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덕이 놀라 큰소리를 내고 말았다. 만총은 차분하게 원소와 공손찬의 전쟁 결과를 설명했다. 현덕은 이야기를 듣는 한편 공손찬과의 인연을 떠올렸다.
탁군에서 몸을 일으켜 군공을 세웠으나 안희현에서 독우를 매질하고 오갈데 없어진 그 때에 공손찬이 도움을 주었다. 어려서 동문수학한 인연 이상으로 그를 대해 준 것은 틀림없었다. 그 덕분에 다시 재기할 수 있었다. 동탁 토벌을 위해서 힘을 합했고, 원소를 막기 위해 같이 노력했다. 그러나 점점 지위의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형 아우의 관계는 어느 샌가 주종의 관계처럼 되어갔다. 더욱 그는 점점 남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으로 변해갔다. 본래 총명한 사람이어서 자기 자신의 의견만이 옳은 것이라 여기기 시작했다. 평원에서는 그런 공손찬의 변화를 말릴 방법이 없었다. 그때 공융이 자신을 찾지 않았더라도 평원에 머물러 있지만은 않았을 것 같았다. 공융의 위기를 구하던 그때를 생각하자 생각나는 사람이 또 있었다. 조자룡. 그는 어찌 되었을까?
“공손찬의 장수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있소?”
“원소 휘하에 대부분이 들어갔습니다.”
조운이 원소 밑에 들어갔을 리는 없다. 원소가 인물이 아니었기에 조운은 이미 마음을 버렸다. 다시 그 밑에 들어갔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왜 나를 찾아오지 않은 것일까?
“그리고...”
만총이 조조를 바라보며 머뭇거렸다.
“말하시오. 유 예주께서 못 들을 이야기는 없소.”
“원소쪽으로 원술이 움직이기 시작했답니다.”
조조가 흥미를 느꼈다.
“두 형제가 무척이나 사이가 나쁜 것으로 아는데?”
“그래왔습니다만 원술이 더 이상 버틸 수가 없게 된 모양입니다. 회남에서 여전히 정신을 못차리고 사치를 이만저만 부린 게 아니랍니다. 시첩을 수백 명이나 거느리고 그들이 또한 모두 능라주단을 몸에 두르고 진수성찬을 거르지 않더니 결국 재물을 모두 탕진하고 말았답니다. 원술이 기름진 음식을 먹는 동안에 병사들은 끼니도 제대로 챙길 수 없었다니 누가 그 밑에서 버티겠습니까? 부하들도 백성들도 등을 돌리고 있답니다. 원술은 결국 회남에서 버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원소에게 황제의 칭호를 바치겠다고 전했습니다.”
“그래서 원소는 어쩌겠다고 했소?”
“원소는 옥새를 바치라고 했습니다.”
“손책에게서 빼앗은 전국옥새 말이오?”
“네. 좋지 않은 상황입니다. 원소와 원술이 힘을 합치면 큰 화근이 될 것입니다. 그 전에 손을 써야 합니다.”
현덕이 만총의 말을 듣더니 벌떡 몸을 일으키고 말했다.
“원술이 원소에게 가려면 반드시 서주를 지나쳐야 합니다. 제게 군사를 내려주시면 중도에서 원술을 공격해 그를 사로잡아오겠습니다.”
“서주를 유 예주만큼 아는 사람도 없을 것이긴 하오. 하지만 굳이 유 예주가 가실 필요가 있을지는...”
“공손백규는 저와 동문수학한 사이이며 제게는 큰 은혜를 베푼 사람입니다. 이렇게나마 그의 원수를 갚아주고 싶습니다.”
조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원소가 공손찬을 무찔렀다는 것은 그가 북방 전체를 다스리는 자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원술이 원소에게 의탁하는 것은 그런 점에서도 반드시 막아야했다. 하지만 원술을 막기 위해 자신의 세력을 분산시키는 것도 위험했다. 현덕 밑에는 관우와 장비 같은 용장이 있으니 몰락해가는 원술을 잡아내는 것 정도는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좋소. 내일 폐하께 진언을 올리고 군마를 내어주도록 하겠소.”
