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에 대해 - 3. 존재론(보론 :1. 창발과 하향인과)
by 메피스토
3.7. 보론
3.7.1. 창발과 하향인과
들뢰즈의 존재론을 간단히 평가해보고 지나가겠
습니다. 들뢰즈의 존재론은 전체론입니다. 그런
데 창발한 “전체”는 실재하는 것일까요? 이는 결
국 창발이 “존재론적 현상”인지 “인식론적 현
상”인지에 대한 문제로 귀결됩니다.
이를 논하는 데 핵심이 되는 건 창발한 전체가 부
분들에게 행사하는 “하향인과”의 메커니즘입니
다. 주로 “강한 창발”과 “약한 창발”의 입장이 나
뉘며, 이영의는 『신경과학철학』 pp.247~248
에서 중간 유형을 끼워 3가지 유형로 구분하는
데, 요약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강한 창발 : 하향인과는 직접 인과적 작용
중간 유형 : 하향인과는 창발적 활동을 위한 규제
조건으로 작용한다.
약한 유형: 하향인과는 하위 차원에 속하는 실재
들의 역동적 과정을 위한 끌개로 작용하다.
유형 구분의 핵심은 ‘하향인과’ 개념입니다. 즉
전체가 부분들에 행사하는 힘의 정체가 뭐냐는 거
죠. 그런데 강한 유형은 인과적 폐쇄성의 원리와
모순되는 부분이 있으므로 자연주의와 공존이 가
능할지 의문스럽습니다. 중간유형의 “규제조
건”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인과적 폐쇄성과 양
립할 수 있는 건 약한 창발뿐입니다. 약한 창발의
하향인과는 “끌개” 개념입니다. 끌개attractor
란 말 그대로 끌어오는 힘입니다.
그런데 끌개는 결국 미시적 기초에서 설명 가능
한 힘입니다. 그렇다면 창발은 그냥 인식론적 문
제가 아니냔 지적이 가능합니다. 즉 관찰의 해상
도가 낮으면 막연하게 전체로 보이지만, 해상도
를 높이면 미시적인 세부 요소들의 작용으로 환원
되는 것 아니냔 거죠.
다만 미시적인 기초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고 해
서 무조건 환원은 아닙니다. 환원이란 미시적 단
위에서 거시적인 현상에 대해 압축적으로 설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가령 물리적 언어로 심
리, 사회적인 현상을 환원할 수 있으려면 물리 용
어로 이를 압축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가령 “상사의 질책”의 물리적 기초인 A와
“기분이 나빠짐”의 물리적 기초인 B가 있다고 할
때, 왜 A가 B의 원인이 될 수 있는지는 두 가지가
형성된 기원을 추적해서 밝혀낼 수밖에 없습니
다. 그 기원을 설명하는 데는 심리학적, 생물학
적, 사회학적 설명이 선행되고, 이는 물리학의 언
어로 번역될 수는 있지만 압축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거시 영역의 설명을 빌려오는 것이므로,
결국 아주 긴 방정식으로 대체될 뿐 설명력이 증
대되거나 더 단순한 설명으로 압축할 수 없습니
다. 그러므로 약한 창발은 환원할 수 있는 인식론
적 현상이란 주장은 잘못입니다. 소위 “압축 불
능 논변"입니다.
하지만 압축 불능마저도 그저 인식론적 한계일 뿐
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압축 불능 논변
에 대한 반박으로 가능한 예가 “전향력”입니다.
전향력이란 회전체 표면 위에서 운동하는 물체의
운동 방향에 수직으로 작용한다고 보는 가상의 힘
입니다. “회전체”라는 특성 때문에 계산의 편의
상 가정된 것에 불과하거든요. 전향력은 존재하
지 않습니다. 회전이 존재할 뿐이죠. 하지만 회전
이란 개념 하에 계산하기는 불편하고, “압축”이
안 됩니다. 압축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실재하는
것이라면 계산 편의상 도입된 전향력도 “실재한
다”라고 해야 하는 건 아닐까요? 하지만 전향력
은 명백히 편의상 가정된 개념에 불과합니다.
물론 압축 불능 논변은 엄밀히 말하면 전체를 부
분들의 합으로 환원하는 것을 반박하는 논변이
고, 전향력은 처음부터 가상의 것으로 도입된 것
이니, 압축불능 논변에서 정당화하려는 약한 창
발과는 분명 다른 것이긴 합니다. 단, 이 전향력
은 압축 불능 논변을 약화하는 면은 있습니다. 압
축 불능이라는 게 그저 이론상 유용성의 문제일
뿐 존재 여부를 판단할 때 쓰는 기준이 아님을 상
기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방식의 논증을 하나쯤 더 생각해봐
야 할 것 같습니다. 가령 이런 건 어떨까요?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의 중력으로부터 유추하는 논증
입니다. 가령 “끌개”는 복잡계에서 부분들의 관
계망에 의해 형성된 지형으로 표현됩니다. 가령
복잡계과학의 이론을 응용하여 사회적 분석을 행
한 『분열의 시대,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는
다음과 같은 그림이 나옵니다.
위 그림에서 끌개는 움푹 패어 있는 지점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미지, 어디서 많이 보시지 않았나
요? 제가 이 그림을 보고 거의 반사적으로 연상
한 그림은 아래와 같은 것입니다.
이는 일반상대성 이론에서 중력에 의한 시공간 왜
곡을 3차원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일반상대성 이
론에서 중력은 시공간의 곡률 그 자체입니다. 복
잡계과학을 표현한 이미지에서 끌개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럼 복잡계에서 "끌개”가 일반상대성
이론에서 “중력”과 비슷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경우, “끌개”가 인식론적 현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면 일반상대성 이론에서의 “중력” 또한 미
시적 기초에 환원될 수 있으므로 “존재하지 않는
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두 이미지에서 끌개든, 중력이든 일종의 “곡
률”로서 대상에 “힘”을 발휘하며 작용합니다. 그
러므로 존재의 일의성 테제 하에서 중력도, 끌개
도 모두 “존재”하며, 끌개에 의한 하향인과를 발
휘하는 약한 창발에서의 “전체”또한 “존재한
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끌개에 대한 개념 및 이미지는 향후 사회
철학에서 “홈 패인 판”과 “고른판”을 설명할 때
다시 활용하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