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구멍집
지인과 함께 영남대 숲길을 걸었다. 북문에서 시작하여 숲길 끝에는 민속촌이 자리 잡고 있었다. 거기는 옛 전통 가옥으로 안동 지방의 서당이나 고택을 안동댐 수몰지구가 되면서 그곳에 옮겨놓은 곳이다. 그중에서 처음 접하는 까치구멍집이 있었다. 집 처마 끝에 까치가 집을 짓고 살았던 집이 아닐까 생각했다. 어릴 때 시골에서 처마 끝에 제비나 참새집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랐다. 당시에 가옥은 한옥으로 기와집 내지는 초가집이었다. 처마 끝에는 제비가 둥지를 틀어 새끼에게 먹이를 날라 입에 넣어주는 장면이 기억에 남아있다. 또 참새들이 지붕 밑에 집을 짓고 살았다. 이따금 저녁이면 형들과 함께 사다리를 받쳐놓고 올라가 전등불을 비추면 참새들이 꼼짝없이 잡힌다. 소죽 끓인 아궁이에 구워 먹던 추억이 되살아 난다.
그런 생각으로 까치구멍집에 들어갔다. 초가집인데 집의 구조가 처음 접하는 특이한 가옥이었다. 전통 가옥은 대문에 들어가면 마당이 있고 그 옆에 주인이 손님을 맞이하는 사랑채가 있다. 넓은 마당을 지나면 안쪽에 안주인이 기거하는 본채가 있는 일반적인 개방형의 전통 가옥이다. 본채에는 부엌이 딸려 있으며 그 옆에 안방이 있고 대청마루를 건너 아이들이 기거하는 방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까치구멍집은 내가 생각하는 그런 집이 아니었다. 대문을 열면 바로 그 안에 마구간이 있고 부엌과 마루, 방이 있었다. 한 공간에 그곳에 함께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가축도 있었으니 밀폐되고 폐쇄된 공간이었다. 그러니까 공기가 잘 통하도록 용마루 아래 박공 부분에 네모 모양의 ‘까치구멍’을 여러 개 내어 환기를 시켰다.
함께 살아가는 가축에게도 배려하는 가옥의 형태이었다. 눈비가 와도 걱정 없고 추위가 닥쳐도 문제 되지 않았다. 옛날에는 가축을 훔쳐 가는 도둑이 있어 외양간에 매어놓은 소가 아침에 사라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으니 그런 염려도 없었다. 나도 어릴 때 우리 집 소를 잃은 기억이 남아있다. 가축도 가족처럼 여기는 인정과 사랑이 넘쳤음을 알 수 있었다.
그곳을 둘러보면서 몇 년 전 이스라엘을 순례한 기억이 떠오른다. 경전에서 아기 예수는 마구간 구유에서 태어났다고 되어 있다. ‘어떻게 누추한 마구간에서 태어났을까?’ 마구간은 가장 비천하고 낮음을 상징하는 표현이기는 하지만, 잘 이해가 되지 않았으며 늘 궁금했다. 그곳을 둘러보면서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그 지역은 지층이 석회암층이라 자연 동굴이 많았다. 평민들은 동굴을 이용하여 집을 짓고 살았다. 복층으로 지어 위층에는 사람이 기거하며 아래층에는 가축을 키웠다. 그래서 위층에는 방이 없어 급기야 아래층의 마구간에서 해산(解産)했다는 사실에 이해가 되었다.
가옥은 그 지역의 기후와 환경에 따라 구조 형태가 다양하다. 까치구멍집은 가축도 한 가족으로 여기는 따뜻한 마음에서 배려했으리라. 시대가 빠르게 변함에 따라 그런 전통의 문화유산이 사라지고 있다. 그나마 민속촌을 통해 보존되고 있어 안도감이 들었다.
첫댓글 지역에 따른 가옥의 형태를 가르쳤던 까마득한 한창 젊었을 때가 떠오르네요. 영대 숲길 편안하고 좋지요. 따스해져서 복사꽃과 벚꽃이 필 때면 또 걸어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