조조는 말을 꺼내면 바로 실행하는 사람이었다. 다음날로 헌제에게 상소를 올렸고 헌제는 언제나처럼 토를 달지 않고 승인을 했다. 조조는 현덕에게 5만의 병력을 내어주고 자신의 부장 중 노소(路昭)와 주령(朱靈)을 지휘관으로 같이 파견했다.
승인을 하긴 했지만 조정 안에서 조조를 견제할 사람으로 현덕을 생각하던 헌제는 현덕의 출정을 즐거워할 입장은 아니었다. 현덕의 손을 잡고 승리를 기원하는 말을 건네다 자신의 신세 처량함을 되돌아보고는 그만 눈물을 주르르 흘리고 말았다. 그러나 현덕은 그런 헌제를 위로하지 못했다. 첫번째는 쓸데없이 조조의 눈길을 끌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았고 두번째로는 실상 마음의 여유를 가지지 못했다. 당장 현덕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허도를 벗어나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현덕은 집으로 돌아오자 바로 출정 준비를 마치고 다음날 군사를 이끌고 도성을 나섰다. 동승은 떠나는 현덕이 못내 아쉬워 계속 따라왔다. 도성을 십여 리나 쫓아온 다음에야 발길을 돌리게 되었다.
“국구는 너무 심려하지 마십시오. 제가 개선하게 되면 폐하의 밀조를 반드시 수행할 것입니다.”
동승은 눈물을 흘리며 현덕의 손을 잡았다.
“황숙만 믿겠습니다. 폐하의 뜻을 저버리시면 안 됩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신중하게 행동하셔야 합니다.”
동승을 전송하고 나자 관우와 장비가 다가왔다.
“왜 이렇게 출정을 서두른 겁니까?”
“허도에 있는 한 나는 새장에 갇힌 새, 그물에 걸린 물고기였다. 군사를 거느리고 허도를 빠져나왔으니 이제는 창공을 나는 새, 바다에 뛰어든 물고기인 셈이다. 서두르지 않는다면 누군가가 이런 이치를 깨닫고 방해했을 것이다.”
“동 국구가 우국의 충정은 가지고 있지만 조조를 상대로 잘 해나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더욱 도성을 벗어나야 하는 것이지.”
관우와 장비가 놀란 얼굴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현덕은 밝게 웃으며 말했다.
“지금은 조금이라도 더 빨리 이곳을 벗어날 때다. 아직 안심할 수 없다.”
그리고 이때 현덕의 우려가 현실로 일어나고 있었다. 정욱과 곽가가 전량(錢糧)을 점고하고 돌아오다가 한떼의 군마가 성을 빠져나가는 것을 보았다. 대장군부로 들어오자 바로 조조에게 달려가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확인했다.
“원술을 치게하고자 유비에게 군사를 주어 수춘으로 보냈소. 원술이 원소와 손을 잡으려 하고 있기 때문이오.”
정욱이 말했다.
“유비가 처음 주공께 왔을 때 문약(순욱)은 그자를 죽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공께서 듣지 않으셨습니다. 인재들을 모아야 하는 때에 덕망이 높은 자를 죽이면 누가 되기 때문이라 하셨고 저희들은 명에 따랐습니다. 유비가 허도에 있는 한은 걱정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자가 군사를 거느리고 도성을 빠져나갔으니 이제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곽가도 정욱의 말에 찬성을 표했다.
“유비를 죽일 수는 없지만 그를 놓아보내서도 안 됩니다. 옛말에 한 순간의 잘못으로 적을 놓치면 만대의 후환으로 남는다고 했습니다. 빨리 군사를 돌려야 합니다.”
