임명한 사무엘의 두 아들 요엘과 아비아를 판관은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는 탐관오리의 길을 갔다. 최고의 예언자 사무엘에게도 아들들의 타락은 그를 고통스럽게 했다. 사무엘은 아들을 감싸고 선택하기 보다는 하느님의 말씀과 경고에 순응했다. 이처럼 사무엘은 평생을 청렴결백하게 살았던 인물이다.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혼돈의 물: “누가 문을 닫아 바다를 가두었느냐?”(욥 38,8)
이스라엘 북쪽 갈릴래아 지역에는 큰 호수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갈릴래아 호수”(마르 7,31), “킨네렛 바다”(여호 12,3) 등으로 칭해진 곳입니다. 이 호수는 분명 민물이지만 성경에선 “바다”라고 표현합니다. 고대에는 소금기의 여부로 바다를 구분하지 않고 규모가 크면 담수여도 바다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신 기적(마태 14,22-33)도 바로 이곳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기적은 오늘 제1독서인 욥기 38장과도 관련 깊은 사건입니다.
옛 이스라엘과 고대근동에서는 큰물을 위협적 존재 또는 혼돈의 세력으로 여겼습니다. 물은 우리에게 주로 생명수라는 긍정적 의미로 다가오기에, 물을 위협과 혼돈으로 여겼다는 말이 의아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물은 양면성을 갖습니다. 적당히 있으면 생명수이지만, 너무 많으면 목숨을 앗아갈 수 있습니다. 이런 물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예가 천지창조를 서술한 창세 1장과 2장입니다.
먼저, 창세 2장에서는 물이 생명수입니다. ‘에덴동산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고 땅 밑에서 솟아오르는 안개 같은 물이 지면을 촉촉하게 적셔주었다.’고 합니다(5-6절). 이는 창세 2장의 저작 배경이 물이 귀한 곳임을 암시해 줍니다. 이를테면, 영토의 절반이 광야로 이루어진 이스라엘 땅 같은 곳 말이지요. 그에 비해, 창세 1장에서는 물이 위협적 존재로 등장합니다. 2절에 따르면, 하느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라고 합니다. 여기서 불모지와 어둠 그리고 심연의 물은 창조 이전의 혼돈을 상징하고, 주님의 영이 심연의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는 말은 그분이 혼돈을 제압하고 계셨음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태초의 혼돈을 내리누르며 세상의 질서를 잡아 천지를 창조하십니다.
하지만 인간의 죄가 한계에 달해 주님께서 세상을 멸하기로 결정하신 날엔 혼돈의 세력인 물이 다시 돌아옵니다. 성경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큰 심연의 모든 샘구멍이 터지고 하늘의 창문들이 열렸다”(창세 7,11). 이는 심연의 물이 다시 세상을 덮어 주님께서 창조 때 확립하신 질서를 깨뜨렸다는 뜻입니다. 바로 여기서 물이 위협적 존재, 곧 창조 질서를 뒤집을 수 있는 존재로 등장합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오늘 독서에 나오는 “누가 문을 닫아 바다를 가두었느냐?”(욥 38,8)라는 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는 창조주 주님께서 혼돈의 물을 제압해 피조물 세계를 침범하지 않도록 막아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바다 위를 걸으신 사건의 의미도 명확해집니다. 피조물들이 사는 뭍에 큰물이 침범하지 않도록 가두신 하느님의 구원 행위가 성자 예수님을 통해 이어진다는 뜻입니다. 갈릴래아 호수는 예부터 이어진 이런 구원 역사에 대해 떠올리고 되새길 수 있는 성지입니다.
[마르코와 함께 떠나는 복음 여행] 조상들의 전통에 관한 논쟁(마르 7,1-23)
신학생 시절, 친구들과 외출을 마치고 신학교로 돌아오던 때의 일입니다. 할머니 한 분이 무거운 수레를 끌고서 혜화동 언덕길을 힘겹게 오르고 계셨습니다. 당시 학교 근처에 큰 고물상이 하나 있었는데, 하루 종일 주워 모은 폐품을 팔러 가시던 중이었습니다. “우리가 할머니 도와드리자.” 한 친구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를 도와드리고 가면, 우리 귀원 시간을 못 지킬 것 같은데….” 다른 친구의 현실적인 이야기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할머니를 도와드릴 것인가, 신학원의 규정을 충실히 지킬 것인가. 그렇게 잠시 서로의 눈을 바라보던 친구들은 모두 “일단 도와드리자!”라고 말하며 할머니께 달려갔습니다. 수레를 끌고 밀고, 그렇게 고물상으로 달려가 짐을 다 내려드린 후, 학교 입구로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외출 마감 시간은 이미 지났고, 결국 기도에도 늦게 되었습니다. 신학원 규정을 어긴 저희는 저녁 식사 후 원감 신부님을 찾아가 외출에 늦은 사실과 그 이유를 이실직고했습니다. 늦었다는 사실에 혼이 날줄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저희를 행복한 눈으로 바라보시며 신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다음에도 그런 일이 생기면, 꼭 그렇게 해라.”
어느 날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고 예수님께 따집니다.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7,5)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담긴 하느님의 마음을 잊고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전통에 얽매여 있는 그들의 모습을 예리하게 지적하시면서 이사야 예언자가 위선자들을 두고 했던 말씀을 상기시켜 주십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7,6-7)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악용되고 있던 종교적 실천 중 하나인 ‘코르반’을 언급하십니다. ‘코르반’은 하느님께 예물을 드리기로 한 서약을 뜻하는데, 이 서약을 하면서 부모님에게 공양할 물건을 성전에 바친다고 맹세하면 공양의 의무가 면제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부모 공양을 피하려고 코르반 서약을 남발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율법 학자들은 하느님께 대한 흠숭이 부모 공경보다 앞선다는 논리를 들며 악용된 코르반 서약도 유효하다고 해석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왜곡된 종교적 실천을 고발하십니다.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7,8) 그들은 부모님께 효도하라는 하느님의 계명보다 사람들이 만든 전통에 집착했습니다.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신앙생활을 돕기 위해 마련한 규정들이 오히려 하느님의 계명을 어기게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비록 신학원 규정을 어겼지만, 그보다 사랑의 실천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신 신부님.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늘 그분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며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그런 일이 생기면, 꼭 그렇게 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