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는 학생의 영혼을 살찌우는 밥이다
이윤식 (전 인천대학교 교수, 인천교육자선교회 이사장)
헬렌 켈러는 생후 19개월 때 열병에 걸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말도 못하는 삼중의 고통을 겪게 되었다. 6세 때 그녀는 당시 22세인 앤 설리번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앤 설리번 선생님은 헬렌 켈러에게 단 하나 남아있는 인식의 창구인 촉각을 통해서 암흑에 갇혀 있는 그녀의 영혼을 향해 사랑을 전하기 시작하였다. 헬렌 켈러는 '물'이라는 단어를 통하여 모든 사물에는 이름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이후 점차 암흑의 세계에서 밝은 세계로 나오게 된다. 후에 헬렌 켈러는 장애인들에게 커다란 희망과 예수님의 복음을 전해 주는 위대한 사랑의 삶을 살게 된 것이다.
앤 설리번 선생님 자신도 고통의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8살 때 어머니가 죽고, 알콜중독자인 아버지에게 버림받았으며, 10살 때 하나뿐인 남동생과 함께 복지시설에 수용되었고, 여기서 남동생이 죽게 된다. 눈병이 악화되어 실명하였고, 두번 자살을 기도하였다. 정서불안 증세로 인해, 정신병원에 수용되었을 때, 회복불능이란 판결이 내려졌고, 그녀에게 사랑을 베푸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한 나이 많은 간호사가 매일 과자를 들고 찾아와 위로해 주며, 아무런 반응이 없는 그녀를 위해 6개월 동안 한결 같이 사랑을 쏟았다. 그때부터 그녀의 마음이 조금씩 열리며 웃음을 되찾게 되었다. 그 후 앤 설리번은 맹아학교에 다닐 수 있었고, 한 신문사의 도움으로 개안 수술을 받았다. 맹아학교에서 교사를 하고 있다가, 헬렌 켈러의 가정교사가 된 것이다.
필라델피아 템플 대학이 헬렌 켈러에게 박사학위를 수여할 때, 앤 설리번에게도 박사학위를 수여하였다. 어느 학위보다도 고귀한 학위였다. 앤 설리반 선생님은 일생을 마치는 날까지 48년간이란 긴 세월을 헬렌 켈러를 돌보며 살았다. 앤 설리반 선생님의 가르침을 통해, 헬렌 켈러는 “나는 눈과 귀와 혀를 빼앗겼지만, 내 영혼을 잃지 않았기에, 그 모든 것을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온 세계 장애인들에게 전파하는 위대한 삶을 살게 된 것이다. 헬렌 켈러는 사흘만 볼 수 있다면, 첫째 날, 친절과 겸손과 우정으로 자신의 삶을 가치있게 해준 앤 설리번 선생님을 찾아가 이제껏 손끝으로 만져서만 알던 그녀의 얼굴을 몇 시간이고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그 모습을 자신의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해 두겠다고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일로 선생님이 관련되는 2가지 사건이 생각난다. 1994년 추석 기간에, “돈 많은 자를 저주한다” 면서 잔인하고 엽기적인 방법으로 5명을 연쇄살인하고 인육을 먹기까지 한 ‘지존파’ 라는 범죄 조직이 체포되어, 분노와 경악을 금치 못했던 일이 있었다. 지존파의 두목인 김기환이라는 청년은 초등학교 때 전교 수석을 하였고, 중학교 1학년 때는 전교 148명 중 5등을 할 정도로 똑똑하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3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와 2남1녀가 힘겹게 살아야 했던 농촌의 불우한 가정 출신이었다. 그는 재판과정에서 “우등생이면서도 돈이 없어 미술도구를 준비하지 못해 선생님으로부터 늘 매를 맞았다”고 진술하면서, 어린 시절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쓰라린 마음의 상처를 드러냈다(94.10.19 2차공판 최후진술).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와 조직원들은 강도살인죄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1996년 5월 14일 동아일보에 ‘빌딩 주인된 35년전 소녀가장 스승찾아 보은의 차 선물’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당시 48세된 심순희라는 주부가 초등학교 시절, 병든 부모님과 세 동생을 혼자 보살펴야 하는 어려운 가정환경에 처해 있던 자신에게 도시락도 나눠주고, 중학교 진학 등록금과 입학금까지 마련해 주며, 삶의 의지를 복돋워 주신 선생님을 수소문하여 찾아 온 것이다. 제자가 선물한 뉴-프린스 승용차 운전석에 당시 인천 송월초등학교 교장인 조춘자 선생님이 앉아 있고, 제자가 차에 기대어 서있는 아름다운 사진이 함께 실렸다.
비슷하게 불우한 환경에 처해 있었던 두 학생이었는데, 그들이 가슴 속에 담고 있는 선생님에 대한 이미지는 가히 ‘하늘과 땅’ 만큼 큰 차이가 있다. 그들의 인생이 불행과 행복의 양극단으로 향해 가는 데, 선생님이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교사는 학생의 영혼을 살찌우게 하는 밥이다!” 식사 시간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가정해 보자. 부부가 함께 밥을 먹다가 남편이 돌을 씹었다. 화난 얼굴로 부인을 쳐다보는 남편에게, “밥통에 허구많은 쌀 중에 돌이 하나 들어 있는데...,그럴 수도 있지! 뭘 인상을 쓰는가?”라고 말하는 부인이 있을까? 모든 부인들이 당황하면서 돌이 들어가 있는 것에 대하여 미안스러운 표정을 짓는 것이 일반적이다. 양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밥에는 순수하게 100% 쌀만 있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단 하나의 돌도 들어 있어서는 안된다. 단 하나의 돌이라도 씹는 사람의 치아를 크게 다치거나 건강을 해치기 때문이다.
교사도 학생의 영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마찬가지가 아닐까? 자신의 자녀를 학교에 보내고 있는 학부모들은 자녀들이 만나는 모든 교사가 100% 좋은 교사이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앤 설리번 선생님의 경우나 조춘자 선생님의 경우는 그를 만난 학생의 영혼을 풍성하게 한 좋은 밥이었음에 틀림없다. 현재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은 과연 “좋은 밥인가?” 자문해 본다.
(출처: 이윤식(2008. 10). 교사는 밥이다. 인천대학교 교육대학원 원우회보, 24,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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