조조는 그때서야 머리 속에서 안개가 걷히는 것 같았다. 바로 허저를 불러 기병 오백을 거느리고 현덕을 불러오라 일렀다. 긴급하게 상의할 문제가 있다고 전하게 했다.
현덕도 제법 빠르게 군을 몰아가고 있었지만 대군의 행군속도에는 한계가 있었다. 오래지 않아 허저가 현덕을 찾아내었다. 허저는 조조의 명을 전했지만 현덕은 의외의 말을 했다.
“군사를 거느리고 싸움에 임하는 장군은 군주의 명령이라고 해도 따르지 않을 수가 있소. 공은 이 원칙을 아시오?”
군주의 명령도 따르지 않는다. 이 말은 손자병법 구변편에 나오는 말이다. 조조는 뛰어난 학자이며 전략가였기 때문에 손자병법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부하 장수들에게 손자병법의 원칙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있었기에 허저도 잘 알고 있는 구절이었다.
전쟁에 나가는 장수는 부월(斧鉞)을 받는다. 부(斧)도 도끼고 월(鉞)도 도끼다. 부는 도끼날이 하늘을 향하고 있는 도끼고 월은 도끼날이 땅을 향하고 있는 도끼다. 그리하여 전쟁에 임하는 장군은 도끼가 가리키는 하늘로부터 땅까지의 모든 것을 다스릴 권한을 갖게 되는 것이다.
“나는 황제 폐하의 명을 받고 군을 이끌고 역적을 치러 가는 것이오. 시급을 다투는 일이니 회군할 수가 없소. 군을 출진시키면서 대장군을 뵙고 왔으니 따로 하실 말씀이 있을 리가 없소. 공은 내 말을 잘 전해주기 바라오.”
허저가 더 말을 붙이기가 어려웠다. 허저는 조조가 무엇 때문에 현덕을 다시 부른건지도 알지 못했다. 평소 두 사람이 사이좋게 지낸 모습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무력을 사용하면 곤란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관우와 장비가 곁에서 지키고 있는데 혼자 힘으로 끌어낼 수도 없었다. 결국 허저는 성과없이 돌아가야만 했다. 곽가가 허저의 보고를 듣고 말했다.
“유비가 결국 회군하지 않았습니다. 변심한 증거가 틀림없습니다.”
“이미 저질러진 일이다. 유비가 군을 이끌고 가긴 했지만 주령과 노소가 있으니 함부로 날뛰지는 못할 것이다.”
“주공, 그렇게 태평하게 말씀하실 일이 아닙니다.”
“유비가 떠난 이상 원술은 정리가 될 것이다. 현재는 원소와 원술이 연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기억해라. 선약후강(先弱後强) 개별격파다.”
먼저 약한 것을 치고 뒤에 강한 것을 친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연합을 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물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조조의 심기가 편한 것은 아니었다. 그 때문에 조조는 의장에 서명했던 또 하나의 인물인 마등이 서량으로 돌아간 것을 파악하지 못했다. 마등 또한 현덕이 조조라는 호랑이를 피하여 떠나간 것을 보고 깨닫는 바가 있었던 것이다.
현덕은 서주목 차주와 서주 백성들의 환영을 받으며 서주에 입성했다. 서주에 남아있던 가족들을 만나고 회포를 푸는 중에 손건과 미축도 찾아와 오랜만에 반가운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현덕은 간옹을 보내 원술을 정탐해 오게 했다. 간옹이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왔다.
“원술의 세력은 많이 약화되었더군. 부장 뇌박과 진란이 배반하고 떠나갔고 자기자신은 사치와 황음을 누리지만 병사들을 돌보지 않아 병력도 줄어들었고. 아무튼 그래서 싸짊어질 수 있는 만큼 싸짊어지고 북상 중이네.”
간옹의 보고에 따라 현덕은 전군을 거느리고 원술이 지나갈 길목을 점거했다. 현덕은 주령과 노소에게 좌군을, 관우와 장비에게는 우군을 맡기고 자신은 중군을 거느리고 원술 군을 기다렸다. 군대를 삼군으로 나눌 때 중군에는 지휘관이 위치한다는 것은 상식적인 일이다. 그리고 우군에는 강한 군대를, 좌군에는 약한 군대를 둔다. 상대의 강한 군대인 우군을 상대하는 것은 아군의 약한 군대인 좌군이다. 아군의 강한 군대인 우군이 상대하는 것도 적군의 약한 군대인 좌군이다. 이 경우 각각의 우군이 약한 좌군을 얼마나 빨리 격파하는가가 승패의 관건이 된다. 뒤집어 이야기하면 아군의 약한 좌군이 얼마나 잘 버텨주는가가 승리의 열쇠가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현덕은 의도적으로 주령과 노소에게 약한 군사를 맡게 한 것이다.
오래지 않아 원술 군의 선봉대가 나타났다. 앞에 서 있는 대장은 삼첨도의 기령이었다.
“오랜만이다. 그동안 피죽도 못 먹었다면서!”
장비가 장팔사모를 휘두르며 달려나갔다. 기령도 질세라 삼첨도를 휘두르며 나왔다. 기령은 이미 관우와 한번 겨뤄본 적이 있었다. 기령은 그때 도망친 다음 부장인 순정을 보내고 도전을 회피했었다. 만일 이번에도 관우가 나왔다면 출전하는 것을 꺼려했을 것이다. 그러나 달려나온 자는 털북숭이 장비였다. 무기도 날창날창하게 보이는 것이 관우의 묵직한 청룡언월도와는 딴판이었다. 기령은 자신감을 가지고 삼첨도를 내밀었다.
장비도 거침없이 사모로 삼첨도를 내리쳤다. 기령은 반신이 저려오는 것을 느끼고 대체 현덕 밑에는 어떻게 이런 괴물들만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어 했다. 물론 한가롭게 그런 생각을 할 새도 없었다.
장비의 사모는 가벼운만큼 빠르게 움직였다. 기령은 차라리 관우의 청룡언월도가 그리웠다. 창날이 좌우에서 번쩍이며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말이 있다. 상대의 흐름에 끌려가게 되면 이길 수 없다는 말이다. 기령은 그 흐름을 되돌릴 수가 없었다. 끝내 십합을 버티지 못하고 목 없는 시체가 되고 말았다. 기령을 따르고 있던 원술 군은 그 모습을 보더니 모두 도망쳐 버렸다. 이제 남은 것은 원술 군의 본대였다. 기령의 패배를 알고도 원술은 북진을 계속했다. 어차피 돌아갈 곳이 없다는 비장한 각오였다.
원술이 도착하자 현덕이 뛰쳐나가 호통을 쳤다.
“천자의 조명(詔命)을 받아 반역도배 원술을 토벌하고자 왔다. 지금이라도 죄를 알고 투항한다면 목숨이나마 부지할 수 있을 것이다!”
“돗자리나 팔던 촌놈이 못하는 소리가 없구나! 너 같은 놈에게 능멸을 당할 몸이 아니다!”
원술이 대노하여 중군을 향해 돌격했다. 현덕이 군사를 물리며 달아나자 원술은 아무 의심없이 중앙으로 밀고 들어갔다. 그러나 잠시 후 주령, 노소, 관우, 장비가 좌우군으로 양쪽에서 압박을 가해오기 시작했다. 삼면이 포위된 것을 느꼈을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원술 군은 괴멸되었다.
간신히 도망쳐나온 원술은 북진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었다. 원술은 수춘으로 돌아갈수도 없었다. 아무튼 남진하는 방법밖에 없어 남쪽으로 도주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 옛 부하였던 뇌박과 진란이 나타나 분탕질을 놓고 재물을 빼앗아 달아나버리는 황당한 사태가 벌어졌다.
원술은 불과 천여 명의 부하만을 거느리고 수춘에서 팔십여 리쯤 떨어진 강정(江亭)에 머무르게 되었다. 때가 여름으로 접어들어 무더위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산해진미로 배를 채우던 날이 불과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더위 속에서 입맛도 없는 상태에서 꽁보리 밥을 먹자니 목구멍이 깔깔해서 도저히 삼킬 수가 없었다.
“누가 여기 꿀물을 좀 대령해라! 이게 어찌 천자의 식사라 할 수 있겠느냐?”
갈 곳이 없어 쫓아다니던 시종이 원술의 말에 기가 막혀서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핏물이라면 모를까, 꿀물이 어디 있다고 찾으신단 말입니까?”
원술은 그 말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처절하게 몰락해 버린 것이다. 이제 재기도 꿈꿀 형편이 못되었다. 원술은 밥상을 물리고 아득한 현기증을 느끼며 일어났다.
“내가, 천하를 오시하던 내가!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이냐!”
원술은 하늘을 저주했다. 자신이 잘못한 일은 있을 리가 없었고 이 처참한 몰락은 환관의 후손 조조와 촌놈 현덕 때문에 생긴 것이었다. 또한 감히 은공도 모르고 배반한 뇌박, 진란과 같은 부하 때문이었고 능력도 없는 주제에 상장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가 죽어버린 기령 때문이었다. 자신과 같은 영웅에게 이런 부당한 처사를 내리는 하늘을 이해할 길이 없었다. 원술은 가슴 가운데서 뜨거운 기혈이 들끓는 것을 느꼈다.
“나는 인정할 수 없다! 인정할 수...”
말을 다 마치지 못했다. 아니 마칠 수가 없었다. 들끓던 기혈이 핏물로 뿜어져 나왔다. 원술은 한 말이 넘게 피를 토하다가 돌아올 수 없는 경계를 넘어가 버렸다.
원술의 조카 원윤(袁胤)은 원술의 처자를 수습해서 여강태수 유훈에게 가 의탁했다. 여강은 후일 손책에게 점령당한다. 손책은 원술의 처자를 잘 보살펴주었다. 원술은 그를 언제나 이용했지만 손책은 그것을 덕으로 갚아주었다. 손책의 자신의 아들 손분과 원술의 딸을 결혼시켜주기까지 했다.
원술이 가지고 있던 전국옥새는 훗날 광릉태수 서구(徐璆)에게 수습되어 허도로 보내졌다. 십상시의 난 때 천자의 수중을 떠났던 전국옥새가 십 년만에 다시 천자의 손에 돌아온 것이었다.
현덕은 원술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주령과 노소에게 원술의 죽음을 알리는 표문을 준 뒤 허도로 가게 했다.
“좌장군께서는 돌아가지 않으십니까?”
“서주가 오랜 전란으로 많이 황폐화되었소. 나는 이곳에서 흩어진 백성들을 초모하여 생업에 종사케 할 작정이오. 대장군께 내 뜻을 전해주시오.”
주령과 노소도 뭔가 일이 잘못 돌아간다는 것을 알았지만 군권을 쥐고 있는 현덕에게 대항할 수는 없었다. 결국 쫓겨나다시피 허도로 돌아오고 말았다. 조조는 그들이 가지고 온 보고를 듣고는 화를 참지 못하고 참수형에 처하라고 고함을 지르고 말았다. 순욱이 곁에 있다가 만류했다.
“군권을 가지고 있던 것은 유비입니다. 이들이 대적할만한 인물이 아닙니다. 지금 이들을 처치한다고 득될 것이 없습니다.”
“내 불찰이오. 자신이 예주목이면서 서주에 주둔하겠다니 배반한 것이 분명하오. 이제 유비를 어떻게 해야 하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